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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러시아와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의 HIV/AIDS

by 행성인 2014. 5. 26.

종원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러시아의 유명 록커로 성소수자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Земфира(젬피라)가 1999년도에 발표한 ‘СПИД(에이즈)’란 노래의 뮤직비디오다. 이 히트송의 후렴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반복한다. “너는 에이즈에 걸렸어, 그러니까 우리는 죽을 거야…”

 

같은 해에 러시아의 몇몇 에이즈 활동가들은 ‘유로 퀼트 투어(ЕвроКвилтТур)’를 조직했다. ‘에이즈 메모리얼 퀼트(AIDS Memorial Quilt)’는 고인이 된 에이즈 감염인들의 이름과 삶을 기념하기 위해 꾸민 퀼트 패널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어 거대한 국제 프로젝트가 됐다. 1999년에 동구권의 활동가들은 러시아 전역의 9개 도시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라트비아, 폴란드를 순회하며 에이즈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또 HIV/AIDS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이때 그들이 내걸었던 구호가 “살기 위하여 기억하자”였다.

 


1999년 ‘유로 퀼트 투어’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발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니즈니노브고르드, 로스토프나도누, 크라스노야르스크, 바르나울, 비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우크라이나 오데사, 벨라루스 민스크, 라트비아 유르말라,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행사를 개최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중앙아시아 지역은 신규 HIV 감염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가장 주목 받는 지역 중 하나가 됐다.

 


국가별 HIV 감염률을 나타낸 지도. 붉은색이 진할수록 HIV 감염률이 높다는 뜻이다. 유럽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가 가장 붉게 표시되어 있다.


 

구소련 지역의 HIV/AIDS 역사를 살펴보면 다른 지역들과 유사한 점이 적지 않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적 특수성도 발견된다. 소련에서 첫 HIV 감염이 보고된 것은 1985년인데 그 감염인은 외국인이었고, 내국인 중에서 첫 HIV 감염인은 1987년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련 당국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가 1988년에 이르러 HIV 감염인이 30명을 넘고, 또 당시 29세였던 한 여성이 HIV 감염인 중 처음으로 사망하자 소비에트 최고 회의는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됐다. 같은 해인 1988년 말에 소련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엘리스타라는 도시에서 유아 27명과 성인 여성 5명이 집단으로 HIV에 감염된 것이다. 소독이 되지 않은 주사 바늘을 사용한 것이 원인이었고, 이러한 부주의로 인해 볼고그라드, 로스토프 주, 스타브로폴 지방에 있는 병원들에서도 신규 감염이 발생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서구 세계와는 달리 1980년대 소련의 HIV 감염률은 굉장히 낮은 편이었다. 감염인의 숫자가 소련 전국적으로 1000명 이하였기 때문에 심지어 “에이즈는 서방의 매춘부, 노숙자, 동성애자들의 질병”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1년 말 소련이 해체되고 15개 공화국이 독립하면서 단일한 에이즈 관리 체계도 붕괴됐다. 그러나 HIV 감염은 계속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독립국들은 HIV 감염률이 매우 낮다는 안도감을 바탕으로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들을 축소,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총체적 경제 위기 속에서 예산을 축소하기 위해 비용이 많이 드는 에이즈 예방 프로그램들을 겨냥했을 것이다. 그 대가는 엄청났는데, 일부 국가들은 결국 1993~95년에 HIV 감염의 급증을 막아내지 못했고, 특히 우크라이나의 경우 1994~95년 사이에 2개 도시에서만 신규 HIV 감염인이 수천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주로 주사 약물 사용자들이었는데, 주사 약물 사용의 급증 또한 1990년대 초유의 인플레이션 등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상황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 것이다.

 

1995년에는 러시아 최서단 칼리닌그라드에서도 HIV 감염이 급증했고, 이러한 HIV 신규 감염의 급증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계속해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보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러시아 정부는 1995년에 ‘HIV 확산예방법’을 제정했다.

