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인 웹진 '랑'에서는 11월호부터 '성소수자 단체 상임활동가와의 만남'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연대 활동이나 큰 행사 등에서 성소수자 단체들이 함께 만나지만, 각 단체의 회원들은 자신이 속한 단체 외에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여 웹진 '랑'은 성소수자 단체 상임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구독자 분들께 여러 성소수자 단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만남 두 번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낙타님입니다.
인터뷰 한 사람: 오소리, 르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터뷰 받은 사람: 낙타(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오소리: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낙타: 친구사이 상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낙타라고 하고요. 본명은 김찬영이에요. 2017년 친구사이 대표로 당선되었습니다. 아직까진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어요.
오소리: 당선 축하드립니다. (웃음) 친구사이 활동한지 몇 년 되셨죠?
낙타: 2012년 12월부터 해서 이제 딱 4년이 되었어요.
주말 게이에서 ‘인권 운동에 빠져 결혼도 안 하는’ 친구사이 상임활동가가 되기까지
낙타 (사진 출처: 친구사이 커밍아웃인터뷰)
오소리: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낙타: 그 전에는 부산에서 출판 디자인하고 기획하는 조그마한 회사에서 미술부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오소리: 정체성은 언제 깨달으신 거에요?
낙타: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자애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어요. 실제로도 여자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고. 중학교 오면서 ‘아 내가 남들과 다른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고, 중고등학교를 그렇게 고민하면서 보내다 대학교 오면서 ‘아 나는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느끼면서, 그 다음부터는 자유롭게 지냈어요.
오소리: 친구사이에서 상임활동하기 전부터 친구사이 멤버쉽이 있었나요?
낙타: 그건 아니에요. 홈페이지를 통해서 친구사이가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어요. 인권 단체라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 당시 커밍아웃 인터뷰를 읽으면서 ‘아 이런 단체가 이런 활동을 하는구나’ 홈페이지를 본 것은 2010년? 대학 졸업 할 때쯤이었을 거예요.
오소리: 가입은 안 하시고요?
낙타: 가입은 아마 그때쯤 했을 거예요. 그때 막 뻔질나게 드나드는 정도는 아니었고 커밍아웃 인터뷰를 보며 아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며 보고 있었죠.
오소리: 부산에서 일을 하실 때, 다른 인권단체나 성소수자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신 적은 없으세요?
낙타: 그런 적은 없었고, 그 당시에만 해도 지역에서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는 곳이 잘 없어서, 주말에는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았어요.
오소리: 그러면 친구사이 활동을 상임활동을 시작하면서 하게 된 건데, 어떻게 상임활동을 지원하게 되셨는지 계기가 궁금해요.
낙타: 2012년에,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직장 일이 무료하기도 했고, 더 이상 친구들과 주말에 만나서 술 마시는 게 재미도 없고, 여러모로 게이로서, 사회 초년생으로서도 고민이 많을 때였는데 그때 마침 I 게이 사이트에 상임활동을 구한다는 공지가 올라왔었어요. 거기서 보고 친구사이 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하게 됐죠.‘그럼 한번 지원을 해볼까?’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제가 지방에 있어서 물리적으로도 멀리 있었고, 제가 인권 활동을 대학에서든 사회에 나와서든 한적이 없어서 경력이 전무했었죠. 그래서 반신 반의하며 원서를 넣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심지어 이런 단체에서 면접비도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웃음) 멀리서 오니까요. ‘어 그러면 겸사겸사 가볼까?’ 했죠. 바로 그 다음달부터 쭈욱.
오소리: 상임 활동을 시작했을 때, 가족한테 커밍아웃을 하고 시작한 거예요?
낙타: 아니요. 그때는 그냥 서울에 있는 디자인 회사에 취직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서울로 건너뛴 거지요. 부모님도 아들이 서울에 취직해서 간다니까 당연히, ‘오, 서울에. 축하한다, 남자라면 서울에 가봐야지’ 약간 이런 반응. 그래서 왔고, 커밍아웃은 이듬해 봄쯤에 했으니까 반년 정도 활동을 하고 커밍아웃을 했죠.
오소리: 반응이 어떠셨어요?
낙타: 저희 부모님 두 분이 굉장히 시골 분이시고, 일밖에 모르시는 분들이라, 게이 이런 용어도 잘 몰라요. 처음에 봤을 때는 아버지는 뭐 그냥, 한숨 쉬고, 제가 장남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집의 대가 끊긴거냐, 아버지의 마음은 대가 끊긴 게 더 참담한 거에요. 어머니는 그냥 막 울었어요. 그러면서 남자들끼리는 ‘성장난’을 어떻게 하니, 저희 어머니는 그런 걸 물으셨어요. 엄마의 입에서 성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런 표현을, 저런 식의 표현도 쓸 수 있구나. 성장난을 어떻게 하니. 그냥 그랬죠. 지나고 나서 지보이스 공연 놀러와서 공연도 보고, 최근에는 애인도 소개시켜 주고, 집에 와서 보고, 그렇게 해서 이제는 그냥 체념하신 거 같아요. 그래도 얘가 혼자는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은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오소리: 맨 처음에 상임 활동을 시작하실 때, 커밍아웃을 할 생각으로 시작을 하셨던 거에요?
낙타: 이 일에 대한 커밍아웃 보다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커밍아웃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었어요. 서른쯤이 되면 독립을 할 충분한 경제적 여유가 있을 것이고, 물리적으로도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런 나름의 서른, 삼십 대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서른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아무것도 이뤄놓은 게 없는데 유일하게 하나가 부모님에게서 멀어진 것. 그것만 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했죠.
오소리: 상임 활동을 시작하고 이듬해에 커밍아웃 했다고 하셨잖아요. 부모님께서 친구사이 활동을 그만두라고 하지는 않으셨어요?
낙타: 그렇게까지는 안 하셨어요. 어쨌든 이 단체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었던 것 같아요. 커밍아웃을 할 때 제가 쓴 장문의 편지와 친구사이 사업보고서를 같이 드렸거든요. 내가 지금 일하는 곳이 나 같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건 아마 귀에도 안 들어갔던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 첫마디가 "그래서 이 단체는 야당이냐" 저희 아버지가 보수적 경상도 지역의 그런 분이시거든요. 그래서 그게 중요하셨던 거 같아요.
