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이 글은 2022 전국인권활동가대회 주제마당 “인권운동, 기후정의운동을 만나다”의 발제를 위해 작성했습니다.
올해 3월, 행성인 상임활동가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기후정의’에 대해 발언을 하는 자리에 나가고 있다. 3월 말,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포럼>에서는 다른세계로길을내는활동가모임이 당시 출범을 준비하고 있던 체제전환을위한기후정의동맹과 공동으로 주관한 세션 <기후취약계층이 아니라 기후정의의 주체로>에서 “사회운동은 어떻게 기후정의운동의 주체로 새롭게 연결될 수 있을까?”라는 상당히 비장한 제목의 발제를 맡았다.[1] 4월에는 기후정의동맹 출범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했고, 6월엔 9월에 열릴 대규모 기후시위를 소개하는 기후정의동맹의 수다회에 ‘데모 전문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라는 정체성으로 참여했다.
열거해 보니 세 번이면 그리 많은 건 아니었다 싶지만, 성소수자 운동의 주요 활동영역 바깥의 사안에 대해 이만큼 ‘정기적’으로 발언을 하는 일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점, (학업을 병행하며 활동한 시간이 10년을 넘기긴 했지만) 내가 행성인에서 상임활동을 시작한 것도 고작 3월부터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기후정의가 행성인 상임활동가 호림의 활동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상당하다. 또 한편에는 행성인의 기후정의 활동을 모색하며 활동을 준비하고, 논의하고, 기획하는 시간도 있다. 기후정의에 관한 자료를 찾고, 공부하고,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함께 사는 애인은 종종 이렇게 묻기도 한다. “오늘은 퀴어-호림이니? 기후-호림이니?”
어떤 중요한 의제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이에 대한 단체의 활동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개별 활동가가 큰 관심을 가지는 의제라도 조직의 가치와 지향, 활동영역에서 벗어나 있거나 활동에 대한 구성원들이 동의가 부족한 경우에는 단체 차원의 활동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때로는 단체가 어떤 의제의 중요성을 인식하더라도, 그에 대한 활동에 시간과 역량을 쏟고자 하는 활동가가 없어서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면에서 행성인에서 기후정의활동을 모색하는 것은 성소수자 단체인 행성인이 기후위기에 대해 말하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단체 차원의 인식과 이를 주되게 고민하는 호림의 개인적인 동기가 연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기후정의운동이 한국사회에서 대중적 기후정의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기후정의를 중심으로 폭넓은 사회운동을 조직하고 있는 외부적 조건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단체의 인식과 개인적 동기가 이러한 외부적 조건과 만나며 행성인에서는 성소수자인권단체인 행성인이 어떤 기후정의”활동”을 해 나갈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글은 호림이라는 행성인 활동가가 기후정의활동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는 무엇이었고, 행성인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활동의 필요성을 인식해 온 과정은 어떠했는지, 행성인이 앞으로 모색하고 있는 기후정의활동은 어떤 방향인지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1) 호림은 어쩌다?
내가 왜 기후정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하다 보면 떠올리게 되는 산발적인 계기와 경험, 사건들은 있다. 하지만, 그동안 기후위기와 기후정의, 체제전환 등의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거나 활동하며 지내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경험은 하나의 서사로 꿰어 내기는 어려운 조각들이면서, 또 현재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소한 계기들이다.
사회의제에 관심이 많고 책을 좋아하는 부모가 꾸린 환경에서 ‘어른의 일’에 관심이 많고 책을 많이 읽는 어린이로 90년대에 원주에서 살았다. 집에는 최열 아저씨의 000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은 어린이 도서 시리즈부터 녹색평론, 작은책 등의 잡지가 있었고, 한살림 어린이 캠프 등 환경 의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공해, 프레온가스, 지구온난화 같은 단어들을 알게 되며 느낀 감정은 공포와 무력감이었던 것 같다. 00년 후에는 지구가 인간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때의 내 나이를 셈해보며 두려워했다. 지구 온난화를 알더라도 헤어 스프레이처럼 지구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물건을 쓰지 않고, 쓰지 않기로 다짐하는 것 외에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인식은 이후의 소비습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 후로 오랜 시간동안 기후위기는 내게 종종 찾아오는 공포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개인적인 실천의 한계에 회의하며, 오히려 애써 환경의제를 회피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는 인권시민사회에서 종종 마주하는 환경운동의 활동, 때때로 연대를 주고받지만 성소수자 운동과 그리 가깝지는 않은 관계를 가진 운동의 의제라고 생각해 왔다.