 


러시아 신규 HIV 감염인 수 증가 추이 그래프. 2001년에 사상 최다의 신규 HIV 감염이 발생했다가 점점 줄어들었지만 2000년대 말 이후로 다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통계 자료 출처: http://www.hivrussia.net/stat/index.shtml


 


러시아 누적 HIV 감염인 수 증가 추이 그래프. 1994년에 887명이었던 누적 HIV 감염인 수는 20년 만에 약 8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HIV 감염인의 숫자이며, 자신의 감염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약 130만 명까지 예상되고 있다. 통계 자료 출처: http://www.hivrussia.net/stat/index.shtml


 


러시아의 HIV 감염 경로 추이 그래프.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마약 정맥 주사로 인한 감염이 월등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지역들과 대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관계에 의한 감염의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우크라이나 신규 HIV 감염인 수 증가 추이 그래프. 우크라이나의 신규 HIV 감염인 수는 거의 매해 증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HIV 감염률은 유럽에서 가장 높다. 통계 자료 출처: http://www.antiaids.org/ru/hiv-aids/ukraine/1421/12552


 


동유럽/중앙아시아에서 HIV/AIDS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인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도심에는 에이즈 희생자 추모비 ‘레드리본’이 서 있다. 전광판에 적혀 있는 빨간색 숫자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HIV 감염인의 숫자를 가리킨다. 참고로 우크라이나의 인구는 약 4500만 명이다. 사진 출처: http://worldwalk.info/ru/catalog/1859/gallery/


 


구소련 지역 국가별 HIV 감염인 수(빨간색 굵은 막대)와 성인 감염률(노란색 얇은 막대). 구소련 지역 HIV 감염인 수의 대다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거주하고 있으며, 감염률은 러시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몰도바가 높은 편이다. 통계 출처는 UNAIDS의 2012년도 발표 자료.


 

동유럽/중앙아시아 지역의 HIV/AIDS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붕괴된 공공 의료 체계다. 1차 치료로 권장하고 있는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 이른바 칵테일 요법은 2008년을 기준으로 이 지역 성인 감염인의 약 22%에게만 제공되고 있다고 UNAIDS(유엔에이즈계획)가 밝혔다. 러시아 관료들은 모든 HIV 감염인들이 아무런 부족함 없이 무료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현실은 딴판인 모양이다. 항레트로바이러스(ARV) 약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며, HIV 감염인들은 ‘Перебои.Ру(Pereboi.Ru)’라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ARV 약제 공급에 관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러시아 전국 각지의 HIV 감염인들이 ARV 약제 공급에 관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만든 홈페이지. ‘Перебои(페레보이)’는 ‘정지, 고장, 방해, 중지’라는 뜻이다. 홈페이지 메인에 “침묵은 당신의 건강을 해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편 에이즈 치료제 스타부딘은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 세계보건기구(WHO)가 퇴출을 권고하고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많이 처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5월 12~13일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4회 동유럽/중앙아시아 HIV/AIDS 컨퍼런스에서 러시아 활동가들이 스타부딘을 퇴치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지만 경비원들의 방해가 극심했다.

 

법률도 문제다.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은 최근 HIV 감염인에 대한 입국 제한을 철폐했지만, 러시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투르크메니스탄은 여전히 HIV 감염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러시아의 법률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HIV 검진은 강제될 수 없지만 재소자(형법 제18조)와 입대자(군사 의료 검진에 관한 법규)는 예외이며, HIV 감염인의 입양이 제한(가족법 제127조)되기도 한다. 형법 제122조는 고의로 HIV 감염 시 형사 처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감염 위험에 처하게 할 시 최대 1년형, 감염시킬 시에는 최대 5년형, 2명 이상 또는 미성년자를 감염시킬 시에는 최대 8년형에 처해진다. 행정위반법 제6.1조에 따르면 HIV 감염 경로 및 위험한 접촉 은폐 시 벌금 5백~천 루블(한화 약 1만 5천~3만 원)을 물게 된다. 한편 HIV 확산예방법 제17조는 HIV 감염인의 해고, 고용 거부, 입학 거부, 치료 거부 등을 금지하며 감염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이 조항을 위반하는 호텔, 레스토랑, 식당, 유치원, 학교, 대학이 많으며, 특히 HIV 감염 어린이에 대한 입학 거부 사례가 많은 실정이다.

