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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모임

30세 이상 레즈비언 모임 '그루터기' 인터뷰 : 우리 여기 잘 살고 있어요.

by 행성인 2013. 12. 25.

 

인터뷰 한 사람 : 이주사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인터뷰 받은 사람 : 여행자, 코지, 로마 (30세 이상 레즈비언 모임 그루터기)



‘30세 이상 레즈비언 모임 그루터기' 아주 오랫동안 이름을 들어오면서 “어떤 모임일까?”,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그루터기 회원들과 만나고 이야기나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15주년 기념 포럼 행사에 꼭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었죠. 그런데 올해 그루터기가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 가입하면서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답니다. 이때다 싶어 웹진기획팀에 제안해 그루터기 인터뷰를 추진했습니다. 

 

12월 17일 저녁 동인련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는 여행자, 코지, 로마 세 분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사는 이야기, 연애 이야기, 커밍아웃 이야기, 그루터기 이야기… 시종일관 유쾌한 수다가 이어졌습니다. 인터뷰를 승낙해주신 그루터기 회원들과 세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리자 여행자님이 먼저 운을 떼셨습니다.

 

여행자 :  저는 여행자구요. 정체성 확립을 좀 늦게 했어요. 2006년 에요. 제가 지금 만나는 친구가 두 번째인데, 그 전 파트너는 일반인데 친구가 됐어요. 우리 둘 사이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 부담이 되게 큰 친구여서 내가 레즈비언인 것을 받아들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살짝 천형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만난 파트너는 이 친구도 늦게 정체성을 확립했는데도 커뮤니티 활동을 활발히 하는 친구에요. 이 친구는 태도가 어떠냐면 우리가 주변에 친한 친구들에게 축하받자고 얘기하는데 밥사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면서 귀하신 소수자가 지금 시간 냈으니까 다수자가 알아서 시간 좀 맞추라고 해. 이런 톤이에요. 내가 레즈비언인 것 자체를 그냥 축복할 수 있는 관계를 막 시작해서 아주 신난 상태입니다.

 

코지 : 인터뷰 플러스 애인 자랑하는 자리 아니에요?

 

여행자 : 그럴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쪽으로 몰아가려구요. 우리 애인이 오늘 깨알같이 자기 자랑을 하고 오라고 했기 때문에 그럴 예정이야.(웃음)

 

코지 : 안녕하세요. 저는 코지라고 합니다. 올해 불혹의 나이가 됐죠. 몇 밤 자면 또 1이 붙어서 마흔 한 살이 되겠지만. 지금 현재 그루터기 운영진을 맡고 있어요.

 

로마 : 저는 로마라고 하구요. 그루터기는 2008년 10월 정도?... 8월에 아마 가입을 한 것 같구요. 어찌어찌 오래 남아있다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또 레즈비언상담소 회원이기도 해요. 상담소에는 2006년에 가입했어요. 그 전까지는 어떤 카페 활동 같은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루터기가 처음 친목모임에 가입한 경우에요. 



코지님이 보내주신 프로필 사진. '즐겁게 살자'가 삶의 모토라는 코지님의 실루엣!?


이주사 : 세 분 모두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셨군요. 그루터기는 생긴지 아주 오래됐다고 들었어요.

 

코지 : 네. 올해 16년이 됐습니다.

 

이주사 : 간단하게 그루터기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

 

코지 : 질문을 보고 제가 막 찾아봤어요. 끼리끼리라는 단체가 1994년 11월에 발족했는데 그 안에서 회원들이 97년도에 소모임 형태의 친목모임으로 만든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결정적으로 그루터기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상담소에서 그루터기 회원들이 주최하는 세미나 형태의 워크숍에 참여한 것이었어요. 나동나여(나는 동성애자다 나는 여성이다)라는 그 워크숍에 우연히 참석하게 됐는데 그때 그루터기 운영진 한 분이 그루터기 소개를 하셨고 내가 가입해야 할 단체는 바로 저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어떻게 가입하면 되냐고 물어봤더니 고구마 수확하는 날 오면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게 2008년 10월이었어요. 달력에 엑스자 표시를 하고서 그날을 기다렸다가 용인에 가서 새벽부터 저녁, 해질 때까지 고구마 수확을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게 정말 느낌이 좋았어요. 그루터기 고구마 농사를 일다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그루터기에  문을 두드리게 된 분들이 많았어요.

 

로마 :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겐 고구마 농사가 점수를 많이 딴 것  같아요.