오소리: 인권단체라는 것도 신경 안 쓰시고요?
낙타: 지금은 몇 번 이야기했더니, 부모님이 친척들에게 ‘쟤는 인권 운동에 빠져서 결혼도 안하고 저렇게 산다’고 말을 하고 그래요.
2010년 당시, 친구사이 상근자 모집 공고
오소리: 그러면 상임활동가를 처음 시작할 때로 다시 돌아가 볼게요. 본가가 부산이신 거죠?
낙타: 지금은 김해, 부산 옆에 있는 작은 도시죠.
오소리: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큰 결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집도 새로 알아봐야 하고 자신의 터전을 떠나서 살아간다는 게. 그런데 그렇게 까지 큰 결정을 하려면 아무래도 더 큰 계기가 있었을 것 같거든요?
낙타: 흐음. 제일 큰 계기는 떠나고 싶었던 거요. 사실 좀 갑갑했어요. 그 이전에도 서울을 안 다닌 건 아니에요. 가끔 주말에 가서 놀고 오고 그랬는데, 떠나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떠나고 싶은 욕구와 함께 직업으로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강했을 때라, 이왕 일을 할거면 나의 정체성이 직업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기회다 이건’ 그리고 집에서도 장성한 아들이 서울로 가겠다고 하는데, 굳이 말리지도 않았어요. 문제는 서울에서 살 곳을 구해야 하는데 당시에도 서울의 집값이 굉장히 비쌌어요. 그래서 고시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때마침 친구사이 회원 분 중 한 분이 집에 남는 방이 있었어요. 전 대표님 중 한 분이었는데, 친구사이 상임 활동가가 지방에서 올라오는데 서울에서 머물 곳이 없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흔쾌히 자신의 집에 와도 괜찮다고 해서 근 한달 사이 모든 게 다 해결이 되었어요.
오소리: 그 당시 본인이 뽑혔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낙타: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당시 면접을 봤던 분들의 말에 따르면 원서에 굉장히 솔직하게 적었다고 하더라고요.
오소리: 어떻게 적었는데요?
낙타: 저는 이런 인권 단체 원서를 한번도 써본 적이 없어요. 전에는 이력서 하나를 써서 뿌리는 그런 평범한, 제 경우에는 포트폴리오 넣어서 돌리는 그런 것만 했었는데, 사진도 넣지 말라고 해, 개인정보도 필요 없다고 해, 너무 어색한 거예요. 이런 이력서가 생소하고. 그럼 기존의 몇 남 몇 녀 이런 이야기 다 빼고 그냥 내 이야기를 쓰자. 그 당시 하비 밀크 영화를 굉장히 감명 깊게 봤어요. 그 이야기 좀 쓰고. 지금 생각하면 오글거리는데, 그걸 면접을 보셨던 운영위원 분들이 좋게 봐준 것 같아요. 또 제가 이전 직장에서 배웠던 기술이랑 그런 것이 작지만 친구사이에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오소리: 그 당시에 상임 활동가 기준이 어떻게 되었어요?
낙타: 일정 금액의 페이를 받고 사무실에 상주하면서 단체의 업무 집행, 언론 모니터, 사업 수행, 상담 업무를 수행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오소리: 다른 기준은 없었어요? 자격이라든가.
낙타: 그런 건 없었어요. 물론 다른 NGO 단체처럼 관련된 활동을 했다거나 하면 좀더 유리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 보다 친구사이의 가치와 비전에 동의하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했죠. 지금도 그건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오소리: 지금까지 과거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 현재 이야기로 돌아와서, 현재 상임활동가로서 많은 일을 하고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맡고 있는 일이 있잖아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낙타: 친구사이 안에서 진행되는 일상 사업들을 조율하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고, 모금홍보팀에서도 같이 활동을 하고 있어요. 연대 활동으론 가구넷, 너머본부, 그리고 띵동에서는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오소리: 그러면 상임활동가 업무 외에 단체에서 활동하는 건 없나요?
낙타: 지보이스에서 회원의 신분으로 작년까지 3년간 활동을 했었죠. 올해부터는 쉬었어요. 물리적으로 힘이 들기도 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쉬면서 지보이스 공연 스텝을 했고요. 친구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공동 운영지기인데 박기호 대표님과 제가 번갈아 가면서 진행을 했지요.
오소리: 상임활동가로 4년 전에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차이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일반 회사에 다니다가 인권 단체 상임활동가가 되었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낙타: 주변 인들이 다 바뀌었죠. 평범한 직장인들이고 굉장히 소위 말하는 마초적인 헤테로 남성들이 있는 직장 구조 내에 있었다면, 지금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들이 다 이런 인권의 영역에 한발쯤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고. 삶에 있어서 변화라면 타인을 보는 시선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관대해졌다라는. 이게 나름의 인권 감수성이 생겼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어요. 남들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어떤 사건들을 바라보는 능력이 생긴 것. 그게 제일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전투 경찰로 군 복무를 했어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복무를 했는데, 제가 군 시작을 할 때가 평택 미군 기지 이전이 마무리 될 즈음이었고, FTA 소고기 파동이 한참이던 2008년 8월에 전역을 했어요. 전역을 앞 둔 한 달은 서울에서 살다시피 했거든요. 그런 집회들을 자연스레 보면서 사회 문제와 부조리함을 생각 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사회 문제나 소수자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노는 것 좋아하고. 그런데 군 복무를 하면서 아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노점상, 장애인, 농민들 이런 분들이 집회 나와서 시위 하는 것을 보면서 왜 나왔나, 그 부조리함들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는 활동으로 연결 짓기는 어렵더라고요. 난 일상을 살아내야 하니까. 잊고 있다가 활동 시작하면서 다시 그때의 경험과 기억들을 바탕으로 활동을 하고 있죠.
오소리: 저도 주변인 변화가 많이 공감이 돼요. 정말 너무 확 변하더라고요. 남을 애들만 딱 남아있고 (웃음) 처음 인권단체에서 일을 하게 되신 건데, 많은 것이 어색했을 것 같아요. 친구사이에는 상임활동가를 위한 역량강화 프로그램이 있나요?
