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마주한 행성인(들)에게

Posted at 2021. 7. 30. 18:40// Posted in 회원 이야기

갈릭(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1.
기후위기는 어쩌면 행성인의 새로운 운동 영역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운동단체로서 행성인은 그동안 노동운동에서 존재감을 키워왔고, 소수자 난민 이슈(“소수자난민네트워크”)에도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노동조합 속의 성소수자” “성소수자 난민” “HIV감염인 난민”과 같이 이전에 주목하지 않았던 주제가 부상했습니다. 우리가 “연대”해왔던 운동이 실은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발견하였고,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복합적인 불평등 현실에 대한 이해를 키워왔습니다. 이를 통해 성소수자이면서 또 다른 누군가인 회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운동과 커뮤니티에서 발견할 가능성도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는 우리 실존의 문제이며, 다음 세대 성소수자들의 생존이 걸린 사안입니다. 여섯 빛깔 무지개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우리가 일곱 빛깔 무지개를 그리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다채로운 색을 보고 누리자고 요구하였던 우리가 생태계에서 다채로움이 사라지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행성’의 위기이므로 자연스럽게 ‘행성을 살아가는 사람들’ 곧 ‘행성인’의 위기입니다.



2.
어쩌면 성소수자들은 그동안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이유로 자신들에게 박탈되었던 것들,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의 몫을 나눠가질 상속인으로서 권리를 요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규범적 섹슈얼리티와 규범적 젠더 표현을 전제로 하여서만 허용된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제도적, 정치적, 문화적 실천을 전개해왔습니다.

운동이 쉽지 않고 세상이 끄떡하지 않았으며 백래시가 격해지면서 우리는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적 권리, 제도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때 성소수자 시민들에게 허용되었던 영역은 ‘시장’, 특히 ‘소비 시장’입니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쓰는 것은 알아서 하도록 했습니다. 퀴어 아이덴티티를 새긴 한정판 운동화를 살 수 있었고, 동성 커플이 호캉스를 보내며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도 제지받지 않았으며, 품앗이를 하듯이 서로가 만든 귀여운 굿즈를 사주었습니다. 우리는 신혼부부에게 허용되는 전세자금대출 우대금리를 포기하거나 “이혼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선에서 도시의 일원으로 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제한적으로 누려왔던 것들을 위협하며, 어쩌면 성소수자 청소년들과 다음 세대의 성소수자들은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도시적 삶마저도 상실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재난에 대처할 자원의 유무에 따라 커뮤니티가 쪼개지고, 머지않아 “기후위기에 맞서는 퀴어들” 혹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집단을 만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위기의 원인으로 소수자를 지목하는 혐오 정치가 격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라 망치는 퀴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우리를 배제하는 국가와 세계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그토록 집착하는 ‘재생산’의 맥을 끊어버리고, 저 보수적인 교회가 “동성애로 경제와 안보가 무너질 것”이라고 했던 예언을 현실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꿈, 교회의 꿈과 우리의 꿈을 적절히 분리하고 타겟을 세심하게 고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적 국가주의에 대항하는 전선의 일원이 된다면, 우리는 “퀴어 미래”를 새로이 상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3.
대기의 변화를 먼저 알아채는 이들은 어쩌면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트랜스젠더퀴어들이라 생각합니다. 팬데믹에서 그랬듯이 이들은 기후위기에 더 취약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노동 기회는 제한적이고, 안전한 주거환경을 갖지 못할 수 있으며, 재난이 진행될수록 행정제도에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일은 많아집니다. 재난지원금에서 그랬듯이 혈연가족 중심의 시스템은 가정과 단절된 이들을 자연스럽게 배제하며, 이들의 의료적 혹은 정서적인 필요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습니다. 이동성이 위축된다면 도시의 밤거리에 스며들어 동료들을 만날 기회도 줄어들 것입니다.

기후위기가 “기후 재앙”으로 바뀌기 이전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이런저런 평등조치를 실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별정정의 과정을 용이하게 하고, 부당한 대우나 차별적 시선이 두려워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위기가 심화된다면 어렵게 성취한 제도적, 물리적 인프라와 문화적 감수성이 가장 먼저 거두어지고, 국가는 빠르게 정상성의 세계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4.
운동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감수성”이라 생각합니다. 퀴어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친밀성과 다양성에 대한 감각들은 규범성의 세계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세계를 새롭게 조직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방면에서 페미니즘의 선구적 역할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사람과 생태계의 공존에 주목하였고, 산업화와 안보의 논리를 비판하였으며, 돌봄 중심의 경제를 주창하고, ‘경제적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초점을 이동하였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이미 페미니스트이며, 퀴어들의 감수성과 경험이 더해진다면 꼭 필요한 질문에 보다 일찍 도달하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번영이나 미학에 대한 관점을 이동시키고 남다른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나 운동을 조직하기보다 먼저 “감수성을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존중, 친밀성의 확장, 다른 종과의 공존, 착취 관계에 대한 반성,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정 등. 이것들 중 일부는 이미 우리 또는 동료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들입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구축한 취향과 미학을 폐기하고 모노톤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감수성과 감각이 경제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가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현존하는 자본주의의 상속자가 되는 대신, 경험해보지 못한 “퀴어 미래”의 예언자와 요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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