 

이주사 : 지금도 계속 농사를 짓고 계신가요?

 

여행자 : 하는 해도 있고 안 하는 해도 있어요. 작년에는 했었구요. 지방에서 농사 짓는 두 회원들이 있어서 그 분들 밭에다가 하는 형태였어요.

 

코지 : 고구마 농사를 10년차에 한 번 했구요. 작년엔 15주년 행사 기금 마련을 위해 고구마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주사 : 그럼 평소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코지 : 저희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하고 있어요. 온오프라인 다 추구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온라인 카페는 거의 사장 위기에 있구요.(웃음. 하지만 카톡 덕분에 회원간 교류는 더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정모하면서 얼굴 보고 얘기를 많이 나누는 상황이에요. 작년에 고구마 농사를 계기로 20대인 특별회원도 들어왔지만, 원래 30대 이상 레즈비언 모임이기 때문에 30대, 40대, 50대까지 연령폭이 다양한 편이에요. 연령이 좀 있으신 선배님들이 아무래도 카페 활동은 어려워하셔서 카페 활동은 많이 활발하진 않아요.

 

여행자 : 저희 활동의 첫번째 목표는 친목인 것 같아요. 우리가 대외적인 활동을 해야하지 않냐는 목소리를 내는 회원들이 있는데, 밖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는 회원들도 있어서 친목을 늘 먼저 두고 있어요. 그럼에도 15주년 포럼을 하면서 의료권 등의 얘기를 대외적으로 다루기도 했어요.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그루터기가 친목, 레즈비언으로서 사회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을 이해받는 단체를 넘어서서 사회적인 연대를 생각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코지 : 올해는 16주년 행사로 원래 운동회를 기획했었는데 회원들의 반응이 운동회는 좀 어려워하시더라구요. 그래서 10월에 캠핑 일정을 잡아서 상담소 회원분들도 몇 분 모셔서  행사를 했어요.


여행자 : 그 전과 다르게 매년 행사를 하면서 타 단체 사람들과 작게나마 연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활동을 하는 회원들도 늘면서 예전에 비해 연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기도 했구요.

 

로마 : 올해부터 무지개행동 회의에 참석한 것도 회원들 간에 회의를 거쳐서 결정했어요. 또 올해 여름부터 산행 모임도 한 달에 한 번씩 하고 있어요. 산행 모임이나 소모임 같은 경우는 오픈해서 조금씩 확장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하고 있어요. 다른 분들하고도 얘기해 봐야겠지만. 동인련도 등산 모임이 자주 있던데 나중에 한번 같이 해요.(흥산회와 그루터기 등산모임의 조인트 산행을 기대해주세요!)

 

로마님이 보내주신 프로필 사진.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다면, 그루터기 등산모임과 흥산회 조인트 산행에 오시면 됩니다:)


코지 : 저희 그루터기가 식구가 많지는 않아요. 회원 가입된 분들 22명이구요. 실제로 나와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15-6명 정도에요. 초창기 멤버도 계시고, 작년에는 특별회원이란 규정을 만들어서 20대도 가입할 수 있어요.

 

이주사 : 모이셨을 때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시나요?

 

여행자 : 얼마 전까진 전 싱글이었으니까 어디가서 애인을 만날까 그런 얘기? (웃음)

 

코지 : 처음에는 일상 얘기를 많이 하구요.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모아지는 방향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문제에요.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늙어갈 것인가가 주된 주제인 것 같아요. 

 

여행자 : 어떻게 하면 같이 늙어갈 수 있을까. 어떤 형태가 되든. 구체적으로 꿈꾸시는 분들도 있구요. 

 

로마 : 저는 이런 얘기도 덧붙이고 싶은데요. 사람 만날 수 있는 통로라든지, 자원이라든지, 기회가 20대와 30대가 확실히 다르거든요. 저같은 경우는 20대에는 아예 생각을 안 했어요. 그루터기 싱글들을 보면 여전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어디가서 만나야할지도 모르겠고, 누구를 어떻게 만날지 모르겠는 답답함, 박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딱히 그루터기의 문제라기보다도 30대 이상의 싱글이라면 대체로 겪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여행자 : 저희는 운영진을 돌아가면서 맡아요. 일을 해야할 게 있으면 모든 사람이 운영진의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있어서 그게 그루터기가 가진 또다른 장점이 아닌가 싶어요.