낙타: 체계적으로 있지는 않아요. 저는 일단 너무 무지했기 때문에 기초지식부터 배웠거든요.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이런 용어들부터 배우고 그런 시간이 한 2주 정도는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도 그 교육이 끝나고 나서는 사무국 실무 위주 인계를 받았고, 나머지는 거의 현장에서 많이 배우고, 만나고, 경험하고 이러면서 터득을 한 부분이 있어요. 단체 내 여러 팀 중에 인권 지원팀이 있어요. 올해 같은 경우는 상임 활동가를 위한 특별 연수라고 해서, 인권 지원팀에서 다른 세 명의 상임활동가와 함께 상임 활동가로서 자신의 활동의 지향이나 전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자리를 가지고 있어요.
오소리: 어떻던가요?
낙타: 괜찮았어요. 그 동안 제가 들어오고, 새로운 사람들 두 명이 더 들어오면서 일에 쫓기다 보니 우리는 활동가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야 할지 심도 깊게 이야기 할 시간이 없었는데, 일부러라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진 거죠. 교육 차원이기도 했고, 겸사 겸사.
오소리: 한가람 변호사님께 들었던 이야기 인데, 한가람 변호사님이 초반에 낙타님을 데리고 여기 저기 다녔다고 알고 있어요.
낙타: 단체 탐방이라고. 많이 가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 회의 하면서 이런 저런 단체들 가보고 위치들 알고 하는 게 더 많았어요. 사실 단체 탐방이 쉽지 않더라고요. 가는 단체에서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 민폐를 끼치면 안되잖아요.
게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문화로 소통하는 친구사이
오소리: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친구사이’라는 단체에 대해서 질문을 할까 해요. 친구사이의 주력 활동은 무엇인가요?
낙타: 저희의 주력 활동은 저기 뒤에 보이는 친구사이 가치에 속해 있는 거에요. 게이 대중, 게이 커뮤니티 상대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긍정하고 자긍심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활동을 하고 있죠. 그 사이에서도 저희가 조금 더 주력하는 것은 문화운동이라고 하죠. 성소수자 관련된 영상을 제작해서 대사회적으로 인식 개선 활동을 한다거나. 특히 지보이스는 게이 코러스로 10년 넘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자리에 가서 연대 활동을 펼치며 성소수자 뿐 아니라 장애, 이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만나고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저희 주력 활동이라면 인권 단체 이면서도 그 안에서 커뮤니티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문화 활동들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데에 주력하고 있죠.
오소리: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홈페이지를 쭉 살펴봤었어요. 조직도를 봤는데 체계적으로 잘 나와있더라고요.
낙타: 좀 관료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라 고민이긴 한데 그렇게 해놓지 않으면 한눈에 보이지를 않아서.
오소리: 아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웃음) 낙타님이 한번 더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2016년 친구사이 조직도 (이미지 출처: 친구사이 홈페이지)
낙타: 친구사이는 대표가 있고요. 그 밑에 사무국이 있어요. 사무국장, 사무국원. 그리고 추대직운영위원이신 고문이 있고요. 선출직 운영위원인 감사. 감사가 두 명이 있고요. 그 다음에 각 팀별로 팀장과 팀원이 있고 소모임이 있구요. 각 부서별 팀원들은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오소리: 처음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조직도의 가장 위에 위치한, (2017년) 대표가 되셨어요.
낙타: 네, 상임 대표.
오소리: 후보로 자원을 하신 거잖아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낙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뒤에만 있지 않겠다. (웃음) 농담이고,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은 맞는 것 같아요. 4년을 상임 활동을 하다 보면, 조직 안에서 슬럼프 아닌 슬럼프 그런 게 오잖아요. 조직 안에서의,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비영리 단체 활동가라는 영역 안에서 이것을 내 업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을까. 올 한해는 내 삶의 전망에 대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냈거든요. 정말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3년차의 그런 게 오더라고요. 이런 시간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차에 나름의 자구책으로 선택한 게 대표였던 것 같아요.
오소리: 이제 실제 당선이 됐어요. 심정이 어떤가요?
낙타: 아직까지 실감이 안나요. 현 대표님도 계시고. 1월쯤 까지는 내년도 사업과 인선 등을 개편하고 구상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을 만나면서 실감이 날 것 같아요.
오소리: 대표와 상임 대표는 또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상임 대표로서 갖는 부담감이 있나요?
낙타: 친구사이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임활동과 대표를 같이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상임 대표 체제로 운영 되어 본 적이 없다고 해요. 장점이라면 실무라든지 그런 것을 처리하는데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다. 그런데 반면, 사무국의 입장으로서는 어떤 일을 계속 추진해야 하는 입장이고, 대표는 그것을 지켜보면서 관리를 하고 어떤 때는 사무국과 운영위 간의 관계 내에서 조율을 하고 결정하는 위치가 되어야 하는데, 제가 그때 그때 위치를 바꿔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조금 있어요. 실제로 사무국일 때도 있지만 대표로서 사무국원에게 쓴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생길 것 같고. 그런 걱정이 있죠. 사무국원이 저의 위치에 따라 상황을 잘 이해를 해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오소리: 다시 조직 관련 이야기로 돌아가서, 각 팀장이나 소모임장들은 각 팀과 소모임에서 선출을 하는 건가요?
낙타: 팀장은 대표가 인선을 하는 편이고요. 소모임장은 소모임 안에서 해마다 뽑아요.
오소리: 조직도를 보니까 팀장, 소모임장까지는 이름이 나와있어서 살펴봤는데요. 행성인도 그렇지만, 친구사이도 상임활동가 외 회원들이 중요직책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비상임 활동 회원들이 중책을 맡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낙타: 각 부서별 실무를 해나가는 사람이 회원들이잖아요. 회원조직에서 회원들과 긴밀하게 소통을 하려면 회원들이 뽑은 사람들이 장을 맡고 운영위나 사무국과 소통을 하면서 진행을 하는 방식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힘든 점은 활동하는 팀원들이 전문가들은 아니잖아요. 그 안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팀장이 된 사람들인데, 조직이 커지다 보니 팀장들에게 요구 되는 전문성에 대한 욕구들은 올라가고 거기에 비해서 팀원들, 혹은 조직 안에서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이 달리는 경우도 있어요. 친구사이와 회원들 그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 과정이 힘들 때가 있어요. 올해 향후 친구사이 활동을 결의한 결의안 부분 중에 실무진과 운영진의 전문성 향상을 지향하자는 문구가 있는데요. 그런 것들에 기반해서 나온 거에요. 근데 아직까지 힘들다기 보다는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회원들이 모두 활동에 참여를 해서 이 단체가 하는 활동을 직접 겪어보고 그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회비의 소중함도 알고요.
