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2018년의 여름을 기억한다. 역대급 폭염이 맹위를 떨쳐 전국의 최고기온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 을 때 나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젊음과 열정으로 퀴어풀한 추억들을 많이 쌓았기에. 아직 30년도 살지 않은 어린 나의 삶에서 2018년은 '고점'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시작은 안동에서 친구 '워니'와 함께 게이 단톡방을 만든 것이었다. 워니와 나, 워니의 애인 '민혁'과 나의 친구 그렇게 넷이서 결성했고 이후에 데이팅 앱에서 한 명씩 직접 포섭해서 덩치를 키워갔다. 실제로 가장 사람이 많았을 때 13명까지 단톡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혁은 이를 두고 '우리가 안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사람이 모이기가 쉽지 않은 중소도시에서 단톡으로 사람들을 그렇게 끌어모은 것도 나름의 업적이라고 생각했다.
단톡에 사람이 여덟아홉 명이 됐을 때쯤 처음으로 정모 얘기가 나왔다. 사는 곳도 가까운데 한 번 실제로 만나도 되지 않겠냐고. 당시 삼수생이었던 나와 종강을 앞둔 대학생 친구들의 상황을 고려해 6월 말에 정모를 가졌다. 시간이 안 맞아서 나오지 못한 한두명을 빼고 모두가 술집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지갑이 얇은 20대 초중반의 게이들 여덟 명이 모인 자리라 술집은 39포차였고 2차로 코인노래방에 갔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다.
시간이 지나 단톡이 와해되었고 최후에 남은건 나와 워니, 민혁 그리고 민혁의 친구 '오무'. 넷만 남게 되어 따로 단톡을 만들어서 소통하기 시작했다. 네 명의 생일이 7월부터 9월 사이에 몰려있어서 서로 생일축하도 해주고 유일하게 자취를 하는 오무의 집에 가서 밤새 마시고 떠들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안동 블랙핑크'(나만 그렇 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가 되어 있었다.
우리 네 명이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추억은 2019년 대구퀴어문화축제였다. 당시 비가 오는 동성로에서 네 명 모두 우비를 쓰고 부스를 다니고 깃발을 흔들며 퍼레이드를 함께 했다. 축제에 가본 적이 없어서 온갖 편견이 가득했던 오무는 우리들 중 가장 축제를 재미있게 즐겼는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가장 먼저 잠들었다. 각자 다른 지역 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우리가 시간을 내어 완전체로 모였던 마지막 기억이다. 이후로는 워니와 내가 군대를 가 게 되어 한 번도 모두 모이지 못했다.
다시 모일 수 있을까, 그때처럼 행복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한 번이라도 다시 함께 모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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