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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성소수자

미숙한 색깔

by 행성인 2016. 4. 10.

씨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청소년인권팀)
 


눈에 띄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 등 다수의 사람들과 비슷한 길을 걷기를 요구받는 사회 속에서 평범함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불편한 존재가 됩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증폭 됩니다. 그 대상이 사회적 약자인 경우 불편한 감정은 조금 더 쉽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죠.
 
폭력의 피해자 중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에서 청소년이란 어른들이 보호 해줘야하는 미숙하고 순수한 존재이고, 성소수자는 과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포비아분들 때문에 여전히 많은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청소년은 완숙한 사람이 아니고, 성소수자는 평범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일까요? 보호와 차별이 교차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더욱 이상한 잣대를 들이밉니다. 그 예로, 작년에 방영한 ‘선암여고 탐정단’ 키스 장면에 대해 방심위는 ‘건전성,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 등’의 이유로 경고를 받았고, 지난 3월 ‘학교 성교육 표준안’ 수정안을 발표 했을 때 성소수자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교계에서는 올해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청소년과 국민에게 악영향을 미치기에’ 반대한다는 발표를 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에 나오는 키스 장면에 대해 ‘청소년들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심의 조치를 했습니다.

이 밖에도 언론에는 나오지 않지만 ‘청소년을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검열 하거나 혐오 발언을 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지에서 오는 불편함과 두려움을 청소년을 위한다는 아름다운(?) 포장으로 묶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한 결정과 말은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선택의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란 색깔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파란색이라해도 하늘색, 바다색 등 다른 색깔이 있는 것처럼 사람 또한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물며 같은 집에서 같은 구성원과 같은 밥을 먹고 자란 쌍둥이라 할지라도 같지 않듯이 우리도 저마다 다릅니다. 결코 평범할 수도 평범하지도 않습니다. 파랗든 노랗든 그것은 ‘나’를 이루는 색깔이고 그 색깔이 무슨 색인지는 나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그 누구도 내가 무슨 색을 이루고 있는가에 대해 평가하고 차별 할 수 없으며 ‘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내 색깔을 다른 색깔로 덮을 수는 없습니다.
 
곧있으면 故육우당 추모 주간입니다. 故육우당을 포함하여 평범하지 않고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해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는 분들을 기억하고, 여전히 갖은 차별과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이 더 이상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