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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20주년

[20주년 맞이 역대 운영위원장의 글] 단체란 무엇일까

by 행성인 2017. 9. 6.

덕현(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전 운영위원장)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라는 곳에서 활동을 하면서 단체는 뭔지 궁금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주장을 하고 비판을 받고, 어떤 역할을 요구받기도 한다. 누구에게는 공동체, 누구에게는 회사, 누구에게는 투쟁의 공간일 수 있는 곳.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질문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1.

내가 처음 동인련(행성인의 옛 이름)이란 단체를 찾은 이유는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고 싶었고,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같이 할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와 같은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그곳이 단체였다.


 

2.

동인련 15주년 기념 행사 때 예전 활동사진들과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망들이 이곳을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체 사람들과 활동들은 일부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활동을 하다가 떠나기도 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이름을 가진 이 단체는 계속 있어 왔다는 게 신기했다. 이 사회가 만드는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들로부터 단체가 유지되는 것 같아 뭔가 뭉클했다.


 

3.

인권 활동을 하면서 회의 자리에 가다보면, 자기소개를 할 때 보통 단체 이름을 붙이거나 아니면 “소속은 없는데요”라고 했다. 공적인 기관 같은 데를 만날 때는 단체이름과 직함을 앞에 붙이고 나면 (그리고 명함도 있으면) 대화의 상대로 더 쳐주는 느낌이 있었다. 확실히 단체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일개 개인보다는 영향력이 더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여겨진다. 단체의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여기 회원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다들 어디 소속이라고 말하니까 나도 그냥 그렇게 말한 걸까. 어떤 권위를 얻고 싶은 걸까.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가 동인련 활동가라고 하고 다닌다는데, 다른 활동가는 그게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문제적인 사람이고, 회원 가입하고 얼굴 한, 두 번 비친 게 다라는 거였다. 그렇다고 동인련 활동가라고 하고 다니려면 이러이러한 조건에 부합해야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뭐라고 할 것도 아니었다.


 

단체에 대한 인상이나 판단은 내가 만난 그 단체 사람들에게서 오곤 한다. 하지만 그건 그냥 그 사람에게서 오는 걸 수도 있다. 어디까지가 단체의 것으로 여겨져야 하고 어디까지가 개인의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단체를 상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4.

단체 회원이 성폭력이나 반인권적인 언행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단체에 ‘이 사람을 어떻게 해달라’고 요청이 온다.인권 단체이다보니, 법이 다루지 않는 부분에 인권의 기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단체가 이러한 일들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단체가 내리는 판단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까. 단체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사법 기관처럼 판단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다양한 결 들의 일이 너무 쉽게 ‘피해자’와 ‘가해자’간의 ‘사건 처리’가 되어버리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소수의 담당자들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 되지 않고, 단체가 지향하는 운동의 방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단체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를 해결해보니, 이전과는 너무 달랐다. 개인의 입장으로 바라볼 때는 단체가 부족한 지점이 있으면 그건 비판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단체 차원에서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다양한 회원들이 모여있는 단체는 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어떠한 장치와 활동들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단체의 입장에서 문제를 본다는 것이 어떨 때는 ‘조직 보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5.

단체의 일년 활동을 평가하고 새로운 계획을 승인받는 곳이 ‘총회’ 지만, 대체로 많은 것들은 ‘운영위원회’라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기획되고 실행된다. 성명서만 해도 운영위원들의 검토를 통해 합의가 되면 단체이름으로 나갈 수 있다. 어디에 연대를 할 것인지, 어떤 행사에 돈을 얼마나 쓸 건지도 대체로 운영위원들에게 달려있다. 누가 운영위원을 할 건지는 총회에서 인준을 받지만 그것도 이전 운영위원들이 새로 같이 할 사람들을 모아서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보통 10명 이내의 주요 활동가들이 단체의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한다. 단체의 입장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 단체를 대변해서 한다고 할 만한 것들은 다 운영위원들이 하게 된다. 단체가 지향하는 것이 있고 거기에 동의하는 회원들이 후원과 활동을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향과 결정 권한은 10명 정도의 운영위원들이 가지고 있다. 이 구조는 괜찮은 걸까? 회원들의 의견이 보다 잘 반영되는 체계가 되면 좋긴 할 것 같은데, 그래야 더 단체의 입장일 것 같은데, 현실적인 구조는 뭐가 있을까. 성명서 검토만 해도 더 많은 회원들이 보고나서 의견을 주고 이를 수정하는 단계가 있다면 훨씬 더디고 일이 많아질 것이다.


 

6.

활동을 누가 기획하는가. 일은 누가 하는가. 책임은 누가 지는가. 성과(인정)는 누가 얻는가. 내가 운영위원장이면서 동시에 상근자였을 때, 활동에 지쳐 더이상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 때에는 단체에 요구하는 그 모든 기대, 책임, 의무 등이 모두 내 일로만 느껴졌고 일을 하기가 싫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할 수도 있지만, 항상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 몇몇 책임감있는 (=자신을 혹사시키는) 활동가들이 더 많은 일을 맡게 된다. 이 구조 속에서는 단체에 대한 비판이 비판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지금은 활동을 거의 안하고 회원으로만 있는데, 내가 느끼던 그 많던 책임(=일)이 다 사라진 것 같다. 이 간극은 어떻게 메워질 수 있을까. 활동가들의 소모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활동가들은 어디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인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세상은 무엇일까. 내가 추구하는 활동은 무엇일까. 그 사이 어딘가에 행성인이라는 “단체"가 있고, 계속 고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