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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소모임 열전] 그냥 뛰고 차고- 퀴어 풋살모임 큐리블

by 행성인 2023. 3. 26.

 

소연(행성인 큐리블)

 

 

2019년 퀴어 여성 풋살팀에 들어가고 어쩌다 1~2번 풋살을 했다. 풋살 붐이 일고 나서도 가끔 공을 차러 간 게 전부인데, 주말에 시간내기 힘들기도 했고 내가 풋살에 재능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평일에 풋살을 하고 싶어서 여러 플랫폼을 찾아봤는데 남성팀, 여성팀, 혼성팀이 있었다. 일회성 경기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운동하기에 나는 낯을 가린다. 더구나 풋살이 팀 운동이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민폐나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여성팀에 자리가 다 찼을때는 굳이 혼성팀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왕초보 실력으로 남성들과 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플랫폼에서는 본인의 레벨에 맞춰 팀을 편성해주었음에도 ‘남성’은 운동을 잘한다는 편견 때문에 괜히 그들에게 무시당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여성팀에 가는 것조차 어려운데 혼성팀이라니. ‘남성’만큼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차별적인 무의식을 가진 그리고 다른 성별과 함께 운동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온라인 상의 여성 혐오는 내가 ‘남성’과의 함께함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나 때만해도(~) 한국 공교육 현장(여중, 여고)의 학생이 할 수 있는 운동은 피구나 배드민턴뿐이었다. 학생 시절 나는 햇볕에서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즐거움을 알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난 뒤, 페미니즘 리부트로 이런 경험을 여성들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운동할 공간과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게 되었다. 그때 알던 친구의 추천으로 퀴어 여성 풋살팀에 들어갔다.

 

큐리블 첫 모임

 

나는 작년 5월에 행성인에 가입했고 트랜스젠더퀴어인권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팀 활동을 하다보니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별 이분법적인 이 사회에서 스스로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큰 목소리 내는 것을 주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래서는 안 돼라는 생각과 함께 뭘 실천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정체성과 젠더표현이 어떻든 간에 같이 뛰노는 풋살 모임을 만들자고 생각했고, 그렇게 작년 12월 큐리블 카톡방을 만들었다.

 

첫 모임은 올해 1 14일 대흥역 인근 카페였다. 행성인 홍보를 보고 한자리에 모인 6(가람, , 도경, 림군, 레인, 우리)이 처음 만나 서로 소개도 하고 언제 만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2 18일 첫 운동을 약속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풋살장은 예약 경쟁률이 너무 높지만 적당한 가격이라고 생각하여 그곳을 먼저 예약했다. 하지만 그 날 다들 사정이 생겨서 참여하지 못했다. 첫 운동 모임을 날리고(?) 중간에 성욱과 슈미도 풋살 모임에 참여하여 다음으로 날짜를 잡은 것이 3 26일이었다.

 

드디어 대망의 첫 운동 모임에 가람, , 도경, 슈미가 만났다. 처음에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몸을 풀었다. 그 날 모인 사람들 중에 내가 풋살 경력이 가장 오래되어서 아는 것을 나누었다. 나와 도경을 제외하고 다들 공을 처음 차 본다고 해서 30분 정도 공에 대한 느낌을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스텝, 공 찰 때 발 모양, 패스, 슈팅, 드리블을 연습했더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연습을 하면서 공차는 것에 대한 어색함과 서투름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다른 풋살 모임에 가면 왕초보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아는 것을 나누어야 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자신감을 나도 모르게 가졌던 것 같다. 웃음과 함께 연습을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1()대 3(가람, 도경, 슈미)으로 경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다들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여서 자신감 넘치게 시작했는데 역시 나에겐 무리였다. 4:2로 졌지만, 졌다는 아쉬움보다 너무 웃기고 재밌는 시간을 가졌다는 즐거움으로 가득찼다. 공을 처음 차는 사람이 있었지만 우리는 웃으면서 열심히 뛰었고 한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나는 혼자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고, 혼자서 지금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행성인을 만났다. 행성인은 성별 이분법적이고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끼리 모여 뛰노는 것은 함께 현재를 즐기는 것임을 깨달았다. 행성인 회원들끼리 함께 공을 차고 웃으면서 희망이 없어 보이는 현실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고 나로서 존재하는 것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큐리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면 좋겠다. 다른 회원들의 소감도 공유한다.

 

 

슈미 : 오늘 완전 좋았어요 ✨✨✨ 행성인에서 이렇게 핫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소모임이 생겨서 무지무지 기쁘고 앞으로 대박났으면 좋겠습니다

 

가람 : 진짜 너무 재밌었어요. 평생 공과 담쌓고 살다가 발에 공을 대고, 차고, 넣고, 패스하는 기분을 처음 느끼는 게 행복했어요. 그리고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에게 유쾌하게 알려 주신 모임장님 때문에 또 웃고 웃으면서 한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쉬는 시간에 다들 심장 괜찮으세요?’란 질문을 들었는데 뛰느라, 또 웃느라 심장은 좀 무리한 것 같지만 넘 즐거웠습니다

 

도경 : 서로 격려해주면서 천천히 연습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앞으로도 계속 나오고 싶네용ㅎㅎ 즐거웠고 잘 들어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