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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소식

세 명의 20대가 ‘띵동’을 말하다.

by 행성인 2011. 10. 14.

세 명의 20대가 ‘띵동’을 말하다.


20대 성소수자 모임으로 출발한 “띵동” 모임. 세 달 동안 이것 저것 하다보니 “우리가 뭘 하려고 모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띵동에 함께 하는 3인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으로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한강에서, 홍대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음악과 영상으로, 문자들로 풀어내기까지. 아직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언제, 어디로 갈지도 미지수인 띵동이 어떻게 20대의 삶과 만날 수 있을지, 오리, 감성청년, 그리고 레이가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띵동~!

“이번에 세금 혜택 한도를 더 높이는 좋을 기회를 잡으시라고 몇몇 우수 고객님께만 연락드리고 있어요.~”

20대띵동모임, 한강맥주파티에서 서예전하는 모습



며칠 전에 전화를 받았다. 복리로 5% 일 년 후 6%, 앞으로 은행권에서는 점점 더 세금혜택을 받기 힘들다며, 결과적으로는 상품에 가입하라는 전화였다. 계속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어서 가입했다. 그런데 하고 나서 보니 내 월급이 100만원도 안 되는데 60만원을 저축하는 건 도무지 아닌 것 같아서 취소했다. 취소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지금 나이가 20대인데 이런 기회로 저축을 하셔야 나중에 집도 장만하고 결혼할 때도 자금이 되고......지금은 적게 벌어도 나중을 생각해서 가입을 하시는 게.......요즘 대학생들도 가입하고 다른 고객들은 세금혜택 한도를 더 높일 수 없냐고 문의를 하신다고......중간에 몇 번이고 빼서 쓸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담을 안 가지셔도 된다고.......” 다 맞는 말이었다. 이걸 취소하는 내가 너무 고지식하고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날 한두 시간은 그 분과 이야기한 것 같다.


가입하고 취소하면서 별 생각을 다했다. 내 미래를 상상하게 되더라. 결혼하고 애를 가지진 않을 거라 쳐도, 서울에 있는 아담한 내 집에서 살고 싶다면 월60을 저축해도 부족하다. 며칠 후 길거리에서 노인 5명중 하나는 독거노인이라며 이들을 위한 캠페인 하는 곳을 지나치는데, 갑자기 서울 반지하방에서 살고 있는 내가 떠오르더라.(혼자는 아닐 거야. 혼자는 아닐 거야.) 내가 계속 월100만원으로 사는 것이 가능할지. 200이 넘는 돈을 벌려면 정말 죽어라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내가 하고 싶은 건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건 안정적으로 돈 벌면서 할 순 없고. 나에게 주어진 하찮은 선택지에서 무엇을 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20대 성소수자 모임 <띵동>에서 가치경매라는 프로그램을 한 적 있었다. 여러 가지 가치들-편안한 죽음, 로또당첨, 노벨상, 열정적 섹스, 성소수자 해방 등등-을 놓고서 경매를 하는 거다. (거기서 가장 인기 있던 것 중 하나는 “아담한 내 집”이었다.)


나에게 20대 성소수자 모임은 이런 거였다. 이제 학교에서 벗어나 나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재테크도 좀 알아야 할 것 같고(돈은 쥐뿔도 없으면서). 집을 구하는 건 어찌나 어려운지(속는 건 아닌지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4대 보험이라고 들긴 했는데 이게 정말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건지. 국가는 뭐하는 데인데, 세금을 걷어서 어디다 어떻게 쓰는 건지(내 돈 나가니까 궁금해지는 거 같다). 난 결혼도 안/못하고 애도 가지지 안/못할 건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촌형이 결혼하면서 슬슬 결혼에 대한 압박이 현실로 다가오는 데(현재 결혼 대기자 명단2위) 이 사태를 어찌해야 좋을지. 등등. 이런 고민들을 풀어볼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그치만 뭐 워낙에 다양한 사람이 오다 보니까 관심사도 다 달라서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

오리


마음을 울리는 소리 띵동 ♬

 

띵동 영상팀 감성청년이 만든 영상홍보물 캡쳐화면



처음에 띵동 웹자보를 보았을 때 어떤 모임일지 저는 잘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동성애자 인권연대 20대 모임 수다판 준비모임 띵동이었으니까요. 좀 길기도 하고 뭔가 거창한걸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아리송한 모임이었어요. 그리고 띵동에서 함께 한지 벌써 3개월이 지나갑니다. 3번 정도의 전체 모임을 했고 그 사이에 한강 맥주 파티도 재미있게 잘 치루었습니다. 3개월 동안 여러 명의 20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속에서 또 친해진 몇몇도 생겼고 처음에 제가 생각했던 띵동이라는 모임의 모토와는 잘 맞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무언가 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위안이 되는 모임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울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고 또 누군가 나의 마음을 울려주길 나의 마음에 친절하게 다가와주길 바라는 상상을 살다가 보면 가끔씩은 하게 되지 않나요? 대학에 들어가서 혹은 취업을 앞두고 혹은 저처럼 곧 서른을 앞두면서 어떤 부분이 고민인지 어떤 부분을 어떻게 지나가야 하는지 곧 겪어야 하는 사람 혹은 겪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이야기하고 위로가 되어준다면 좋지 않을까요? 제 이야기가 띵동을 이야기 하는 것에는 설명이 조금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궁금하시다면 띵동 모임에 나와주세요. 모임이 모임으로 끝나가는 것 같지만 작은 물이 모여 큰 바다가 되는 것처럼 그 작은 의견들이 모여 여러 가지 일들에 고민하고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을 통한 울림 띵동 ♬ 영상팀

 

 