오소리: 친구사이는 소모임장들이 운영위원으로 있기도 하고 두각을 많이 나타내는 것 같아요. 각 소모임들이 만들어지고 성장한 배경들이 궁금합니다.
낙타: 뭐, 사실 제가 오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소모임들이고 역사가 오래된 소모임도 있고 한데, 소모임이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게, 그 당시만해도 게이들이 모여서 문화나 여가 활동을 하는 커뮤니티 모임이 부족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친구사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기반을 만들고 구축하는 거였기 때문에 소모임을 만들고, 또 그런 소모임 역할중 하나가 그런 장을 만들어줌과 동시에 사람들이 친구사이로 연결되는 그런 통로 역할도 하거든요. 소모임 활동은 하지만 친구사이 활동은 하지 않는 회원들도 있어요. 그분들은 소모임만 나오는 거죠. 그렇게 소모임 하면서재밌네 하다가 이 소모임은 친구사이라는 단체에서 하는 거니 정기모임에도 한번 나왔다가 정기모임 나오고 나서 친구사이 활동 한번 해볼까 이런 식으로. 그런 분들을 유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오소리: 소모임이 개별적으로 홍보를 하는 편인가요?
낙타: 소모임들이 개별적으로 계정을 가지고 있어요. 지보이스도 그렇고 책읽당도 활발하지는 않지만 공식 계정을 가지고 있고요. 지금은 소모임과 소모임이 아닌 경로로 오는 경우가 비등비등 해졌죠.
오소리: 소모임 외에는 어떤 경로를 통해 친구사이에 오나요?
낙타: 요즘은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서 많이 오는 것 같고, 지보이스 정기공연처럼 큰 행사가 하나 끝나고 나면, 아이다호나 퀴퍼 끝나면 그때 좀 많이 오죠. 저희는 홈페이지 통해서 오시는 분들이 좀 있고 SNS 페북, 그리고 I 게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통해서 와요.
한 달에 한번씩 정기 모임도 있고 신입회원 OT를 행성인처럼 하고 있어요. 그때 새로운 분들이 많이 오시는 편이에요. 그리고 밥친구라고 해서, 7시에 정기 모임 전에 6시에 미리 모여서 편하게 밥 먹는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어요. 물론 하반기로 갈수록 저희가 역량이 달려서 많이 신경을 못쓰기는 했는데, 초반에는 음식을 싸오시는 분도 있었죠. 사무실 안에서 같이 밥을 먹는 자리였어요. 의외로 같이 밥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더라고요. 게이들만의 욕구인지 현대인들의 욕구이지 모르겠지만, 이런 게 먹히는 구나. 우리는 사실 “밥 친구 너무 촌스럽지 않아?” 그랬는데... 내년에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운영할지 고민 하고 있어요.
오소리: 밥친구, 정기모임 외에 회원 대상 프로그램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낙타: 회원 지원팀이 있어요. 올해는 마음 만지기라고 해서 전문적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사님을 섭외해서 소그룹으로 (10명 내외) 프로그램을 진행했었고, 인권 지원팀이나 사무국에서 에이즈 예방 교육, 3월에는 유언장 쓰기 프로그램,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죠.
오소리: 친구사이의 주력 활동이 문화운동이라고 하셨는데요. 문화운동도 그렇고, 지금까지 이야기 나눈 소모임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커뮤니티를 형성해나가는 거잖아요. 친구사이에게 ‘커뮤니티’란 무엇인가요?
낙타: 사실 활동의 기반이죠. 커뮤니티가 없으면 저희는… 저희가 기거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지는 거니까. 저희 활동의 기반이 되는 게 게이 커뮤니티죠. 저희가 물리적으로 종로에 있는 이유도 그렇고. 단체가 존립하는 의의도 그렇고. 우리가 게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어요.
모든 활동은 회원으로부터
모든 활동은 회원으로부터 (이미지 출처: 친구사이 페이스북 페이지)
오소리: 활동의 기반이 커뮤니티라면, 그 활동을 수행해나가는 것은, 이제 회원들이잖아요. 행성인은 올해 총회에서 정회원 제도를 신설했거든요. 그 전에는 그냥 회원과 후원회원만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총회 의결도 애매해서 회원을 정회원과 준회원으로 나눴어요. 올해부터 체크를 하고 있는데, 친구사이는 기존부터 있었잖아요?
낙타: 저희도 정회원의 의무로 회비 납부 이런 게 몇 가지가 있어요. 우리가 효율적으로 회원들을 매니지먼트 해줄 수 있는 체계가 있으니 그런 면에서 유용한 게 있는데, 아쉬운 점은 저희가 정회원이 되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나 정회원의 지위가 되었을 때 이 단체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주기적으로 강조를 했었어야 했는데, 사실 회비납부 보다는 정기 모임에 5개월 내에 3번만 나오면 정회원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토요일 황금 시간에 나오는 게 쉽지 않거든요. 한편으로 정회원 지위를 획득하는데 장벽이 높다는 의견도 있고, 이게 어렵나? 하는 의견도 있고 그냥 정회원 되려면 3번 나오는 느낌. 저희가 정회원이 되면 누릴 혜택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오소리: 저는 5개월에 3번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정회원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궁금하네요.
낙타: 저희가 매달 하고는 있지만 총회를 위해서 정회원 정리를 하거든요. 지금 한 90명 정도 되는데.
오소리: 생각보다 많네요.
낙타: 한번 관리를 하기 시작하면 쭉 늘어요. 이게 만들면서부터 기준이 이렇다고 명시를 하니까요.
오소리: 방금 전 말씀하신 정회원 혜택에는 어떤 게 있나요?
