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길을 헤매다
보충수업을 들으며 방학 같지 않은 방학을 보내던 2월 어느 날, 친구 무비스군이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바로 무지개학교 놀토반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작년, 부산에 있을 때 활동하던 커뮤니티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많이 접했지만 참가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서울에 있으니 나도 청소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굉장히 설렜다.
하지만 14일, 사무실을 찾기 전까지는 정말이지 위화감 투성이였다. 한성대역 6번출구‘쪽’이라고만 적혀있는 웹자보하며, 아무리 전화해도 전화기가 꺼진 상태인 0505로 시작되는 이상한 전화번호 등은 여러 가지로 의심스러웠다. 심지어 무비스군은 혹시 납치범들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었다. (새우잡이 배에 팔려갈지도 몰라, 하면서 안절부절못했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웃긴다!)
똑같은 길을 빙빙 돌다가 약속시각인 2시가 되어버렸고, 우리는 결국 근처 PC방에 들어가 동인련의 다른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Part 2. 2월 14일, 첫 수업
류찬님의 도움으로 겨우 놀토반에 합류한 우리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영화 ‘하지만 난 치어리더인걸’을 시청했다.
나는 그 동안 자신이 성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레즈비언의 사랑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두 여주인공의 아름답고 멋진 사랑에 감동받았고, 내가 속해있는 위치인 남성 동성애자나 양성애자의 사랑에 한정되어있던 사고도 여성 동성애자, 더 나아가 트랜스젠더의 범위까지로 늘어났다. 주인공들 같은 멋진 사랑은 하고 싶지만, 그 이상한 집 같은 곳은 절대 가고 싶지 않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이유로 동성애자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것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받은 효과 없는 치료과정 중에 나왔던 질문이었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과연 이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의 경우는 이성보다 동성에게 더 끌리는 현상은 어느 순간부터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굳이 원인을 찾으라면 그럴듯한 무언가를 제시하곤 했지만, 그건 단지 ‘도움이 된(?)’요소일 뿐이었다.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그런 질문은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 우리는 다음 수업 안내를 받기 위해 연락처와 닉네임, 그리고 간단한 소감을 적어냈다. 수업은 끝났지만,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보내던 게이소년에게는 너무나 반가웠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으니까.
Part 3. 3월 14일, 두 번째 수업
우연히 이 단체를 알게 되어 2월에 무지개학교 놀토반 수업과 외출 - 미술관 편에 참석하면서 아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단체에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월 무지개학교 놀토반을 알리는 웹자보가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홍보의 효과는 대단했다. 2월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기다리는 동안 계속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몰려왔다. 2월보다 훨씬 알찬 수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당시 ‘단영’님 일로 인해 사무실 내 분위기가 우울함으로 가득 찼고, 스탭분들도 2월에 보였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약간 어둡고 지친 모습이었다. 나의 성격상 뭐라도 해서 사무실내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싶었지만, 일단은 분위기에 동화하는 쪽을 택했다.
3월 수업도 시작은 자기소개였다. 제비뽑기로 짝을 정하고 질문과 답변을 통해 주어진 질문지를 채운 뒤 사람들에게 자신의 짝에 대해 소개하는 형식이었는데, 나는 2월에도 함께했던 친한 친구 추억군과 짝이 되었기 때문에 질문지는 쉽게 채울 수 있었다. (이상하게 나는 제비뽑기를 하면 항상 친한 사람과 짝이 되는 것 같다. 4월 외출 - 벚꽃놀이 때에도 무비스군과 같은 번호를 뽑아서 도로 넣고 다시 뽑아야했다.)
소개가 끝난 다음에는 단편소설집 ‘앰 아이 블루’ 중 일부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눈으로만 읽거나 한 명이 읽어주기보다 모두가 조금씩 읽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모두 읽고 나서는 그 내용에 대해 자유롭게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들 적극적이었고, 각자가 모두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한 마디도 제대로 못 꺼냈다.
마지막으로 ‘램프의 요정’이라는 영화를 시청했다. 2월에 봤던 ‘하지만 난 치어리더인걸’의 주인공이 레즈비언 청소년이었다면,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게이 청소년이었다. 비극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퀴어영화가 많은데,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에 마지막부분도 나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는 사람들의 말문을 닫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책을 읽은 뒤에는 꽤 많은 대화가 이루어졌는데, 영화를 보고나서는 앞의 활동만큼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혹은 다들 피곤한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비슷했던 것처럼 끝도 비슷했다. 연락처와 소감을 적어내고, 다음 활동에 대한 안내,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 전의 즐거운 잡담. 하지만 2월에 비하면 약간 더 발전한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엔 좀 더 멋진 모습을 갖춘 무지개학교 놀토반이 되길 바란다.
우주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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