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동인련 웹진기획팀)

 

수상하다. 입시 전쟁, 살과의 전쟁, 메달 쟁탈전, 전쟁 같은 사랑,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는 온라인 게임 광고까지… 그물을 던지면 오늘 지나온 거리에서 전쟁어(語) 두세 마리는 어렵지 않게 건질 수 있다. 비약과 은유의 미학을 얕잡아보는 것은 아니다. 나도 삶이 전쟁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전쟁에 비유할 것이 너무나 많을 만큼 우리는 고단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수상하다. 나는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경험한 적이 없는 전쟁을 능숙하게 묘사할 수는 있다. 포탄이 떨어지고, 벽 뒤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 상황. 소녀는 강간당했으며 마을 사람 모두는 이미 닷새째 굶주렸고 시체는 묻지도 못한 상황 같은 것. 모두 내가 소비했던 사진과 영화 이미지다. 그 이미지들은 정말 끔찍했고 가슴 아팠는데, 어느새 내가 오늘 힘들었던 일과 비슷한 질량으로 비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 같은 삶. 그러나 누군가 "정말로?" 하고 되묻는다면, 머쓱하게 긁적이며 "아니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지"하며 물러설 것이다. 그래. 내가 본 이미지에서 상상할 수 있는 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이 얼마 만큼인지 나는 모른다. 모르지만 너무나 익숙하다.

 

그 익숙함을 당신도 수상하게 여기는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렇게 답한다. 이미지의 대상화 때문이라고. 이미지는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당신은 전쟁의 참상이 담긴 사진을 보며 '아 이것은 인도주의적 동정을 유도하기 위해 현실을 정해진 사진 구도 안에 넣어 찍은 것으로 수용자인 내게 순정주의 혹은 타자화를 느끼게 하는구나'하며 냉소를 보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은 잔혹한 이미지로 뒤덮인 사회를 살아오면서 타인의 고통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무감각해진 사람일 수도 있고, 또는 같은 사진을 보며 눈물 흘리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사진 속 찍힌 이의 고통을 그대로 느낄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에서 자신이 겪은 것 이상의 고통을 상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은 이미지로만 만나볼 뿐인 타인을 마주하는 우리에 대해 다루었다. 이 책을 읽고 잠시나마 자신의 가벼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 당신이라면, 우리 그 인식의 지평을 더 확장시켜보자고 권하고 싶다. 실재하는 것을 대상화, 타자화시켜 재단하거나 냉소하고, 뜨거운 연민을 보냈다 잊는 것이 얼마나 빈번한지를 생각해 보자. "게이/팬픽이반/운동권은 싫어/불쌍해" 라며 이성애자들이 성소수자를, 비청소년 성소수자 들이 청소년 성소수자를, 성소수자 들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타자화시키는 것을 떠올려 보자. 이것 또한 전쟁의 참극 이미지를 두고 작동했던 비슷한 인식의 기제가 작동한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실재하는 사람을 맹점에 가둔 채 타자화시키는 것 말이다.

 


물론 맹점에 누구를 가두고 있는지를 알아채고 그/녀를 탈출시켜 익명의 이미지 속 인물에서 벗어나게 하기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가 타인을 접했던 이미지는 어떠했던가? 게이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보기 힘든 것. 오도된 뉴스, 선정적인 집회 이미지를 더 쉽게 접하게 되는 것은 정상/비정상을 갈라 선택적으로 굴종시키는 사회 권력 시스템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인의 책임을 묻는다면, 앞서 말했듯 직접 겪은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원래 어렵다는 이유 속에 숨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택의 말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자신을 잊을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하여 손택의 결론을 당신과 나와 우리에게 다시 적용해 본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특권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타인의 위치에 자신을 옮겨보고 그/녀와의 실천적 관계에서 타인을 헤아리는 것, 연대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다"

  1. 하긴
    2012.08.07 15:06 [Edit/Del] [Reply]
    나의 특권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네요..
  2. 2012.08.08 19:37 [Edit/Del] [Reply]
    저도
    타인과 자신이 연결돼 있다는걸 깨닫는게 중요하다는,
    타인을 연민하는 것이 무능력 뿐 아니라 무고함까지 정당화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이성애자가 노인, 장애인, 여성의 인권과 달리 성소수자 인권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자신과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게이는 기껏해야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걸로 접한게 대부분이니까요.
  3. 강양
    2012.08.10 01:56 [Edit/Del] [Reply]
    그런데 가끔씩은 대상화를 완전히 뛰어넘은 인식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네다.
    차라리 어떤 방식으로 대상화를 하는 것이 좋은가를 고민하는것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도 하고.
    여튼 그렇네요.
  4. 나단
    2012.08.12 23:30 [Edit/Del] [Reply]
    to. 강양
    손택도 대상화는 불가피하다고 보고있어요. 하지만 정말 그 타인을 보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대상화하고있다는 거죠. 전쟁 사진 속 누군가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해버리는 것 처럼요. 그리고 저는 그 과정을 실제 대상이 맹점에 갇혀진 거라고 생각한거죠. 보고 있는데 안 보이는 것, 혹은 안 보는 거니까요.

    손택도 어떤 방식으로 대상화를 하는 것이 좋은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손택이 이야기 한 '감응', '우리 자신을 잊고'나 '우리의 특권이(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숙고해보는 것'이라는 말은 나를 타인의 위치에 두고 끊임없이 미루어 헤아림으로서 진짜 타인과 타인의 진짜 고통을 마주하려 노력하고 타인과의 연결됨을 회복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손택이 제안하는 올바른 대상화 방식인거죠.
  5. 돌고래 니타
    2012.09.09 21:12 [Edit/Del] [Reply]
    저는 인간의 의식은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에 대해 깊게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진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형태의 사랑이든..
    '사랑'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에너지입니다.
    물론 연애에서의 사랑은 [집착, 질투, 소유욕]과 같은 힘든 감정을 동반합니다만,
    저는 그런 힘든 감정 조차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본다면
    '아름다움'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남들의 시선과 질책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내가하는 사랑에 대해 당당하고 아름답다 여긴다면,
    충분히 그것은 결국, 자신의 주변에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기대치 보다 조금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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