 

코지 : 예전에는 추천도 하고 했었고, 그런데 어느 해에는 다들 상황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어떤 때는 제비뽑기를 해 본 적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건 안되겠다 우리가 식구도 많지 않은데 다같이 운영진을 하자.” 그렇게 운영진을 번갈아 하기로 했고 지금은 잘 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다들 운영진 마인드가 있구요. 운영진은 회장, 총무가 있는데 다들 전직 총무고 회장이고 해요.

 

이주사 : 개인적으로는 최근 관심사가 어떤 것들이신가요?

 

여행자 : 제 파트너는 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 있어서 이쪽에서 작업을 하고 싶어해요. 그루터기 사람들이 올 초에 집단상담, 몸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엘커뮤니티에서 해보자는 얘기도 많이 하고 있구요. 둘 다 관심사가 그런 쪽이니까. 같이 해 보자고 프로젝트를 적어놓은 것만 해도 서너 가지에요.

 

이주사 : 그루터기에서 그런 프로그램도 자체적으로 기획해서 하시나봐요.

 

코지 : 운영진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크리스님하고 로마님이 운영진을 했을 때는 여러가지 활동들을 많이 했었어요. 저는 주로 놀고 즐기는 위주의 활동을 해요.

 

이주사 : 서로 책임도 맡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같이 할 수 있는 분위기가 균형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코지 : 그리고 대부분 운영진 한번씩 해봤던 분들이라서 뭘 해보자고 했을 때 도와주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에요.

 

이주사 : 그럼 이제 최근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요. 올해 특히 커뮤니티에 이슈가 많았던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 군형법 이슈도 있었고, 김조광수 감독 결혼식도 있었죠. 혐오 목소리가 유독 커지기도 했구요. 삶에서 그런 변화를 느끼시는지, 요즘 분위기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해요.

 

여행자 : 저는 과거 커뮤니티 경험이 없으니까요. 저는 제 자신한테 커밍아웃 하고 나서 바로 가족, 언니들에게 커밍아웃했고, 주변에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들이 이반이 아니기 때문에 오해 내지는 상처가 되는 경우들이 있고 공감대, 지지가 필요해서 그루터기를 찾아왔어요. 지지난 달에 27살 난 남자 조카한테 커밍아웃했거든요. 저는 사회적으로 혐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소수자가 더 많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위협도 커져서 그만큼 더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예전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끔찍한 일들이 많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우리도 세력화됐기 때문에 더 이상은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개인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연대해서 같이 도와줄 수 있는 집단들이 있고. 개인이 고통받는 몫은 여전히 있지만 나아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코지 :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들을 통해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 변화가 시작된 것 같아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드라마도 있었고 그런 소재로 영화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런 게 나올 때마다 반가웠어요. 저는 올해 어머니한테 커밍아웃을 했는데 커밍아웃 하기 전에 나름 밑작업을 했다고 생각해요. 티비에서 그런 내용들이 다뤄질 때 보고 있다가 엄마한테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얘기를 했어요. 엄마한테 커밍아웃 할 때  과거의 그런 부분이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엄마에게 커밍아웃한 뒤에는 세상에 대한 위기감 같은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예전엔 남들이 나의 정체성을 알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들이 많았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엄마에게 커밍아웃한 이후에 무지개행동에 가입해서 참석한다거나 언니네트워크에서 하는 여러 활동에 참석한다거나 하는 것이 훨씬 자유로워졌고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 것 같아요. 그래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를 알고는 있고 귀로 들리기는 하지만 사실 저한테는 크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여행자 : 질문과는 좀 동떨어진 것일 수 있는데 코지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 나 자신에게 내 정체성이 편해지는 것, 특히 주변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전 파트너가 너무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뭘 하자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니까 저도 같이 위축되는 게 있었는데 헤어지고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워져서 제가 좀 편해졌죠. 지금 파트너를 만나고는 더 자유로워지고 당당해져서 정말 개인의 변화가 집단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변화해와서 그런 느낌일 수도 있지만 그런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그루터기 분위기도 조금 바뀌고 있는 게 아닌가 하기도 해요.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그 계기가 15주년이었어요.
 
로마 : 저는 도서관 다니면서 공부를 하다가 화장실에서 중고생들이 하는 대화를 들었거든요. 한 여학생이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 게이라고 했다는 얘기를 아주 스스럼없이 하는데 요즘엔 저런 얘기도 하는구나 했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런 얘기를 입밖으로 낸다는 데 두려움이 컸었고 삼키고만 있고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주제였는데 말이에요. 요즘엔 정보량이 많아져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다는 데서 확실히 사회가 변했다는 걸 실감하죠.

