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5 덧붙임>

2010년 11월18일 <MSM 행태조사체계개발 연구보고서> 토론회가 열렸다. 언제부터 질병관리본부와 연구진이 MSM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웹진 글을 비롯해 연구 설문 과정부터 비판을 해 왔던 동성애자인권연대는 토론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여했다. MSM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있진 않았지만 1,070명 정도가 설문에 참여한 이 연구는 나름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도출했다. 최종 연구결과가 발표되어도 철저히 비공개로 관리하겠다고 약속하였기에 여기에 모든 토론내용을 언급할 수는 없다. 우선 동성애자들이 일반인보다 차별인식이 높고 행복도는 낮은 편이었다. 그리고 일반인과 비교해 HIV/AIDS에 대한 기본지식이 높고 HIV/AIDS 감염인을 대하는 차별의식은 낮았지만 에이즈에 대한 공포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HIV/AIDS 수검율로 일반인보다 높았고 콘돔사용율도 과거 대비 크게 증가하였다.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동성애자들이 HIV/AIDS를 대하는 공포에 관심을 보이고 이를 줄이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중간보고 토론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성소수자들의 자긍심과 행복도를 높이고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알며 공포감을 줄이는 것이 콘돔사용을 통한 HIV/AIDS 예방과 감염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낮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2010년 8월18월부터 9월5일까지 게이 포털 사이트 ‘이반시티’를 이용하는 남성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에이즈 관련 인식조사>가 진행되었다. 이 조사는 랜덤으로 무작위 추출된 회원들에게만 설문지가 발송되었기 때문에 설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설문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문제는 에이즈 관련 설문을 왜 남성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지. 연구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느 범위까지 설문결과를 공개할 것인지, 누구와 이 연구결과를 공유할 것인지. 등 명확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2004.2.4 HIV/AIDS 감염인,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침해 한겨레 신문 규탄 기자회견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본 연구는 질병관리본부의 의뢰로 서울대 보건대학원 및 삼육대 에이즈예방연구소가 함께 수행하고 있다. 지난 6월 설문지가 배포하기 전 연구진은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을 초청해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나는 이 자리에 동성애자인권연대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때마침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질병관리본부 연구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연구진행의 취지와 목적이 무엇인지, 2004년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남성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성행태 조사결과(남서울대 이주열 교수팀)가 약속을 어기고 한겨레신문에 공개되어 큰 홍역을 치뤘는데 2010년 연구조사 결과 관리는 어떻게 하실 것인지. 최초 설문에 포함되어 있던 성매매와 관련한 질문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하는지 등 집요하게 물어댔지만 마음에 드는 답변을 단 하나도 듣지 못했다. 심지어 2004년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 일이 있었냐’, ‘그 당시 근무했던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의 관계자들이 다 바뀌었다’고 말하는 등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이 날 자문회의 이후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막무가내 연구진행에 우려를 가지고 있던 몇 명의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연구진과 질병관리본부에 질의서와 의견서를 보내기로 했다.


질병관리본부의 답변은 8월19일에 도착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남성 동성애자 대상 에이즈 예방사업은 보건의료발전계획과 Health Plan 2020의 주요 사업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관련 사업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전제하며 이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근거자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연구결과를 대외비로 철저히 관리할 예정이고 앞으로의 연구과정에서도 지속적인 협의와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 진일보한 답변이긴 하나. 이번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을 되돌아보았을 때 성소수자들과 HIV/AIDS 감염인들이 연구기획부터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자문 수준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은 애초 출발부터 잘 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남성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질의서를 보낸 뒤에야 연구 진행의 목적에 대해 겨우 들을 수 있었고 설문지 초안이 이미 준비된 상태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의견을 달라는 식의 자문의뢰는 동성애자들을 설문의 대상으로만 보는 연구진들의 안이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나마 성소수자, HIV/AIDS 인권활동가들의 지속적인 의견과 질의가 있었기 때문에 좀 나은 답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물론 남성동성애자들의 대상으로 한 에이즈 연구는 필요하다. 하지만 성행태 조사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남성동성애자들이 에이즈 고위험군이라는 전제 속에서 출발하는 연구는 설문결과를 보지 않아도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쉽게 짐작된다. - 혹자는 이번 연구조사가 성행태만을 연구하는 조사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활용가치가 높은 설문으로 ‘성관계 및 콘돔사용 여부’를 묻는 질문이고 연구진 역시 에이즈 예방정책 수립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라는 질병이 발견되면서부터 남성동성애자들을 에이즈 고위험군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에이즈 예방활동을 펼치고 싶어 했다. 그로 인해 편견과 차별은 더욱 강화되었고 에이즈는 나와 상관없는 ‘남’의 질병이 되었다. 실패한 정책의 출발이라고도 볼 수 있는 고위험군 규정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객관적인 예방정책의 근거를 찾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성동성애자들이 왜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안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성관계를 할 수 밖에 없는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또한 에이즈라는 질병에 왜 남성동성애자들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지, 왜 HIV에 감염된 동성애자들이 커뮤니티에서 배제되고 누군가에게 감염이라는 피해를 줄 수 있는 가해자로 낙인을 찍는지도 문제삼지 않는다. 무엇보다 HIV/AIDS 감염인의 인권현실이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서 개선의 노력의 없이 남성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에이즈 예방정책을 세운다고 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모습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다만 콘돔만이 남성동성애자들에게 방패이자 무기가 되어 종로 낙원동을 여기 저기 휘젓고 돌아다닐 뿐이다.


그렇다면 정말 에이즈 예방정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효과적인 연구는 어떤 연구이어야 하는가? 나의 섹스스타일과 번개횟수, 콘돔사용여부, 찜질방 출입유무 등을 국가가 나서 통제할 것이 아니라면 성 행태에 집중된 연구조사는 결국 동성애에 대한 편견만 강화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언론에 공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연구결과가 가져올 허무함이 벌써부터 밀려온다. 어떤 연구주제가 가장 좋다라고 지금 당장 말할 수는 없어도 기본적인 원칙 정도는 언급할 수 있겠다. 우선 남성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한 에이즈 연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연구목표를 재설정해야 하며 20여 년 동안 고집해왔던 정부의 예방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연구기간이 꽤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 해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에이즈 감염인과 동성애자들이 연구주체로서 연구목표와 목적을 세울 수 있어야 하며 설문디자인, 배포, 결과도출 등 모든 연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성 행태에 집중되는 연구보다 다각도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설문 또한 필요하다. 우리가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는 점은 연구대상의 변화이다. 한국사회의 경우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 즉 Men who have sex with men (MSM)의 개념이 없다. 여기서 초점은 남성 간 성관계지 그들의 성정체성이 아니다. 이성애자, 양성애자, 동성애자 누구나 MSM 개념에 포함될 수 있으며 남성동성애자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애자와 달리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존의 연구대상을 설정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이다. MSM 개념을 도입해 보았을 때 남성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의 경우 성관계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전혀 없고 특히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는지에 대한 질문도 불필요하다. (이번 연구 설문 문항에는 서두에 MSM을 가려내는 문항이 있지만 대부분 남성동성애자와 구분되지 않는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에이즈에 대한 지식, 태도, 신념 및 행태> 연구가 여러 의견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질의서를 발송해 얻은 질병관리본부의 답변(약속)은 매우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남성동성애자들의 존재를 거의 유일무이하게 인정하고 있는 정부기관에서 앞으로 에이즈 예방정책을 세우는 설문과 연구기초과정에서 동성애자들을 배제하지 않고 자문, 조언, 의견청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입장을 듣겠다고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강제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원칙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속적인 비판적 감시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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