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풀뿌리사회지기학교)


어느 흐린 날, 자전거를 타고 인권중심 사람 건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가기 전 새로운 사람들을 보게 될 거란 생각에 만져놓은 머리는 더 이상 신경 쓰지도 못하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길을 찾아 페달을 밟았다.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한 ‘인권중심 사람’은 전에  ‘시사IN’ 잡지에서 본 사진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서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길을 쉽게 찾지 못했는지 ‘살롱 드 에이즈’는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미뤄진 잠깐의 시간동안 지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건물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계단과 층과 층 사이의 공간들이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1인 화장실의 존재도 처음 봐서 그런지 신기했다. 화장실이 1인 화장실과 장애인용 화장실로 나눠져 있어 일반인인 나에겐 조금 불편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은 4층 정도의 높이였지만 금방 옥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둘러보고 오는 사이에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 있었다. 첫 시간이라 그런지 운영진으로 보이는 분들이 먹을거리를 놓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어찌어찌 내가 자리에 앉자 곧이어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살롱 드 에이즈’를 알게 된 건 동인련(동성애자인권연대) 홈페이지의 공지를 통해서였다. 학생인 나는 샬롱 드 에이즈 몇 주 전, 한국의 비인간화 문제들을 다루는 수업을 들었었다. 수업 커리큘럼 중 동성애자 인권과 관련된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있었고 이후 나는 나에겐 다소 생소한 동성애란 주제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실제 관련 단체와 만나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동인련 홈페이지는 5월달 노동절에 동인련 사람들과 같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끔 통로 역할을 해 주었다. 홈페이지를 보고 왔다고 말하니 동인련 사람들은 실제 그런 경로를 통해 왔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내가 프로그램에서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이전에 관심 두던 주제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미리 찾아보고 오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AIDS/HIV감염 이란 병은 감염병이면서도 그 경우가 특수하다. 그리고 주로 남성 동성애자들이 걸리기 쉬운 환경에 있다. 병이 걸리는 사람이 사회적인 약자임과 동시에 남을 감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는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이를 통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편견과 동성애혐오의 형태도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HIV감염인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사회에서 격리되었으며 동시에 동성애를 허용치 않는 사회에서 출구역할을 해왔던 동성애 커뮤니티 안에서도 배척받는 처지에 놓여있는 상황이었다. 개인의 실수로 인해 걸리는 병인만큼 그렇게 된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몰라도, 편견이 그들의 일상까지 무너트리도록 방치해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샬롱 드 에이즈’에 참가하며 여러 생각들이  머리 속에 떠다녔다. 입으로 차마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함들이었을 것이다. 편견과 가능성, 차별과 책임, 잘못과 정당함, 개인과 사회, 그리고 기준이 없는 상식이나 정상이란 것들이 머릿속을 온통 휘저었다. 동성애 인권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여러 관념들을 봤지만 결국은 사회속의 존재로서의 감염인감염인의 입장에서 보는 사회, 또한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과 감염된 사람들의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나또한 학생이라는 위치에서 관찰자로 존재하는 선긋기를 용인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 선을 그으며 산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과 우리를 나눠 사회와 격리해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선 긋기인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선 긋기인지, 그 입장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도 없는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내가 ‘그들’로 칭하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답은 프로그램의 시간들 안에서 나오진 않았지만, 언젠가 그 답을 낼 수 있을 때 즈음엔 비로소 관찰하는 사람을 벗어나 더 깊게 발언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롱 드 에이즈’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통해서 다양한 고민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어 좋았고 덕분에 한층 더 넓은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단체 ‘동인련’과는 내가 어느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을지 나도 알 수 없지만 나와는 너무 다르면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과의 관계가 나에겐 새로운 경험의 지평을 열 수 있는 단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만날 때는 더 성숙한 눈으로 모두를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 모리
    2013.09.08 22:32 [Edit/Del] [Reply]
    동인련의 프로그램들은 끝나고 나올 때 머리가 카오스 그 자체가 되는 게 매력이죠ㅎ 근데 진짜 인권재단 사람 건물은 찾기가 너무 힘든 곳에 있는 것 같아요. RPG 게임의 포탈처럼 건물에서 하늘로 레이저라도 쏴서 사람들이 찾아가기 쉽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정 욜님 참고하시길.
  2. 망치
    2013.09.10 02:20 [Edit/Del] [Reply]
    잘 읽었습니다!
    ‘선 긋기’라는 표현이 무척 가슴에 와 닿네요.
    정말 우리는 매일같이 선을 그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종종 무의식적으로…
    선을 긋기 전에 ‘사람’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하는 노력이 더욱 성숙한 사회를 만들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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