막연하게나마 기후위기가 나의 활동과 깊이 연결될 수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은 2017년 여름부터 한 해 동안 미국에 체류하던 중 ‘스탠딩록 투쟁’[2]을 접하면서였다. 일 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기회가 닿는 대로 여러 학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 중 미국보건학회와 미국여성학회의 기조 세션에서 미국 선주민 여성 활동가의 입을 통해 스탠딩록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두 학회 모두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긴 했지만, 학술대회의 기조 세션에서 기후위기와 송유관 건설 반대투쟁이 다루어지는 것,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 체제의 문제로 자본주의와 인종주의,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를 말하는 것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특히, 기후위기에 관한 논의에서 ‘이성애 중심주의’가 너무나 당연하게 호명되는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것은 단지 한국과 미국의 성소수자의 성원권/시민권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다른 여러 축의 억압들이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를 말하는 거시적인 담론이 한국에서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생활과 소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깊어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초입이었던 2년 전 참외와 망고,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두 마리 육식 동물은 많은 고기를 먹으며 쑥쑥 자랐고, 팬데믹과 입양 시기가 맞물리면서 집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는 세 배 이상 늘어났다. 적어도 집에서 소비하는 육식과 배출되는 쓰레기의 총량을 참외, 망고와 함께 살기 전 수준으로는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고체 비누와 천연 수세미, 대나무 칫솔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실패’의 시기를 겪고 있는) 비건 식생활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개인적인 실천이 거시적인 변화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회의감은 여전했지만,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의 조각들은 내가 기후정의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라고 말하기는 부족하지만, 앞서 언급한 일련의 활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후정의포럼 세션준비모임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반가운 마음으로 참여를 결정할 개인적인 동기로는 충분했다.
2) 행성인은 왜?
기후정의포럼 세션준비모임 참여를 결정하게 된 배경의 다른 한편에는 이제 막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행성인의 관심이 있었다. 행성인은 2021년 한 해 동안 운영위원과 주요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월례토론회를 진행했다. 그동안 단체 내에서 깊이 논의해보지 못했지만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여러 의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그 중 한 꼭지가 기후위기였고, 호림과 슈미, 빌리 세 명의 활동가가 토론 준비를 맡았다. 토론 자료를 준비하며 ‘기후위기와 성소수자’에 대해 한국 내에서의 논의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담은 소책자와 기후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을 다룬 기사를 함께 읽고, 몇 가지 쟁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린워싱의 문제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개인적 실천의 의미와 한계, 기후위기가 성소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 행성인이 앞으로 해야 할 활동 등을 토론 주제로 꼽았다. (아마도) 처음으로 행성인에서 토론의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이야기해보는 시간이었다. 단체 내에서 연속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온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이며,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이 기후위기를 겪는 세계에서 더 큰 취약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공고화 된 사회는 기후 위기에 더 기여하는 사회’라는 점 등을 확인했다. ‘성소수자와 노동, 기후위기 문제가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고 결합시켜내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을 공유했다. 구체적으로는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는 성소수자를 조직하는 일, 기후위기에 대한 회원교육 등이 필요하며, 단체의 활동 과정과 방식에서도 작은 변화와 실천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논의의 결과물을 정리해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운영위원 갈릭의 정성스러운 토론문 “기후위기를 마주한 행성인(들)에게”를 행성인 웹진으로 발행했다.[3]
행성인에서 기후정의활동을 모색하는 지금,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있는 것은 이미 단체 안팎의 성소수자 중 기후위기를 중요한 의제로 인식하고 개인적인 실천과 활동을 이어온 사람들이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행성인 웹진의 기록을 더듬어 보면 단체 차원의 활동으로 연결되지 못했던 단체 내부에서의 고민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에는 <성소수자 인권학교>라는 제목으로 진행 한 연속 강연에서 이유진 당시 녹색당 공동위원장이 “정의의 관점에서 본 환경문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4] 웹진팀에서는 “행성인 회원들의 채식 수다회”라는 제목의 집담회를 진행한 적도[5], 회원 소모임으로 비거니즘 소모임 바삭이 운영되었던 적도 있었다.[6] 그 외에도 행성인 웹진에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가진 회원들이 단체와 회원들에게 기후위기와 동물권, 비거니즘 실천의 중요성을 말하고,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할 것을 요청해온 기록들이 남아있다.[7]
행성인이 기후정의활동에 함께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들도 있었다. 올 초, 퀴어 정체성을 가진 기후정의 활동가들이 운영위원 갈릭의 글을 반갑게 읽었다며 함께 활동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이자 행성인 후원회원이기도 한 도서출판 한티재의 오은지 대표님은 행성인 뉴스레터로 기후정의포럼 참여 소식을 접했다며 한티재에서 출간한 기후정의 관련 책들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행성인이 기후정의에 목소리를 보태고 있어서 단체에 가입했다는 신입 회원의 메시지도 있었다. 모두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도 기후정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비슷한 바람을 전해왔다.
왜 이런 기대와 관심, 노력과 시도들이 좀더 빨리 구체적인 활동으로 연결되지 못했는지 아쉬운 마음을 가지기도, 이제 막 활동을 모색하는 단계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 느끼는 아쉬움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 내에 남아있는 노력과 시도에 대한 기록들을 재방문하며, 이전의 노력과 시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의 활동에 그 의미를 담아내는 일일 것이다.