 

코지 : 저는 교사거든요. 학교에서 누구 게이에요, 레즈에요 하는 게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전 그럼 웃으면서 누군가의 성정체성에 대해 인정해주자 하고 웃고 넘어가기도 하고 놀리거나 공격하면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지적하기도 해요. 과거에는 그런 단어도 몰랐었는데 요즘은 그런 정보도 많기도 하고 아이들이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기도 하죠. 

 

여행자 : 나 같으면 한마디 더 덧붙일 거 같애. 그게 아웃팅이고,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조금 해 줄 필요는 있지 않을까. 

 

로마 : 저는 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제 3의 여자 아이가 남자 같았나봐요. 한 아이가 그 아이를 지칭해서 걔 남자 같지 않아 하고 얘기를 하는데 다른 친구가 걔 여자야 라며 남자애 같은 아이가 자기한테 여자라고 말했다는 거에요. 그 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 사람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람의 외양에 상관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 저한텐 남다르게 다가오더라구요. 생각해보면 눈물 찔끔 나는 거였어요. 누가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것에서 감동받았어요.

 

이주사 : 그루터기에는 커플이 많은 편인가요?

 

코지 : 지금은 커플이 반 정도인 것 같아요.

 

로마 : 원래 커플이 많았는데 올해 새로 가입하신 분들이 늘어나면서 비율이 좀 줄었어요.

 

여행자 : 저는 커플이었다가 솔로였다가 다시 커플이랍니다~.

 

이주사 : 함께 사는 분들도 많으세요?

 

코지 : 거의 다에요. 저는 처음으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행자 : 지금은 시작한 지 얼마 안되니까 같이 살진 않지만 같이 사는 얘기를 시작하고 있죠.

 

코지 : 난 부모님하고 인사도 다 했어.

 

여행자 : 나는 내일 가족한테 인사하러 가. 작은 언니한테 맛있는 거 사달라고 했어.

 

코지 : 전 제 애인과 같이 살기 전에 고향에 가서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어요. “같이 이사해서 살려고 해요” 하고 얘기했더니 저희 어머님이 저희 둘을 앞에 앉혀 놓고 “그래. 사람이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같이 사는 동안 아끼고 존중해주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고 혹여 나중에 다른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면 그땐 서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딱 한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거 하나만 부탁한다구요. 

 

여행자 : 나 같은 경우는 제가 가족들한테 커밍아웃했다고 하니까 애인도 자기 남동생한테 커밍아웃했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코지 : 제 애인은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은 상태거든요. 그런데 김장할 때 가서 가족들을 싹 만났어요. 하우스메이트로 알고 계시죠.

 

이주사 : 함께 살면서 순간 순간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으시죠?

 

로마 : 저는 커플이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크리스님, 마고님 같은 경우에 작년 재작년에 한 번씩 수술을 했는데 그때 파트너로서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고 법적 보호자 역할을 하지 못했죠. 주위에 관계를 밝힐 수 없어서 그림자 역할만 했던 것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또 가족수당이라든지 보험..

 

여행자 : 그렇죠. 가족수당, 자동차보험 같은 거 같이 묶는 거…

 

로마 : 해외발령 났을 때 가족으로 같이 갈 수 없는 것도 있고.

 

코지 : 저희 집들이 할 때 그런 얘기를 나눴는데, 주로 지금 얘기했던 것들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여행자 : 지난 번 레즈비언상담소 19주년 포럼 주제도 비슷한 거였지.

 

코지 : 저는 예를 들어 공무원연금이 배우자에게만 승계가 되기 때문에 너무 아까워요. 가족수당도 안 나오고.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미국 같은 경우 이제 동성 커플도 연금 인계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어요. 그 내용을 보면서 그루터기 사람들도 부럽다고 얘기하기도 했죠.


