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30년, 그러나 감염인의 인권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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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

2011.12.1 보건복지부 앞 기자회견 모습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자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이었다.


1988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보건장관회의에 참가한 148개국이 에이즈 예방을 위한 정보교환, 교육홍보, 인권존중을 강조한 ‘런던선언’을 채택하면서 제정된 날이다. 그래서 매년 12월 1일이 되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에이즈 예방과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고 있다.


2006년 감염인인들과 감염인의 인권을 지지하는 활동가들과 함께 자화자찬 상주기 행사로 진행되는 정부주도의 행사를 보이콧하고 에이즈 감염인의 왜곡된 사회적 편견으로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발언하고 권리실현을 위한 요구와 운동을 결의하는 날로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을 준비한지 올해로 6회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이 사회와 정부는 지속적으로 감염인들을 낙인찍으며 파편적이고 시혜적인 엉성한 복지와 색출과 격리라는 정책으로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


올해는 에이즈란 질병이 알려진지 30년이 지났다. 2001년에 유엔이 ‘에이즈에 관한 선언을 채택한지 10년이 지난 지금을 유엔에이즈(UNAIDS)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작년에 향후 에이즈대응비전으로 3Zeros(신규감염 제로, 에이즈관련사망 제로, 차별 제로)를 제시하였고, 2015년까지 에이즈치료를 필요로 하는 1500만명의 에이즈감염인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겠다는 일명 ‘15by15’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유엔회원국으로서 지켜야할 약속‘15by15'를 파기하는 한미FTA날치기비준, 에이즈강제검사의 확대, ’특수장갑‘이 없다며 수술을 거부하는 병원,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으로 진행된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보다가 아들이 에이즈에 걸리게 생겼다는 신문광고가 버젓이 나왔던 것이 2011년 한국의 모습이다. 또한 이주민에 대한 입출국통제를 폐지했다고 국제적으로 알렸지만 그 실내용은 ’눈 가리고 아웅‘한 것에 불과했다. 한국은 이들의 인권과 생명이 직결된 3Zeros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국제사회는 분주한 반면 한국사회는 조용하기만 하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올해의 에이즈 사건


2011년 감염인인권의날 준비위원회는 한미FTA폐기, 한국에이즈정책 26년 공개평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우리를 슬프게 했던 에이즈 10대사건을 발표하였다.


HIV/AIDS 감염인들과 활동가들은 2006년 한미 FTA 협상을 시작했을 때부터 의약품 특허 강화로 환자들의 의약품접근권이 침해당할 수 있어 한미FTA 반대를 외쳐왔다. 에이즈치료제들이 거의 다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특허를 독점하고 있어 약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이들의 특허독점기간을 더 연장해주고 더 비싸게 특허약값을 환자들에게 떠 넘길 것이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제약사의 비싼 특허약을 먹을 수밖에 없는 에이즈감염인에게 FTA는 공포 그 자체이다.


8월에 부산 벡스코에서 제10차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이하 아이캅10)가 개최되었다. HIV/AIDS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만연하고 반인권적인 에이즈정책을 펼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러한 대회가 치러졌다는 것만으로도 놀랄 만한 일이다. HIV/AIDS 감염인과 취약계층의 인권을 존중하고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통해 치러져야 했던 아이캅10은 한국정부의 방관과 경찰폭력으로 아이캅 역사에 길이 남을, 절대 잊을 수 없는 대회로 기억되었다.


2월에 서울의 Y대학종합병원이 수술용 '특수 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HIV/AIDS감염인의 고관절 전치환술(인공관절 시술)을 거부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이라 판단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7월 7일에 Y대학종합병원장에게 향후 동일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인권교육 실시를, 보건복지부장관에게 Y대학종합병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이 사건은 해당지역 보건소에서 수술을 거부한 의사를 의료법의 ‘진료거부 금지’조항을 위반한 행정처분 대상이라고 판단해 경찰서에 고발했고, 현재 수사 중에 있다. 한국에서 HIV/AIDS감염인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건 ‘특수 장갑’이 아니라 인권이다.


