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
안녕하세요, 그림자처럼 행성인 주변을 배회하는 해밀입니다. 올해 9월 다시 공부를 하러 한국을 곧 떠나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즈음 모임에 나간 이래로, 한국을 떠났다 들어왔다, 모임에 슬그머니 나왔다 안 나왔다(!) 하면서 행성인과 인연을 이어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 10년 동안 행성인이 제게 어떤 의미였는지 돌이켜보니까, 행성인은 항상 제게 '힘'이었고 그 힘은 곧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세상이 제 존재에 혐오를 쏟아부을 때, 너무나 억울하고 힘들어서 절망에 빠져있다가도 둘러보면 항상 무지개 깃발을 높이 들고 모인 행성인 사람들이 있었구요.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처럼 외로울 때도, 나 혼자서는 삶을 헤쳐나갈 수 없을 것 같을 때도, 행성인 사람들이 있었고요. 혼자가 아니고 혼자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는 증명이 행성인 사람들이에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 그리고 “연대”라는 이름말 하나하나가 제게는 또렷한 의미이고, 그 의미를 행동으로 새겨나가는 행성인 사람들이 제게는 단단한 힘이에요.
여러 얼굴들이 떠올라요. 집회에서 시청 바닥에서 강당에서 공항에서 구호를 외치던 얼굴들이, 속상해서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던 얼굴들이, 연일 격무에 지쳤는데도 농담과 함께 인사를 건네주던 얼굴들이, 술에 취해서 한껏 울고 웃던 얼굴들이, 그리고 희미해지다가도 이따금 선명히 떠오르는,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까지요. 그런데 여태껏 그 앞에서 한 번도 말하지 못했네요. 감사하다고요. 이렇게 간지러운 말을 하려니 부끄럽네요.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무게 잡는 것만 같아서 더더욱요.
가기 싫은데, 가야 되네요. (진짜 가기 싫다...)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열심히 벌어서(?) 후원도 더 많이 할 거(!)예요. 그리고 끝끝내 돌아왔을 때는, 소중한 얼굴들 속에서 제 크나큰(?) 얼굴도 들이밀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만나는 그때까지 행성인 사람들 모두 웃는 일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항상 강하지는 못하더라도, 덜 아팠으면, 그리고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전 다녀올게요 (https://youtu.be/O4ftwaKQ29Y)!
P. S.
제가 맨날 멘붕하고 아무말 대잔치 열 때, 항상 위로해주고 같이 웃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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