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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는 사회 그리고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반올림의 투쟁을 지지하며

by 행성인 2016. 1. 22.

소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강남역 8번 출구 삼성 사옥 앞에 ‘반올림’의 작은 농성장이 꾸려져 있다. 지척에 출근하는 사람으로서 꼭 들러야지 마음먹었지만, 막상 혼자 두드리고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야근으로 인해 '221인의 방진복 선언'도 놓치고, 도시락 연대를 기다린다기에 언제 몇인분이나 준비할지 물어보려다가 머뭇거리곤 했다. 그러다 마침 행성인에서 연대 지지 방문을 한다기에 조금 긴장한 채로 따라 나섰다.

 

반올림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2013)과 <탐욕의 제국>(2012) 이야기가 한창일 때 그 영화들을 외면했고,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도서는 의무감에 구매했으나 채 펴보지 못하고 오래도록 집안에 꽂아놓기만 했다. 타인의 고통을 보는 일이 힘들다. 언론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집회에서 황상기 님의 얘길 들으며 혀를 차면서도, 흔한 우리나라 대기업의 행태 아닌가 했다.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함으로써 사회가 바뀐다는 것에 대한 감각이 무뎠다. 타인의 고통과 인명에 대해서도 무디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IT 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고 얼리아답터라는 사실은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삼성 메모리를 최고로 알았고, 신형 갤럭시 기사를 챙겨봤다. 오늘날 IT 업계의 제품과 인프라에 사용되는 숱한 삼성의 부품들, 그 가격과 성능은 유해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빚지고 있는가. 그들이 입는 방진복은 한 노동자의 표현대로 '사람으로부터 부품을 보호할' 뿐이다. 시민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는 사회에서 그런 일은 흔하다. 매장에는 자살자가 속출하는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만들어지는 제품 같은 것들이 생활의 편의를 포장하며 진열되어 있다. IT 기술의 그림자에 대해서는 논할 것이 지천이다. 여기 어떤 이들이 내가 누리는 것들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다가 직업병을 얻었다는 것과, 그것에 대해 제대로 보상과 사과를 받지 못했으며, 삼성의 행태를 매뉴얼 삼아 매 순간 우리 사회의 누군가 재차 그런 과정 속으로 밀어 넣어지고 있다. 악순환이 계속됨에도 현실을 바꾸기 위해 현장에서 인내하고 분투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인근으로 출근을 시작한 이후 삼성 반도체 노동 이슈에 대해 잘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반올림 투쟁 9년 째인 지금 상황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삼성에 무엇을 더 내놓으라는 것이냐며 반올림을 윽박지르는 기사가 언론에 버젓이 올라온다. 반올림의 활동이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피해를 입힌다고 생각할지라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그 내용들은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 직업병 인정을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수차례 사과를 했다는 주장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주장이 오버랩된다. 공익적 목적을 배제한 채 단지 한쪽이 많이 양보했으니 포기해야 한다며 당사자간 합의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접근도 있다. 더불어 반올림에 대한 공격의 시선들은 최근 영화 '나쁜 나라'에서 특별법 제정의 근본 목적인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제쳐두고 합의의 원리만을 이야기하던 정치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오히려 생존자와 희생자들에게 떡고물이 아니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듯 하다. 공감의 부재 혹은 도덕적 인상을 오염시키는 낙인조차 이미 수없이 많은 곳에서 보아 온 것이라는 사실이 답답하고 화난다.

 

 

반올림 노숙 농성 100일 연대와 지지의 목소리

사진 출처: 반올림 페이스북 페이지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집회용 물품인 비닐로 덮은 농성장에 기어들어가, 춥지만 아득하단 생각을 하며 다과를 건네받았다. 피해자 가족분들 앞에서 모든 것이 조심스런 가운데, 무지개 농성단과 반올림이 작년과 올해 각각 수상한 이돈명 인권상이 잠시 화제가 되었다. 조심스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전문가들 앞에서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 창피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연대가 그렇게 엄청난 지식과 사려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는 기사의 저자들보다 더 정확히 아는 당사자들이 여기 있고 도움을 주는 방법은 안내를 따르면 된다. 그 이상은 마음이다. 혼자 농성장을 찾아간다면 뭘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할 때 한 활동가가 해준 조언을 떠올렸다. '가는 것이 중요한 거야.'

 

좋은 말씀만 듣고 왔다면 자기 만족으로 그쳤을지 모른다. 연대활동이 있을 거라곤 짐작했지만 그것이 이어말하기일 줄이야. 언젠가 해야 할 때가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첫 발언 데뷔가 강남역 사거리 그것도 삼성 사옥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거리의 행인을 상대로 하는 것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 덕분에 잠시 필름이 끊겼다. 아마도 혹시라도 어딘가에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 발언 내용이 올라온다면 나의 새로운 흑역사 하나가 만들어지는 셈이겠지만, (그리고 그 와중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약간'이란 표현을 아직도 대단히 후회하고 있지만) 그래도 연대한답시고 놀고만 오진 않은 것 같아 조금 다행이다. "삼성에 제대로 된 보상과 책임있는 사과를 요구합니다!"

 

 

문화제 - 방진복이 하얗게 빛나는 밤에

사진 출처: 반올림 페이스북 페이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는 사회 그리고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반올림의 투쟁을 지지하며, 꼭 승리하길 바란다. 앞으로도 기회 닿는 대로 함께할 생각이다. 아, 그리고 저녁에 처음으로 방밤(방진복이 하얗게 빛나는 밤에) 문화제를 접했는데, 굉장했다. 다음에 꼭 한번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