낙타: 정회원은 소모임 개설의 권한이 있고, 선거권/피선거권이 있고 운영회의에 의결권은 없지만 발언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도서 대여, 공간 대관할 때 할인을 해줘요. 50%. 별 의미는 없지만. 그 다음에 사무실 비품이나 복사기나 그런 것들을 사용할 수 있게 장려하고 있고, 친구사이 프로그램들 중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들을 수 있게 하고 외부 커뮤니티에서도 인권이나 외부 성소수자 관련 교육이 있으면 교육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오소리: 소모임 개설 권한 이야기를 했는데, 개설은 그럼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거에요?
낙타: 소모임 개설은 친구사이의 정회원이면 가능해요. 운영위에 제안을 하고 그 소모임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부터 다양한 논의의 과정을 거쳐 개설을 하게 되는 거죠. 사실 이런저런 해보고 싶은 소모임들이야 많긴 한데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과거에도 새롭게 생겨났다 사라진 몇몇 소모임들이 있기도 하구요.
오소리: 정회원이 아니더라도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도 있을 것 같아요. 정회원이 아닌 회원과 후원회원이 구분되는 지점이 있나요?
낙타: 정회원은 회비를 내면서 활동하는 회원들, 후원회원은 친구사이 활동은 안 해도 자동이체로 납부를 하는 회원이에요. 그리고 주말에 일을 해서 정기 모임에 나올 수 없는 그러 분들이 정회원은 아니지만 참여해주시는 회원이 있죠. 구분되는 지점은 준회원 분들은 정기 모임에 나오지 못하지만 친구사이에 한번이라도 나왔다거나 정기 모임에 나올 수 없어도 주기적으로 나오는 분들. 온라인 회원은 홈페이지 가입되어 있는 회원들. 그분들은 회비 납부를 안 하기도 하고, 홈페이지만 가입한 분들도 있어요. 그거는 형식상 만들어 둔 거라서.
오소리: 준회원은 비율이 어때요?
낙타: 정회원보다 많아요. 준회원까지 하면 150에서 200명은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준회원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오소리: 준회원이든 정회원이든 자발적인 활동 참여가 많은 편인가요?
낙타: 그렇죠. 저희는 모든 활동을 회원들이 다 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마음 연결 사업 같은 것도 회원의 지위를 가지고 팀원이 되는 거니까요. 물론 비회원도 있지만.
오소리: 회원 관련한 질문 중에 이게 제일 궁금했는데요. 여성 회원도 있나요?
낙타: 후원해주시는 분들 중에서는 여성 비율이 꽤 있어요. 지금 활동하는 분 중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 회원이 있지는 않아요. 이전에 여성분이 상임 활동가로 일을 하셨던 적이 있는데, 아직도 교류를 하고 있고, 종종 행사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동하시고 있어요.
오소리: 그분은 어떻게 하다가 게이 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건가요?
낙타: 저도 잘 모르는데 꽤 오랫동안 하셨더라고요. 2010년에서 2012년까지요.
오소리: 여성분들이 회원 모임에 나오는 경우도 있나요?
낙타: 있었어요. 예전에 정기모임에요. 궁금하다면서요. 저희가 가리진 않거든요. 가리진 않는데 거의 대부분이 남성 동성애자인데 불편하지 않으면 참여해도 된다고 해요. 저희는 친구사이 활동에 있어서는 남성 동성애자뿐 아니라 이성애자여도 지지를 하면 제한을 두진 않거든요.
오소리: 트랜스젠더 분도 활동을 하나요?
낙타: 실제 활동하던 회원도 있었고 특이한 케이스긴 했었죠. 그 친구는 같이 지보이스 활동도 꽤 오래 했었고요. 지금은 유럽으로 유학을 갔죠.
오소리: 친구사이는 중장년 층 게이회원도 많은 것 같아요. 오래 전부터 회원인 분들. 그런 분들이 자체적으로 활동을 하거나 프로그램을 하는 경우도 있나요?
낙타: 저희가 아쉬운 부분이긴 한데 그런 활동을 해보고는 싶어요. 소위 말하는 3040 보다는 4050 연배 회원들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실질적으로 뭔가 활동하는 회원들이 2-30대 회원이다 보니 4-50대 회원 분들이 같이 실무에 참여하기 보다는 조력자 형태로 많이 결합을 해서요. 그분들만을 위한 어떤 활동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오소리: 친구사이는 오래된 회원만큼이나 사무실도 장기간 사용하고 있죠? 지금의 사무실을 사용한지 10년이 넘었다고 알고 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한 곳에서 사무실을 사용하기 쉽지 않잖아요. 집 주인은 친구사이의 정체성을 알고 있나요?
낙타: 알고 있을 거에요. 그런데 뭐 별 이야기가 없었어요. 전 그 건물주를 본 적이 없어요. 건물주가 이 건물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더 큰 건물이 있어서. 그런데 최근에 이 일대가 핫 해지면서 거의 10년만에 처음으로 임대료 인상을 요구 했거든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임대료 인상을 했습니다. 올해.
제일 아쉬운 점이 이 공간이 장애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거고, 이 공간도 요즘엔 좀 작긴 해요. 회원들이 정기모임에 모이면 50명씩 모여서 뒤에 보조의자 깔고 앉는데 겨울에는 괜찮아도 여름에는 여기가 정말 덥거든요. 옥상이 있어서요. 그래서 소원이라면 종로에 있는 건물 중에 엘리베이터 있고 따뜻한 공간을 찾고 싶어요. 그러데 그런 곳은 임대료가 어마어마하죠.
오소리: 오랫동안 친구사이가 여기 있다 보니까 주변의 상인들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지보이스 정기공연 가보니까 근처 상가에서 후원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그런 주변 상가 상인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낙타: 지보이스와 술의 역할이 크죠. 지보이스는 연습 후에 항상 뒷풀이를 하니까 그 인원들이 일요일마다 술을 마시며 사장님과 친분도 쌓고. 지보이스 규모가 커지면서 의도적으로 이런 인권 이슈에 관심이 많거나 누구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면 매상도 올려주고 공연 홍보도 하는 작업을 하죠. 예전에 비해 업소 사장님들이 이런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좋게 보세요.
오소리: 안 좋게 보는 사장님은 없나요?
