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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에이즈 감염인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이유

by 행성인 2013. 9. 5.

김정숙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동성애자인권연대)


(이글은 복지동향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HIV/AIDS 감염인은 건강상의 이유와 사회적 조건 때문에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다. 작년 18대 대통령선거를 맞아 <2012 대선 HIV/AIDS 감염인의 요구를 말한다>에 참가한 감염인들이 제시한 공약에서 최저생계비 인상, 감염인과 그 가족의 기본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지원 확대를 요구하였듯이 기초생활수급비가 감염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에 빠진 누구라도 기초생활을 사회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이고, 우리 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이지만 그동안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수급자 기준의 문제와 낮은 보장성의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맞춤형 복지를 위한 개별급여 시행’ 이라는 명목으로 제도의 개악을 시도하고 있고 올해는 3년에 한번 씩 최저생계비를 계측하는 해였으나 제도 개편을 앞두고 일방적이고 형식적으로 최저생계비를 기습 발표하였다. 


나누리+는 기초법의 대대적인 개편을 앞두고 HIV감염인이 더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감염인들의 현실적인 삶을 통해 기초법의 비현실적인 문제를 알아보고자 심층면접을 진행하였고 감염인들과 두 차례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차별과 빈곤의 악순환 


1981년 최초 발견 이후 ‘죽음의 병’으로 알려진 에이즈는 질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치료제가 많이 개발되어 더 이상 당장 죽거나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 아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꾸준한 건강관리를 통해 얼마든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되었다.


그러나 에이즈감염인은 성적으로 문란하고 에이즈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매개체라는 사회적 차별로 인해 사회에서 배제당하고 사회적 권리도 박탈당했다. 모든 면에서 불평등한 삶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낙인과 차별은 에이즈감염인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게 한다. 특히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감염인은 이 사회에서 일할 권리를 빼앗겼다. 이들이 빈곤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는 이유이다. 2005년 인하대 이훈재 교수팀이 에이즈감염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인터뷰 응답자의 27%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고 응답자의 55%가 에이즈에 감염된 이후 소득이 줄었다고 응답하였다. 또, 한국에이즈예방협회 서울지부를 찾은 에이즈감염인 중 대다수가 쪽방과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에이즈감염인이 감염이후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는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가족과 사회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에이즈감염인 중 기초생활수급자 9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하였다. 이들의 삶과 실태를 통해 에이즈감염인의 차별과 빈곤의 악순환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할권리를 빼앗긴 에이즈감염인



HIV 감염인 사망 및 생존 현황, 질병관리본부 2013




생존 HIV감염인 연령 구성비, 질병관리본부 2013


국내 에이즈 감염인은 2012년 누적기준으로 9,410 명이 넘었다. 이중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연령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직장검진에서 동의 없는 에이즈 검진을 하는 곳이 많고 그 검진 결과가 본인도 모르게 사업자에게 통보된다. 에이즈예방법에서는 에이즈감염인의 취업을 제한하는 법적 조항이 존재하고 있어 감염사실이 알려졌을 경우 해고나 따돌림으로 직장을 그만 둘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는 없다. 사회적으로 격리된 채 가난과 질병의 고통속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남은 삶을 버텨내야만 한다.

 

기초생활수급으로 생활하고 계시는 감염인의 공통적인 특성은 감염 이후 급격하게 생활이 불안정 해졌다는 것이다. 빈곤에서 탈출해보려고 구직활동도 했지만 에이즈감염인에게 일할 기회란 없었다. 동료간병, 막노동 등 불안정한 일자리를 반복해야만 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질병의 낙인과 힘든 삶의 경험은 더욱더 불건강한 삶을 살게 했고, 아웃팅 등의 위협적 상황으로 정서적 상태도 매우 불안정하게 됐다.


