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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

세상은 그냥 계속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동성결혼 법제화 1년 이후 LGBT와 대중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by 행성인 2016. 6. 4.

 

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 글은 <맥스무비> 6월호 기획 ‘LGBT LOVE’에 실린 '세상은 그냥 계속될 겁니다'의 원문입니다. 웹진 ‘랑’에 독자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은 그냥 계속될 겁니다.’

 

2013년 뉴질랜드 결혼 정의 수정(동성 결혼 허용)법안이 논의되던 시기 모리스 윌리암슨 의원의 지지발언이 한동안 회자되었다. 발언의 요지는 동성결혼의 법제화가 당사자들에겐 더 없는 기쁨일 테지만, 세상이 망하거나 큰 일이 벌어질 우려는 없다는 것이었다. 2년 후,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통과시키더니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도 동성결혼을 법제화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이탈리아에서 동성 간 결합을 허용했다.

 

동성결혼은 여느 성소수자 이슈보다 비중 있게 인식되는 듯하다. 단지 남녀 결합의 자연적·종교적·사회적 결정체로 부부관계가 정의되어 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복지 제도와 사회 서비스, 상품시장의 표준모델이 ‘성인 이성애자 부부’에 초점을 둔 사회에서 동성결혼은 시민권 평등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제도를 해체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목소리도 있지만, 당장 결혼제도가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동성결혼은 동성애자를 2등시민의 지위에서 한 단계 높여줄 수 있는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이다.

 

한간에는 해외의 변화를 접하며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도 이미 이긴 싸움이라는 진단이 타진된다. 한편에는 큰 목표를 달성하고 운동의 약발이 떨어졌다는 체념과 냉소도 눈에 띈다. 피부에 와 닿는 해외의 소식을 살펴보면, 최근 급격히 늘어난 셀러브리티들의 커밍아웃이 이전만큼 드라마틱한 충격을 주지 못하는 인상이 짙게 드리운다. 이는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제도적으로 동등해진 가운데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됨음을 보여주는 징후일 것이다. 반동성애 진영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 동성애가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 호언장담했던 엑스-게이ex-gay 단체나 전환치료자들의 입장 전회가 한동안 러시를 이뤘다. 동성애 반대 구호를 생산해온 복음주의 기독교는 시장성을 잃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로 눈을 돌려 ‘혐오산업’을 수출한다. 동성애에 낙인처럼 따라붙던 HIV/AIDS 혐오와 낙인도 표면 상으로는 약발을 다한 것 같다. 80년대 HIV/AIDS위기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강타했지만 현재의 HIV/AIDS치료제 기술은 완성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뿐더러, 2012년 미국이 HIV/AIDS 예방요법 PrEP(Pre-Exposure Prophylaxis)을 보험 적용하여 상용화하고, 뒤이어 남아프리카, 프랑스, 케냐, 캐나다, 이스라엘이 뒤이어 권고와 더불어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페루, 스위스, 호주도 허가를 완료하면서 공공서비스를 앞두고 있다.[각주:1] 더이상 HIV/AIDS는 질병 이외의 의미부여가 효력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권리를 쟁취함에 따라 동성애자로서 ‘엣지’를 잃었다는 평도 더러 눈에 띈다. 오랜 시간 차별과 혐오 속에 날을 세운 감수성과 예술적 감각이 더 이상 빛을 내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영화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성소수자의 비장한 서사나 감수성을 다루기보다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국내에 개봉되거나 유통된 작품들 중에서도 <노멀하트>(2014)와 <달라스 바이어스클럽>(2013)과 같이 위기의 시절, 운동을 조직하고 의약품을 구하기 위한 투쟁을 기억하는 작품들이 늘었다. 성소수자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들이 목숨을 걸었던 투쟁사를 박제하는 것인지, 지금의 ‘태평성대’가 있기까지 위기의 시간들을 작품으로 기억하기 위함인지(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기억인지) 곱씹을 필요가 있다.