 

최근 2014년 4월에는 러시아 자유민주당 소속의 로만 후댜코프 의원이 HIV를 포함한 ‘위험한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들의 지문을 수집하여 관리하는 법안을 준비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지문 수집에 거부할 경우 무거운 벌금을 부과하고, 외국인의 경우 추방하고 15년간 입국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의 제정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HIV/AIDS에 대한 러시아 국회의원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례로 보인다.

 

HIV 감염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겪는 차별도 심각하다. 2013년도 UNAIDS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진료 거부를 당한 적이 있는 HIV 감염인의 비율이 러시아의 경우 10%, 몰도바 13%, 벨라루스 18%, 우크라이나는 20%에 달했다.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고용 거부를 당한 경우도 우크라이나는 8%에 달했다. 2012년에 러시아 여론 조사 전문 기관 ‘ФОМ(폼)’이 러시아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HIV/AIDS 인식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HIV/AIDS에 대한 편견과 낙인에 동성애 혐오까지 더해 이중의 편견과 낙인을 경험하는 자들이 바로 MSM(men who have sex with men; 남성과 성관계하는 남성) 감염인들이다. 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러시아의 경우 다른 지역들과는 다르게 주요 HIV 감염 경로는 마약 정맥 주사이며, 이성 간 성관계에 비해 동성 간 성관계에 의한 감염의 비율(HIV 감염인 중 약 1%)은 매우 낮은 편이다. 물론 이 수치는 MSM에 대한 낙인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실제보다 낮은 것일 수 있으며, MSM 중에도 마약 주사자들(조지아의 경우 9%,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12%의 MSM들이 마약 주사를 한다)이 적지 않음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동성 간 성관계에 의한 HIV 감염의 비율이 낮은 것은 워낙에 다른 감염 경로에 의한 신규 감염이 많기 때문인 것이지, MSM들이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HIV/AIDS로부터 ‘안전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크라이나 MSM의 HIV 감염률은 2010년 기준으로 8.6%로 보고되고 있으며(실제로는 최대 15%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몰도바는 4.8%, 러시아는 3.5%, 벨라루스는 2.1% 등이다. 구소련 지역에서 마약 사용자, 성노동자, 재소자 다음으로 높은 감염률을 보이는 집단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의 LGBT 인권 운동가이자 HIV 활동가인 예브게니 피셈스키에 의하면 러시아 대도시들의 MSM의 HIV 감염률은 약 12% 수준이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3년 내에 그 비율은 20%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안전한 섹스’에 대한 인식 제고인데, 러시아 MSM들의 경우 파트너가 1명일 때 콘돔을 항상 사용한다는 비율이 31%였고, 아르메니아의 경우 마지막 성관계 때 콘돔을 사용한 MSM이 1/3에 불과했으며, 벨라루스의 경우 58.2%가 숙취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미·서유럽 MSM 집단의 HIV 유행 초기 현상들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MSM들을 대상으로 한 HIV 예방 프로그램들은 존재하지만, 정부 차원의 정치적 의지와 단일한 전략이 부재하다는 것이 문제다. 사회에 만연한 동성애 혐오와 같은 MSM에 대한 낙인, 의료 시설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MSM 차별, 강력하고 조직적인 호모포비아 세력(기독교, 보수, 극우 민족주의 세력을 중심으로)이 MSM의 HIV 예방에 있어서 최대의 방해물이다. MSM을 대상으로 한 HIV 예방 단체나 LGBT 인권 단체들이 수도나 대도시에만 집중되어 있고, 그나마 있는 단체들도 자원이 부족한 것이 한계점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MSM/LGBT 단체가 가장 많은 곳은 우크라이나(22곳)였고, 러시아에 10곳, 아르메니아에 3곳이 있고, 벨라루스, 몰도바, 조지아(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에 각각 1곳씩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곳은 전무했고,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세계 기금’ 등 해외로부터의 지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최대의 MSM HIV 단체 ‘La Sky’가 제작한 ‘세이프 섹스’ 홍보 동영상

 


러시아 MSM HIV 웹진 ‘Парни плюс(파르니 플류스)’가 제작한 포스터. “나도 이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다. - 막심, 26세”라고 적혀 있다.


