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 성소수자 진보포럼 스케치


 

 ‘꿈은, 이루어진다.’ 내가 요즘 새삼 가슴에 아로새기는 말이다. 과도한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과 스포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취향 탓에,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심드렁하게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보면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당시 나에게 주었던 부정적 아우라를 떠나서 그 말 자체가 주는 긍정적 메시지에 더욱 기대게 된 것일까. 나는 요즘 ‘꿈은, 이루어진다.’고 믿고 싶다. 그 꿈이 이루어지긴 이루어지는 데 더디게 이루어진다거나, 꿈을 이루려면 여러 가지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만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지난 7월 4일, 홍익대학교에서 동인련은 2009 성소수자 진보포럼이라 명명된 첫 번째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매년 열려오는 행사이지만, 올해에는 참가자가 더욱 늘어났으며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 친구들의 참가가 두드러진 것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 날, 첫 번째 토론은 스톤월 항쟁 40년을 기념하여 호모포비아적 세상에 대한 성소수자들의 거리투쟁의 역사를 알아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동인련 활동가 나라씨의 발제로 진행된 이 날의 토론은 당시 성소수자들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에 그들이 어떻게 분노하였는지, 당시의 거리 투쟁이 세상을 바꾸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생생한 자료와 사례들로 소개하고 그 의미를 자세히 나누는 자리였다. 발제자와 참가자들 사이에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질의응답이 있었던 숨 가쁜 두 시간이었다.


 토론회를 처음부터 지켜보면서, 나는 마치 무당이라도 된 것처럼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성소수자들의 분노와 애환과 기쁨이 고스란히 가슴 속에 불길처럼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스톤월 바에 갇혀만 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거리로 뛰쳐나와 외치던 구호들이 세상의 차별에 저항하는 하나의 꿈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그들의 하나 된 염원에 감동을 절로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웃팅의 위험을 무릅쓴 그들의 하나 된 용기를 어찌 전쟁 같은 상업주의에 물든 월드컵 따위의 감동과 비교가능 할 수 있을까 싶다. 더욱 희망적이었던 것은 플로어에서 토론을 하던 사람들 모두, 그 시절 스톤월 항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적극적인 요구들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쩌면 우리의 꿈도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슴 속에 품었다.


 8월 1일에 진행된 성소수자 진보포럼 두 번째 시간에는,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학교 내 폭력과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이 진행 되었다. 우선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학교 내 폭력과 차별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실제 학교 현장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토론을 통해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의식이 성장하고 그들의 존재가 가시화됨으로 인해, 학교 내에서의 차별도 심화되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인권개선요구 또한 매우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갈등이 첨예해짐에 따라 기존의 활동가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에 대응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 자리였던 것 같다. 또한, 개인적으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부분은 학교 내에서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교사와 학생간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청소년과 성소수자에 대한 이중적 차별을 조장하는 더 큰 힘이 존재한다는 인권교육센터 들의 상임활동가 민진씨의 의견이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타당한 의견이라 생각했고,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진행된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된 토론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 때 힘을 모았던 성소수자 단체들의 활동가들과 변호사 분을 패널로 모시고 관련한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우익 경제인 단체의 로비와 우익 기독교 정치그룹의 연합으로 인해 좌절된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현재 우리에게 가능한지, 또 당장 필요한지에 대한 주장들이 긴장감 있게 전개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 아래서 차별 금지법의 제정 자체가 요원한 일이고 좀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을 했지만, 그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우리가 적당히 물러나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존재했다. 오히려 차별의 강도가 거세어 질수록, 더욱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대응과 활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차별금지법과 관련하여 우익단체들의 선동적이고 차별적인 움직임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 영역이 꾸준히 넓어지고 있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대응을 우리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옳지 않은가에 대한 생각들도 있었다.


 두 번째 토론회가 막을 내리고 현재 한국의 성소수자들의 운동 또한 스톤월 항쟁 때의 움직임에 못지않게 역동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많은 변화들이 있었고, 다양한 의견과 주장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의 변화는 조금 더 조용하게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그러한 침묵속의 변화들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스톤월 항쟁에 참가했던 그들이 꿈꿨던 세상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직 갈 길이 멀고멀다는 생각은 들지만, 나는 믿는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그 꿈이 비록 더디게 이루어지거나,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한대도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뜻이 한 곳에 있다면 말이다.


 9월에는 우리의 뜻을 한 데 모으는 연대와 관련한 토론이 준비되어 있다. 2009 성소수자 진보포럼의 마지막 시간에 뜻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해와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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