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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후원/무지개 텃밭은 지금

[행성인 이사가자] 더 크게 더 가까워지는 행성인을 위하여

by 행성인 2023. 6. 23.

영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저는 현재 행성인 사무국 활동가와 회원 여러분들이 이용하는 PC를 비롯한 전자기기, 네트워크 등 기술지원을 담당하고 있으며, HIV/AIDS 인권팀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행성인이 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찾아 무사히 이사할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한 글쓰기를 하려니 제가 행성인에 처음 발걸음을 했던 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행성인을 처음 찾은 2014년 4월 행성인(당시 동인련) 공간은 2012년 무지개 텃밭 후원사업을 통해 마련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상업용 빌딩 2층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현재 행성인 교육장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당시 교육장에는 벽면을 가득 채운 성소수자 관련 자료들과 스무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고, 그와 분리된 작은 사무공간에서 상임활동가 두 명이 일했습니다.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아주 밝고 따뜻하고 쾌적하고 아늑했어요. 사회에서 차별 받고 소외 당하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하는 단체는 운영이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제가 예상했던 모습은 훨씬 더 작은 공간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답니다. 그곳은 제가 서교동 행성인 무지개 텃밭을 방문하기 1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가능하게 해 준 회원님들과 후원자 여러분들 덕분에 마련된 공간이었어요.

 

2015년 1월 대흥동 이사를 위한 교육장 작업. 회원들이 도배를 하고 있다.

 

저는 초등학생 시절에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대학생이었던 ‘아빠 친구 아들’이 조립해준 컴퓨터를 갖게 되었는데요,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전의 컴퓨터는 지금보다 안정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오래 사용하면 데이터가 쌓이고 각종 설정들이 복잡해지면서 느려지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덜 느려지고 오래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방법들을 찾아보고 익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거나 기계적인 고장이 발생할 때는 최대한 스스로 해결하려고 씨름하면서 여러가지 지식들을 쌓아갔고, 그것들이 모여 지금까지도 계속 흥미를 이어가게 되었어요.

 

제가 행성인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곧바로 떠오른 것이 바로 이러한 기술지원이었습니다. 당시 행성인 사무국의 PC들은 아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방문자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공유기의 보안은 취약했습니다. 저는 기존에 연결된 선들을 걷어내고 보다 적합한 길이의 선으로 교체, 정리했습니다. 또한 무선 인터넷의 보안을 강화하고 제가 가진 여분의 장비를 사용하여 상임활동가들이 사용하는 PC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각종 행사와 연대활동, 회원 관리로 바쁜 활동가들이 조금이라도 효율적이고 빠르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보람되고 기뻤습니다.

 

2018년 1월 8층 확장 및 교육장 리뉴얼 공사. 회원들이 4층 교육장 가벽과 단을 철거하고 8층 바닥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후에 행성인은 2015년 지금의 대흥동으로 이사했습니다. 제가 행성인을 처음 찾았을 때보다 성소수자 운동은 훨씬 커졌고, 행성인 회원 수도 늘어났기 때문에 공간도 넓어져야 했죠. 많은 회원들이 행성인의 이사를 돕고 새 공간을 꾸몄습니다. 저도 새로운 행성인 무지개 텃밭에서 일할 상임활동가들의 PC를 재정비하고, 회원 여러분들이 이용할 장비들을 새로 구입하고 설치했습니다. 낡은 프로젝터 대신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대형 TV를 설치했고 회의와 다양한 이벤트에 사용할 노트북도 추가로 마련했습니다. 또한 저처럼 컴퓨터를 좋아하고 IT 지식을 가진 다른 회원들이 장비를 기증하여 기기의 성능을 더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지금의 공간이 어느덧 이사한 지 8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행성인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과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8층 사무실 풍경. 여기 대부분의 PC기기 역시 영민을 비롯한 회원들의 기여가 있었다.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지난 시기 성소수자 운동을 포함한 시민사회 운동 전반이 어려운 시기를 맞았지만, 행성인 사무국과 활동 회원들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혐오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고 확장시키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비대면 시대에도 회원 여러분들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행성인이 하는 일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죠. 하지만 성소수자 커뮤니티 지형, 사람들이 성소수자 운동에 참여하는 방식과 양상 또한 이전과 달라졌음을 경험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를 힘들게 한 코로나가 종식되고 행성인은 다시 힘차게 성소수자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저는 행성인이 저를 포함한 회원 여러분의 곁으로 어떻게 하면 더욱 다가갈 수 있을까, 회원 여러분이 가진 고민을 함께 나누고 케어할 수 있을까, 후원에 대한 효능감을 높이고 운동에 대한 참여를 독려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내년에 후원 10년을 맞이하는 제가 지금까지 행성인 활동을 하면서 받아온 커다란 지지와 기쁨, 따뜻한 공감의 에너지를 더 새롭고 많은 분들과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대흥동 행성인 공간은 이사 초기 4층에 교육장과 사무국이 같이 있었지만, 현재는 다른 층을 추가로 임대하면서 교육장과 소회의실이 같은 층에 있고, 사무국은 상층으로 분리했습니다. 이 때문에 교육장을 방문하는 회원 여러분을 가까이에서 바로 맞이하고 빠르게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간을 선택했지만 현재 엘리베이터의 크기가 매우 좁아서 장애인 접근이 온전하게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소통의 접점을 지금보다 늘리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상임활동가의 필요성도 있는데요, 이를 위해서 지금보다 더 넓은 교육장에 사무국과 회의실 등이 가깝게 모여 있고, 성중립 화장실도 마련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사를 회원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마음에 쏙 드는 그러한 공간을 찾아 이사하는 일이 아주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함께 고민하고, 후원을 통해 작은 정성들을 모은다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꼭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저도 더 많은 회원 여러분이 지금보다 훨씬 쾌적하게 인터넷과 컴퓨터를 사용하고, 시각적인 정보들이 화면을 통해 눈에 쏙쏙 들어오고, 활동가들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쏟아 부으려고 합니다.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메일링과 SNS, 메신저로 전달해 드리는 행성인 소식들을 꼭 잊지 말고 눈 여겨봐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소중한 분들과 행성인 후원을 통해 성소수자 운동에 기여하고 계속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성인이 더 나은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나, 새로운 공간에 바라는 점을 건의해 주셔도 너무나 좋을 것 같습니다.

 

끝맺으면서, 비록 글을 통해서지만 구호 하나를 외쳐보고 싶네요. “더 크게 더 가까워지는 행성인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