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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레즈비언과 게이도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by 행성인 2016. 1. 30.

노마(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보통,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 세 가지는 직업에서의 성공, 원만한 사회생활, 그리고 가족이다. 셋 중 하나라도 삐걱대면 비상에 걸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에서 문제가 터지는 것이 일상이지만. 나는 나의 성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시절에는 당연히 세 가지 모두 이룬 삶을 상상했지만 동성애자라 확신한 후부터는 그게 다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계적으로 동성혼 제도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두 남자가, 두 여자가, 그리고 성별 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인간들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상상이 어렵지 않은 건 나 뿐이 아닐 거다. 아직 한국에는 파트너십이나 동성혼 제도가 없으니 부부는 동거의 형태로만 살았고 이것은 한 쪽이 죽으면 아무 기록없이, 아무도 모르게 관계가 끝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렇게 없다시피한 기반 위에 생긴 가족은 힘든 상황에 불안정하기가 쉽고(물론 하기 나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면 되지 안정성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건 사람 나름이겠지만 내 이유는 이렇다. 나는 내 부모세대가 이룬 가족을 똑같이 재현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재현하고 싶은 가족이란 부부와 아이들. 이렇게 이루어진 가족이다.

LGBT의 둘째라면 서러워할 능력인 피임력은 ‘아이’를 이성애자만의 전유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또한 아이라면 당연히 남성과 여성 두 사람이 사랑과 애정으로 키워야 하는 것으로 한 명이라도 없으면 정서적인 발달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 여겨졌다. 이렇게 이성애 패러다임에 쩔어있는 가치관 외에도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들, 예를 들어 게이부모를 가졌다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든가, 주위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게 되는 등의 아이가 겪을 문제, 그리고 결혼제도가 없기 때문에 부부 중 쪽만이 양육권자가 되어 생기는 법적 문제들로 인해 한국의 LGBT들은 양육을 생각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기록상)부터 전세계의 많은 수의 LGBT 부부들이 입양을 시작했고 그에 대한 모든 심리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 소아과학적 측면의 임상 연구의 결과는 부부의 성적 지향성은 아이의 감정적, 사회심리학적, 행동적 적응력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밝힌다.

이 글에서는 미심리학회의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위원회(CLGBC, Committee on Lesbian, Gay and Bisexual Concerns)와 아동, 청소년, 가족 위원회(CYF, Committee on Children, Youth and Families), 여성 심리학 위원회(CWP, Committee on Woman in Psychology)의 협동 간행물 ‘레즈비언, 게이 부부의 육아’를 읽고 요약한다.

원문  https://www.apa.org/pi/lgbt/resources/parenting-full.pdf

 

동성 부부

동성 부부의 양육에 대한 흔한 스테레오 타입들은 그 근거가 없다. 동성 부부의 양육에 대한 초기 연구는 전문직, 중산층에 한정되어 있지만 최근 들어 더 넓은 민족 구성으로, 더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배경의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중이다. 심리학자, 정신의학자, 사회학자들은 더 이상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지 않는다. 미국정신의학회는 1974년에 “동성애”를 정신병 분류에서 제외시키고, 동성애자들이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사회적 능력과 직업적성에서 이성애자들보다 떨어진다는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것은 30년이상 심층적인 연구를 한 결과이고 동성애 지향성이 정신적 부적응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것은 양육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다.

레즈비언과 게이부부가 양육자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레즈비언 부부는 집안일 분담에 있어서 그 어느 집단보다도 공평한 경향을 보이고 따라서 만족스러운 부부관계를 유지한다. Johnson, O’Connor의 256명의 동성부부에 대한 연구에서는 동성 부부의 훈육 방법이 대조 그룹인 이성 부부의 훈육 방법보다 훨씬 덜 폭력적임이 발견되었고 아이의 건강, 심리 상태에 대한 인식도는 동성 부부가 훨씬 높음이 발견되었다(Flaks, Fischer, Masterpasqua, and Joseph, 1995).

