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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정욜의 세상비틀기

Part 2. 희망바라기 :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이야기

by 행성인 2008. 9. 29.
  동인련 웹진 "너, 나, 우리 '랑'" 9월호


* 지난 8월부터 웹진 <확성기> 코너를 통해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8월 회원이야기에 이어 9월은 Part 2. 활동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세세한 활동을 소개하기보다 성소수자 운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재구성해보고 모순이 넘치는 사회를 성소수자 시각에서 어떻게 분석해 낼 것인지를 초점에 두었습니다.
 



  활동만을 놓고 본다면 이것만큼 진부하고 재미없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쉽게 접근하기도 힘들고 가끔 보면 특정한 누군가의 독점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활동이 우리 삶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것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봉사정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도전정신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활동은 無(무)에서 有(유)를 창조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일궈내는 창조정신과도 닮았다.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상상하지 않는다. 성소수자들은 나이, 성별, 소득격차, 사회적 위치 심지어 좋아하는 스타일에 따라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마치 도화지에 모두 똑같은 얼굴이 그려져 있는 것처럼 다양한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뭉뚱그려 버렸다. 그러다보니 성소수자 개개인이 겪게 되는 삶의 무게(차별, 두려움, 공포 등)는 개인의 부단한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겪은 차별의 경험은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이상 누군가에게 똑같은 경험으로 다가갈 것이다. 활동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차별의 끈을 끊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 동일하게 그려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다양하게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숨바꼭질 : 문제는 내가 아니라 술래다.


  최근 동성애자인권연대에 가입한 한 청소년 회원이 본인이 가지고 있던 활동자료 일부가 가족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난처한 상황에 처해졌다. 결국 어머니는 그 친구의 정체성을 알게 되어 어쩌면 앞으로 단체 사무실에 오는 것조차 어려워질지 모른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조심하지 그랬어"라며 자료를 꼭 꼭 숨기지 못한 그 친구에게 채근하는 듯 말했다. 아마도 청소년이고, 그 나이 때가 부모님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사실 문제는 그 친구에게 있지 않다. 학교에서 자신의 취미에 맞게 동아리 활동을 하듯이 동인련도 그렇게 여겨졌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의 조건이 나이가 들면서 다양하게 변하더라도 꼭 꼭 숨어있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사실에 대해 깊은 공감을 하며 산다. 술래에게 머리카락이 보여 걸리지 않도록 잘  숨을 수 있는 방법도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터득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막 활동을 접하고,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활동을 두고자 했던 그 친구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첫 번째 벽에 직면했다. 당장 벽을 부수고 나갈 수 없다면, 당분간 술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웅크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을 살면서 머리카락이 보여 술래에게 걸릴 수 있는 상황은 계속 찾아온다. 그 때마다 이 전보다 더 작게 나의 모습을 웅크리고 있을 것인가. 나중에 웅크릴 수도 없을 만큼의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온다면. 어쩌면 되돌아오지 못할 길을 갈 수도 있다.


  숨바꼭질은 놀이로서 재미를 줄 수 있어도 성소수자들의 삶에 빗대어 보았을 때 전혀 재밌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놀이나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술래다. 꼭 꼭 숨어있는 것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단 한 번도 잘 숨어있었다고 제대로 된 선물 하나 받아 본적은 없다. 놀이에서는 술래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도망다니는 사람들은 매우 즐겁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술래에게 걸리기라면 하면 그 사람이 술래가 되어 다시 게임이 진행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끝이 된다. 그런 술래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걸리더라도 과감히 나의 머리카락을 드러낼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하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또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단 술래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는 가능하다. 자신감을 되찾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술래를 때려잡기 위한 방법도 함께 모색해 볼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연대'의 힘이고 우리가 주요하게 견지해야 할 중요한 활동방향이다.



  연대, 술래를 잡기위한 방법    


  9월23일에 개최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행동에 앞서 만인선언이 조직되었다. 말 그대로 만 명의 지지자들을 모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포문을 열겠다는 것이었다. 만 명의 지지자들을 모으기 위해 호소문이 작성되었는데 거기에 의미 있는 문구가 기억이 난다. "연대만이 희망입니다." 우리는 연대라는 말을 쉽게 하고 살아가지만 그동안 가슴 절절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단지 연대가 필요하다는 당위로서만 존재해 왔다. 이번만은 다르게 다가왔다. 비참한 비정규직의 현실과 눈물은 많은 사람들을 움직였고 결국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만인선언은 당당하게 성공했다. 성소수자들에게 연대는 삶과 같다. 나를 지지해 줄 사람들을 탐색해 보고 커밍아웃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은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드는 개인적 실험과도 같다. 커밍아웃에 대한 성공이 커뮤니티 안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될 정도로 연대를 통해 만들어나가는 지지자들은 술래 앞에서 나를 방어해 줄 최고의 선물이다. 하지만 연대는 시장에 나가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형체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진심'이 전달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 우리에게 커밍아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연대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실천을 수반해야 연대의 기본정신을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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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인련은 실천과 연대라는 활동원칙 아래 현재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내부 회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은 물론 군대(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 개정 등)와 청소년(교사들을 위한 인권교육 자료구성 등) 이슈처럼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때로 성소수자 이슈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투쟁 현장에 회원들과 함께 참석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많은 물음을 받는다. "어디서 나오셨어요?, 왜 나오셨어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우리들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 한다. 오늘은 비정규직과 관련된 집회인데, 오늘은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집회인데 무지개 깃발이 어떤 이유로 나왔을까. 돌을 던지지나 않을까라는 우려가 사라진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성소수자들의 참여는 연대로서 다가가기보다 궁금증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연대를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가진자들에게서 윤리와 도덕으로 공격받는 성소수자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 만큼 우리의 활동원칙은 더욱 선명하고 강력해져야 한다.


  2003년 청소년보호법 시행규칙 상에 존재했던 동성애 조항을 삭제시키려는 투쟁이 존재할 때 반전운동에 참여하러 온 사람들에게서 절반이 넘는 지지 서명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전 세계 반전운동은 또 하나의 수퍼 파워라고 불릴 만큼 매우 역동적이었다.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는 빨랐다. 당시 성소수자 쟁점을 반전운동과 결합시켰던 것은 빠른 변화가 있는 광장이었던 것만큼 우리들의 존재를 확인받는 것은 물론 성소수자 인권 지지자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 성공적이었으며 이 때의 가능성은 2008년 촛불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 9월 23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인선언에
동인련 회원들 19명이 함께했다.





  사회를 꼬집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이 우호적으로 변한다고 해서, 우리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권리들이 자연스럽게 쟁취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에이즈 감염인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의약품 접근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통제력은 가진 자(기득권층)들에게 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가진 자들을 향해 요구해만 한다. 사회적 낙인이 사라지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권리 쟁취 요구는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요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가진 자들이 통제하고 움켜쥐고 있는 것들에 균열이 갈 수 있도록 뒤흔들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아래, 반인권적인 상황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성소수자 단체라는 이유만으로 형성되어 있지도 않은 우리 인권이슈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성소수자의 눈으로 재해석해내고 민주주의가 후퇴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성소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빠르게 파악해 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약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는 단지 사람들의 머릿속 편견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시스템을 통째로 바꿀 때 비로소 가능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희망바라기는 바로 여기서 출발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억압받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는 이유다. 



  정욜 _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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