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LGBT들에게 노후는 막연하고 불안합니다. 앞서 살아가고 있는 꽃중년 LGBT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인련 웹진 독자들에게 LGBT로서 나이가 든다는 것, LGBT들이 필요로 하는 사회의 모습,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4,50대 퀴어 토크-쇼>를 기획했습니다.


사회자

이주사 (동성애자 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좌담회 참석자


프랜시스 

사오십대 퀴어 토크-쇼 웹자보

51세 동인련 회원. 게이/트랜스 성적지향. 정신건강간호학을 공부하는 간호학자. 퀴어들과 사회적 소수자의 정신건강을 연구하면서 백마탄 왕자님을 만나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인 마음은 낭랑 18세인 게이 소년,


최현숙 

애 낳고 살다 예수를 잘못 만나서 27년째 사회운동을 하고 계신 “나쁜 여자". 관심사가 가다가다 돌아가실 때 다 된 할머니들에게로까지 이어져 얼마 전 세 여성노인의 구술 생애사를 엮은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를 발간.      


홍쌤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꽃다지, 우리나라와 더불어 대한민국 3대 노래패 중의 하나인 참여연대 회원 노래모임 ‘참좋다'에서 13년째 노래로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와 연대하고 있는, 내년이면 데뷔 20년이 되는 열혈게이. 


카르멘윤

초등학교 때부터 여자에게 설렘을 느끼다 대학 때 열병을 앓듯 사랑에 빠져 세상의 쾌락과 고통을 다 맛보고, 네 번의 장기 연애와 수십 번의 짧은 만남을 통해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지만 내 여잔 별로 없네 라는 영원한 진리를 깨달으며 레즈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절세레즈.


이주사: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제가 간단히 소개 드렸지만, 퀴어로서 살아오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동성애자, 또는 퀴어라는 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나요? 정체성을 알게 된 시기, 커뮤니티와의 만남, 현재의 삶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프랜시스: 저는 다시 태어나도 퀴어로 태어나고 싶어요. 이성애자 주류로 살았다면 제가 소수자들의 사회적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 융통성이 많이 떨어졌을 것 같아요. 다른 사회적 약자 소수자 보면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고 무엇이 정말 정의이고 진리인가  철학적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던 것이 제가 퀴어로서 살아온 삶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을 알게 된 시기는 중학교 때에요. 그때 첫사랑을 만났지요. 그 친구랑 학교 끝나면 계속 같이 다니고 ‘나는 너의 영원한 태양이 될래.’ 이런 편지도 받았어요.


카르멘: 제가 정체성 찾았던 시기는 20대에요. 대학교 3학년, 아마 92년쯤일 거에요. 타과 여학생을 좋아하게 됐고, 술에서 용기를 얻어서 술자리 이후에 키스를 하게 됐어요. 술 깨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머리가 아팠지요. 며칠 뒤에 용기를 내서 연락을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연락을 받더라고요. 그런데, 그 친구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저는 그 친구와 놀다가 헤어질 때 그 친구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어요. 늘 매일 슬퍼있었지요. 한편으론 내 할일 열심히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머리 한 켠에서는 계속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나는 그 친구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하며 아파했지요. 물론 이제와 생각하면 그 친구도 저를 저만큼 좋아했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그 때는 매번 울면서 집에 갔어요.

그 친구를 잊으려고 2년 정도 해외에서 체류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제가 더 커질 수 있었지요. 사실 다시 한국에 살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는데, 95년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친구를 통해서 ‘레즈비언 바가 있다. 한번 가볼래?’ 제안을 받았어요. 찾아가면서 굉장히 떨렸지요. 문 앞에서 ‘이 안엔 뭐가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문을 여는 순간 그렇게 시설이 후질 수가 없는데도 ‘아 이제 한국에서 안주할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어요.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요. 

20대 후반까지는 제가 양성애자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저는 지금 현재 동성 커플과 6년 8개월째 동거를 하고 있고 강아지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작년에,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한 상태입니다.