낙타: 많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공연 포스터를 붙이러 가거나 마음 연결 포스터를 붙이러 가도 예전과 달리 어디 붙이라고 말해주고요. 예전에는 아이샵이냐고 물은 후 아이샵 아니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커뮤니티 자체도 그렇고 업소 사장님도 생각이 많이 변화했어요.
친구사이 주요 활동 본격 해부!
오소리: 초동회에서 친구사이와 끼리끼리로 분화된 거잖아요. 이후에 다른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가진 단체들과 어떤 연대를 해왔고, 논쟁지점이 있었다면 어떤 게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낙타: 음... 글쎄요. 뭔가 제가 일을 시작할 즈음에는 사이가 나쁜 단체가 없어서. (오소리: 평화롭고.) 네. 정말 다 평화롭고 그래서 LGBT가 정말 다 사이 좋고 막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전에 성소수자 운동과 관련된 서적을 찾아보니까 굉장하더라고요. 서로 막 성명서 쓰고, 성명서로 대화를 하는 단체들도 있고 그랬었는데, 제가 일하고 나서는 연대활동도 무난했던 거 같고, 2014년 무지개 농성을 겪으면서 더 끈끈해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희 단체나 저 개인적으로도 평소에 접할 수 없었던 정체성을 가진 분들이나 그런 활동가 분들, 그런 단체들에 대해 마음의 장벽들이 허물어지는 그런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전에 어떤 연대활동이라면, 지보이스가 아는언니들과 같이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이런 식으로 연대 활동을 진행한 적이 있었고, 다른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가진 단체들과는... 사실 행성인만 만나도 충분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웃음)
이미지 출처: 친구사이 홈페이지
오소리: 친구사이에서 중요하게 진행한 게 ‘커밍아웃 인터뷰’나 ‘성소수자 인권지지 프로젝트’ 잖아요. 어떤 의미를 가진 프로젝트인지 설명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낙타: 사실 지금은 이게 활발하게 진행되지는 못하고 있어요. 우리 내부에서 이런 것들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아쉬운 점이 있고. 아쉬운 이유가 뭐냐면, 단체가 가지고 있는 제일 큰 기조 중에 하나가 커밍아웃이거든요. 이게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커밍아웃 100’이었어요. 그래서 100명의 커밍아웃 인터뷰를 모아서 책을 내자, 그렇게 시작했는데 사실 단체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을 섭외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에요. 물리적인 힘듦도 하나가 있고, 또 단체가 커지면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다 보니 이게 중요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뒤로 밀려난 점이 있어서 아쉽네요. 특히나 성소수자 인권지지 프로젝트 같은 경우에도 뭔가 거창하게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지지합니다’ 딱 이 한마디만 해도 나중에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자료들을 만들 수 있는 거잖아요. 특히 무지개농성 때 박원순씨 인터뷰가, 이렇게 쓰일 지는 몰랐지만, 의도치 않게 이런 자료들이 쓰일 수 있는, 그래서 꼭 정치인들이나 이런 분들이 아니어도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우리를 지지해 주는 분들을 섭외해서 이런 것들을 진행 해야 되는데, 성소수자 인권지지 프로젝트도 커밍아웃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사실 이 분들 나름의 커밍아웃이잖아요. 앨라이로서 어떤 커밍아웃을 하는 거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와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모아 모바일 환경에서 좀 더 보기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뭐가 있는지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오소리: 아무래도 게이 단체이다 보니까 감염인들과의 관계는 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게이 커뮤니티에도 PL혐오가 존재하는데, 친구사이에는 PL모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친구사이는 가진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나요?
낙타: 게이들과 제일 밀접한 이슈잖아요. 남성 동성애자 단체 안에서 감염인들 스스로가 자기 목소리를 말하기 시작한 게 굉장히 고무적이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어요. 일단 회원들의 인식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일단 자신은 모르지만 내 주변에 PL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기도 했고, 실제로 몇몇 PL분들이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된 거 같아요.
오소리: PL모임이 생기고 나서 친구사이 차원의HIV/AIDS 운동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낙타: 친구사이 내부적으로는 인식의 변화가 가장 컸어요. ‘가진사람들’이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에게 내 주변에 PL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을 하게 만들어 준 것이 가장 큰 교육이자 변화라 생각하고요. 그래서 작년 세계 에이즈의 날에는 2회차에 걸친 간담회를 진행했어요. 첫 번째에는 실제 감염인 분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고, 두 번째 시간에는 회원들만 모여서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HIV/AIDS에 대한 혐오, 편견, 공포 등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는 시간들을 가졌어요.
오소리: '가진 사람들' 소속 분들이 친구사이 내에서 자신을 다 드러내는 편인가요?
낙타: 다 그렇진 않아요. 저도 모임에 한번도 간 적이 없어요. 어쨌든 PL당사자 자조모임이다 보니까. 모임의 운영자가 대표로 친구사이 운영위가 소통을 하고 있어요.
성소수자자살예방프로젝트 마음연결
오소리: 친구사이에서 진행하는 사업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마음연결이 있죠.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경우, 행성인에서 인큐베이팅을 해 독립을 한 건데, 마음연결의 경우도 독자적인 홈페이지도 있고, 전화번호도 있고, SNS도 따로 운영하고 있고. 이런 걸 보면 저희가 띵동을 인큐베이팅 할 때의 그런 과정을 보는 거 같더라고요. 친구사이에서는 마음연결을 독립 단체로 만들 계획이 있는 건가요?
낙타: 독립 단체라기 보다는, 일단 마음연결도 띵동처럼 사회복지적인 성격이 더 강하잖아요. NGO단체들이 하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인데, 국가에서 안하고 있으니 띵동이나 마음연결에서 하고 있는 거고요.
올해에는 레인보우 케어라고 해서, 줄여서 R케어라고 하는데, 보고 듣기 교육처럼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거의 마무리 지었어요. 올해 연말에 운영위, 친구사이, 그리고 커뮤니티 대상으로 나눠서 시연회를 할 것 같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내년에는 계속해서 성소수자 자살예방지킴이 교육을 외부에서 시연하는 자리들을 많이 가질 것 같아요.