 

HIV 예방에 어려움만 가중시키고 있는 동성애 혐오 세력의 ‘동성애=에이즈’라는 괴상한 논리는 구소련 지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에서는 소련 붕괴 후 평균 수명이 줄어들었으며,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민족적 위기’의 상황에서, 또 기독교(정교회) 신자 비율이 증가한 것을 바탕으로 ‘서방으로부터 유입되는 동성애의 선전으로 인해 러시아에 동성애자가 많아져 에이즈가 창궐하고 인구가 감소해 나라가 망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장하는 데에 성공한 듯하다. 2006년 랴잔 주를 시작으로 2013년까지 러시아 연방 주체 83곳 중 11곳이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제정했고, 2013년 6월에는 끝내 연방 차원에서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법’이 제정됐다. 러시아의 LGBT 인권 단체들은 반동성애법 제정으로 청소년 자살과 혐오 범죄가 증가할 뿐 아니라 HIV 감염도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동성애 혐오 세력의 핵심인 비탈리 밀로노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의원은 “HIV는 주로 동성애자들이 감염된다. 따라서 동성애, 마약, 성매매를 근절하고 정상적 가족을 회복시키는 것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2013년 8월에는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한 자유민주당 소속의 미하일 데그탸료프 러시아 하원 의원이 동성애자 헌혈 금지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에이즈 환자의 대다수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주장들은 러시아의 현실과 완전히 다르다. 러시아의 HIV 감염인 중 남성 간 성관계에 의한 감염은 1%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 세력은 HIV/AIDS 상황이 다른 지역들(주로 북미·서유럽)의 통계를 내세우며 에이즈는 동성애자들‘만’의 질병이라고 우긴다. 러시아 정부조차도 에이즈는 “예외 없이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말이다. HIV/AIDS 상황이 러시아와 유사한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혐오 세력은 벌써 10년이 넘게 ‘동성애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늘 가지고 나오는 피켓이 “Гомосексуалізм = СНІД(동성애=에이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동성애 선전 금지법’ 제정 움직임이 활발했으며, 의회에 법안이 상정되기도 했다. 얼마 전 5월 13일에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보수 우파 세력의 압력으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차별 금지 사유 목록에서 쏙 빠졌다.

 


2003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최초의 게이 퍼레이드 반대 시위에 등장한 “동성애=에이즈” 피켓


 


2006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동성애 반대 시위에 등장한 “동성애=에이즈” 피켓


 


2012년 4월 우크라이나 키예프 게이 퍼레이드 반대 시위에 등장한 “동성애=에이즈” 피켓




2013년 5월 우크라이나 키예프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에 등장한 “동성애=에이즈” 피켓


 

러시아 에이즈 활동가 예브게니 피셈스키는 얼마 전 ‘우크라이나 동성애자 연합(Гей-альянс Украина)’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한때 몸을 담았던 단체 ‘전(全)러시아 HIV 감염인 연합’ 구성원들의 동성애 혐오가 극심해 끝내 견디지 못하고 나와야 했지만, LGBT 활동가 중에도 많은 이들이 HIV/AIDS 이슈를 회피하려고만 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HIV 감염인 동성애자들이 이중의 차별과 낙인을 겪고 있다며 관심과 연대를 호소했다. 그는 ‘커뮤니티’가 서로를 경청할 줄 알고, 서로의 요구 사항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정부 차원의 반(反)동성애 정책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성애자든, 양성애자든, 이성애자든, HIV 감염인이든, 비감염인이든 누구나 서로를 혐오하고 낙인찍을 것이 아니라 소통하고 공존하자는 것이 그의 바람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현대의 HIV/AIDS 문제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자세이자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그리고 전 세계)에서 에이즈 희생자를 줄어들게 할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