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손 씻기와 쌈장 찍어 먹기
최근 아이의 행동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손 씻기 입니다. 예전에는 맘마를 먹이기 전에 물수건으로 아이의 손과 입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누로 손을 깨끗이 닦고 맘마를 먹습니다. 손 닦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졸졸졸 흘러 나오는데 그 물에 손을 대면서 신바람이 나기 때문입니다. 손씻기는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건강 행위 이지요. 앞으로도 이 습관은 계속 가자꾸나.
언젠가 한번은 손을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씻는다고 우겨 대서 물로만 씻어주고 “끝~”했더니 아니라고 손 사래를 쳤습니다. 이유 인 즉, 엄마 아빠처럼 손에 비누를 바르고 문질러야 한답니다. 손 씻자고 하면 싫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하던 녀석이 요즘은 얼씨구나 하고 세면대로 달려갑니다. 덕분에 밖에서 놀다가 집에 오거나 식사 시간이 되면 손 씻기가 아주 수월해 졌답니다.
또 한가지 엄마 아빠를 따라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집은 한 달에 두서너 번 삼겹살을 구워 먹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양배추를 쪄서 쌈장과 곁들어 먹습니다. 쌈장에 짠기가 많아 아가에게는 고기만 주고 양배추도 쌈장 없이 먹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 자기도 쌈장에 찍어 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엄마 아빠가 그렇게 찍어 먹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도 그렇게 먹고 싶다는 것이지요. 애 앞에서는 정말 찬물도 못 마십니다.
아이는 늘 엄마 아빠가 행동하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따라하는 아주 모범적인 관찰자(과학자) 입니다. 이런 관찰력이 사물, 자연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지요. 이렇게 따라하는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이다음에 ‘공부하라는 다그침 보다 나와 남편이 아이가 보는 앞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어 아이가 책 읽기를 즐기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남편은 독서를 매우 싫어 합니다. 책은 그의 눈을 스르륵 감겨주는 수면제인 것이지요. 제가 제발 핸드폰만 하지 말고 책 좀 읽으라고 하면 (같은 Book의 종류라는 의미로) “나는 대신에 Facebook을 읽어”라고 맞받아 친답니다. 이런 남편이 인보가 크면 책을 읽어 줄까요?
아이와 벌이는 핸드폰 실랑이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요즈음, 각종 언론에서 영유아에게 핸드폰을 지나치게 보게 하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청소년이나 어른들도 핸드폰 중독에 관한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당장 저만해도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커피 한잔을 마시며 핸드폰으로 포털 기사를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아이가 크면서 좋아하는 아이템들도 덩달아 하나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 눈에 띄게 좋아하는 것이 영유아 동영상 물입니다. 첫 돌 즈음부터 저는 USB에 아기 사진을 엮어 만든 사진 동영상, ABC송과 크리스마스 캐롤송, 한국 전래동화 이야기 그리고 (내가 어려서 즐겨 불렀던 추억의) 동요를 담아 TV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다이내믹한 영상을 보고, 소리를 들으면서 신이 났습니다. 특히 아가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면 “베이비~ 베이비~”가 나왔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릅니다.
어느 날엔 아이가 심심하다고 베이비를 틀어 달라고 할 때 제가 사진영상부터 틀어주었더니 이거 아니라고 “NO~, NO~, NO~” 손사래를 칩니다. 자신이 다른 것을 보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고른 것을 틀자마자 바로 나와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베이비들이 등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삐약아 엄마는 그 장면이 어디에 들어 있는지 바로 못 찾아.
최근에는 찰스 아빠가 핸드폰을 TV와 연결해서 뉴스도 보고 아이 동영상도 틀어주었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 UBS동영상은 지루한지 싫다네요. 그러면서 핸드폰으로 TV를 연결해 달라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어 휴 정말 이 녀석 꿀밤을 한대 먹여주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아요. 오늘도 점심을 먹으면서 핸드폰을 계속 보아 핸드폰을 압수하였더니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찰스 아빠의 뿔이 제대로 났답니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의사소통을 통한 협상은 불가능한 나이 입니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저의 고함치고 싶은 생각을 억누르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나름의 설명을 아주 친절하게(?) 해줍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알리가 없지요. 그냥 울면서 떼만 쓰면 장땡입니다. 그래서 아동발달 학자에게 묻고 싶어요, 도대체 몇 살이 되면 협상이 가능할까요?
세간에 미운 4살, 중3병, 고3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운 4살이면 유치원 다닐 시기일 것이고, 중고등 청소년기에 반기를 드는 소아청소년의 심리와 행동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유심히 지켜 보면서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겠지요. 사실은 저도 고2때 사춘기가 와서 친구들과 담배 피우고 술도 마시고, 나이트클럽과 이태원바에서 놀면서 외박도 했던 사고 뭉치 청소년 퀴어였답니다.
몇 일전, 저는 어느 외국인 엄마는 아이가 계속 보채고 떼를 부릴 때 소리를 지르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장면과 아이가 화가 났을 때 눈을 감기고 심호흡을 시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도 따라하고 싶은 부모의 모습을 발견하였지요.
또 하나의 장면도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 줄리앙은 뇌병변 장애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줄리앙 부부는 자녀들과 함께 저녁에 10분간 아이들과 명상을 하였고, 이후 아이들은 차분한 마음과 행동으로 책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하 그래 이것도 해보면 참 좋겠네’라는 생각을 계획표에 넣어두게 되었습니다.
영상 말미에 줄리앙은 “인간이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저에게 던졌습니다. 담배를 한대 물면서 아이와 부모의 관계의 측면에서, 몇 번 되새겨 보았습니다. ‘부모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남편과 나도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다.’
아가야, 맘마를 먹을 때는 동영상을 보지 말았으면 해. 앞으로 인간답게 그리고 좋은 사람으로 커 나갔으면 해, 사랑하는 우리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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