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하켄 크로이츠

Posted at 2015. 3. 22. 00:07// Posted in 회원 이야기/재성의 고고제이

재성(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매년 6월이 되면, 우리는 거리로 나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성소수자 차별 철폐'를 외칩니다. 대부분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가족들에게까지 비밀로 해야 하고, 직장에서도 정체성으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보안을 유지해야 하죠. 그러다가 1년에 한 번 거리로 나와도 또 이게 녹록치 않습니다. 그 거리에서 우리는 어쩌면 살면서 들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욕과 비아냥을 들어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시드니와 샌프란시스코의 퍼레이드는 그 도시의 대표적인 축제가 되었지만, 세계 6위의 도시 경쟁력을 가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수도권인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리에 서면, 우리가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평소엔 없다가 밤에만 나타난다고 말하는 존재들, 바로 성소수자들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성소수자들 중 일부가, 자신들이 받는 차별의 굴레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기 시작한 것이죠. 오늘의 이야기는, 그 동안 커뮤니티에서 독버섯처럼 자라온 '또 다른 혐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커뮤니티의 또 다른 혐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어떤 혐오는 때로는 일반 사회의 그것을 뛰어넘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에 이르렀죠. 얼핏 보면 성소수자들은 본인들이 사회로부터 차별받는 사람들이기에 적어도 '차별'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한 감수성이 있을 것 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들과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가들은 작게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미지 개선에서 크게는 성소수자 정치 세력화에 이르기까지, 차별 철폐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그 노력의 결과, 커뮤니티에서 정체성으로 인한 비관이나, 에이즈 혐오와 같은 것들은 괄목할 만큼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놀랍게도 차별받는 성소수자들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주노동자'와 '여성'이 그들이죠. 특히 일부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이 두 집단에 대한 혐오는, 가끔 가히 일반 사회의 그것은 애교로 보일 정도로 대단합니다. 인권 운동의 범주를 조금만 벗어나는 순간, 눈에도 쉽게 뜨이죠.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못합니다. 종종 이들은 '한국에서 번 돈을 전부 본국에 송금하는, 내수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한국 경제의 좀벌레들', '범죄의 온상'등으로 묘사되죠. 거기에 한국 특유의 '단일민족' 신화와 손에 그깟 돈 몇푼 좀 쥐었다고 경제력이 떨어지는 타국을 무시하는, 일종의 '선민사상'이 결합하며 이주노동자 혐오는 때때로 무시무시한 '사회적 괴물'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또 수치스럽게도 이 '사회적 괴물'에 가장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건, 바로 일부 남성 동성애자들입니다. 유명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 웹사이트들을 장식하고 있는, 이주민 출신 현직 국회의원과 동, 서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에 대한 혐오성 게시물들을 직시하십시오. 그 밀도는 유명 극우 웹사이트들의 그것에 뒤지지 않습니다.


일부 남성 동성애자들의 여성에 대한 혐오는 더욱 광범위한 곳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의 SNS 타임라인을 장식하는 수많은 여성 비하적 단어들의 향연은 이것이 절대 거짓이 아님을 강력하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여성 비하적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종종 '남성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전통'이라는 타이틀로 미화되기까지 하죠. 그리고, 이상하게도 일부 한국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군대'에 관련된 몇몇 이야기들은 종종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취급됩니다. 특히 '군 가산점'에 대한 이야기들은, 일반 사회보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서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소재로써 더욱 자주, 그리고 더욱 자극적으로 사용되죠.


1940년대, 남성 동성애자들은 그들이 단지 남성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슴에 '핑크 트라이앵글'을 붙인 채 독일의 다하우 수용소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픔을 간직한 핑크 트라이앵글은 전후 성소수자 자긍심의 상징들 중 하나로써 새롭게 부활했죠. 하지만 2010년대 한국에서 여전히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성소수자, 특히 일부 남성 동성애자들은 또 다른 누군가, '이주노동자'와 '여성'을 그들의 제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의 가슴 속에는 '핑크 트라이앵글'이 있나요, 아니면 '핑크 트라이앵글인 척 하는 하켄 크로이츠'가 있나요. 아주 불편한 이야기들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화려한 퍼레이드와 멋진 파티, 그리고 수많은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들과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가들의 수고 뒤에 가려진 커뮤니티의 민낯들 중 하나일 수도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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