사실 2년이라는 기간이 기초 다지기 정도라고 생각했고, 그 2년간의 경험을 갖고 지도자로서 커뮤니티에 나가서 그 동안 한 교육을 바탕으로 자살예방을 하고, 또 위급한 경우에는 물리적인 도움을 연결할 수도 있는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최종 목표는 핫라인 구축이구요. 그런데 핫라인이라는 게 24시간동안 계속 돌려야 하잖아요. 자살 위기자들의 연락이 언제 올지를 모르니까. 그러니까 사실 그렇게까지 되려면 24시간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근무자들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아직 독립이라기보단 이 정도 계획을 생각하고 있어요
‘존엄한 삶을 위한’ 활동가로서의 여정은 계속된다!
낙타 (사진 출처: 친구사이 커밍아웃인터뷰)
오소리: 요즘 단체에서 제일 화두인 이슈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낙타님의 대표선출? (웃음)
낙타: 뭐, 이때쯤 되면 그게 제일 핫이슈이기는 해요. 누가 나왔대? 이런 거. 그거하고, 요즘은 당연 박근혜 퇴진... 술자리에서 서로의 답답함을 얘기하기도 하고, 나라가 이런 불안한 상황에 있는 거에 대한 문제점들, 그런 게 회원들 사이에서 제일 이슈죠.
오소리: 회원들이 평소에도 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낙타: 그게 참, 친구사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인데 또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모든 회원들의 생각을 알 수는 없으니까. 친구사이 안에서는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외부에서는 충분히 관심을 드러내고 활동할 수 있는 거잖아요. 회원들이 조금 더 사적인 부분이나 게이로서 살아가는 고충이라던지, 그런 힘듦이 주된 이슈이기도 한데, 그것과 정치적 이슈가 만났을 때 되게 큰 힘을 낼 때도 있거든요. 군형법이라던지. 내 주변의 군인이 당하고 있다더라 그러면 자기 일처럼 나오고, 놀면서 서명 받고, 이런 게 친구사이의 큰 힘이기도 해요.
오소리: ‘게이들의 여성혐오’가 한동안 이슈가 된 적도 있는데요. 이번에 낙타님이 ‘인권단체로서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사이를 만들겠습니다’를 대표 출마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어요. 행성인에서도 고민하는 지점인데요. 공약을 만들기까지의 고민과, 상임활동을 하며 단체 안에서 경험한 것들도 있을 것 같은데, 관련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또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낙타: 인권감수성에 대한 공약은 저 스스로도 늘 목말라 하는 부분이었기도 해요. 활동을 하다 실무에 치이다 보면, 이걸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없는 거예요. 이게 내 개인적인 갈등임과 동시에, 특히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의 여성혐오 이슈들, 우리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무관심한가, 커뮤니티 안에서도 자기혐오가 여실히 드러나는 면들을 보면서 적어도 친구사이의 회원이라면 여기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두가 하나의 뜻으로 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그거에 대해서 싸우자는 게 아니라 그냥 다양한 생각들을 좀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분명히 이런 얘기를 꺼내고 싶어하는 회원들도 있을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안의 분위기가 이런 얘기를 꺼내기 어렵고 논외, 관심사 밖의 이슈라고 생각해서 그런 욕구들을 접어놓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어요. 교육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서 서로 얘기를 나누고 그런 자리들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일방적인 교육은 매력적이지 않잖아요.
오소리: ‘게이들의 여성혐오’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한데, 게이 커뮤니티 내부에는 ‘끼순이’ 혐오가 존재하기도 해요. 이는 게이들이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여성성’을 지닌 것과 연관되기도 하는데요. 친구사이가 생각하는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요?
낙타: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선 되게 관대한 편인 거 같아요. 되게 사소한 거긴 하지만, 조직 안에서 언니라고 부른다던지. 처음 오신 분들 중에는 "왜 남자인데 언니라고 하죠?" 라고 불만감을 표시하고 나간 분들도 있어요. 그래도 이런 생활 속 호칭 같은 작은 부분들 속에서부터 자신의 남성성을 희석시키고, 숨겨왔던 여성성들을 드러낼 수 있게 장려하고, 전반적인 분위기들이 끼에 대해서 막 부정적으로 보고 이런 회원들이 많지는 않은 거 같아요.
오소리: 정말로 다른 커뮤니티나 단체에 비해 친구사이 내부에서 끼순이 혐오는 못 본거 같아요.
낙타: 오히려 장려하죠. 더해, 이런 식으로.
오소리: 그러면 이제 마지막 파트로 넘어갈게요. 낙타님의 단체활동에 대한 질문인데요. 회원들하고 평소에 사적인 자리나 술자리를 많이 가지는 편이세요?
낙타: 제가 그걸 되게 잘 못해요. 지보이스 활동을 할 때는 지보이스 뒷풀이에 참여하고 술 마시고 그랬는데, 이제 일을 계속 하다 보니 그냥 일 끝나면 집에서 쉬고 싶고,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회원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좀 줄어들게 되었어요. 회원들이랑 자주 만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고요. 기대하는 바도 좀 들어보고 싶기도 하고. 내년에는 정기적으로 회원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자리들을 마련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오소리: ‘친구사이’ 활동가로서, 여러 인권 이슈들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고민이라고 하셨는데요. ‘친구사이활동가’와 ‘성소수자 단체 상임활동가’로서 조금 차이가 있을 거 같아요.
낙타: 친구사이 활동가로서는 내부적으로 조직 다지기에 대한 고민이라면, 단체 활동가로서는 대사회적으로이 단체가 어떻게 보여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뿐만이 아니라 인권운동 영역 안에서 우리가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될까라는 고민들이 있죠. 최근에 많이 들었던 얘기가, 세대교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30대 초반의 활동가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대표도 하니까 감격스럽다고, 뿌듯하다고, 세월이 흐르는게 느껴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런 흐름들을 어떻게 잘 이어나갈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 아직까지는 내 앞길이 걱정되긴 하지만, 이후에 이런 활동들을 대학모임들이나 다른 커뮤니티들과성소수자 운동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대표로서 활동을 하게 되면 좀 더 고민을 하게 될 것 같기는 한데 아직까지는 친구사이활동가로서 고민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오소리: 활동에 대한 여러 고민이 있으신데, 막 던지는 질문. (웃음) 낙타님에게 활동이란?
