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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방콕 ICAAP11(제11회 아시아 태평양 국제 에이즈 대회) 참가후기

by 행성인 2013. 12. 25.


이혜민 (동인련 HIV/AIDS 인권팀)



나의 방콕 ICAAP 11 참가 이야기는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중 HIV/AIDS 감염인 민우의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한다.


 

“그는 파란만장하다는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민우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래서 누군가는, 민우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묻고 싶을 수도 있다. 차별에 맞서 싸우자는 것인지, 굳이 문제 삼지 말고 넘어가지는 것인지. 평범하다는 것인지, 특별하다는 것인지. 그러나 하나만 기억하자. 그 흔들림을 만들어내는 것이 차별이라는 점을. 사회가 만든 테두리와 자신이 붙박고 싶은 자리가 어긋날수록, 흔들리지 않고는 살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그러니 질문은 민우가 아니라 사회를 향해야 한다.”

 

나는 민우와 같은 HIV/AIDS 감염인 당사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지난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ICAAP 11에 참가하였다. ICAAP은 ‘International Congress on AIDS in Asia and The Pacific’의 약자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HIV/AIDS 이슈에 관한 가장 큰 국제 학술대회이다. 지난 번 ICAAP 회의는 일본,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에 이어서 10번째 회의로, 2011년 여름 한국의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2013년도 태국 방콕에서 열린 ICAAP 11은 “Asia/Pacific Reaching Triple Zero: Investing in Innovation”을 주제로 하며, 여기서 ‘Triple Zero’란 새로운 HIV 감염과 AIDS 관련 죽음 그리고 차별을 철폐를 말한다. 이번 ICAAP 11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22 개국에서 5일 간의 포럼에 참가했으며, 주최국인 태국의 보건부 장관, 피지의 대통령 등과 같은 인사들, 학자들은 물론이고 아·태 지역의 HIV/AIDS 관련 활동가, 당사자들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는 자리였다.


"Getting to Zero""신규감염 제로, 차별 제로, 사망 제로"

나는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와 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의 팀원으로서 이번 아이캅 11에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고려대학교의 ‘CCP(Creative Challenger Program)’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의 과제 중 하나로써 지원을 받아 참가하는 것이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크게 관련 활동을 한다기 보다는 한국에서의 에이즈 관련 이슈들에 대해서 보고 듣고 배우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이번 참가를 통해서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태국, 필리핀, 인도, 라오스, 미얀마 등 아·태 지역에서의 에이즈 이슈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를, 그리고 활동가가 되고 싶은 나로서는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가들을 만나길 바라는 기대가 크기도 했다.

우선 아이캅에서는 HIV/AIDS와 관련한 여러 포럼과 세션 그리고 심포지엄 이외에도 총 4개(Scientific, Leadership, Community 그리고 Youth) 메인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유명한 학술지인 ‘LANCET’에서 MSM(Men who have Sex with Men)과 HIV에 관한 세션과 아·태 지역에서의 남성 성적 건강 연합체인 ‘APCOM’(Asia Pacific Coalition On Male sexual health)에서도 젊은 세대들을 위한 세션을 개최했고, 이런 강연 방식의 학술 세션 이외에도 HIV/AIDS 이슈의 핵심 집단인 MSM, 성판매 종사자(Sex worker), IDUs(Injecting Drug Users), 트랜스젠더 등 당사자들이 직접 나와서 자신의 국가에서의 PLHIV(People Living with HIV)의 상황과 자신의 경험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션도 있었다. 회의장 밖에서는 E-Poster 게재와 관련 단체들의 부스 홍보, 문화 공연, 그리고 핵심 집단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의 평화적인 시위와 관련 이슈에 대한 영화 상영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아·태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활동가들의 모임인 ‘Youth Lead’ 활동가들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대회 참가도 처음이고 동행 없이 혼자 가는 거라 아이캅에서 들을 수 있는 학술 세션들만 경험하고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 청소년·청년 감염인 커뮤니티 R(알)의 활동가들도 이번 아이캅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방콕 가기 전부터 연락을 해서 운 좋게도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또 이 친구들이 ‘Youth Lead’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활동가들도 많이 만나 각 나라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서 뜻밖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Youth Lead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친구들은 HIV/AIDS에 감염된 젊은 당사자 친구들이나 감염에 있어서 높은 위험율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활동하며, 교육과 네트워킹 그리고 지지 활동을 통해서 차별에 맞서고 젊은이들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각자의 나라에서 활동을 하면서 그것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연대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직접 이번 아이캅 11에 참가하면서 머리 속을 맴돌았던 생각은 과연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이는 일본의 어느 병원 재단이 주최한 세션을 듣고 나서부터 시작되었고, 이 세션은 일본의 HIV/AIDS 관련 재단이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의 나라에 후원을 해서 그들의 나라에서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의 보고회 같은 자리였다. 이 세션을 통해 한국은 어떠한 상황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한국에서의 에이즈 관련 연구나 활동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또 인권적인 측면에서 PLHIV(HIV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를 일컫는 용어, people living with HIVAIDS)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았을 때 한국은 정말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일본처럼 HIV/AIDS 관련한 프로젝트를 다른 나라가 활발히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군사정부인 버마의 상황과 그리고 그 외에도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는 인도, 방글라데시, 필리핀, 라오스 등과 같은 나라들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하기에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일수록 아이캅과 같은 자리를 통해서 함께 모여서 서로의 활동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어떻게 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야 한다라는 것을 이번 참가를 통해서 깨달았고, 또 한 번 연대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번 아이캅의 모토이기도 한 UNAIDS의 ‘세계 에이즈의 날’ 공식 슬로건 ‘Getting To Zero’는 신규 감염인 제로, 에이즈로 인한 사망 제로 그리고 감염인에 대한 차별 제로를 위해 전 세계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동요양병원 사건이나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측의 세계에이즈의날 행사 일방적 취소 등과 같은 에이즈환자 관련 사건들에서는 이러한 공식 슬로건으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마치 그들은 에이즈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마치 일반 시민들의 인권을 빼앗는 것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HIV/AIDS 감염인 그리고 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윈-윈(Win-win) 게임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민우의 이야기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 지점에서 살아가고 있는 HIV/AIDS 감염인 당사자 그들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은 사회를 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번 나의 아이캅 참가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로 하여금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HIV/AIDS 인권 활동으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기회였다.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게 도움을 주신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분들과 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 팀원들, 그리고 고려대학교 CCP <무지개동산> 팀 지도교수님과 팀원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