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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장애x퀴어] 보통의 존재는 없다

by 행성인 2017. 4. 17.

이진희(장애여성공감)
                         

 

 

4월이다. 죽음으로써 존재가 알려지고, 그 삶의 궤적으로 죽음의 의미를 말했던 사람들.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만드는 현재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지는 4월이다.

 

27년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살다 지역사회로 나온 故송국현님은 장애3급으로 활동보조서비스 대상에서 탈락했고 화마가 덮쳤을 때 그를 지원할 사람이 없어 피하지 못했다. 시설 밖 삶을 누리기엔 짧았던 시간 1년, 2014년 4월 17일 그는 세상을 떠났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유서를 남긴 故육우당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2003년 4월 25일이다. 3년 전 4월 16일, 바다로 잠긴 후 긴 투쟁과 기다림 끝에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와 6년간 309명이 사망하고, 인권침해와 횡령이 있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대구 희망원.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추모는 현실을 비판하고 바꾸는 투쟁이며 연대였다. 슬픔 위에서 변화와 희망을 노정해야 하는 시간, 4월이다.

 

내가 활동하는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의 몸과 경험이 ‘장애’로만 환원되는 것을 비판하고 장애와 성별이 교차하는, 독자적인 운동을 지향하며 활동하는 단체다. 장애여성의 위치를 드러내는 교차성은 연령, 성적지향, 시설거주 경험 등 장애여성 내에서도 단일하지 않은 차이들이 존재함을 일깨워준다. 사람의 몸을 의학적, 생물학적 기준으로 장애등급을 나누는 기준을 거부할 때 ‘장애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모호하고 포괄적인 개념이 된다. 법과 제도 범주에서 일정한 개념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시대에 따라 달랐고, 과학과 국가에 의해 강요된 기준은 시설수용정책, 분리교육 등 합법적 배제를 가능하게 하였다.

 

독자적인 운동을 한다는 것은 권리로서 법과 제도 마련을 위해 싸우지만, 또 다른 사회적 규범화와 제도화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며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이다. 예를들면 장애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경험할 때 법적 지원을 받기 위해 여전히 ‘저항이 어려운 몸’을 설명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다. 이때 장애여성의 성적권리를 법에 위탁하는 것을 거부하며 폭력의 경험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애여성이 섹슈얼리티를 탐색하고 표현하는 언어를 생산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여성은 몸의 차이로 인해 ‘비정상적’인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비정상화된 몸의 경험을 통해, ‘정상적’ 삶을 강요받고 차별받는 다른 몸들과 만난다. 다른 몸에 대한 사회적 비정상화는 다양한 차별로 이어져 왔다. 건강하지 않은 몸, 질병이 있거나 손상된 몸, 나이든 몸, 여성/남성답지 못한 몸, 트렌스젠더의 몸, 뚱뚱한 몸... 모두 비정상적인 몸이다. 그래서 트랜스젠더에게 ‘성주체성장애’라는 진단의 의미와 HIV/에이즈 감염인이 장애를 가지게 되는 삶의 과정에 귀 기울이며, 손상의 정도에 따라 장애를 규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와 질병의 ‘원인’에 따라 사회적 인정이 달라지는 맥락을 발견하게 된다. 성별이분법을 기준으로 분리된 화장실로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성별이 다른 경우나 성소수자는 불편과 차별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분법적인 공간인 화장실을 비판하고 누구도 차별없이 접근가능한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된다. 만남을 통해 새로운 운동의 접점을 만들어 가는 것은 긴장과 조심스러움을 동반하지만, 가슴 뛰는 일이다.

 

작년 장애여성공감이 참여하는 성과 재생산포럼에선 ‘성소수자의 관점으로 성과 재생산 말하기’를 진행했다. 이 자리는 성과 재생산에 관해 장애, 연령,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이주, 병력 등의 이슈와 교차점을 나누는 자리는데, 우생학과 국가의 섹슈얼리티 통제가 소수자의 성과 재생산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 토론했다.

 

든 생명이 동일한 가치와 축복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는다. 한국의 형법은 여성의 낙태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지만, 모자보건법 14조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이라는 우생학적 사유로 임신중절 허용 예외조항을 두었다. 그리고 이는 장애여성의 재생산과 장애에 대한 생명통제로 이어져 왔다. 산전검사와 선택적 임신과 같은 의료기술을 통해 여아와 장애아 등 태어날 가치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를 선별하는 것을 권장하며, 국가는 존중받을 생명을 선택해 왔다. 건강한 인구 재생산을 위해 이미 국가가 생명에 대한 선택권을 휘둘렀다. 그리곤 낙태죄를 여성에게 물으며 재생산 통제를 위한 국가와 의료권력, 젠더권력, 정상성 이데올로기들의 공모를 감춘다.

 

장애여성과 성소수자의 성과 재생산에 대한 통제는 건강하고 건전하지 않은 몸과 규범에서 벗어난 섹슈얼리티를 비시민으로 구분하고 낙인찍는 방식으로 오랜 시간 이루어져 왔다. 며칠 전 군형법 92조 6을 들어 동성애자 병사를 색출했던 사건, 장애인 생활시설 중심의 분리 정책, 장애인 생활시설 내에서의 강제불임시술 등의 재생산 통제, 모자보건법 14조, 국가수준의 성교육 표준안, 입양에서의 성소수자와 장애인 차별, 의료접근권과 교육의 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제거된 선택’ 과 다른 정체성을 지우려는 폭력의 역사를 찾기란 이처럼 어렵지 않다. 결함이 있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개발 되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소수자들은 법과 규범 밖에서 자유로운 상상과 실천을 통해 섹슈얼리티 담론과 실천을 만들어 왔다. 이러한 실천이 소수자의 이름으로 성과 재생산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생명의 존엄에 대한 가치를 다시 써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성소수자운동이 들려주는 몸과 섹슈얼리티, 차별과 폭력에 대한 경험에 귀 기울이며, 장애여성운동의 방향을 노정하고 있다. 장애여성운동과 성소수자운동은 이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배우고, 깨닫고, 연대하는 시간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차이는 다름에 머물지 않고 교차적/중층적 정체성을 고민하게 하고 새로운 운동의 물꼬를 터줬다. 보통과 다르다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이들이 다시, 보통과 일반의 기준을 묻고 정의하며, 인간의 조건을 구분해 왔던 근대적 시간과 결별하는 물꼬 말이다.

 

장애와 퀴어의 만남은 어떤 운명도, 어떤 보통도 거부하며 이상한 연대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반반인 존재도, 나중으로 미루어야할 존재도 없다. 나로서,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차별없는 평등한 세상을 위한 공명의 연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하고, 자주 함께 싸우자. 먼저 차별금지법제정과 군형법 92조 6 폐지 투쟁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