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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 연재] 페티쉬의 길 (fetish Road) - #1 산넘고 바다넘어 페티쉬를 찾아서

by 행성인 2023. 8. 22.

Rubber Lee(행성인 HIV/AIDS 인권팀)

 

 

오감으로부터 시작해서 오감으로 끝난다. 나는 그것이 페티쉬라고 생각한다. 양말, 정장, 유니폼, 신발, 손, 발, 머리카락, 냄새, 안경 등 사람들의 페티쉬는 정말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고무를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나는 고무(Rubber) 페티쉬를 가지고 있다. 처음 이 페티쉬에 관심이 있던 시작은 중학생때 스파이더맨 영화였다. 주인공의 복장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참 멋있네정도였지만, 저걸 입어보면 어떨까? 무슨 느낌일까? 생각이 줄줄이 이어졌다.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사진을 보거나 자료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러버슈트 페티쉬 활동을 해오고 있다. 페티쉬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러버는 한국에서는 소수, 존재조차 모르거나 있어도 BDSM 보조 기구로 소비하는 경향이 많다. 관심이 있어도 구입처, 관리방법, 비용을 비롯해서 입으면 숨막히는거 아닌가 하는 인식이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둘러봐도 보이지 않아 결국엔 스스로 사람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옛날 비단을 교역한 실크로드처럼, 나도 고무 동료들을 찾아 길을 떠난다.

 

트위터를 하면서 러버 페티쉬를 갖고 활동하는 이들이 많이 보이는 국가는 일본이었다.

 

인생 처음 일본 도쿄에 여행갈 때, 이케부쿠로역 근처에 있는 고무샵을 방문했다. 공방이면서 물품을 판매하는 장소였다. 기웃 거리다가 고무를 관리하는 오일만 구입하고 바로 나왔다. 당시 첫 방문이라 경황없이 지나갔다. 첫 해외 러버 페티쉬 경험이었다. 이후 일본어를 독학하며 아주 기초적인 일본어를 습득하고, 트위터를 통해 여러 일본인 러버분들과 sns로 연락하고 관계를 맺어갔다. 간혹 한국에 여행오는 일본인 러버분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에 러버 페티쉬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지, 한국에서 러버를 구입할수 있는지 같은 것들을 물었다. 안타깝게도 질문들에 아니라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역 근처의 고무샵 

 

최근 7월 도쿄여행을 하면서 최근 알게 된 러버 분을 만났다. 일본을 수차례 갔지만 처음 가진 현지 만남이었다. 짧은 일본어랑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서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사진을 교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 방문한 외국이기도 한 일본의 경우, 트위터를 중심으로 개인 단위로 소통하고 연락하며 만남을 이어간다. 새로운 러버 동료들을 만나면서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세계 최대 천연고무 생산국 태국

 

태국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FORFUN 이라는 샵을 트위터로 알게된 이후였다. 태국인 러버분들과 FORFUN의 모델들을 만났는데, 그동안 보았던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영국, 독일등 굴지의 나라들보다 제품의 퀼리티가 좋아보였다. 러버 페티쉬 문화가 정말 크고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는걸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면 방콕퀴어퍼레이드에서 러버 입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 행진도 하고 자체 세미나 행사도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아시아 국가중에서 러버페티쉬 활동이 활발하다고 생각했던 일본이나 대만보다도 다양한 문화가 있고 사람들도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연히 한국에 여행 온 태국 러버 분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한겨울 명동에서 만나서 이야기 했다. 태국 러버 분은 한국어를 무척 잘했다. 태국에서 러버는 문란함보다도 패션 코드 정도로 인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부 그런건 아니지만 국가 예술센터 같은 곳에서 사진 전시를 하기도 하고, 호텔을 잡아서 세미나를 한다고도 하니 더더욱 부러움이 컸다.

 

마침 샵에서 진행하는 행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사장님에게 들었다. 사진을 보니 더욱 흥미가 생겼다. 결국 올해 초여름, 태국 방콕에 방문했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마중나온 태국 러버 분을 만나 바로 샵으로 달려갔다.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 가게와 바로 앞 BDSM 컨셉 카페를 구경했다. 쇠사슬과 SM용품이 장식된 곳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케이팝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일상과 섞이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곳이라고 감탄했다. 마침 러버를 주제로 행사를 연다고 알려줘서 기꺼이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가게에서 빌려준 고무를 입고 기다리는 동안 음악이 흐르는 중간중간 빛나는 검은색 고무옷을 입은 이들이 한명씩 가게로 들어왔다. 태국인만 있는건 아니였다. 방콕에서 일하는 베트남인, 태국에 졸업여행 중인 중국인 등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다. 번역기를 돌려 짧은 영어를 사용하고, 대부분은 온몸을 사용해 소통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와 같은 페티쉬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헤어지면서 라인을 교환하고, 한국에도 퀴어퍼레이드가 있으니 관광겸 놀러오시라 인사를 나눴다.

 

페티쉬로 외국인 친구가 많아진 건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 한번 이어진 인연을 잘 살려서 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더불어 한국도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음지에 있는 문화를 끌어 올려서 이야기하고 즐기는 자리가 많아지는 그런 날을 꿈꾸며,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러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