 

올 초 국내에 출간된 <동성결혼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의 저자 리 배지트 교수는 동성혼 법제화 이후 오랜 시간 이어온 공동체가 해체되고 감수성이 변한다 할지라도 평등한 권리가 주어진 사회가 더 낫지 않느냐 갈음한다. 엣지를 잃었을지라도 세상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설명이 아니다. 동성혼 법제화 이후에도 세상은 변하고 있으며, 변화에 대한 열망과 기운들이 곳곳에 드리운다. 동성혼이 인정된다고 성소수자 인권이 사회문제의  목록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성결혼에 전력을 다하느라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성소수자 커뮤니티 영화제들에 소개되는 영화들 중 많은 수의 다큐멘터리는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들 외에도 레즈비언과 게이 이슈에 가려진 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 더불어 그 밖의 인터섹슈얼, 에이섹슈얼 등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별정체성 당사자들을 다룬다. 유럽과 영미권의 경우 동성 커플의 양육이 가능해지면서 정자은행과 대리모가 사회이슈로 떠오르는가 하면, 노년과 미성년 등 성소수자 세대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의 인종과 계급도 부각된다. 미국 탈가정 청소년 중 40%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은 여전히 가정 내에서 성소수자들이 불인정과 배제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증오범죄’는 제도만으로는 인권이 보장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HIV/AIDS 역시 끝난 문제가 아니다. PrEP이 유통된다 하더라도 미국의 사보험체제는 보편적인 의약품접근을 보장할 수 없고, 청소년과 유색인종의 감염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사안이다.

 

공동체의 변화 역시 눈에 띈다. 북유럽이나 몇몇 서유럽국가처럼 동성결혼을 비롯한 성소수자 권리가 안착된 지역에서는 동성애 전용 업소가 의미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외려 이 지역들은 성소수자 난민이 시급한 이슈로 다뤄진다. 동성애자들이 따로 모여 살 이유가 사라짐에 따라 가난과 질병, 시민권 바깥에 매달린 성소수자가 아니라면 하위문화의 공동체도 굳이 영위할 필요가 없어졌다. 모여 살 이유가 줄어들면서 중산층 게이들은 다운타운의 게토를 떠나 호젓한 근교에서 생활한다. 그런가 하면 샌프란시스코의 고고보이와 트랜스젠더 공동체는 젠트리피케이션 효과로 제 터전을 잃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투쟁의 역사를 기억함에 있어서도 ‘기억하는 주체’는 논쟁에 부쳐진다. 영화 <스톤월>(2015)을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 사례이다. <스톤월>은 69년 뉴욕 동성애자 술집인 스톤월 인에서 경찰의 강제연행과 폭행에 집단적으로 저항한 성소수자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당시 거리에서 돌을 든 이들은 다수가 유색인 동성애자고 드랙퀸이었음에도 백인 게이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이 문제 되었고, 이후 많은 활동가와 단체, 대중들이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런가 하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은 최근 주목 받는 현상이다. 핑크워싱은 이스라엘이 국가적으로 자신들의 성소수자 문화컨텐츠를 해외에 세일즈하고, 이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성소수자 억압과 대조하며 자신의 친성소수자적인 선진국 이미지를 연출해내는 전략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압을 은폐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 성소수자들의 구체적인 현실을 감추고 ‘이슬람=성소수자 혐오’ 일반화를 강화한다. 역사 속 투쟁이 이미 끝난 싸움이라고 갈무리하기 전에, 투쟁의 종언을 선언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투쟁의 낭만에 젖어있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세상의 변화 위에 진행 중인 싸움들

 

초점을 한국으로 돌리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법과 제도에서 성소수자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실정이다. 있다 해도 몇몇 지자체의 학생조례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성적지향이 표기되는 것이 전부이며, 군형법 92조 6의 ‘추행죄’가 동성애를 암암리에 범죄화한 지 오래다. 지난해 교육부의 성교육표준안은 청소년 성문화를 무시한채 순결과 성차별을 강요하고 한부모가정과 장애인, 성소수자를 배제했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본법에 성소수자와 관련된 개념이나 정책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공문을 지자체에 전달하여 대전시 성평등조례 제정에서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조항을 삭제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에 나오는 청소년의 성적 권리와 동성 간 사소한 스킨십도 검열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이미 동성애를 ‘더러운 좌파’로 호명하는 조우석 미디어펜 주필이 KBS의 이사로 추천되는 시절에는 이상한 일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없는 존재 취급하는 정부기관의 태도는 성소수자에게 험악한 사회의 일면이다. 트랜스젠더의 취업이 제한되고, 성소수자에 대한 직장, 학교, 군대 내 차별과 괴롭힘이 계속되고 있으며, 가족으로부터의 배제와 전환치료의 폭력이 난무한다. 이에 대한 제도적 보호장치는 전혀 없는 실정이다. HIV/AIDS는 동성애와 짝을 이루며 여전히 전염병의 상징으로 취급받는다. 현재 에이즈환자가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은 없으며, 건강한 질병당사자일지라도 감염사실 때문에 취업이 제한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

