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2024년 한 해 동안 '상임활동가의 사정' 연재를 시작합니다. 행성인 네 명의 상임활동가들은 종횡무진하며 단체 안팎에서 활동을 하는데요, 한 달 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무엇을 보고 어떤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지 함께 만나봅시다. |
지오
지난 4월 10일, 총선 투개표를 참관하였습니다. 완전히 흥미를 잃은 총선이었는데 개표 참관이라는 난생 처음 해보는 경험이 조금이나마 의미를 되살려주었었죠.
유권자들이 자신의 투표소를 잘 모르더라는 점, 투표방식을 물어보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점, 개표 공간의 열기가 상당하는 점, 무효표가 많았다는 점, 참관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많이 피로하다는 점 등등이 기억에 남았어요.
그중 압도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효표가 정말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번 비례대표에는 무려 38개의 정당이 참여하여 투표용지 길이도 역대급이었다 평가하는데요. 그 정당들 어디에도 찍지 않고, 목록이 나열된 어느 한 곳도 아닌, 상단 제목 옆이나 하단 귀퉁이 같은 여백에 도장을 찍은 분들이 꽤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도한 무효표라 해야겠죠. 시간을 내어 투표소에 와서 한 표를 행사하였지만 그 표는 38개 정당 중 어디도 찍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던 것이니까요. 그래서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따로 만들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정치가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었어요.
찾아보니 이번 총선 비례대표 무효표는 131만표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개혁신당(약 103만표)보다 높은 득표수이고 준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기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이정도면 진짜 이게 민심 아닌가요. 총선 이후 무효표 수치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에 연결하여 짚은 기사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결코 허튼 숫자가 아니고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분석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부디 각자의 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수치가 보여준 민심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전에는 무효표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닥 이해되지 않았었는데요. 별별 기발한 곳에 도장을 찍으며 제4당급의 무효표를 만들어낸 그 분들이야말로 이번 총선의 작은 승리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소리
얼마 전, 행성인 회원 분을 통해 사주를 봤습니다. 올해가 아홉수에, 뭘 하든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니 기대하면 허망할 것이라는 사주였습니다.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는게 좋다고 하더라구요.
연초에 차량 접촉사고에, 집에 있던 온갖 전자기기가 고장난 일이 떠올랐습니다. 연초에 있었던 일들이 액땜인건가 싶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걸? 사주를 보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차량 접촉사고가 나고, 사무실 컴퓨터가 고장나고, 넘어지면서 핸드폰이 박살나고… 1~2주일 동안 연달아 사고가 나더라구요.
다행히 몸이 다친 곳은 하나도 없고, 차량 접촉사고는 상대방 100% 과실이라 수리비가 들지 않았고, 컴퓨터는 큰 일 아니라 바로 고쳐졌고, 핸드폰은 바꿀 때가 되긴 했었죠. 이렇게 아주 큰 일 아닌 사고들로 액땜했다고 애써 달래고 있기는 한데… 정신적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이쯤되니 슬슬 사주가 무서워지긴 하네요. 다행히 하반기부터는 운이 풀린다고는 하는데, 앞으로 몇 달 어떻게 버티나 걱정입니다.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요즘 심란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부적 하나 써주실 분 있으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웅
오랜 본가생활을 하다 망원으로 넘어온 지 2달을 채워간다. (사정은 추후에 좀 더 풀어보도록 하고…) 제일 좋은 건 출퇴근시간이 2시간 가량 단축되었다는 점이다. 걸으면 20분, 마을버스를 타면 10여 분 거리의 사무실 출퇴근 동선을 최대한 향유하고자 따릉이 서비스 6개월치를 등록했다.
꼭 출퇴근이 아니어도 근거리에 미팅이 있거나 버스간격이 어중간할 때면 자전거를 탄다. 요즘은 봄날이라 자전거 타기에 적기다. 그렇다고 매일 밤낮으로 타는 건 아니고, 근처에 일정이 있을 때면 가까운 이동수단 정도로 사용한다. (이건 나이를 먹으면서 몸도 귀찮음을 느낀다는 징조다) 겸사겸사 올해 꽃구경은 홍제천길 따라 서대문 인근 전시보러 가는 길에 따릉이와 함께 했다.
자전거 대여소는 행성인 사무실과 망원동 집에서 거리가 있지만, 가끔 소소하게 발을 구르며 바람을 맞고 싶을때면 어김없이 굴린다. 저녁 일정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밤바람 맞으며 달리는 귀가길이 이렇게 좋구나 기분을 누리면서, 5분 남짓의 시간동안 세상은 살만 하구나를 느끼면서, 옹졸한 마음에 콧방귀를 뀌면서도 언제 다시 이런 호사 누려보나 싶어 최근에는 뒤풀이 참여 빈도도 줄였다. 하지만 집에 가까워질때면 술이 엄청 당기는 게 곤욕이다. (십중팔구는 마신다)
사진은 하루 반절만 일하는 날 오후에 퇴근해서 얼른 자전거를 집어 한강공원 망원지구까지 달리며 찍은 풍경.
호림
오랜만에 뒷풀이에 두 번이나 참여한 한 주였다. 요즘의 일상에서는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모든 뒷풀이 필참에 무조건 끝까지 남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엔 술도 한 달에 한 두 번 마실까 말까 하니 말이다.
한 번은 새로운 사람들이 많아서, 한 번은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있어서 술자리에 남았다. 새로운 사람들의 신상을 꼬치꼬치 물어보며 어엿한 꼰대가 되어감을 느끼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나누는 추억 속 (내 마음엔 생생한) 과거가 10년 전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올해는 유독 시간의 흐름과 나이듦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 지금 내 나이가 n년 전 00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나이보다 많다던가 하는 것들을 자꾸 셈해보게 된다.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더이상 어딘가에서 “(너무) 어린 여성”으로 보이지 않는 자신을 자각하게 된 것이 크다. 그리고 그 사실은 아주 큰 해방감을 주는 동시에 나의 태도와 화법, 행동의 변화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제 어떤 자리에서 위축되거나 무시받지 않으려 더 큰 에너지를 쓸 필요가 줄어 들었다면, 그러는 동안 굳어진 나의 어떤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대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30대 중반까지의 추구미가 ‘어디서나 당당한’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의 추구미는 ‘친근하고 편안한’으로 가보고 싶은, 아니 그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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