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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신입회원모임 디딤돌에 다녀와서

by 행성인 2012. 4. 3.

신입회원 허브

 

내가 나의 정체성에 대해 숨기거나 불투명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되고 있는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것은, 매우 사소한 것 같지만 사람을 뒤바꿀 정도로 큰일이다. 무언가 시작하려고 했을 때 예측되지 않은 불안함과 긴장, 시작에 기대 등이 섞여 아주 묘한 분위기와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몇몇의 친구가 아닌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일반인코스프레(일코)’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기대를 더 크게 했다.

자기소개를 하고, 필요한 권리와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듣고, 공감하고, 생각하고 마음의 경계를 낮춰보고 얘기하고, 들어보고. 어느 모임에서도 시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디딤돌에서도 했지만, 여기서 선택하는 단어와 이야기하는 것에 바탕이 되는 생각들,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달라서 다른 곳과 엄청난 차이가 난다.


신입회원모임 디딤돌에서 회원들이 함께 그린 '우리가 원하는 권리'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서로의 차이를 가지고 있고, 생물학적인 여성과 남성으로 세상이 구별되고 이성애의 사랑이 영원불멸하다는 것이 잘못된 전제이자 명제라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별정체성 혹은 성정체성이 아닌 생물학적인 성으로 규정되면서 오는 폭력과 차별에 대한 비판 의식과 삶을 영유하기 위한 필요성과 그 삶에 대한 열정들. 누군가 사는 것 같이 친근한 사무실을 채우고 있던 분위기였고, 차이를 만드는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를 제외하고는 사장님부터 다른 알바생들까지 모태신앙이다. 내가 사는 집에는 호모포비아 구성원들이 존재하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성소수자인권모임에 대한 비난과 폭력이 존재하며 어떤 이들은 존재자체를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아한다. 사무실을 나서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현실로 ‘돌아간다’ 라는 생각으로 크게 우울하고 외로웠다. 하지만 그곳만을 바라보면서 산다는 것은 세상과 분리하는 것이고, 벽장 밖으로 나가려던 것을 다시 잡아 문을 닫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어떤 사람은 트위터에서, 시청 앞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살아가고 그들의 주변과 함께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이미 주변에 있고 일상도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자살로 죄를 씻으라던 호모포비아들도 있지만, 세상엔 호모도 포비아도 아닌 사람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나라도, 성별도, 가족도 선택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가 살아가야 하는 삶 또한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선 성소수자가 아닌,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성소수자 중의 한 사람으로 나 또한 원하는 삶을 나의 일상으로 만들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