홍쌤: 제가 여기서 제일 막내인데요. 사실 저는 갓 40대가 되었는데 이 자리에 함께하기에는 약소한 나이이지 않나 생각해요. 저는 고등학생부터 운동권의 삶을 살았어요. 대학생 때 제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됐는데, 제가 외계인인 줄 알았어요. 그때는 게이, 레즈비언이라는 말도 몰랐고, 게이라고 하면 선데이서울에 나오는 음습한 이미지에다가 트렌스젠더들을 그렇게 불렀던 시기였기 때문에, 나를 어떻게 정체화해야 할지 몰랐지요. 정말 제가 외계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94년에 친구사이를 알게 됐어요. 제 정체성을 파악하게 된 건 정말 좋은 일이었지만, 인권단체를 통해 게이 커뮤니티를 접속한다는 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어요.(웃음)

일단 활동 덕분에 게이바는 다 알죠. 바를 돌아다니면서 나도 술도 먹고 싶고 그런데, 소식지를 돌려야 하니까 그러지 못했죠. 후에, 혼자라도 가보고 싶은데 형들한테 소문날까 봐 못 먹었어요.(웃음)

99년도에 초등학교 교사 발령이 나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도에는 1회 퀴어문화축제때 사회를 보기도 했어요. 연세대학교 강당에서 했는데 여기 오신 분들은 잘 모르실 거에요.


이주사: 그 장소를 제가 구했습니다. (웃음)


홍쌤: 맞아요. 기억나요. 친구사이에서도 일하고 동인련에서도 일을 하며 저는 계속 그렇게 살았어요. 종북은 아니지만 늘 인권단체나 운동단체와 함께했죠. 지금은 뭘 해도 종북이잖아요. 굉장히 열심히 운동했었고, 지금도 참여연대 하면서 집회를 굉장히 많이 나가요. 굉장히 정치적인 게이입니다. 가족한테는 몇 년 전에 커밍아웃 했어요. 어버이날에 폭탄선언을 했죠.

카르멘: 저는 어머니 칠순날 했어요. 가족끼리 파티를 하는 자리에서요.

홍쌤: 저는 형제들 모였을 때 술김에 어버이날 했어요. 다행히도 너무 우호적으로 받아줬지요. 학교에서도 주변 동료 교사나 학부모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하기도 해요. 7년 전 제자의 학부모님들인데 지금도 만나는 학부모가 있을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지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게 나중에 제자들 만날 수 있지 않냐는 건데요. 만났어요. 몇 달 전에 게이바에서요. 가끔 연락하던 제자였는데도 게이바에서 만나니 그 친구가 되게 놀라더라고요.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어요. 그래도 웃으면서 다음에 또 보자며 인사했죠. 여기까지 할게요.


최현숙: 저는 십대 초반부터 시작된 아버지와의 싸움이 사회적으로 제시되는 통념들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게 한 바탕이었어요. 아버지라는 권위와 맞서 싸운 과정에 의해서 사회의 모든 통념들을 다 의심하고 믿지 않는 데에서 제 삶이 출발했던 것 같아요. 나의 여성임, 이성애중심적인 그런 것들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해왔죠. 나중에 이성애니 동성애니 하는 용어를 알게 됐을 때, 이성만 되고 동성만 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되어서 저는 양성애자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57년생이고 제가 중학교를 다닐 때가 70년대에요. 동성애라는 용어가 사회에도 학교에도 없었던 시절 여중 여고를 다닐 때 저를 좋아한 여학생들이 있었어요. 우정을 훨씬 넘어선 관계를 요구하고 이런 친구들이 있긴 했죠. 하지만 저는 ‘내가 어떤 애인지, 내가 뭘 해야 행복한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굉장히 방황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어떤 애가 나에게 관계를 요구하고 내 옆에 있고 싶어하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저를 좋아하는 아이들에 대해서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하는 게 싫다는 건 아니었지만, 여자든 남자든 내가 어떤 자리를 내줄 그런 건 없었던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구체적으로 여성을 좋아했던 경험은 고3때였어요. 그때는 막연하게 데미안에 나오는 영혼의 나눔처럼, 철학적인 나눔을 갖는, 다른 친구들에 대해 배타적인 관계였어요. 하지만 그때는 그게 동성애적인 관계인지 해석하지 못했죠.

