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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9월 기획] 트랜스젠더가 바꾸는 것

by 행성인 2023. 9. 22.
기획의 말: 최근 사이클 선수 나화린씨는 '성전환 수술 없는 성별정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트랜스젠더 동료들이 적지 않게 당황하고 실망하기도 했는데요, 한편으로는 감정적으로 개인을 규탄하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9월 웹진에서는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원들이 저마다 에세이를 쓰면서 수술 여부에 따른 성별정정의 입장을 짚고 나아가 트랜스젠더가 동료로서 어떻게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지 고민을 곱씹어보았습니다. 

 

연수(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

 

 

 

1) 생물학적 성별?

 

트랜스젠더를 이해하려면 먼저 지정성별(sex assigned at birth)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지정성별이란 출생 시 외부성기를 가지고 의사가 남성 혹은 여성으로 지정하여, 출생 증명서 등의 문서에 기록된 성별을 가리킨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지정받았다는 '폭력성'과 정확하지 않다는 '모호성'을 드러내기 위해 고안된 용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것과 달리 성별은 생물학적으로딱 둘로 쪼개지지 않는다. 흔히 성염색체가 xx 이면 여성, xy이면 남성으로 알고있지만 단일 성염색체를 가진 xo, 세 개 이상의 염색체를 가진 xxx, xxy, xyy의 경우도 있고, 혹은 xxxy여도 염색체보다 더 작은 단위인 유전자 중에서 성과 관련하여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성 결정 유전자에 따라 xx 염색체인 사람도 남성적 특징이 발현될 수 있고 xy 염색체인 사람도 여성적 특징이 발현될 수 있다. 외부 성기가 아예 두 개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성 염색체와 신체구조에 있어서 전형적인 생물학적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을 간성(間性)’ 혹은 인터섹스(intersex)’ 라고 부른다. 인터섹스는 전 세계 인구의 1.7% 정도 존재한다고 한다.

 

호르몬 수치로 나누기에도 정확하지 않다. 여자육상대회에 출전하여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한 남아공의 캐스터 세메냐라는 라는 여성선수가 있었다. 세메냐 선수는 타 선수보다 월등해 보이는 신체능력과 남성적으로 보이는 외형으로 인하여 그를 둘러싸고 이른바 성별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성 판별검사를 실시하였고 세메냐 선수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반적인 여성들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나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경기출전에 제약을 받기도 했다. 분명히 여성으로 지정받아 여성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인데 여성종목에 출전하는게 공정하지 못하다니. 이 역시 생물학적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범주가 부정확하고 부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캐스터 세메냐(Caster Semenya) 선수

 

선천적 신체조건이 공정성을 해치는 기준이라면, 그 기준을 단순히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게 맞을까. 같은 남자 안에서도, 같은 여자 안에서도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식능력 유무로 성별을 나눌수도 없다. 초경 전인 여성이나 완경기를 지난 여성은 여성이 아닐까? 혹은 어떤 사정으로 자궁을 드러내게 되면 여성이 아니게 될까? 반대로 남성인 사람이 음경에 손상을 입거나 정관수술을 하게 된다고 해서 남성이 아니게 될까? 그건 아니지 않나. 우리가 과학적 진리라고 여기는 생물학적인 이분법도 사실 명확하게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펙트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인 성별(gender)이 생물학적 성별(sex)을 구성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국가 혹은 사회에서 그저 편의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눠놓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트랜스젠더란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생물학적 이분법의 기준에 따라 강제적으로 부여받은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만 한편으로는 반대로 트랜스젠더라는 존재 자체가 성별이분법에 균열을 냄으로써 이미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2) ‘성전환은 없다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보통은 남자에서 여자로 혹은 여자에서 남자로 바꾼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용어 자체가 mtf(male-to-female), ftm(female-to-male)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생물학적 이분법에 근거한 옛날식 표현이며 당사자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자에서 여자로(혹은 그 반대)’ 바뀐게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의 성별은 염색체나 생식기 등으로 결정될 수 있는게 아니다. 음경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수술을 통해 음부를 가지게 됐다고 해서 원래 남자였는데 이제 여자가 된 것이 아니다. 성기를 바꾸는 순간 성별이 전환되는게 아니라, 원래 여성이었던(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여성으로서 자신을 확립하기 위해 신체의 변화가 필요해서 수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성전환수술이라고 하지 않고 대신 성확정수술이라고 하며, mtfftm에 대해서는 트랜스여성’, ‘트랜스남성이라는 말을 쓰는 편이다.

 

트랜스여성과 트랜스남성이 지정성별이라는 낙인에 저항하며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트랜지션이라고 한다. 여성 혹은 남성으로서의 자신을 확립시키고 온전히 자신으로 살기위하여, 트랜지션은 신체나 외모 뿐만 아니라 성역할이나 인간관계, 법적성별 등의 사회적 영역 전반에 걸쳐 일어난다.

 

나 또한, 성확정수술을 통해 보지를 갖게 되었지만 나는 내가 보지를 가짐으로써 여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여자라는 정체성이 확고하였기 때문에 의료적인 트랜지션은 그 후속과정으로 따라온 것일 뿐, 그게 나를 여자로 바꿔준 게 아니다. 물론 기존의 고추는 정말 끔찍하게도 싫었던거지만, 지금의 보지는 나에게 그저 신체부위 중 하나일 뿐, 고작 보지 하나가 내가 인생을 걸고 확립한 내 성별정체성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기수술을 한 트랜스젠더만 성별정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성기로 국한시키는 성기환원주의에 반대한다. 트랜스젠더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확립해나가는 사람들이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신체와 정체성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 해방 세상이 오기를 나는 바란다.

 

 

LGBT Gay Trans Pride BLM Fist Flag

 

 

3) ‘완트는 없다

 

어느 집단이나 그렇듯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도 암묵적인 위계가 있다. 트랜스여성을 예로 들면, 수술을 하지 않고 호르몬만 하는 사람을 홀몬시디(호르몬중인 시디(cd, 크로스드레서의 약자)), 가슴수술까지 한 사람을 쉬멜(shemale), 가슴수술과 성기수술까지 한 사람을 완트(완전한 트랜스젠더)라고 부른다. 물론 정확하거나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편의와 문화적 특성에 따라 커뮤니티 용어로 자리잡았다. 트랜스젠더들 역시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관습화된 성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여성으로 살고자하는 트랜스여성은 얼마나 여성으로 보이느냐’, ‘얼마나 여성다운 신체를 가졌느냐는 기준에 따라 자신들을 검열하고 서로 우열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바이너리 트랜스여성으로서 당연히 그 맥락이나 마음을 이해 못하는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더 자유로웠으면 한다. 의료적 트랜지션이나 사회적 트랜지션은 자신한테 필요한만큼 이행하되, 서로를 검열하거나 우열을 나누지 않았으면 한다.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의료적인 수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혹은 원하더라도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어느 한쪽의 성별로 정체화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역시 존재한다. 수술을 한다고 해서 완트가 되는게 아니라,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으로 충분히 완전하다. 성별이분법과 지정성별의 억압을 넘어 다양한 빛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든 트랜스젠더들이, 서로 간의 지지와 연대를 통하여 이 세상을 차별과 혐오없는 곳으로 같이 트랜지션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