의약품의 부적절한 사용을 사전에 차단하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려는 취지 속에서 의약품처방조제지원서비스(DUR)가 현재 운영되고 있다.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약사법 개정안도 국회에 상정된 상태다. HIV/AIDS감염인들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자신들이 투약하는 항레트로바이러스제가 DUR에서 빠지길 원하고 있다. 항레트로바이러스제라고 의약품 부작용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들의 건강보다 질병노출. 진료거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감염인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다. DUR을 통해 항레트로바이러스제가 검색되면 의료인은 환자의 동의없이도 HIV/AIDS감염인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게 된다. 이는 사회적 낙인이 심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므로 질병정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투약정보에 대한 접근은 환자의 명시적 동의 아래, 환자가 정보 접근을 허용한 특정 의료인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의료인에게도 DUR을 통해 공개되는 정보의 이용목적과 비밀보장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1년 3월 응급구조대의 책임소홀로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에서 운영하는 쉼터에서 한 HIV/AIDS감염인이 사망하였다. 이전에 응급상황이 발생하여 응급구조차로 이송된 적이 있어 응급구조대원들은 HIV감염사실을 알고 있었다. 각혈하고 있는 환자의 혈액을 수습하는 일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쉼터의 동료 감염인들이 환자의 혈액을 수습하는 과정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환자는 숨을 거두었다. 쉼터 내 입소자와 대한에이즈예방협회 활동가들은 10월에 응급구조대의 책임소홀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였다.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형평성에 어긋나는 조치를 받았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HIV감염 사실을 밝히는 일이 곧 환자 스스로의 생명권을 포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9월 27일, 국정감사에서 윤영 국회의원(한나라당, 거제시)은 ‘한국마사회가 AIDS, 매독 등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질병 위험국가로부터 외국인마필관리사들을 채용’한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마사회, 외국인인력도입 AIDS, 매독 등으로 얼룩지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한국 마사회가 채용했던 외국인 마필관리사가 보건소에서 (채용)건강검진을 받던 중 HIV 감염사실을 알게 되어 출국하게 된 사건 때문이었다. 윤영 의원실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는 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이로 인한 낙인과 차별, 노동권 박탈과 감염 이주민의 차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법무부의 수용자의료관리지침은 신입 재소자에게 매독 및 에이즈검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에이즈검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고지되지 않은 채로 검진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재소자가 구금시설에 입소할 때 에이즈 강제검진을 거부할 수 있으나, 올해 법무부가 신입수용자에게 ‘건강진단에 응할 의무’를 부과하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신입 재소자가 에이즈, 매독 등 감염병 검사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 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이미 구금시설에서는 HIV/AIDS 감염이 확인되면 감염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격리 수용을 하고 있으며 구금시설 내에서 질병이 노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별법인 에이즈예방법 제 8조(검진)에는 강제검진 대상에 재소자는 포함되어 있지 않고 구금시설에서의 에이즈 강제검사를 할 수 있는 법적인 타당성도 없다. 구금시설의 에이즈검사는 감염인의 인권과 건강, 에이즈 예방보다 사회 부적응자들로 통제가 되지 않은 나쁜 사람들이라는 낙인과 차별로 감염인에 대한 색출과 격리수용을 불법적으로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단체와 교계는 노골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다. 신의 섭리를 거스른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동성애가 가족과 사회를 무너뜨리고 ‘문란하면 생기는 질병’ 에이즈를 퍼트리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UN보고에 의하면 에이즈 환자 50%가 동성 간 성 접촉에 의한 것이고. 동성애자 에이즈 감염률이 일반인의 730배”라는 억지 주장까지 펴고 있다. 이미 정부와 정부지원을 통해 운영되는 민간단체에서도 ‘에이즈는 동성애자의 질병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시점에 구태의연한 이 같은 주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에이즈는 그들의 질병이므로 나와 무관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한다. 성정체성이 에이즈 감염과 무관하고 성정체성을 떠나 모든 국민들에게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강조해도 부족한 마당에 동성애 혐오에 기반한 에이즈 공포 조장은 HIV/AIDS감염인들을 위축시키고 숨어들게 만들 뿐 에이즈 예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HIV/AIDS감염인들과 에이즈 감염에 취약한 동성애자,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이 존중될 때 비로소 에이즈도 예방될 수 있다. 진실은 숨겨둔 채 점점 더 가시화되고 있는 동성애 혐오 분위기는 자신들이 말하는 ‘도덕’과 ‘바른 사회’가 얼마나 잘 못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이즈 편견을 강화하는 반사회적인 행동과 발언은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할 것이다.


감염인네트워크의 탄생


2006년 감염인인권의 날을 선포할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HIV/AIDS 감염인의 인권의 날 준비위원회’ 는 이들의 인권을 중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실제로 감염인들의 인권을 증진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주로 이들이 제기하는 피해사례나 제보를 받아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개별문제를 해결 하다 보면 이를 야기하고 있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단계까지 확장되었다.


또, 스스로 다양한 민원이나 사례들을 발굴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HIV/AIDS 특성상 대내외적으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가 에이즈 운동을 정착하고 확산하는데 주된 동력을 보여왔다. 에이즈 운동은 상당히 세분화되있는 주제이고 세밀한 감성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그러다 보니 연대활동이 큰 힘을 발휘 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다.


공동행동이 초기부터 중요한 운동과제로 본 것들이 나름의 성과들을 일궈내고 있었으나, 감염인 공동체의 위축과 함께 여러 주제들의 이슈로 감염인들의 역량강화에는 집중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감염인 공동체는 약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감염인 공동체들은 향후 에이즈운동의 방향과 관련해 큰 축을 담당하면서 이를 분화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들은 에이즈 운동에 새로운 틀과 형식의 내용을 요구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먼저 힘없는 소수의 감염인들과 그 공동체에 대해서는 운동의 성과와 관계없이 오히려 더 애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연대활동을 전개해야한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이들과 함께하면서 해야 할 중요한 책무일 것이다.


정숙_ 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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