 

한편에서는 SNS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해외 성소수자 이슈들이 실시간 유통된다. 한국의 성소수자 현실에는 별다른 영향력을 주지 않지만, 신기루처럼 시야를 채우는 해외의 성소수자 인권 의제들이 끊임없이 복기된다. 해외 소식과 국내 현실의 간극은 성소수자 인식에 대한 낙차를 각인시킨다. 동성결혼 법제화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서구의 레즈비언 커플과 동성 간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매질당하고 사형 당하는 중동의 게이소년이 나란히 놓이는 뉴스피드는 인식의 총량을 넘어선다.

 

천차만별의 사회적 맥락은 한국과 해외의 지리적 거리를 상기시키지만, 반도의 성소수자 환경과 정치역학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낙차를 인식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된 건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인권운동이 어느 때보다 양질의 성장을 바탕으로 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내 성소수자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성소수자 의제를 발굴하고 설계하는 토양이 형성되고 있다. 2014년 12월 서울시민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며 진행된 서울시청 무지개농성 이후 커뮤니티에는 새로운 변화들이 나타났다. 독립출판과 전시, 문화컨텐츠가 생산되는 등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 자생적인 제작문화의 기반이 생겼다. 이들은 생산자 간 네트워크를 형성할 뿐 아니라, 기존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과 협업함으로써 파트너십을 높이는 효과도 보여줬다. 클럽과 인권단체가 만나고, 문화생산자와 노동조합 운동가들이 조우하는 풍경은 더 이상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 아니다. 상이한 분야의 종사자들이 다각도로 관계를 맺고 교차하는 과정은 대중적인 방식으로 성소수자 이슈를 사회에 환기하는 시너지를 낸다. 결정적으로 지난 6월 시청광장에서 진행된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 거리를 메운 3만 여 명의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은 성소수자로서 존재감을 직접적으로 보여줬다.

 

일련의 변화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집단적 욕구가 발현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번 총선에도 성소수자의 집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20대 총선 기간 동안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 보트’ 캠페인을 진행했다. 5천 명이 넘는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의 유권자 선언을 받았고, 동성애 혐오 정치인을 뽑아 낙선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몇몇 야당 의원들은 친동성애 정치인이라는 집단적 공격과 검열에 발이 묶였고, 이에 표창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권은 중요하지만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간증 고백을 하는가 하면, 같은 정당의 박영선 비상대책의원은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주관하는 3당 대표 초청 국회 기도회에 참석하여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 반대를 선언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성장보다 더 조직적인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선동의 공세는 압도적이다. 근 몇 년 간 혐오 세력들이 거리와 지면을 가리지 않고 ‘동성애 OUT’을 외쳐오고 있다. 수 년 째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체를 주장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다.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집단들의 정치세력화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협한다. 20대 총선에서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 반대를 공약으로 내건 기독자유당은 2.63퍼센트의 지지율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원을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지원금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성소수자 이슈는 최근 정치권의 민감한 카드로 떠올랐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 논의가 아닌 동성애 찬반 프레임에 문제가 맞춰졌다는 점에 논쟁은 수세적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총선 기간 동안 성소수자 이슈는 낙선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을 뿐, 성소수자 정치 의제는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동성애 척결을 외치는 단체가 청와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된 최근의 정황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제어하기는 커녕 차별 선동을 조장하는 국가 권력의 위협을 드러낸다. 차고 넘치는 열악한 상황이 성소수자의 삶과 정신 건강을 해친다.

 

 

우리 삶의 존엄을 위한 변화의 씨앗들

 

국내와 해외 상황 간의 낙차는 해외 영화에 대한 비평씬에도 침투해 있다. 예상 밖의 흥행으로 기록된  <캐롤>(2015)도 한국 비평의 필터링을 거치면 ‘테레즈한테는 동성애적인 사랑이 필요한 게 아니고 캐롤이 필요하지만, 하필이면 캐롤이 여자였을 뿐이라는 것’으로 착색된다.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보수적 태도는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긴 커녕 이미 보이는 것을 부정하고 숨기는 데 급급한 행위로 비평을 퇴색시킨다.