겨우 생존을 유지하는 삶


현재 에이즈감염인은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등록되어 에이즈치료를 위한 비용은 본인부담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지만 인터뷰 대상자 중 대부분이 기회감염(2차 감염. 건강한 사람에게는 감염증을 일으키지 않는 반면 면역기능이 감소된 사람에게는 심각한 감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인한 질병 및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에이즈를 치료하는 감염내과 이외의 다른 질병의 치료에는 의료보호가 적용되지 않아 비급여 등 본인부담으로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 장기간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건강유지를 위해 균형잡힌 영양섭취가 중요하지만 기초생활수급의 낮은 생계비로는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식단은 불가능 했다. 면접자 중 대부분이 과일 섭취나 단백질 섭취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의 생계비 지원이 최저생활유지비도 안되기 때문에 감염인은 극단적인 절약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난방비 절약을 위해 보일러를 켜지 않거나, 부식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간단하게 끼니만 챙긴다거나, 교통비나 외식비를 아끼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않는다고 응답했다. 겨우 생존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더 오지 않기만을 바라면 늘 불안정한 상태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 표는 인터뷰대상자의 수입 및 지출 상황을 적어본 것이다.


사례 1,2 모두 생활비 중 가장 부담이 큰 항목은 “주거비”였다. 사례 1의 경우 월세로 생계비의 50%를 지출하고 나면 나머지 25만원~30만원으로 한 달 동안 생활을 해야 한다.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례 2는 사례 1에 비해 주거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관리비가 생활비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많은 감염인이 보증금 때문에 불량주택이나 쪽방,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는데, 위 사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생계비로는 저축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물어봤다. 대부분 ‘어쩔 수 없다.’ ‘막연하게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란다’라고 대답했다.  

48만원 삶의 가계부는 곧 인생의 적자이다. 간신히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이 생계비는 사회적 단절과 고립, 위급할 때 아무 대책이 없는, 남은 삶에 대해 미래를 꿈꿀 수 없게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자원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상태인 감염인에게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낙인의 효과는 감염인이 가족과 친구 주변인들에게 버림받고 모든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지역사회 등 공공기관과 커뮤니티 지원은 감염인에게 경제적, 심리적, 정서적 자원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감염인들의 욕구와 필요를 채워주기엔 정부의 정책과 제도는 부족하고 단절적이다.


에이즈감염인에게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감염인에게 필요로 하는 지원 서비스에 대해 물어봤다. 

첫 번째 지원으로 드는 것은 당연히 경제적 지원이었다. 낮은 생계비에 의존하다 보니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여 더 많은 현금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비현실적인 주거비를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적용하여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일자리 지원이었다.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일자리에 대한 욕구가 높지만 이들에게 고용과 노동은 사회적으로 차단된 상태다. 감염인에 대한 지원이 잘 되어있는 복지국가의 경우 국가가 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에이즈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한 교육도 직접하고 있고, 감염인을 고용할 경우 세재감면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세 번째는 지역사회와 의료환경에서 감염인에 대한 비인권적 문제 해소와 차별로부터 감염인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 에이즈라는 질환의 특수성과 감염인의 특성이 반영된 의료와 복지가 결합된 전인지적이고 통합적인 서비스지원 체계를 통해 자활과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조성을 요구하고 있다. 

 

삶의 기회가 박탈되거나 삶을 포기하게 해서는 안된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감염인에게 힘들고 어려울 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적  지원체계가 부족하여 감염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감은 매우 컸다. 이런 이들에게 앞으로의 소망에 대해 물어봤다.

“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다”, “일상생활에 기대를 가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 라고 대답했다. 생활이 어렵고 부족한 것이 많아 더 요구하여도 지원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대부분 체념하고 있었다.


에이즈감염인이 겪는 정신적, 사회적, 신체적 불건강함은 불평등의 결과이다.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 이 사회에서 열등국민으로 불평등한 삶을 살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시민으로서 삶의 기회를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이들이 받는 복잡한 차별의 원인을 없애야 하지만 지금 당장 국가나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염인의 삶에서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더 촘촘히 확충해 나가는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삶의 기회가 박탈되거나 삶을 포기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게 국가의 의무이고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