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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여기동의 레인보우패밀리

육아#12. 소대변 훈련: 아가야~쉬야 하자

by 행성인 2023. 3. 26.

 

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필리핀에서 비가 내리는 우기는 10월부터 2월까지 약 4개월 입니다. 이 기간에는 아침, 저녁으로 매우 선선하고 가끔은 춥게 느껴집니다. 이제 우기가 끝났으니 햇볕이 작렬하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가와 함께한 소소한 날들을 써내려온지도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습니다.

 

 

*인형 놀이와 동물 이름 부르기

 

인보의 쫑알대는 언어가 많이 늘었습니다. 완전한 문장은 아직 못하나, 단어를 하나씩 쫑알댑니다. 아이들이나 그림을 보고 베이비 베이비를 외쳐 댑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은 언니, 오빠뻘 되는 아이들도 모두 베이비라고 부릅니다. 

 

동네 언니들은 우리 집에 놀러와 인보를 데리고 인형 놀이를 해줍니다. 가끔 저 와도 인형을 데리고 소꿉놀이를 합니다. 요즘 인보는 인형에게 젖병을 대고 먹으라는 시늉을 합니다. 아가에게 맘마를 주라고 하면 소꿉놀이 장난감으로 요리를 하고 포크와 칼로 떠먹여줍니다. 엄마 아빠가 자신을 물티슈로 닦아주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여 물티슈만 보면 인형의 손과 발을 닦아 주기도 한답니다. 

 

 

 

오후가 되면 가끔 인보 손을 잡고 동네 마실을 나가 동네 한바퀴를 돌고 옵니다. 집 주위에 소를 키우는 농가가 제법 있고 강아지와 고양이들도 뛰어 놉니다. 아이가 동물들을 볼 때마다, 저는 모국어로 강아지를 멍멍’, 고양이는 냐옹’, 그리고 소는 ‘음메~음메라고 큰 소리로 가르쳐 줍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 사진이나 그림에 동물들이 나오면 멍멍, 냐옹, 음메가 있다고 곧 잘 읊어 댑니다. 시내에 나가면 거리에 차가 보일 때마다 빵빵하고 불러 댑니다. 이 녀석이 사물을 인지하는 것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유아용 변기에 쉬야하기

 

아이 몸무게가 13킬로를 돌파하여 팔로 안으면 꽤 무게가 나갑니다. 가끔 기저귀를 갈아줄 때 몸의 변화를 살펴보면 허벅지가 그야말로 꿀벅지 입니다. 인보가 점차 커가면서 소대변 가리는 것도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1월에 유아용 변기를 구매하여 대소변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녀석 자신은 앉지 않고 인형보고 쉬야하라고 변기에 앉혀 주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제 옆에서 핸드폰에 저장된 애니메이션을 즐겁게 보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쉬야를 해버렸지요동영상 재미에 푸 욱 빠져서 쉬야한다는 소리를 놓친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는 엄마에게 야단을 들을까 제 눈치를 슬쩍 봅니다. 이렇게 실수를 할 때는 아이에게 미안해요, 엄마 뽀뽀를 가르쳐 줍니다. 왜냐하면 정신건강을 공부하는 엄마로서,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할 때가 있게 마련인데, 미안한 마음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대인관계 기술을 익히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 입니다. 

 

쉬야 박스에 앉혀서 쉬야를 보게 하도록 훈련하는데 쉬야를 볼 때도 있으나 보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쉬야를 보면 우와, 아주 잘했어요, 엄마 뽀뽀라고 칭찬해주면 제 입에 달달한(참 잘했어요) 뽀뽀를 해줍니다. 그리고 혼자 놀다가 자신이 쉬야를 하고 쉬야했다고 변기를 손에 뒤뚱뒤뚱 걸어와 장한일을 했다고 자랑하듯(?)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이 쉬야 훈련을 하면서 생각나는 아버지

 

저의 아버지는 52살에 저를 낳으셔서 저는 쉰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제 위로 딸 넷을 연타로 낳으셨었지요. 제가 태어나자 할아버지도 저를 보러 오셨답니다. 매우 전통적인 유교적 사고방식을 갖고 계셔서 딸은 필요 없고 오직 아들만 원하셨다고 합니다. 막내 누나가 태어났을 때는 너무 화가 나셔서 엄마가 쳐놓은 금줄도 걷어내 버리셨 다네요.

 

저에게 우리 아버지는 인자하시고 자상하셨습니다. 엄마는 아버지와 금슬이 너무도 안좋으셔서제가 7살때 집을 나가셨고, 아버지와 저 그리고 누나 셋이 함께 살았습니다. 엄마가 안 계셔도 누나들이 엄마처럼 저를 돌보아 주셔서 불행하다고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잠들기 전에 요강에 쉬야를 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공부에 필요한 연필을 손수 깍아주셨습니다. 연필이 담긴 필통에는 기계로 깎은 것보다 더 예쁘게 가지런히 담겨있었습니다. 이런 추억으로, 앞으로 딸내미 학교가면 저도 우리 아버지처럼 손으로 연필을 깎아주고 싶습니다. 

 

저는 젠더퀴어로 태어났습니다. 트랜스젠더 성향이 더욱 강했는지, 제가 어려서부터 여성적인 행동이 나타나자 누나들은 저의 성정체성이 애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들려주었습니다. 제 눈에 누나들의 치마가 보이면 입혀 달라고 떼를 써서 치마를 감추어야 했습니다. 

 

가족과 친척의 호칭도 저는 남달랐습니다. 누나들을 언니로, 사촌 형을 오빠로, 사촌 형수를 올케 언니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행동을 해도 아버지와 누나들은 단 한번도 혼내지 않으셨고 강제로 누나, 형, 형수로 고쳐 부르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마초 형들이 있었다면 저는 많이 얻어터졌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저를 아마도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너그럽게 보아주셔서 강압적이지 않으셨고, 내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생각을 갖고 커나갈 수 있게 해주신 가족들에게 너무도 고맙기만 합니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듯이, 부모와 형제들은 성소수자 자녀와 형제를 사랑과 존중으로 대해 주어야 가정이 평화롭고, 온 가족이 행복한 법입니다. 

 

이런 우리 가족의 경험을 통해, 제 스스로 다짐해 나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앞으로 우리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좋다라고 격려해주며사랑으로 대해주는 부모가 되어주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가야, 엄마 아빠는 네가 앞으로 레즈비언이어도, 트랜스젠더 남성이 되어도 아니면 이성애자 여성으로, 더 나아가 어떤 성적지향으로 너를 정체화한다 하더라도  괜찮아. 

 

사회적 잣대로 들이대는 타인의 기준과 시선에 눈치보지 말고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커밍아웃하여 너에 대해 알려주렴. 그리고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며 쑥쑥 커나가렴. 

 

혹시나 차별과 억압이 가해질 때는 늘 엄마와 아빠가 너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힘이 날 거야.

 

 

마지막으로 우리 딸내미,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해 뽀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