 

일련의 관계 부정이 현실에서는 비극으로 돌아온다. 수십 년 동안 동거를 하더라도 상대가 동성이면 그의 시신 수습이 불가능할 뿐더러, 가족의 인정이 없다면 간호할 수도 없다. 법률 상 가족이 아닌 지위로는 아픔을 함께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함께할 자격도 주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2013년 10월 마지막 날,  “40년 동거한 여고 동창생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연합뉴스 기사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기사의 당사자이던 60대 여성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40년을 파트너와 함께 살았지만, 평생 함께해 온 상대방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 지내다가 뒤늦게 상대방의 사망 소식을 접했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 목숨을 끊었다.

 

뉴스가 나오기 얼마 전,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는 수천 명의 축하 속에서 ‘당연한 결혼식’을 열었다. 그 해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했지만, 12월 13일 서대문구청장은 “민법상 당사자 간의 혼인의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불수리했다. 2014년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는 한국 최초로 동성혼 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결혼 신청이 각하되었지만, 싸움은 본 궤도에 올랐다.

 

부부관계는 사적이고 개인적이지만, 사회제도와 공동체에 교차한다. 나의 사적인 삶은 공동체의 서사와 경험으로 집적되면서 제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를 갈망하는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근래에는 양질의 연구와 조사들이 시도되었다. 2014년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공동으로 LGBTI(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간성 등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를 실시했다. 특기할 점은 3천158명의 응답자 중에서 현재 연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45.3%였고, 그 중 25.5%가 동거 중이라고 답했는데, 동거 중인 사람들 중 33.8%가 5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파트너와의 결혼이나 동거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제도로 ‘수술 동의 등 의료 과정에서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국민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 인정’을 꼽았다.

 

그것이 제도적 혜택을 위한 것이든, 관계에 대한 인정의 열망 때문이든 성소수자들의 욕구는 확인되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에 당사자들의 욕구가 높아지고, 이들의 높은 갈망이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선순환을 이뤄낸다. 2014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남녀 1,005명에게 동성결혼 법적 허용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결과 10명 중 6명(58%)이 ‘반대’했고 33%는 ‘찬성’, 8%는 의견을 유보했다.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 의견이 우세했지만, 2001년 같은 질문에 ‘반대’ 67%, ‘찬성’ 17%로 응답한 결과와 비교하면 동성결혼에 대한 우호적 입장이 월등히 높아진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변화이다.

 

동성결혼뿐 아니라, 혈육 가족에 대한 인정에의 요구나 공동체에 대한 고민들이 실천되고 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최근 중국, 일본, 미국의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들을 초청해서 간담회를 열었다. 비슷한 시기, 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하우스’가 만들어졌다. 공동체가 장소를 만들고, 가족 내부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호소하며 동성 관계와 다양한 성별정체성의 인정을 요구한다. 저마다 다른 욕구를 갖고, 인정과 인정 너머를 갈망하는 정도도 다르며, 정치적 입장이 다를지라도 최소한 사회에 배제되지 않겠다는 욕구와 성소수자로서 존엄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공통으로 수렴된다.

 

 

뉴질랜드 국민당 의원 모리스 윌리엄슨은 동성결혼이 생각만큼 위험하지도, 세상을 바꾸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보수당 의원으로서 갖는 관용과 인정의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 그의 발언은 크게 호응을 얻었다. 그의 말마따나 나의 존엄을 위해 보장 받아야 하는 제도적 변화의 요청이 당신의 삶에 해악을 입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인권이 사회가 변화지 않는 선에서만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많은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나와 당신이 원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원해야 하는가?

 

6월이 다가온다. 한국에서 가장 큰 성소수자 행사인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 퀴어퍼레이드는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진행된다. 보다 많은 성소수자들과 성소수자 지지자들이 모여 시끄럽게 떠들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1. '에이즈 예방요법 PreP 기대효과는?', MEDICAL Observer, 박상준기자, 2016.05.19 링크: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52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