동성 커플도 연금 수급이 가능해졌으니 신청하라는 미국 사회보장국의 공지



이주사 : 최근 동인련 웹진팀에서는 4,50대 퀴어 토크쇼를 개최했어요. 미래에 대한 문제, 나이 든다는 것이 주제였는데 청중으로 5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왔어요. 그 중에 한 20대 레즈비언 친구는 40대 레즈비언을 처음 봤다는 거에요. 저도 특히 40대 이상은 만나기 쉽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로마 : 제가 그루터기 가입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 20대인 분이 느낀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전 그 전에 다른 커뮤니티에서 사람을 만난 적이 없고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는 주로 젊은 레즈비언 상담소 활동가들을 만났거든요. 그루터기 모임을 참가하고 나서 딱 드는 느낌이 길 가는 사람들이, 길에 흔하디 흔한 아줌마들이 다 레즈비언 같은 거에요. ‘뭐야 이런 거였어?’ 내 나름대론 긴장하고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했는데,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 레즈비언이라고 앉아 있는데 안도감과 더불어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코지 : 올해 무지개행동에 참가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저희가 작년에 15주년 건강권 포럼을 하면서 언니네트워크나 살림의료생협 이런 단체에서 몇 분씩 참여를 하셨거든요. 끝나고 소감을 듣는데 어떤 말씀을 주로 하셨냐면, 30대 이상의 레즈비언 모임이 존재하고 그루터기라는 단체에서 이런 주제로 얘기나눌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앞으로도 얼굴을 많이 내미는 단체면 좋겠다는 부탁들을 많이 하셨어요. 아까 여행자님도 15주년 행사를 계기로 많이 바뀌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부적으로 그런 고민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마고님이나 크리스님이 차세기연 활동 등 여러 활동을 많이 하는데 4,50대 레즈비언이 존재하긴 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루터기라는 모임이 있고 우리가 여기서 사회구성원으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운동일 수 있다는 말들이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어요. 우리가 뭔가 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이름 하나 거는 게 뭐 대수냐 했던 것 같아요. 

 

이주사 : 단지 활동만이 아니라 다양한 연결지점들이 살아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바도 그렇고 인터넷 커뮤니티도 단절이 있는 것 같거든요. 

 

코지 : 저는 레즈비언 바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거든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그루터기 모임을 하면서 바에 한번 가보자고 해서 마음을 먹고 라브리스를 향해서 막 달려갔어요. 그래서 올라가려고 하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올라가셨던 선배님들이 쭉 나오시는 거에요. 그래서 왜 내려오셨냐니까 너무 시끄러워서 못있겠다고 하시는 거에요. 전 속으로 나는 구경도 못했는데 하면서 눈물을 흘렸죠.

 

로마 : 나중에 우리가 자체적으로 파티를 만들어야지. 다양한 사람들 초대도 하고.

 

코지 : 전 은평구에 살고 있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은평구에 엘들이 많이 사는 것 같거든요. 다른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 되기도 하고. 얼마 전에 은평구 주민 엘 언니들 모임이 있었어요. 파티 같은 형식으로 음식 나눠 먹고 얘기를 했는데 되게 좋더라구요. 동네에서도 이게 가능하네 싶었어요. 재밌는 질문들 하고 기념사진 찍고 노는데 이렇게 모여서 놀고 늙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루터기도 언젠가는 비슷한 지역에 모여서 그렇게 늙어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 있어요.

 

이주사 : 그런데 춤 추는 곳 말고도 술만 마시는 바도 좀 있어요. 나중에 모임하실 때 가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코지 : 그런데 저희가 술을 잘 안마셔요. 고기 먹고 나면 차 마시러 가거든요.

 

로마 : 너무 건전해요. 사실 그런 재미는 없어요. 

 

코지 : 제가 한 친구를 그루터기에 데려왔거든요. 그리고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말하는 거나 분위기, 이야기 주제 등이 너무 다르다고 하더라구요.(웃음)

 

여행자 : 저는 (그루터기 모임을 통해)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이 지지모임이 생겼다는 점이죠. 그게  장점이라면,  한계는 또 뭐냐면 우리가 엘이라는 점을 빼면 공통점이 크지 않기도 해서 내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은 많지 않다는 점이에요. 아쉽기도 해요.

 

로마 : 그런 부분은 또 판이 커지고 모임들이 많아지면 공통점을 가지고 만날 수 있는 부분이 있겠죠. 시대의 한계인 것 같기도 해요.

 

여행자 :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롤모델 찾는 거 참 당연한 얘기인 것 같아요. 이 질문에 대해 그루터기에서도 같이 얘기나눈 적이 있어요. 한 친구가 30대인데 상담소 활동을 통해 20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기가 롤모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살려고 한다고 얘기했거든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3,4월에 유명한 호주 할머니 반핵운동가 통역을 했었는데 저한테 자신도 20년 넘게 여성과 살고 있다고 얘기하시더라구요. 저한테 자기 존재를 알려주신 게 되게 고마웠어요.

