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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우리의 존재와 권리가 평등하게 존중받기 위한 이 싸움을 지금 여기에서 바로 다시 시작 합니다

by 행성인 2016. 5. 26.

호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공동운영위원장,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편집자 주: 오늘 5월 26일 오전 11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한국 첫 동성결혼 신청사건 각하 결정에 관한 당사자/변호인단/인권단체 입장 및 향후 계획 발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발언한 호림 활동가의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동성커플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2016년 현재 한국사회에서 제도로 부터의 배제로 인해 불안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성소수자 시민의 실존의 문제입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이번 결정은 모든 시민의 평등한 권리와 정의를 수호해야 할 사법부의 책임 방기입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가로서 그리고 저 역시 혼인제도의 바깥에서, 사랑과 돌봄, 헌신을 약속한 동성 배우자와 4년째 함께 살고 있는 성소수자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결정에 유감을 표합니다. 그리고 사법부가 동성결혼을 먼 미래로 유예하지 않고, 하루빨리 보장할 것을 촉구합니다.

 

결정문은 이 사건의 양 당사자가 평생 동안 사랑하고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며 살아갈 것에 합의하였고, 양가 가족 및 친지를 초대해 이들 사이에 그 합의가 성립되었음을 확인한 후 이를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의식을 치렀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상대방에 대하여 동거나 부양을 요청할 권리", "의료관계에서 입원 수술 등에 적법한 동의를 하고 사망 시 장례를 주관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과연 사법부가 추구해야 할 정의에 부합하는지, 헌법 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논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정문은 "정당한 법률적 혼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신청인들의 입장에 공감이 가는 바가 없지 아니하고, 신청인들이 처한 상황이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라고 마치 이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하는 데 본인들의 역할과 책임은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짐작컨대 혼인이 발생시키는 권리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면 다룰 수록 혼인제도에서 동성커플을 배제하는 것이 부정의하고, 불평등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건의 당사자들과 다르지 않은 약속을 나눈 이성 커플에게 당연한 권리들을, 왜 이들은 단지 동성커플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장받을 수 없습니까? 이것이 단지 사법부가 안타까워만 할 일입니까?  법원이 이런 점들에 대해 제대로 논의했더라면 본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정의와 평등에 반한다는 사실을 폭로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배우자가 아플 때 보호자의 역할을 하고, 간호를 위해 휴직을 하거나 업무시간 조정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배우자와의 이별이 삶의 근간을 흔들지 않도록 하는 것,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그의 장례를 주관하고 애도의 시간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로 인해 불필요한 슬픔과 고통들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 배우자가 동성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들이 유예되거나 부정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주류 학계의 보수적 견해와 국민적 합의를 핑계로 입법기관에 떠넘겨 져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사법부가 해결할 수 있는, 해결해야만 하는 성소수자 시민의, 동성커플의 삶의 문제들입니다.

 

저는 더 이상 제 애인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걱정하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불안하고 위태로운 토대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의식하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는 저의 예외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이는 한국에 살고 있는 동성커플들이 공유하는 부당하고 불필요한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에 헌신하며, 서로를 돌보고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즐거움을 나누며 보내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며 살기 위해, 우리는 동성 커플의 결혼할 권리를 위한 싸움을 이어나갈 것 입니다.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고, 이 것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동성 커플에 대한 파트너십 제도를 시행 중인 지역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만에서는 올해 초 동성결혼의 지지를 선언한 최초의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이 당선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이번 서울서부지방법원의 동성결혼 사건에 대한 각하 결정은 너무 늦게 도착한, 동성 커플의 권리 보장을 위한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할 것 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우리의 삶이 제도에서의 배제로 인해 어떤 불안과 위태를, 그로 인한 불필요한 슬픔과 고통들을 예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혼인평등은 결혼이 발생시키는 모든 권리와 의무의 총합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야기 할 것 입니다. 동성결혼의 법제화는 동성커플의 실존적 삶에 대한 법적 확인이자, 성소수자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고 존엄한 시민권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공적 선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권리가 평등하게 존중받기 위한 이 싸움을 지금 여기에서 바로 다시 시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