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 (동성애자인권연대)
1995년 쓰레기 봉투 종량제가 시행되던 해 어느 토요일 아침 당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 눈을 떴다. 없는 살림에 부수입이라도 늘려보자는 마음에 하숙을 놓은 방 늘 일찍 일어나 인사를 나누던 학생이 인기척이 없어 의아해 했던 당신은 그 방의 문을 두드려 보았다. 그리고 이내 방 안에서는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온다.
“살려주세요”
하숙방 학생의 목소리를 들은 당신은 119에 신고를 했고, 방문을 열어 스스로 동맥을 끊어 이 세상과 안녕하고자 했던 학생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다행히 구급차는 빨리 집에 도착하였고 학생은 목숨을 구한다. 그 학생을 구한 사람은 내 어머니이다. 그 학생이 우리 집에서 하숙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까지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우리 집은 그때만 해도 수원에 자리한 서울대 농대 캠퍼스 근처에 살았는데 하숙을 하는 사람도 서울대 농대 학생들이었다. 어머니는 그때를 생각하면 계속 “서울대 학생이 왜 죽고 싶어했을까?”, “앞길이 구만리인 청년이 뭐 그리 세상에 싫은 것이 많았을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그러면 나는 내 어머니에게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어. 서울대 다닌다고 다 가지는 것은 아닌가 보네”라든가 “서울대 간다고 다 행복하진 않나 보네”라는 말을 했었던 것 같다. 우리 삼남매를 이름 있는 대학에 입학 시키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듯 학원에 보내기 위해 일을 늘리던 어머니가 듣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 내가 미웠으리라.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이 행복이었을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과연 행복이란 뭘까? 그때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이었을까?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당신처럼 자녀들로 위안 삼으며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 당신의 행복이었을까? 그때만 해도 열두 살이었던 나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 서른을 바라보던 스물 아홉 살이었던 2년 전 당신에게 “나는 남자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보통 이것을 커밍아웃이라고 한다”라고 말하니 그걸 또 뭘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냐며 엄마는 그렇게 후진 사람이 아니라고 남자랑 결혼하는 것 아니면 말하지 말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그 웃음 뒤의 씁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마음이 아리다는 말은 그럴 때 사용하는 것일까?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2003년 4월 7일 보수 기독교인 한기총은 (한국 기독교 총연합) 청소년 보호법상의 유해 매체물에서 동성애가 삭제되는 것을 반대하며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유황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신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며 가족을 붕괴시키고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니, 한국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동성애에 대해 선교적 접근에 나설 것을 발표 했다. 그리고 2003년 4월 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던 밤 청소년 성소수자였던 육우당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얼마 전 나는 그가 한기총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난 하루 뒤인 8일에 적은 일기를 보았다. 그는 한기총이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내보인 행동에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동성애자들을 지옥에 갈 사람이라고 말하며, 인권을 유린하고 마치 자기들이 신인 듯이 설쳐 대는 것에 분노를 표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분노했고 기도했으며 희망하였다. 하지만 그의 기도와 희망과는 다르게 지금도 한기총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례나 법안이 발의되려 하면 가장 먼저 항문성교와 에이즈 확산을 들먹이며 반대를 주장한다 그럴 때마다 계속 싸워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혐오를 표시하며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그런 말을 생각 없이 내뱉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것이 얼마나 모욕적인 말들인지를 말이다.
2011년 12월 19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되기 전 찬반 토론이 이뤄지던 서울시 본회의에서 김덕영 의원은 “우리나라가 동성애자들을 차별합니까? 안 하지 않습니까? 동성애 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못삽니까? 아니잖습니까?” 라고 이야기 했었다. “한 명의 학생 때문에 나머지 서른 명 혹은 마흔 명의 학생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 장면을 서울시 의원회관에서 올바른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점거 농성을 하던 사람들이 보며 분노하였던 것이 엊그제 같다.
그런데 이제는 차별금지법이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국회 법사위에 차별금지법이 상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보수 기독교 세력들은 또 다시 ‘동성애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면 안된다고 말한다. 에이즈가 늘어나고 자연의 섭리가 깨어진단다. 어떻게 이렇게도 일관적으로 억지 논리를 펼칠 수가 있는지. 이것도 신념이라면 신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들 만큼 치가 떨린다.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고민을 말하면 그냥 속편하게 차별 받지 않는 나라로 이민을 가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럼 편하지 않겠냐고 왜 자신을 괴롭히는 나라에서 사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국가는 사람들이 이민 갈 비용을 지원해줄 것인가? 설령 그 사람들이 이민 갈 돈을 지원해준다고 하여도 그게 내가 살았던 공간과 숨쉬었던 공동체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것을 보상해 줄 수 있는 일일까? 그럴 만큼 행복한 일일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간절히 살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는 말이 머리를 스친다. 2012년 10월 26일 한밤 중 화재를 피하지 못해 서른 셋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중증 장애인 고 김주영씨를 생각해본다. 2012년 10월 기준으로 1급 장애인 25만 명 중에 15만 명, 2급 장애인 35만 명, 총 50만 명의 중증 장애인들이 매일 밤 죽음의 불안에 노출되어 있다.
활동지원 제도가 24시간 지원되지 않기 때문에 활동지원을 받지 못하는 자립 중증 장애인들은 위험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수 밖에 없다.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함에도 정부는 이를 등급으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복지제도의 혜택을 제공한다고 때론 제정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 때문에 다수의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는 없기 때문에 대를 위한 소의 자발적 희생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오는 4월 20일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다. 장애인 스스로가 억압으로부터 세상에 나와 세상의 문 밖으로 살고 싶다고 소리치는 날이지만 어쩐지 세상은 쉽게 답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반응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소름 끼친다.
만약 1995년 어느 토요일 아침, 당신이 “살려주세요”라는 조그만 목소리를 듣고 모른 척 했다면, 방 문을 두드려 보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살고 싶다 말했을 때 반응이 없는 세상, 계속되는 차별과 폭력적인 혐오의 언어들에도 반응하지 않고 때때로 외면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상처받는 소수로 불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건 나와 당신이 될 수도 있다.
누구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회가 나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이 나쁜 것이고 세상은 그런 나쁜 사람들을 제어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 배움은 쉽게 타인을 외면하는 법부터 몸에 배이게 한 것은 아닐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세상에 대해서 우리는 쉽게 의심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모든 시간을 채운다면 어떨까?
당신은 누군가 차별이라는 문에 갇혀 살려달라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는지, 혹은 듣고도 그 문에 갇힌 사람을 모르는 척 하지는 않았는지, 때로는 그런 문이 없다고 말하며 그 문 안의 사람을 혐오의 말로 비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13년 4월 25일은 고 육우당의 10주기 추모 예배가 열린다. 나는 그가 바라던 것처럼 교황이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세상은 아니지만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10주기 추모 예배가 가톨릭 식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26일 저녁에는 동성애자인권연대가 주최하는 ‘내 혼은 꽃비 되어 무지개 봄꽃을 피우다’ 추모 문화제가 열린다. 그 시간에 당신의 시간을 나눠주길 빌어본다. 당신 또한 봄꽃이 되어 그의 추모 문화제를 아름답게 채워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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