3개월 동안 띵동에 참여하면서 띵동 영상팀이라는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엔 뭐랄까 힘들었어요. 영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다가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고 이걸로 어떤 부분을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뭐랄까 조금은 거창하고 그럴싸한 부분들이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띵동 모임을 나오면서 생각하고 또 확신이 들게 되는 부분은 아무리 스스로가 질문을 던진다고 해도 여러 명이 이야기를 통해서 해답을 찾는 방법보다 쉽지는 않다는 것 입니다. 요즘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관해서 영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자신을 긍정하는 영상과 성인이나 이성애자 청소년이 청소년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메시지가 담긴 영상 제작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청소년 자긍심 팀 까페의 홍보영상을 만들었어요. 주로 메시지를 주축으로 음악을 덮어쓰는 작업인데 그 메시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가방에는 늘 메모지를 가지고 다닙니다. 답답한 일 속상한 일 우리 같이 고민하고 같이 소리 내는 방법의 하나가 영상 제작이겠지만 그 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이 필요한 일 같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작게 울리는 소리 띵동 ♬

 


누군가의 마음을 울린다는 것
. 왜 그런 말이 있죠?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고 말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내 마음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 누군가는 고민이 되고 또 누군가는 움츠려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민마저 나눌 수 있는 것이 모임의 역할이 된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우리 함께 의미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울린다는 것은 아마도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띵동의 존재를 잊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던지 당신의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감성청년


20대 성소수자모임 ‘띵동’을 띵동~ 눌러보기

 

한강맥주파티 안내.



‘띵동’. 한참 모 드라마가 인기 있을 때 우리는 모임의 이름을 이렇게 정했다. 드라마를 차용한 것도 있었지만 ‘띵동’의 뜻은 LGBT의 속어로, ‘띵’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도 꽤 된다. 2000년대 초반에 신촌공원에 모여들던 레즈비언들이 서로를 확인하면서 띵동이라는 말을 흘리며 지나가거나, 게이다가 도는 사람을 가리키며 대화할 때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기 위해 썼던 말이다.


나는 20대다. ‘애정남’이 빠른 생일이 없다고 정리해주어서 어쨌든 28세다. 20대의 끝자락을 잡고서 언제인지 모르게 내가 20대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10대도 아니고, ‘뭔가 더 어른들’의 원숙한 감수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서있는 것 같다.


20대 성소수자모임은 처음에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성소수자들은 청소년으로 표현되는 10대의 이슈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별금지와 노동권, 주거권, 가족구성권 등 성소수자의 보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런데 20대들은 약간 다른 모습을 취하거나 빗겨가기 때문에 조금 다른 이야기들이 필요하지 않을까했다.


학업과 일터가 공존하면서 독립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혼란과 새로운 경험들을 겪기도 하고, 조금 더 자유롭게 용인되는 연애와 새롭게 만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 그 인간관계속에서 많은 질문과 생각들을 품고 있다. 어딘가에 단단히 조직되어있지도 않으면서 목소리를 낼 공간이 필요하다. 갈 길을 선택하고 파트너를 만나고 수많은 커밍아웃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고 있는 LGBT들과 단절되어 불안해지기도 한다.


삶의 방향과 방식을 시도하고 변화해 나가면서 드러나는 커뮤니티에서는 주류인 것처럼 보이는데,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매일 커뮤니티사이트 익명방에 수십, 수백건의 고민들이 올라와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지만 ‘이들의 화두가 뭔가’라는 질문에는 딱히 대답할 수가 없다.


사실 나이나 무슨무슨세대로 그룹짓는게 불편하기도 하다. 말하자면 딱히 20대만을 위한 모임도 아니다. 무 자르듯이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하는 모임은 하고 싶지 않거니와 나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영역은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은 생활공간이든, 관심사든, 하고 있는 것이든, 고민 드는바가, 그래서 느끼는 바가 비슷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직까지 모임의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는 띵동 모임의 최대 고민거리다. 애매모호하게 ‘청년’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LGBT들의 쌈빡한 감성에는 부합되지 않는 것 같다. 농촌에서는 50대도 청년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의 고민이 뭔지 듣고 싶고 같이 이야기를 터놓으면서 공감도 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우리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고 싶었다. 수년전에 나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던 적이 있다. 여러 단체들이 있었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 전화, 이메일, 찾아가는 적극적인 모습을 가지기에는 꽤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줄줄이 얽혀가는 네트워크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더 접하기에 낫지 않을까. 토론회나 워크샵이 아닌 이야기판을 벌이면 누구든 찾아오기 쉽지 않을까? 그렇다면 판만 벌리면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바라는 바는 이런 것이다. 누군가가 하고 싶고, 재미있는 아이템을 던지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면서 만들고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이 모임이라는 판을 깔고 사람과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더 쉽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까지 쌓여져 온 활동의 언어와 이슈가 아닌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서 모든 것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것으로부터 문화와 분위기가 창출되면 그것에 맞는 방향성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부려보면, 주변의 친구들만 만나는 사람들이 더 넓은(?) 판으로 나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추동하는 모임으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것.


지금까지 3회의 전체모임을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온다. 물론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원래 서로 알고 있던 사람들도 찾아오고 물만 보다 가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눈빛 맞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바로 지난번에는 한강 주변에서 맥주파티를 벌였었다. 수십명의 띵동들이 맥주를 마시며 신나게 놀다 갔고, 점차 어두워져서 졸리고 산만해진 나는 구석에서 서예하면서 혼자 놀았다. 아직까지 ‘띵동’에서 뚜렷하게 무얼 하는게 없어서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조금씩 찾아나가면 된다는 근거 없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본 적이 없어서 ‘요이~땅!’ 하고 출발하기는 어려울 거란 생각이다. 우선 참가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물어보면서 차차 발전하는 모임으로 만들고 싶다.

레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