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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여성의 날에 무지개 깃발을 흔들다

by 행성인 2017. 3. 16.

 

 

퐁퐁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 4일,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기념하는 두 개의 행사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열렸습니다. 하나는 ‘범페미네트워크’가 주최한 청계광장에서의 행사였고 다른 하나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보신각에서의 행사였습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는 두 행사 모두에 부스를 운영하고 행진까지 적극 참여했는데 이는 올해 들어 처음 진행되는 행성인의 거리캠페인이기도 했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참가자들과 함께 “나라 바꾸는 퀴어! 나라 바꾸는 여성!” 을 함께 외쳤습니다. 이렇게 성소수자들이 여성의 날 집회에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한기총 목사들한테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추가입법은 고려하지 않으니 염려 마시라’고 한 어느 유력 대권주자 앞에서 여성이자 성소수자인 행성인 활동가분은 저렇게 외쳤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벌써부터 2017년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 후보에 등장할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나중에” 였습니다. 레즈비언 여성, 바이 여성, 트랜스여성, 여성으로 패싱되는 젠더퀴어들에게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이란 칼로 자르듯이 따로 분리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성소수자와 노동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여성과 성소수자 또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나중으로 유보하는 여성정책이란 이토록 모순적이며 필연적으로 배제를 낳습니다. 그런데 일련의 논리로는 “성소수자가 왜 여성의 날 집회에 참가하는가”에 대한 풍요한 답변을 할 수는 없습니다. 여성이라는 구성항목에 당사자성을 느끼지 않는 성소수자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금 더 멀리 나아가 지배적 성규범이 여성과 성소수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라는 용법으로 일상에서부터 재생산되는 젠더 롤(Gender role) 강요는 다양한 맥락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의된 맥락들을 파악할수록, 그 속에서 성소수자와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들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숏컷을 한 여성이 화장을 하지 않고 후드 집업과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채 흡연을 하고 있다면 “여자가 곱상하지 못하게” 와 같은 소리를 듣기 십상입니다. 혹은 아예 남성으로 패싱될 지도 모릅니다. 또한 대국민고민토크쇼를 표방하는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너무 아들 같은 딸’, ‘너무 딸 같은 아들’이라는 주제로, 당사자를 앞에 앉혀놓고는 고민상담이랍시고 온갖 혐오발언을 자연스럽게 쏟아내는 연출이 매우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분법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인 성규범이 공고한 사회에선 그들이 정상성에서 벗어난 비정상적 존재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이분하고 그 범주의 정상성과 이상적 모델이라는 기준을 공고하게 설정한 뒤,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튀어나오면 다소 폭력적인 방식이어도 예쁘고 정확한 틀 모양을 지키기 위해 그를 깎아내는 것이죠. 이탈자를 밀어 넣거나 추방하는 이러한 과정은 어떤 ‘(만들어진) 본질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아주 중요하고도 엄격한 작업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일련의 작업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는 피억압자의 포지션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성의 경우, 그의 이상적 모델로서 구축된 형태 자체가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이라 정상성에서 벗어나든 벗어나지 않든 차별에 시달려야 하는 딜레마적 구성이기 때문이고 성소수자의 경우, 기존의 성규범이 정상적인 젠더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로 설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성소수자와 여성은 당대의 지배적인 성규범에 대해 공동으로 질문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무엇이 ‘정상’적인 성규범인가? 그 ‘정상’적인 성규범이란 누가, 왜, 어떻게 만들어냈는가? 이러한 장치들로 이익을 얻는 집단은 누구이며 누가 착취되고 배제되는가?” 가부장제, 자본주의, 성별이분법, 이성애중심 사회에서 끊임없이 구조적 억압을 받아온 성소수자와 여성들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사회인식의 뿌리를 비춤으로써 사회가 숨겨온 어둠 속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함께하는 것, 연대하고 뭉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여성의 날에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이유이며 퀴어문화축제에 여성단체들이 함께하는 이유입니다. 행사 당일, 두 개의 행사에 모두 참여하고 행진 또한 투 탕(?) 뛰었던 제가 가장 감동받은 구호를 외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