저는 남자랑 결혼했었어요. 아버지와의 싸움 가부장과의 싸움에서 탈피해서 다른 세계로 옮겨온 게 그 남자와의 결혼이었죠. 사랑해서 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 문제의 원인은 저였던 것 같아요. 결혼 당시 스물 네 살 때의 나와 서른 세 살 때의 나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던 거죠. 

제가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으로서 여성 관련 사업장,성폭력사건 등에 연대할 일이 있었고, 그 중에 하나가 성소수자 진영이었는데요. 민주노동당 안에서 붉은 이반이라고 성소수자들 모임(후 민주노동당 성소수자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그 당시에 붉은 일반(붉은 이반을 지지하는 일반들의 모임)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어떤 활동을 했냐면, ‘동성애는 자본주의의 파행적 산물이다. 동성애는 악이라서 자기가 당선되면 동성애자들의 치료를 담당하겠다’는 후보를 낙선시키는 활동을 했죠.

그러다 2004년에 굉장히 좋아하는 여성을 만났어요. 제가 사회운동을 하면서 남편과 굉장히 많은 갈등이 있었고, 이혼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 여자가 나한테 결혼한 여자랑은 사귀지 않겠다고 했었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지만 그 사람한테는 그게 문제가 됐고, ‘그래? 그럼 뭐 이혼하지’ 구태여 이혼할 이유가 생겨 이혼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그때 아이들은 스물 셋 정도 였으니까 애들 때문에 이혼을 못할 시기는 아니었죠. 아빠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성실하고, 그런데 나와 많이 엇갈렸을 뿐이죠. 애들은 대체로 그 이전의 엄마와 아빠의 갈등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 때문에 이혼을 하지 말진 말아라. 나중에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것과 이혼하겠다는 것 둘 다 이해해줬어요.

그래서 가끔 사람들은 이혼한 2004년부터 내가 뒤늦게 성정체성을 깨달았다. 이렇게 표현을 하는데, 저는 십대 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양성애자려니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2004년 이후 남자와 사귄 적 없고 현재 페니스로 섹스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60년 인생에 남자랑 결혼이라는 제도 내에서 25년을 살았는데, 2004년부터 여자를 좋아했다고 지금 나의 정체성을 레즈비언이라고만 규정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양성애자려니 생각해요. 그렇지만 구태여 공식화 될 때, 레즈비언이라고 표현하느냐 성소수자라고 표현하느냐 하는 것은 그 자리가 결정하곤 하지요.

그래도 저에겐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에 큰 비중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내 자신을 많이 내주지 못해요. 연애나 안정보다 자유가 더 중요하죠. 그래도 섹스는 중요하더라고요. 하지만 아주 주변에 대해서 폐쇄적이고 상호만 바라보는 관계에 대해서는 피곤해하는 사람이에요. 


장소를 꽉 채운 사람들. 한국에서 퀴어로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막연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이주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그 시간들을 무시할 수 없지요. 본인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홍쌤: 저는 올해 마흔이에요. 저는 제 나이가 참 좋아요. 20대 때에는 돈도 없고, 있는 게 몸밖에 없어서 몸으로 소통하는 관계를 했다면, 30대 때는 연애와 사랑을 제대로 했던 것 같아요. 40대는 경제적으로도 여유있어서 연애와 삶에 있어 안정된 시기인 것 같아요. 지금 사귄 애인은 4년째 함께 하고 있고 최근에는 집을 샀어요. 국민은행 월세라고 표현 하는데, 이자 갚느라고 허리가 휘지만 처음으로 집이 생기고, 안정된 직장이 있다면 여유가 생기는 나이에요.