양육권자 지정 판결과 입양 청구 소송에서 판사들은 동성부부의 양육에 대해 크게 3가지 우려를 표하며 입장을 밝혔다. 첫 번째는, 아이의 성정체성 발달이 저해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성별 정체성의 발달이 저해된다거나 성 규범을 배우지 못해서 레즈비언 부부에 의해 길러진 여자아이는 레즈비언이 되고 게이부부의 남자아이는 게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성정체성이 아닌, 성격이나 행동 등 일반적인 아이의 발달에 중요한 사항들에 대한 것이다. 동성 부부의 자녀는 스트레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한 부적응이나 행동 장애 같은 발달상의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이가 친구들에 의해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기와 엄마

 

이에 대해 보고서는 성 정체성의 세가지 요소인 성별정체성, 성 규범성, 성적 지향성을 추적한다.

1. 성별정체성

성별 정체성은 자신이 남성 혹은 여성 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레즈비언 부부의 아이의 성별정체성 발달은 이성 부부의 아이의 패턴과 같게 나타났다.(Green, 1978; Green, Mandel, Hotvedt, Gray, &Smith, 1986; Kirkpatrick, Smith & Roy, 1981)

2. 성 규범성

레즈비언 엄마와 이성애자 엄마의 자식들 사이에서는 선호하는 장난감, 주로하는 활동, 관심사에 차이가 없었다. Bem Sex Role Inventory(BSRI)에서 24명의 아이들(12명은 이혼 레즈비언의, 12명은 이혼한 이성애자 여자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두 부류의 남성성, 양성성은 차이가 없으나 여성성은 레즈비언의 아이들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Green과 그의 동료들은 1986년에 레즈비언과 이성애자 여성의 자식을 인터뷰했고 두 부류가 선호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캐릭터, 게임과 장난감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관찰했다.

3. 성 지향성

모든 연구에서 동성 부부의 자식들의 대다수는 이성애자로 정체화함이 드러났다.

4. 그 외 다른 인격 형성 요소들

분리-개별화 척도 (Steckel, 1985, 1987), 정신의학적 평가 (Golombok 등, 1983; Kirkpatrick 등, 1981), 행동 발달 (Brewaeys 등, 1997; Chan, Raboy 등, 1998; Flaks 등, 1995; Gartrell, Deck, Rodas, Peyser, & Banks, 2005; Golombok 등, 1983, 1997; Patterson, 1994a; Tasker & Golombok, 1995, 1997; Wainright 등, 2004), 성격발달 (Gottman, 1990; Tasker & Golombok, 1995, 1997), 자아수용 (Golombok, Tasker, & Murray, 1997; Gottman, 1990, Huggins, 1989; Patterson, 1994a; Puryear, 1983; Wainright 등, 2004), 통제성 (Puryear, 1983; Rees, 1979), 도덕적 판단능력 (Rees, 1979), 학교 적응력 (Wainright et al., 2004), 지능 (Green et al., 1986)면에서 동성 부부의 아이가 뒤떨어지는 면이 전혀 없음이 밝혀졌다.

이 모든 연구는 동성 부부의 양육이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Gartrell과 그녀의 동료들은 2005년의 연구에서, 혐오성 발언을 마주한 10살 아이들이 화, 분노, 슬픔을 느낀다는 것과 그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행동 문제를 생기는 것을 관찰하였다. 또한 부모의 성정체성에 대해 아이에게 중요한 어른들(선생이나 친척)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아이의 심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이 80쪽 가량의 보고서에는 동성부부의 양육이 어떻게 연구가 되었고 그 연구결과와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를 상세하게 케이스별로 정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결과 중 몇 개만 뽑아 정리했고 아직까지도 계속 연구되고 있는 분야인만큼 무수히 많은 자료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동성부부의 양육이 ‘부부가 동성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결과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혐오 세력은 동성 부부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말하지만 실제 동성 부부의 자식들은 혐오성 발언, 동성애 차별적인 분위기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미첼과 카메론과 딸 릴리

이미 전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수의 lgbt 가족들이 자식을 입양하고 있다. 아직 사회적 시선이 심하고, 우리 세대에서 결혼이 가능할지조차 의문인 우리나라에서 무엇을 바라겠느냐만은, 그래도 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L이든 G든 B든 T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집안에 아이가 자랄 수 있는 그런 환경. ‘모던패밀리’라는 미드에 보면 게이부부 미첼과 캠이 딸 릴리(한국인 배우!)를 입양해서 키우고 잘 산다. 우리나라에도 하루빨리 그런 일이 가능한 토양이 생기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