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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서평: 우리의 명절에 ‘우리’는

by 행성인 2012. 9. 22.

조나단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명절은 그 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이고 민족적 정서가 담겨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전형적인 농업 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농사를 시작하면서 풍작을 기원하거나 추수에 대해 감사를 하는 제사 의식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명절이 되었다고 한다. 며칠 후면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왔다는 추석이다. FTA로 드러나듯 기간산업의 육성을 위해 농업을 버릴 수는 있어도 추석은 명절이다. 자기계발을 이룰 수 있다며 국민이 미미한 수혜를 동반한 책임을 나눠 부여받게 되고, 농민들은 알아서 저농약이나 무농약으로 업그레이드하며 경쟁력을 키워야 하더라도,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하듯 추석 차례상은 비싸진 국산 햇 농산물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게 추석은 오늘날에도 뿌린 것을 함께 거두며 누리는 우리의 명절이다.

서론이 삐딱했다. 오늘날 추석이라는 맥락에 ‘우리’라는 단어로 엮일 수 없을 만큼 각자의 파편화된 무리로 보여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여야 하고 누구일 수 있는가? 이 물음에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서경식 씨와 김상봉 씨의 대담집인 ‘만남’이다. 서경식 씨는 재일 조선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이방인이자 단일민족성을 강조할 때면 외면당하는 재외동포다. 조선인으로 차별받으면서도 실체가 사라진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온 사람. 그래서 우리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누구인지 더 치열하게 물어왔다. 김상봉 씨는 철학자다. 하지만 연구실 책상이 아닌 실천의 현장에서 사유하는 철학자다. 나와 타자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 고민하고, 우리 안의 타자와 타자 안의 우리를 ‘서로 주체성’이란 개념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 두 사람이 만나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 바로 ‘만남’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언어의 의미를 다루거나 태도를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담집의 성격상, 각자의 의견을 서로에게 잘 전달해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언어의 문제가 타인과 어떻게 ‘우리’를 생각할 것인지를 드러내는 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상의 바벨탑이란 흥미로운 비유에서 잘 나타난다. 일상의 바벨탑은 프리모 레비의 수용소 증언에서 나온 비유다. 전 유럽에서 끌려온 다른 모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을 함께 일하라고 모아 놓았는데 서로 소통을 못 하니까 마치 무너진 바벨탑과 같은 혼란이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러한 혼란으로부터 '우리'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생각한다. 우리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 강제위안부로 징용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러한 고통에 맞서 같이 싸운 사람들, 그들 곁에 있던 사람들의 고통, 투쟁과 같은 공동의 경험들이 우리를 생성하게 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심에서, 주변에서, 온건하게, 강경하게 각자 겪었던 고통의 경험은 개별적이다. 서로 완전한 공감은 어렵다. 하지만 공동의 방향을 내기 위해서는 소통한다. 혼란은 당연할 것이다. 그들은 이 혼란의 상황을 기회로 바라본다.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와 소통하고 각자의 고유한 언어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소통의 수단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우리라는 탑을 세우는 일은 이처럼 새로운 소통의 기법을 발명하는 일과 병행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같은 역사를 공유하지만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지고 다르게 겪어낸 두 사람이 ‘우리’에 대해 말하기 위해 택한 이후 대화의 구성도 그 생각과 궤를 같이한다. 이들은 5.18에서 개별적으로 겪었던 고통을 증언한다. 이들은 5.18 당시 광주에 있지 않았다. 운동권이었던 김상봉 씨는 5.18 직전 대학가에 예비검속령이 떨어져서 지방으로 피신해 있었다.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어갔고 누군가는 그 사실을 알리려 하다 고초를 겪고 있는데 그는 그것을 모르고 혼자 안전하게 있었다는 것에 이중, 삼중의 부채의식을 갖게 되었다.

서경식 씨의 한국에 있던 형들은 간첩으로 구속되었다. 그 당시 기관원이 두 형의 전향을 걸고 아버지의 안전을 위협했고 서경식 씨는 같은 위협을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계속 일본에 있었다. 5.18까지 형은 석방되지 못했고 한국에서 옥바라지하다 암에 걸린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광주의 참상을 담은 보도였다. 앞날에 대한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을 보면서 돌아가신 것이다. 늘 외부에만 있었다는 자책으로 서경식 씨 역시 이중, 삼중의 부채의식을 갖게 되었다.

군사 독재 시절 고생한 정치범의 가족이라는 것은 그를 역사 속 산 증인으로 이끌지만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를 외부에 있다고 느끼게 한다. 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타자성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5.18에 직접적인 고통을 겪지 않은 두 사람이기에 그 타자성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가 문제시되었다.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강조될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단절감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단절감을 넘어 우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단절감 속에서 취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인가?

이들은 각자 타인의 고통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통이란 같이 겪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혼자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고통을 통해서 하나가 된다'는 말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동적 감각을 통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능동적인 배움의 의지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똑같아야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고통을 신화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의 고통에 대해 '나도 너와 같다, 나는 네 고통을 안다'라는 안일한 동일시나, 반대로 '어차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해버리는 포기나 모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대화와 성찰을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앞서 말한 겸손과 배움이다. 이때 고통을 삶의 본질로 간주하거나, 자연스럽게 여기거나, 감상화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고통은 절대 단일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으며,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어떻게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서경식 씨에 따르면 고통받은 자의 증언으로부터 시작된다. 증언은 기존의 인간성이나 도덕으로 파괴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절망과 폐허로부터 어떻게 새롭게 인간성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다. 하지만 증언을 하는 사람과 증언을 듣는 사람을 가르는 것은 내/외부를 가르고 고통을 가르는 것에 불과하다.

증언을 듣는 사람이 증언하는 사람으로 변모하는 연쇄작용이 바로 소통의 시작이다. 역사와 타자의 고통을 망각하지 않는 방법은 서로의 고통을 배우고 듣고 말하며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두 사람은 자기를 성찰하는 능력을 키우고(교양),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며(예술), 모든 억압으로 자기를 실현하는 공적 주체를 키우는 사회적 환경이(교육) 필요하다고 말한다. 개인을 각자의 상황에 예속하여 서로 단절시키는 권력에 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이 바로 혼란에서 새로운 소통을 만들어 내고 공동체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두 사람이 우리로 나아가기 위한 대담 행로를 거칠게 따라가 보았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각과 결이 다를 때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묻고 대답한다. 그 물음과 대답은 서로의 씨줄과 날줄을 만나게 하는 바탕이다. ‘우리’의 지평을 어떻게 세우고 넓힐 수 있는가에 대한 개인의 고민이 하나의 언어가 되는 과정이다.

두 사람이 고민하는 공동체를 정답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의 대화하는 방법, 태도와 내용은 새로운 소통의 기법을 발명하는 일에 분명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라도 공동체라는 탑을 세우는 데에 이 두 사람의 대담은 의미 있는 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넓히고자 하는 ‘우리’의 지평에 오늘날 ‘우리’의 명절인 추석이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바로 아주 시끄러운 추석이다. 저농약 무농약 농민, 태풍에 손해 입은 농민, 하청, 원청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고 노동자들, 노점상들, 유통업체의 노동자들, 시장 상인들, 미취업자들, 노숙인들, 철거민들과 소수자가 모두 목소리를 내어 고통을 증언하고 서로의 고통에서 배우고 소통하는 시작점 말이다.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그런 우리의 혼란이 새로운 소통의 장을 호출하고 그 장에서 ‘우리’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