사실 전 동거를 추천하진 않아요. 헤어져야지를 입에 달고 살게 되거든요. 늘 혼자사는 걸 꿈꾸지만 가족 같아서 못 헤어지는, 헤어지면 또 누군가와 지지고볶고 해야하는데 지금 4년동안 싸워서 겨우 맞췄는데 이제 더 싸울 건 없겠다 싶은거죠. 그것도 안정적인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 나이에도 섹스는 굉장히 중요하긴 하지만, 저는 섹스에 대한 마음도 바뀌는 것 같아요. 예전엔 발정난 개마냥 그랬다면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섹스리스 부부인 것 같고. 하지만 40대 제 나이에 굉장히 만족합니다.


카르멘: 저도 제 나이에 대해 만족해요. 20 대가 꽃이라고는 하지만, 30 대 때도 좋았고 경제적인 부분에서 40대에 저는, 하우스푸어도 아닌 그냥 푸어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할 여유가 생긴 시기죠. 제 파트너도 저도 돈을 벌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나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40대는 조금 나은 것 같아요. 50대, 60대가 되어도 아마 그럴 거에요.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저한텐 좋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어디가서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가 어디서 이렇게 나이 어린 동생들이랑 언니 동생 하면서 놀 수 있겠어요. 앞으로도 좋은 동생들 언니, 오빠와 좋은 관계 맺으면서 살고 싶어요.


프랜시스: 생물학적 노화가 40대와는 달리 50이 되니까 확 느껴져요. 노안이 오고 오십견이 오더라고요. 십 대, 이십 대 때에는 두려운 것도 무서운 것도 없고 나이 먹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았어요. 오십 대 육십 대에 어떻게 살지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을 생각하면요. 제가 웹진팀에서 회의를 하는데, 한 페이지에 두 면을 넣어요. 이건 나이든 소수자 차별이거든요. (웃음) 사실 동인련 커뮤니티에는 늦게 왔어요. 97년도쯤 왔는데 커뮤니티는 돌이켜보면 제 인생에서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얼마 전에 중학교 3학년이 왔는데, 한 세대가 지나간 거잖아요. 아이들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동인련 캠프를 갔는데, 애들이 막 밥 먹고 그러면 제 새끼들처럼 뿌듯한 느낌이 있어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최현숙: 그 전에는 진보정치인으로서 성소수자의 노인 정책을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순전히 제 얘기를 할게요. 모든 나이는 살만하더라고요. 나이가 많다는 건 많이 경험을 했고, 성숙해 질 수 있는거죠. 물론 옹고집이 되고 나이를 하나의 권력으로 알면 촌스럽고 낙후되는거지만, 끊임없이 열어놓고 배울 생각을 하면 나이가 뭐 그럴 건 없죠. 아까 나이를 먹으면 안정되고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나이에서 얻는 여유가 특히 경제로 인한 안정일까 봐 걱정이 되요. 저는 안정되고 싶지 않고 계속 불안할지라도 자유롭고 싶어요. 지금보다 나이를 먹었을 때 내가 어떤 조건일지는 걱정하지 않아요. 가난해지면 지금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랑 잘 놀면 되죠. 경제적인 어떤 것이 나의 안정을 보장해준다고 하는 것은 저를 주저앉히는 거에요. 저는 천상 활동가에요. 아마 죽을 때까지 활동가 하다가 죽을 테니까.

물론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있는 조건에 대해서 다소 불리하게 느끼는, 초라함 같은 감정들에 대해서 느끼는데 그럴 때는 저는 끝까지 응시를 해요. 그건 정말 나 자신과 다른 문제에요. 타인의 시선. 내가 정말 이 상황을 초라하게 느끼는 내 자긍심이 부족한 문제이죠. 가질 것은 자긍심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더 고민해야지 더 안정적인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여전히 몇 살이 되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게 중요해요. 물론 관계에서 계속 상처받고 여차하면 끝나버릴 것 같고 다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런 불안함이 있지만, 타인과의 사랑의 관계가 내 인생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저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 돼요. 그 적당한 물리적인 거리와 정서적인 거리를 잘 관리하면 되더라고요.


