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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인도는 지금

by 행성인 2012. 4. 3.



권미란(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세계의 약국” 없애기

WTO에 가입함에 따라 트립스협정(TRIPs,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 이행의무를 지게 되었고, 이를 반영하는 특허법 개정이 2005년에 이뤄졌다. 당시 가장 큰 쟁점은 의약품 물질특허였다. 그 전까지 의약품에 대해서는 제법특허만 인정되어 인도 제약회사는 초국적제약회사와는 다른 제법으로 똑같은 약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물질특허가 도입되어 ‘물질’ 그 자체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인도의 활동가와 환자들은 모든 신약에 특허를 얻어 독점기간을 연장시키고자 하는 초국적제약회사의 “에버그리닝 전략”을 막는 안전장치를 인도특허법에 담았다. 바로 인도특허법 section3(d)이다. 신약이라도 기존약보다 효과가 상당히 개선된 신약에만 특허를 주는 것이다. 이 조항에 따라 노바티스가 항암제인 “글리벡”에 대해 특허를 인도에서 얻지 못하자 section3(d)를 없애기 위해 2006년부터 인도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3월 28일에 인도대법원에서 최종변론이 예정되어있다.

노바티스 뿐만 아니라 초국적제약기업들은 복제약의 생산과 판매를 막기위해 끊임없이 소송과 로비를 하고 있다. 바이엘사는 항암제 ‘넥사바’와 똑같은 약을 인도 시플라사가 판매하자 시플라사의 판매허가를 취소와 허가-특허 연계제도 도입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2010년 12월에 대법원은 특허제도와 의약품규제제도는 별개이고, 인도법하에서는 의약품규제기구가 특허약의 복제약 판매허가를 막을 의무가 없다고 판결하고 소송을 기각했다. 복제약의 판매허가 여부는 특허침해소송에서 다룰 문제라는 것이다. 앞서 로슈 또한 항암제 ‘타세바’에 대해 허가-특허 연계를 주장하다 대법원에서 기각당한 바 있다. 한국은 한미FTA로 인해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도입했다. 초국적제약기업의 바람대로 인도-EU FTA는 복제약의 생산, 판매, 수출을 막도록 인도특허법을 뜯어 고칠 것을 요구했다. 2011년 초에 인도-EU FTA를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전세계 환자와 사회단체, 구호단체들의 국제적인 반대로 협상이 지연되어 왔다. 2월에 인도-EU 정상회담에서 올해 상반기에 협상을 완료를 합의하여 전 세계 환자와 활동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세계의 약국” 고립시키기

인도-EU FTA 최대쟁점 중 하나인 지적재산권 집행조치는 인도 복제약의 수출입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 지재권 집행조치는 초국적기업들이 지재권 침해를 빌미로 민,형사소송을 손쉽게 제기하도록 하고, 과다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집행조치의 하나인 ‘국경조치’는 복제약을 위조품으로 간주하여 압류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은 무역협정이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소수선진국들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바로 위조방지무역협정(ACTA)이다. 한국도 서명을 한 상태이다. ACTA는 소수 선진국들이 지재권 강화를 통해 얻는 흑자폭을 더 늘리기 위한 국제규범을 만들겠다는 것이지, 위조상품의 유통을 막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위조상품은 현행 국제조약에서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지재권집행조치와 ACTA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이유는 그 전초전에 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008~2009년에 유럽을 거쳐 브라질로 가는 인도산 복제약을 유럽에서 위조품으로 취급하며 압류했다.

 

의약품특허에 첫 강제실시

3월 12일 인도에서는 최초로 의약품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가 허락되었다. 인도특허법 section 84(1)에 따라 인도제약사 낫코에게 바이엘사가 판매하고 있는 항암제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와 똑같은 약을 생산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낫코는 바이엘의 약값보다 97% 낮은 가격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인도 활동가들은 section3(d) 등을 활용하여 무분별한 특허를 막는데 주력하고, 특허강화를 막기 위한 투쟁을 해왔다. 하지만 물질특허가 도입된 이상 특허권을 전부 막을 수 없다. 인도-EU FTA가 체결되면 방죽 터지듯이 상황은 바뀔 것이다. 강제실시가 “세계의 약국”을 지키는데 얼마나 유효한 수단이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