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하이 아트>를 통해 동성애적 욕망을 예술적 성취로 승화시킨 레즈비언 이야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레즈비언 감독 리사 촐로덴코가 10여 년이 지나 <에브리바디 올라잇>이라는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레즈비언 커플을 스크린으로 불러냈다. 마약과 술에 취해 비틀대고 삶이 곧 예술임을 외치며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던 혈기왕성한 레즈비언들은 이제 사적 욕망을 억누르며 성숙한 부모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하는 중년의 레즈비언들로 돌아왔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은 점은, 이들에게도 역시 여성이든 남성이든 늘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유동하는 성 정체성이 <하이 아트>에서는 뛰어난 사진작품 탄생의 계기가 되었던 반면에, 여기에서는 가족 해체를 가져오는 불행의 씨앗으로 격하되었다.

 레즈비언 커플인 깐깐한 의사 ‘닉(아네트 베닝)’과 모험을 즐기는 ‘줄스(줄리안 무어)’에게는 각자 정자 기증을 받아서 낳은 딸 ‘조니(미아 바쉬이코브스카)’와 아들 ‘레이저(조쉬 허처슨)’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인 ‘폴(마크 러팔로)’을 만나게 되고, 이로 인해 평온했던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된 영화 <에브리바디 올라잇>이 보여주는 가족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분명 낯설다. 동성애자의 결혼은커녕 그 존재조차 부정당하기 쉬운 한국에서 엄마가 둘인 가족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개봉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에서 지난 7월 개봉하여 함께 경쟁한 <인셉션>이나 <토이 스토리3>, <솔트> 같은 쟁쟁한 영화들을 수익률 측면에서 압도하며 여름 박스오피스에서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갔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영화는 대중적 감수성과 조응할 수 있는 측면이 있고, 그것은 바로 섹슈얼리티와 시대를 초월해 호소력을 지닌 가족 가치에 대한 감동적 옹호이다.

 폴의 등장은 바로 그 가족 가치를 수면으로 부상시키는 계기가 된다. 초반에 폴은 아이들에게는 부재했던 아버지로서, 줄스와 닉에게는 좋은 친구로서 조금씩 자신만의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다가 영화는 궁극적으로 폴을 배제시키면서, 이성애자 가족뿐만 아니라 겉으로 급진적으로 보이는 동성애자 가족에게도 동일하게 요구되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지켜야할 금기사항을 하나씩 짚어낸다. 도대체 폴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없는 것일까?

 먼저, 표면적인 이유는 폴의 정원을 디자인하던 줄스가 그와 바람을 폈고, 급기야 폴이 줄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외도가 가족 해체의 주범이라는 동성고금 만고불변의 진리를 설파한다. 여기에서 용서할 수 없는 사실은 레즈비언인 그가 이성애자 남자와 섹스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여자든 남자든 간에 혼외정사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줄스는 폴의 정자를 기증받아 낳은 자신의 아들 레이저가 폴이 가진 특유의 표정을 똑같이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의 유전자를 이어받았으니 그렇게 닮아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줄스가 폴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버렸다는 것은 근친상간이라는 금기의 욕망마저 드리운다.

 그리고 딸 조니에게 있어 폴은 아버지의 역할이나 부정父情이 아니라 자유분방하고 다정하며 남성미 넘치는 이성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엄마들의 정형화된 애정이 충족시켜 줄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며, 나아가 조니에게 금지된 사랑을 꿈꾸게 한다. 따라서 조니가 뿔이 난 이유는 엄마의 외도가 가족 붕괴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사랑을 갈취한 여자에게 느끼는 질투로 인한 자괴감 때문이다. 폴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기에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없다.

 이제 이 레즈비언 커플 가족에게 유일한 위협은 외부의 동성애혐오가 아니라 정자 기증자에 불과한 남자의 ‘개념 없는’ 사랑이다. 즉 동성애자 가족에게 가시화된 적은 호모포비아가 아니라, 이성애자 가족과 마찬가지로 불륜과 근친상간이라는 일탈적 욕망이다. 이렇게 영화는 무분별한 경계 넘기에 제동을 걸며 동성 결혼과 동성애자 가족 구성의 기준과 최소한의 윤리적 타협점을 제시한다. 나이를 먹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감독은 일탈의 욕망을 접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모나지 않게 사는 법을 터득했다.

 결국 <에브리바디 올라잇>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며 진일보하는 시대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무난한 이성애규범적 결혼관을 따르며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적절한 대중성과 배우들의 명연기에 “우린 이성애자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주의를 옹호하고 있어요.”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으니, 이 영화가 내년에 있을 미국의 (보수적인) 아카데미 시상식의 입맛에 꼭 맞는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주저 없이 손꼽히는 이유에 힘을 실어 준다.

 김경태 _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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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5.09 17:22 [Edit/Del] [Reply]
    일탈을 접고 가족주의와 타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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