이주사: 100세 시대라는 말처럼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기의 삶이 점점 더 중요한 사회 이슈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개개인에게도 미래에 대한 준비가 큰 고민거리인 것 같구요. ‘노후'라는 말이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최현숙: 최근에 광주에서 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 년이 되어서 발견되었다. 하면서 한바탕 독거노인의 문제가 되게 시끄러웠어요. 전 이 문제를 꼭 그렇게만 볼 것인가? 그 할머니가 위 아랫도리를 아홉 겹을 입고 똑바른 자세로 돌아가셨더라고 하더라고요. 불교에 조예가 있는 분들은 그 죽음 방식이 불교 중에 자기 소멸의 방식, 자신이 자기를 장례 지내는 방식이라서 할머니가 죽음을 선택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보통 말하는 독거 노인 문제라고 이름 붙임으로 인해서 독거나 나이듦이나 그런 문제를 더 옹색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그런 시선들에 반대를 해요. 물론 어려울 수 있지만 이 어려움 때문에 그 노인들이 계속 불행하지는 않아요. 

맥도날드 할머니라고 한바탕 이야기 되었었는데, 그 할머니가 과연 불행했는가 싶거든요. 저는 그 할머니가 그 할머니 자신을 자유로운 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옛 여성 중 하나인 나해석 화가가 그 시대 가부장과 계속 싸우다가 남편에게서도 친정에게서도 밀려나다가 행려자로 죽었다고 하는데 나혜석이 불행했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갔고 그 결과가 요양원이든 행려자든 간에 자기자신을 궁극적으로 불행하게 했다. 그렇게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나중에 죽을 때 음 잘했어. 잘 살았어. 그러면 된다는 거죠.


프랜시스: 저는 사실 퀴어로 태어나서 0세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풍파를 겪으면서 살아가는 건데, 열악한 조건이지만 청소년 자긍심 프로그램은 많은데, 중장 년들이나 노년 퀴어를 위한 프로그램이 많이 부족하고 필요한 것 같아요. 퀴어 4 50대 중에 앞으로 싱글로 살아가다 질환 문제로 어려움이 밀려 닥쳐올 것 같다. 예측이 들어요. 퀴어들의 널싱홈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어쨌거나 중,장 년 퀴어들이 밖으로 못 나오기 때문에 자신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정서적인 것도 상담 받기 쉽지 않고 많은 심리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데 그런 것들이 개발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농담처럼 환갑잔치를 하게 되면 광화문 광장에서 크게 하고, 나중에 죽으면 내 관을 들고 헌법재판소도 찍고 청와대도 찍고 그래도 안되면 장례 지내지 말자고 그렇게 농담처럼 이야기 하거든요. 나이든 퀴어의 삶은 어때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외국의 게이 레즈비언 들이 피켓 가지고 나오잖아요. 나는 78년 몇 개월을 게이로 살아왔다. 울 커플은 내 파트너와 살아온 지 34년 되었다. 저는 그게 우리 사회에 던지는 파워풀한 메시지가 될 것 같아요. 존재하고 있고 그게 한 달 전, 두 달 전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는 것. 커플의 관계, 자기 개인의 생애적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말이죠. 나이든 할아버지가 되어 레인보우 동성 두루마기 입고 싸우고 싶어요. 은퇴하고 나면 잃을 게 없잖아요. 그때 나이든 퀴어로서 살아가는 삶도 만들어가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카르멘: 이 문제도 굉장히 많이 생각했어요. 하지만 퀴어로서의 노후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노후에 대해서 고민하는 건 몇 가지인데요. ‘돈 없으면 어쩌지, 아픈데 병원 못 가면 어떡하지, 내 옆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그런 거죠. 애인보고 언니가 정말 잘 할 테니까 나중에 아프면 나 병원에도 데려다 주고 그래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그래요.

저는 노후를 몇 세로 한정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년 없이 늙어서도 일을 하고 싶어요. 왜냐면 일을 해야 기력도 있고, 돈도 있고, 왜냐면 늙어서 돈 없으면 누가 찾아와줘요. 저는 노후라는 말 얼마 남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40까지도 정말 금방 왔거든요. 노후까지 신나게 잘 놀 생각이에요.