 

코지 : 저는 작년에 언니네트워크에서 주최하는 페미니즘 캠프를 처음 갔어요. 같이 그루터기 활동하는 언니 한 분과 갔는데 그 분은 직장에서도 커밍아웃한 분이라 거리낌이 없었는데 저는 그때까지도 누군가 나의 정체성을 알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제가 레즈비언인 걸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그곳 분위기를 보고 마음이 놓이니까 얘기를 하게 되더라구요.

 

이주사 : 자신이 커밍아웃해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이 늘어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 그루터기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변화한 지점에 대해 조금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

 

코지 : 그루터기에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체성을 늦게 안 사람들이고 첫 커뮤니티가 그루터기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그루터기에 오기 전에는 나를 드러내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고등학교 친구 몇몇 그리고 저희 언니에게 제일 먼저 커밍아웃했는데 그러면서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갈증이 많았어요. 그루터기에 들어와서 나를 숨기지 않고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낙천적이면서 긍적적인 마인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걸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이유로 이렇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로마 : 저는 아까도 얘기했는데 내가 평범한 사람이구나 이런 거에요. 그리고 요즘엔 내가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옛날엔 늘 내가 혼자라는 생각이 컸거든요. 이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혼자고 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립감이 많이 들었는데 그루터기 모임하면서 차츰차츰 나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활동도 하다보니까 열린 부분이 많죠. 

 

여행자 :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에 대한 답으로 넘어가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루터기가 친목모임으로서 같이 늙어가는 가족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개인사적으로 겪는 것들, 밖에서 얘기 못하는 것들을, 예를 들면 제가 전에 동거하는 사람이랑 헤어졌을 때, 사람들이 볼 때는 그냥 같이 살던 친구가 이사를 간 거에요. 그런데 사실 저는 어떻게 보면 이혼같은 큰 아픔을 겪었는데 어딜 가서도 이야기할 수가 없었죠. 그걸 이야기할 수 있는 그룹은 여기밖에 없었어요. 그때 힘을 돼줘서 저도 그루터기에 마음을 더 많이 열게 됐어요. 또 사회적으로는 나이든 사람들이 존재의 증명? 가능하면 우리가 힘이 더 커져서 후배들을 위해 좋은 역할 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코지 : 저 같은 경우는 그루터기라는 단체가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에요. 그냥 편하게, 나이차가 많이 난다는 느낌이 없고요. 제 주변 그루터기 식구들이 제가 느끼는 것처럼 그루터기가 편하고 좋다고 느낄 수 있게끔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구요. 그루터기라는 모임에 3,40대, 50대 엘들이 여전히 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맥이 끊기지 않게, 이제 50대 선배님들이 60대가 될 거고 저도 십년 후면 50대가 될꺼고 이렇게 쭉. 저는 그루터기가 새로운 가족형태라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 받아도 편안한 곳이었음 좋겠어요. 제가 겨울에 해외여행을 가는데 한 달  집이 비거든요. 집에 고양이가 세 마리 있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하다가 로마한테 부탁을 했거든요. 편한 거죠.

 

로마 : 저도 앞에 사람들이랑 다르지 않아요. 다만 그루터기 같은 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저변이 넓어지고 좀더 자유롭게 왔다갔다 했으면 좋겠어요. 또 그루터기 안에서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루터기가 가족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뭘까 그런 얘기도 계속 해 나가고 싶어요.

 

당당한 애인을 만나서 즐거운 미래를 계획하고 계신 여행자님, 쾌활하고 긍정적인 코지님, 조용하지만 단단한 느낌의 로마님과의 유쾌하고 즐거운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우리 여기 잘 살고 있어요”라는 말이 주는 위안과 낙관이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어떤 분들이 오실까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커피를 내리고, 준비를 하는데 “안녕하세요” 하는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무실로 나가자 코지님과 로마님이 커다란 비스킷 상자와 자몽 주스 한 통을 책상에 내려놓습니다. "아이쿠 이런, 인터뷰에 사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되려 먹을 것을 사오시다니!" 하니 코지님이 웃으며 말합니다. “우리가 그루터기잖아요.” 웹진팀원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발행작업 때 먹을 게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늘에, 과일에 다 주다가 잘리고 나서도 그루터기가 남아 쉴 곳이 된다 했던가요. 그루터기가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쉼터로,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를 지켜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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