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성소수자 인권학교 4강은 바로 이주노동자 관련 강의였습니다.  먼저 박진우 이주노조 사무차장님이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이주노동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요즘 시대에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한 곳에만 사는 경우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주"란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7~80년대 대량해고가 일어나고, 농작지 면적이 줄어들면서 도시로, 외국으로 강제된 이주를 말합니다. "죽음의 바다가 된 지중해" 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난민 신청자는 약 2천여명 가량이며, 이 중 허가는 5백여 명만 나온다고 합니다.

 

강연에는 한국 이주노동자의 역사도 소개되었습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등으로 3D업종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강남 등지에서는 비합법적으로 필리핀 출신 보모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91년 산업연수생 제도가 마련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이들은 저임금 등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였습니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생기면서 학생 아닌 노동자로, 즉 근로기준법에 따라 이들의 위상도 (형식적으로나마) 변화합니다.

 

2008년에서 2012년까지 내국인의 산재 발생률은 줄어들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법적으로 차별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지켜지지 않습니다. 열악한 기숙사에서 김치, 라면만 제공받는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직장을 맘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고용자가 보복으로 이탈신고를 해서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미등록체류자가 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무단결근, 혹은 아픈 경우에도 이탈신고를 받습니다. 직장에서 나온 후 3개월 내 다른 직장을 찾지 못해도 이탈신고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사장님이 맘대로 계약 파기를 하거나, 사장이 3일 내에 사업장변경절차/체류연장을 안 하는 경우에도 이들은 미등록체류자가 됩니다. 강연에는 최초의 미등록체류자도 언급되었습니다. 중국동포 노동자였는데, 이 사람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려다가 걸려 벌칙금을 내야 했는데 너무 비싸 투신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이주노동자의 역사와 현실에 이어 노동조합 설립 투쟁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주노조 설립과정은 10년에 걸칩니다. 법정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노동부는 신청 1달만에 서류보완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왜 노동조합이 필요할까요? 박진우씨는 개인이 요구하는 것과 노동조건을 바꾸는 것은 다르다면서 "Union is strength"를 강조합니다.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은 결국 전체 노동자 권리 보장과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하지만, 실상 내국인이 일하는 것과 이주민이 일하는 일자리 자체가 나눠져 있고 임금도 나눠져 있는 상황은 분리만 초래할 뿐입니다. 나아가 미등록이주자는 4조 2천만원의 생산 증대와 더불어 2조 5천억의 소비 간접세를 냅니다. 이들은 세금을 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싸우고, 함께 권리를 찾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원옥금씨는 2004년부터 이주여성들이 늘어났고 이들이 이주노동자와 연대하고 있음을 들려주었습니다. 농업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 63조로 인해 휴일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루에 12시간도 넘게 일을 하는데 인정되지 않습니다. 출석체크를 적어놔도 객관적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주거 문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컨테이너/비닐하우스에서 자게 하고 주거비를 월급에서 공제하면 남는 돈이 없습니다. 이에 강연자는 거주 문제에 대해 공공기숙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5강은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님이 빈곤을 주제로 강연해주셨습니다.

 

빈곤이란 이미 스스로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우리나라는 빈곤과 불평등이 함께 증가합니다. 다수 국민의 빈곤화, 소득불평등 심화가 IMF 이후 계속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는 노동소득 분배율이 떨어지고 자산격차가 늘어나는 수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노동자 내부 임금불평등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빈곤의 상황에 이어 사회안전망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었니다. 사회안전망은 1차 사회안전망(사회보험)과 2차 사회안전망(공공부조)가 있다고 합니다. 사회보험은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두레나 계같은 개념입니다. 2차 안전망은 우리사회 모두가 빈곤해진 사람의 순간, 즉 최종적 빈곤의 순간에 돕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2차 안전망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61년에 만들어진 생활보호법을 대체하기 위해 90년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IMF 이후 실직노숙자, 해고 후 채 6개월이 안된 사람들이 노숙자 중 60~70%였다고 합니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개인의 노력여부와 상관 없이 일할 기회를 구할 수 없었고,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 만들어진 최저생계비란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정의되었고, 동시에 수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권리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최종적 국면의 빈곤에 닿은 사람에게 복지 혜택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초생활보장법이 존재하지만 자산, 근로능력, 부양의무자 등 여러 이유로 수급 받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빈곤상황이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이후 기초생활수급자 숫자는 지속적으로 줄었습니다. 2009년 통합전산망이 만들어지면서 부양의무자와 관계가 단절되어도 수급자는 부양의무자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빈곤을 인정받지 못한 상황은  2009년 이후 많은 수급자들의 자살로 돌아왔습니다.
 
빈곤현실에 이어 한국의 빈민운동의 역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도시빈민이 생기면서 토막민, 화전민, 도시노동자들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한국 전쟁 이후 농민들이 도시로 오면서 도시빈민의 수적 증가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경기도 광주대단지 사건은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최초의 도시 빈민 저항이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청계천변 빈민촌 거주민들의 대규모 강제이주와 투쟁이 있습니다. 이런 투쟁은 80년대에도 계속 일어났고,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거치면서 노점상 단속에 대항해 대규모 노점상 결의대회가 결성되었습니다.

 

 

 

현 정권은 "비정상의 정상화" , "복지는 나태한 국민을 만든다" 등의 얘기를 하며 빈곤의 범죄화를 가속화시킵니다. 구걸행위를 금지하고 부정수급 근절을 목표로 세웠지요. 사실 부정수급은 모두 요양병원 병원장, 아동시설 원장 등 복지 생산자의 부정수급, 즉 권력형 부정행위가 양적 우위를 점합니다. 수급자의 부정수급은 극히 미미했음에도 마치 빈곤한 사람들이 부정수급을 받는 것처럼 프레임화합니다. 이는 복지를 "가난한 이들"에게만 제공하는 것으로 왜곡할 뿐입니다. 복지의 질을 하락시키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사회가 이들을 책임져야 하나"라는 프레임 아래 복지급여를 받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무책임하다고 치부합니다.

 

빈곤사회연대의 결성은 2001년 최옥란 열사로 소급됩니다. 최옥란 열사는 노점상을 했고, 중증 장애인이었으며 싱글맘이었습니다.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빼앗겼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월 26만원, 장애수당 2만원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노점을 했지만 동사무소에서 수급권을 빼앗겠다는 말에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에 지지자들이 기초법 개정을 위한 공대위를 결성했고 2004년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연대로 출범, 2008년 빈곤철폐를위한사회연대(빈곤사회연대)가 결성됩니다.
 
두 강의를 통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잘 생각하지 않는 이주노동자, 빈곤문제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활동경험을 나누며 현장의 환경이나 관련 정보들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슈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활동의 고충과 당사자들의 삶을 나누는 자리라는 점에서 교육의 중요함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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