홍쌤: 저는 최현숙씨가 그렇게 애기하실 줄은 몰랐어요. 노후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람들과 연대하고 살겠지 생각하는 걸 보고요. 제가 경차를 십 년 째 몰고 있는데, 유지비도 많이 안들고 편하고 좋거든요. 그런데 차를 바꿀 때가 되면서 내가 또 경차를 탈 수 있을지 나이 먹고 경차를 탈 수 있을지 싶어요. 내가 속물이 돼 가나 싶지만, 눈치를 안볼 수가 없는 거에요. 그걸 무시하기가 참 어렵다는 거죠.

또 하나 게이로서 나이 먹으면서, 어느 날 동인련 애들 모여있는데, 어린 애들이 그냥 예뻐보이고 고와 보이는 거에요. 외모가 잘 생기고 안 생기고를 떠나서 그 이십 대 젊음 그게 참 예뻐보이는 거죠. 그러면서 반대로 나는 억지로 꾸미려고 해도 잘 안되고요. 늚음이 추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젊음을 아름답게 바라보듯 늙음이 시들어가는 꽃처럼 보이지 않을까? 내가 점점 매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해요. 나는 늘 나 자신을 낭랑십팔세라고 생각하고 사는데, 어느날 거울을 보니 웬 늙은이가 서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한편으로 치열하게 자기를 가꾸는 친구들도 있지요. 

 

최현숙: 근데 그건 노(老) 에 대한 편견일 수 있어요. 쭈굴쭈글 하다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는 거죠. 자본주의가 맨날 팔고 싶어하는 게 젊어지는 건데요. 나이 든다는 것을 안 좋게 바라보는 게 문제라고 봐요.



이주사: 그래요. 나이듦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커뮤니티가 사회적으로 가시화되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소수자'로서 노후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의미일텐데요. 노후를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카르멘: 저는 25세부터 준비를 했어요. 연금보험과 건강보험같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보험이 아홉 개가 있어요. 현재 갖고 있는 재산은 없지만. 그 정도 가지고 노후를 버티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요. 열 번째 보험은 애인이라고 생각해요. 열 아들 안 부러운 애인 하나 옆에 있게 하는 거죠.


홍쌤: 저는 나이 먹어서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나이 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나를 믿어주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술 사준다고 사람들이 오래 붙어있지 않더라고요. 동인련 같은 모임에서 외롭지 않게, 나의 존재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힘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프랜시스: 저는 은퇴하면 동인련 상근활동하고 싶어요. 나이 들면 꼰대가 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입은 닫고, 마음과 귀는 열고, 지갑도 열고. 그럼 좋아하지 않을까요? 어린 친구들 만나면 젊어지고, 커뮤니티에 계속 있으면 나이 들어서 행복할 것 같아요.

또 공부한 걸 써먹으려면 퀴어 스터디를 같이 해보고 싶어요. 포비아들은 주관적이거나 근거 없는 거로 공격하는데 우리는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방어뿐 아니라 우리도 공격할 수 있는 연구를 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커뮤니티 후배들이 저희 세대들보다 급진적으로 싸웠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우리나라 사회가 학교에서 퀴어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못하게 하고 전화하고 팩스 넣고, 우리가 드러내는 것만큼 더 강하게 그럴 거거든요. 지금 젊은 퀴어 세대에서 공개적으로 많이 싸울 준비도 하고 그러려면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자꾸 위축되게 되요. 무지개 심장을 딱 박고, 레인보우 선글라스 딱 끼고 다 우리 시각으로 보이잖아요. 그래야 우리가 당당해 질 수 있고 역사는 발전하니까 충분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싸우고 정치적인 것을 커뮤니티에 모아내고 더 급진적으로 전략을 짜고 그렇게 협력하면 좋겠어요.


최현숙: 제 경우에는 나이 들어서 내가 여전히 살고 싶은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게 유일하게 믿음이고 위안이고 보험이에요. 상저받고 불안하겠지만 저는 편안하고 안락해지면 너무 사는 게 재미가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그래야 살맛이 나는 사람이에요.