낙타: 활동… 날 너무 힘들 게 하는 것. 그럼에도 지속하는 것. (웃음) 약간 돌이킬 수 없는 것. 돌이키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것,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고. (웃음) 오늘 오다가 책을 읽었는데요. 인상 깊은 문구가 있었는데, ‘존엄한 삶을 위한 여정은 계속 이어진다.’ 는 문구였어요. 그게 이주와 관련된 글이었는데, ‘이게 꼭 이주만 관련되어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도, 내가 어느 곳에 가서든 내 정체성이 환대 받을 수 있고 환대할 수 있는 논리가 보편화 되어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거잖아요. 사실 저 좋으려고 하는 거죠. 굉장히 사소한 거지만, 제 개인적인 욕구에서 시작되는 거니까요.
오소리: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아요.
‘내 삶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친구사이
구호 "우리는 원한다! 야!"를 외치는 낙타님 (이미지 출처: 2015 LGBTI 인권포럼 웹자보 중 일부)
오소리: 친구사이에서 4년 동안 상임활동가로서 활동을 했고 많은 사업들을 했을 것 같아요. 진행했던 사업 중 다시 해보고 싶은 사업이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업이 있나요?
낙타: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2015년아이다호 때, <엄마에게 차마 할 수 없었던 이야기> 라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프로젝트였는데 자신이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는 프로젝트였어요. 40명의 회원들이 자기 어렸을 때 사진과 그 에피소드들을 짧게 적어서 전시도 하고 온라인상에서도 웹 페이지를 만들어서 볼 수 있게 했는데요. ‘친구사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이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내 어릴 적 이야기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비성수자들과 만났을 때, 나는 너희들과 다르지 않지만 조금은 달라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사람들도 흥미로워 했고요. 이렇게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사업들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소리: 저도 되게 재미있게 봤었어요. 앞으로도 많은 기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친구사이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낙타: 교육. 사실 이거는 단체 차원에서 필요한 것인데요. 성폭력 교육 같은 거요. 성교육과 조금더 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 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 그리고 사회 이슈들을 정기적으로 교육의 방식으로 다룰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런데 교육이 일반적인,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논의 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을 가지고 결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래서 ‘친구사이’의 회원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의 감수성, 그리고 혹은 위기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으면 좋겠고, 그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가서 그런 역할들을 자리매김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교육이라면 성소수자 교육이요. 이거는 대 사회적으로요. 사실교육 요청은 많이
들어오는데 실질적으로 여건상 막 다 나갈 수는 없잖아요. 그나마 상임활동가가 4명이 되면서 올해는 시간 여건이 되는 한에서 또 인터뷰하는 사람이 친구사이를 찾아봤구나, 이런 이슈에 대해 성의와 진심이 담겨 있다고 느껴지면 인터뷰를 몇 번 했던 적이 있었어요.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해진 거죠. 내년에는 친구사이 뿐 아니라 띵동, 행성인 등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서 교육안에 대한 것들을 논의 하고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오소리: 성교육 같은 것이 저희도 참 필요한 교육인데 전문가들도 성소수자라는 특수성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성소수자단체들이 모여서 교육안을 짜봐도 좋겠어요.
낙타: 실질적으로 교육을 하고 있는 분들, 일선에서 하는 분들도 있지만, 당사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교육안을 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오소리: 네. 이처럼 친구사이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고 앞으로도 많은 활동을 할 계획이신데, 낙타님에게 친구사이란?
낙타: 누가 그랬어요. 네 삶을 망치러 온 거라고. (웃음) 농담이고요. 저에겐 이제 삶의 일부가 된, 제 주변은 이미 친구사이와 관련된, 친구사이로 인해 만들어진 인연들로 채워져 있고. 이 활동을 그만두거나 적을 옮기게 되더라도 제가 삶을 지속하는 한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활동이라기 보다 이 조직이 삶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요.
상임활동가들의 만남 (좌) 낙타 / (우) 오소리
오소리: 낙타님이 만약 친구사이가 아닌, 행성인에 먼저 왔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낙타: 2012년에 제가 행성인에 갔다면 환대 받지 못했겠죠.
오소리: 왜요?
낙타: 어땠을까요? 그에 맞게 변해있지 않았을까요? 행성인의 성격에 맞는 활동을 하면서 그에 맞는 감수성이나 문화들을 배우게 되었을 거고요. 그런데 제가 버틸 수 있었을 지에 대한 의문은 있어요. 그 당시에, 연대와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오소리: 아까 교육안 같은 것도 말하셨는데, 친구사이와 행성인이 함께 연대해서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낙타: 아까 말한 교육안을 짜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그리고 소모임 미팅 같은 거 있잖아요. 대학에서 하는 과팅 이런 것처럼, 그렇게 만나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요? 사실 친구사이 내에서는 다양한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흔치는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려워하는 회원들도 있고요. 어떻게 대해야 할까 같은 거요. 크게 다를 건 없지만 그런 만나는 자리를 한번 가져보는 건 어떨까 싶어요.
오소리: 좋네요. 그렇다면, 낙타님에게 행성인이란?
낙타: 늘 뭔가 배우는 곳이고, 어떻게 보면 친구사이 안에서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갈증을 느끼는 부분을 행성인이 앞서서 해주는 것들을 보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들과 욕구들을 채워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 하고요. 사실 계속 주말에 일정이 있어서 박근혜 퇴진 집회에 나가지 못했는데, 부채의식을 꼭 느낄 필요는 없는데 그런 마음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장기화 되면 될수록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나가지 못했을 때 성소수자들이 나와서 이렇게 활동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런 활동이 고마운 것 같아요. 그런 부족한 것들을 배워나가고 채워나갈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웅님을 만나서 운영위원장으로서의 고충을 들어보면 좋겠어요. 또 같은 상임활동가 대표로서도요. 들어보고 싶어요.
오소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낙타: 이렇게 상임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획, 우리도 해보고 싶었던 거긴 하거든요. 그랬다가 못했는데 그 다음엔 어디 어디 하죠?
오소리: 띵동이요.
낙타: 나중에 모이면 못했던 이야기도 좀 하고 익명도 보장되고 그러면 (웃음) 뭐 그런 자리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오소리: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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