3) 앞으로 행성인은 무엇을?
행성인의 올해 목표는 회원모임과 강연으로 기후정의에 대한 회원들의 감수성과 이해를 높이고, 성소수자 정체성으로 기후정의에 대해서 말하는 구호를 담은 피켓을 들고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는 것이다. 소박한 목표이기도 하지만, 야심 찬 기획이기도 하다. 행성인의 일상적인 활동처럼 연대의 의미로 무지개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고민을 바탕으로 우리의 언어로 만들고 그것을 구호로 정제해 내자는 것이니 말이다.
지난 6월 25일, 그 첫발로 <기후정의>를 주제로 회원모임을 진행했다. 함께 성소수자 운동에서 기후정의활동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해 온 퀴어-기후정의 활동가들과 함께 기획해 꾸린 자리였다. 높은 기대와 욕심으로 한 번의 자리에 두 개의 발제와 모둠 활동, 강의를 꾹꾹 담아낸 유례없이 긴 4시간의 회원모임에 20명이 참여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모임을 막 마무리한 직후라 이 자리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이르지만, 이 높은 참여 자체로 아직 구체적인 활동으로 조직되지 않은 단체 안팎의 여러 감정과 생각,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인권활동가는 어쩌다?’, ‘행성인의 왜?’라는 물음에 대해, 정제된 언어로 기후정의와 성소수자 정체성의 관계를 정리한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적 동기와 단체의 궤적을 산만하게 담은 이야기로 내어놓게 되었다. 앞으로 행성인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성소수자와 기후정의의 관계에 대한 언어를 발굴하고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관계가 반드시 필연적이거나 직관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시대,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삶에 기후위기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이 성소수자의 삶에서 드러나는 양상은 어떻게 다른 이들과 비슷하고 또 다른 지에 대해 확인하고, 이해하고, 언어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면, 성소수자가 상상하고 바라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은 무엇이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 속에 성소수자의 삶과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 반영될 수 있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이는 성소수자 운동이 기후정의 운동의 ‘주체’로 함께 하며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기입된 기후정의운동을 함께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일이자, 기존의 환경운동 중심, 전문가 중심의 기후운동이 대중적인 기후정의운동으로 확장되고, 지금의 체제가 가진 다양한 억압의 축을 흔들어 내는 ‘체제전환’ 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소수자 운동을 너머 여러 사회운동의 영역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8]
앞으로 행성인에서 함께 만들어 갈 언어와 활동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갈릭의 글 일부를 공유하는 것으로 이 글의 마무리를 대신한다.
운동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감수성”이라 생각합니다. 퀴어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친밀성과 다양성에 대한 감각들은 규범성의 세계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세계를 새롭게 조직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방면에서 페미니즘의 선구적 역할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사람과 생태계의 공존에 주목하였고, 산업화와 안보의 논리를 비판하였으며, 돌봄 중심의 경제를 주창하고, ‘경제적 생산’에서 ‘사회적 재생산’으로 초점을 이동하였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이미 페미니스트이며, 퀴어들의 감수성과 경험이 더해진다면 꼭 필요한 질문에 보다 일찍 도달하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번영이나 미학에 대한 관점을 이동시키고 남다른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나 운동을 조직하기보다 먼저 “감수성을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존중, 친밀성의 확장, 다른 종과의 공존, 착취 관계에 대한 반성,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정 등. 이것들 중 일부는 이미 우리 또는 동료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주제들입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구축한 취향과 미학을 폐기하고 모노톤의 세계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감수성과 감각이 경제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가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현존하는 자본주의의 상속자가 되는 대신, 경험해보지 못한 “퀴어 미래”의 예언자와 요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
[1]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포럼 자료집:
[2] 미국 노스 다코다 중의 스탠딩록 원주민 보호구역(Standing Rock Indian Reservation) 근처를 지나는 다코다 액서스 대형 송유관 건설 반대투쟁.
[3] 갈릭, 2021.7.30., “기후위기를 마주한 행성인(들)에게”,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673
[4] 제이미, 2015.11.24., “2015 성소수자 인권학교 9강 후기”,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110
[5] 마롱, 2016.1.30., “행성인 회원들의 채식 수다회”,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151
[6] 디올, 2017.4.1., “[활동가 편지] 채식하는 퀴어! 비건 퀴어 디올의 편지”,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401
[7] 마롱, 2016.1.30., “유지 가능한 채식을 위하여”,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150 ; 주원, 2016.9.3., “[추석-채식] 채식인으로 추석 나기”, 행성인 웹진. https://lgbtpride.tistory.com/1285
[8] 기후정의포럼에서 기후운동에서 기후취약계층 또는 최일선 공동체 등으로 호명되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경험이 이들의 약자성, 피해자성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다루어 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기도 했다. 이는 소수자의 약자성, 피해자성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는 방식 일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에서 함께 경계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길내는모임 세션의 발제와 토론은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포럼 자료집을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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