저는 프란시스님의 이야기대로 우리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자는 말에 의도를 동의를 해요. 근데 또 역으로 저들의 시각으로 우리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성소수자 운동이 다양해지고 발전했지만 느끼고 있는 갑갑함은 뭐냐하면, 게토화되는 상황이죠. 우리끼리만 모여서 자족하고 파티하고 그런 게 여전히 남아있다는 거죠. 물론 예전보단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엔 드러내는 것 자체가 운동이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뭉치는 게 소중했고 필요했죠. 근데 이제 점점 성장하고 강해지면서 다양화되었으니까요.

제 역할은 계속 경계에 있거나 떠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성소수자 의제를 이 의제가 없는 세상에 어떻게 전하느냐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잠입해서 스며드는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자긍심이 충분히 생기고 나면 저들의 시선으로도 우리를 바라봐야 저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주사: 이제 청중분들 질의 응답 시간인데요. 질문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홍쌤: 제가 궁금해요. 아니 이런 행사에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많이 왔어요?

카르멘: 맞아요. 왜 오셨어요?


청중1: 처음에는 카르멘님이 어떤 이야기 하시는지 듣고 싶어서 왔고요. 궁금한 게 있다면, 현숙님께. 파트너와 동거를 하지 않고 있으신데, 그게 자유로우신 거에요?


현숙: 자유로운 게 좋고 함께 있지 않으니 덜 싸우죠. 저는 제 자신이 더 중요한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동거보다는 자유가 더 중요해요.


청중2: 저는 동인련 페이스북을 보고 오게 되었어요. 서른 여섯 먹은 게이인데, 일곱살 어린 애인과 동거를 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감이 엄습해있어요 경제적인 거에서도 위기감을 느끼고요.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어떤 식으로 존재할까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요.가령 직장도 굉장히 가부장적이더라고요. 결혼을 안 하는 사람에 대한 배제가 시작되고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조언 받고 싶어요.


홍쌤: 게이들은 제 친구들 중에도 결혼에 대한 압박 때문에 되게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돌파를 해요. 계속 궁금해하는 거에요. 그래서 얘기를 했어요. 그 다음부터 그런 질문이 사라지죠. 저는 학교에서도 같은 학년 선생님들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관계의 신뢰성이 문제인데 굉장히 편해졌어요. 잘 받아들이던데요?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열심히 살면 내가 게이라는 게 그 사람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내가 교사로서 일을 열심히 하니 문제가 없을 거라는 자긍심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 부담이 있어요. 저는 잘 사는 게이이고 싶다는 거죠. 저는 아웃팅도 각오해요. 주변에 커밍아웃한 사람에게 아웃팅 되면 같이 싸워야 된다고 하죠. 저는 그렇게 돌파하는 식이에요. 저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삶 열심히 사는 것. 자기 인생에 대해서 준비할 게 있잖아요.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면 좀 괜찮지 않을까요?


이주사: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카르멘: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덕분에 홍대에서 만 명이 퍼레이드 할 수 있었잖아요.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셨던 모든 분들에게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 드리고 싶어요.


홈쌤: 꿈이 있다면 저는 좀 게이답게 살고 싶어요. 물론 게이다운 게 무엇인지 계속 고민이 돼요. 종로에 나가는 건 게이다운 건가? 동인련 나가는 건 게이다운 건가? 하고요. 여튼 사십대 다운 게이, 이도저도 아닌 중년 사십대 아저씨가 안 되었으면 해요.


프랜시스: 여러분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가웠고요.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생각하는 건, 우리 참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거에요. 꿈과 희망을 많이 찾았으면 좋겠어요.


최현숙: 저는 신나게 재미있게,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 재경
    2013.12.31 14:41 [Edit/Del] [Reply]
    이날 너무 재밌었어요! 참석해주신 분들, 준비한 웹진팀원 모두 짱짱!
  2. 곱단
    2013.12.31 20:59 [Edit/Del] [Reply]
    이렇게 멋진 자리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고맙습니다.

    또 만들어주세요
  3. 박시어
    2014.01.04 10:19 [Edit/Del] [Reply]
    정말 가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이렇게라도 만남을 가질 수 있어서 너무 너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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