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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소모임 열전 2] LGB’T’를 거부합니다 – T&F 소모임

by 행성인 2024. 3. 25.
기획의 말
2023년 3월호 웹진에 이어 소모임 열전 시즌 2를 기획했습니다. 지난번 큐리블 쫑긋, 완독 몸짓패에 이어 올해 신설된 T&F, 큐레센도, 큐플레이를 만나보세요!

 

 

연수(행성인 T&F)

 

 

LGB‘T’를 거부합니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제가 성소수자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지는 정말 얼마되지 않았지만, 운동을 해 오면서 언제부턴가 미묘한 찝찝함과 불편감이 있어왔습니다. 그 감각을 오랜시간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나서야 왜 그렇게 느꼈는지, 그게 무엇인지 조금씩 언어화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소수자에겐 언어가 중요하니까요, 그렇죠?

 

저의 찝찝함과 불편감은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단어 ‘LGBT’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LGB(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는 성적 지향을, T(트랜스젠더)는 성별정체성을 나타내는데, 그렇다면 LGBT는 서로 아예 다른 범주가 아닌가? 어떻게 ‘LGBT’라는 말로 같이 묶을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폭넓게 봤을 때 L,G,B,T 모두가 성()이라는 영역에서 차별받는 소수자이니 그렇게 묶()게 된 배경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다같은 성소수자니까 다같이 뭉치자!’ 라고만 해버리면 그 안에서 트랜스젠더가 겪는 억압이 잘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시스젠더인 GL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소개할 때 저 게이에요” “저 레즈에요라고 말합니다. 게이,레즈라는 말 속에는 이미 스스로와 상대방이 남자,여자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성별정체성이 이미 승인된 채로 동성과 하는 연애와 섹스, 그리고 거기서 기인하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죠.

 

그런데 T의 경우는 이와 많이 다릅니다. 애초에 자신이 남성이냐 여성이냐부터가 고민과 투쟁의 시작이고, 여성/남성/논바이너리로서의 자신을 입증받기 위해 연애와 섹스 영역 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과 모든 공간에서 배제와 억압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지정받은 성별과 불화하고 그것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성적 지향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뭐가 됐든 어쨌든(!) 시스젠더로서 살아가는 사람과는 전혀 다른 위치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시스젠더가 아닌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당연히 LGB가 있을 수 있고요(^^).

 

그래서 저는 ‘LGBT’를 거부합니다. T로서 살아가는 저는, 그렇게 나열되고 싶지 않습니다.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간의 권력차이를 좀 더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가 겪는 억압 중에 제가 또 한 가지 수면 위로 올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트랜스혐오를 자행하고 있는 진영, 이른바 터프(TERF)’ 로부터 트랜스젠더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터프에 대한 비판이나 대응이 없었다는건 아니지만, LGB에는 관대하면서도 (적어도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T만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폭력적인 사람들과 집단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퀴어 안에서도 T만이 겪는 억압이 더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출처: https://alook.so/posts/njtKjL

 

 

T&F를 소개합니다.

 

이 소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하려다보니 서론이 길어졌네요.

 

인권운동판 안에서조차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도가 심각하게 떨어진다고 느꼈고, 트랜스의제가 심심찮게 소외받는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처음에는 정현님이 이 소모임을 제안해주셨고, 저를 포함하여 이에 격하게 공감하는 행성인 회원들과 함께 소모임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소모임 이름인 T&F의 뜻이 궁금하시겠죠?

어떤 분들은 예상하셨겠지만 트랜스젠더이자 페미니스트로서 트랜스 이슈와 페미니즘 간의 교차성을 탐구하고 운동적 담론을 만들어가자는 의미로, 트랜스젠더(Transgender)T와 페미니스트(Feminist)F를 따서 T&F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또한 트랜스젠더에 대해 알아야할 진실(True)과 거짓(False)이라는 중의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고요.

 

T&F는 트랜스젠더 인권과 교차성 운동을 공부하고, 트랜스혐오 사례를 아카이빙하고, 나아가 시스중심주의와 트랜스억압을 타파하기 위한 운동방향성과 담론을 제시하고 싶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금 거창해보일 수 있지만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많은 만큼 아직은 시작단계라 차근차근 준비중에 있어요. 올 해는 한 달에 한번씩 모이고 있고, 활동에 대한 기획회의와 책모임을 격월로 번갈아가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소모임을 넘어서는 활동이 될 수 있겠지만 구성원들이 각자 서로 가능한 선에서 조율하면서 천천히, 하나둘씩 해나가보려고 하니까요.

 

혹여나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편하게 연락주시길 바라요. 트랜스젠더 인권을 고민하는 퀴어 당사자와 페미니스트라면 누구든지! 환영입니다!

 

 

* 참여를 원하는 분들은 아래 오픈카톡방을 통해 문을 두드려주세요.

https://open.kakao.com/me/transfemi

 

정현님의 오픈프로필

 

open.kak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