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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너무나도 그저 그런, 그래서 더욱 특별한 '소소한 결혼식' 후일담

by 행성인 2019. 7. 3.

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소소한 결혼식 청첩장 이미지

 

 

소소한 결혼식

 

2019년 5월 25일, 행성인의 오랜 회원인 곱단과 상임활동가인 나, 오소리의 꿈만 같았던 ‘소소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 우리는 연애 7년차를 끝으로 부부 1년차에 돌입했다.

 

나에게 결혼이란, 성소수자로 정체화하기도 전 어렸을 적부터의 로망 중 하나였다. ‘나는 평범한 결혼식을 하진 않을 거야, 특별하고 재밌게 해야지!’ 막연했던 꿈은 정체성과 만나게 되면서 ‘평범함=특별함’인 결혼식이 되어버렸다.

 

소소한 결혼식 초대 문구

 

일견 평범한 청첩장이지만, 우리의 지인들에게는 그저 평범하게만 다가오진 않았나보다. 청첩장을 받고 초대 문구를 읽으며 눈물을 훔친 사람들이 많았다. 그 마음 하나하나 헤아려볼 수는 없지만, ‘성소수자에게도 결혼은 가능한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내가 가진 결혼식의 목적 중 하나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혼은 실전이다!

 

하지만 결혼식을 준비하는 초기 단계부터 걱정이 앞섰다. 결혼반지, 예복, 식장 대관 등 이성애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웨딩 산업 속에서 불이익을 당하면 어떡하지,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아예 거부를 당하지는 않을까?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성소수자 배제적인 사회인지 뻔히 알고 있고, 활동가로서 차별/혐오선동세력에 익숙하지만, ‘거부’란 언제나 두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거부가 두려워 나의 어렸을 적부터의 로망을 축소시키고 싶진 않았다. 스몰웨딩이 대세라지만, 근사한 식장에서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우리의 사랑을 알리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런 걱정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반지를 맞추러 갔을 때는, 반지의 굵기, 디자인, 재질, 마감처리 등 까다로운 우리의 요구에도 직원은 친절하게 우리가 원하는 반지를 찾아내주었고, 예복을 맞추러 갔을 때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획일화된 예복이 싫었던 우리에게 직원은 수 십장이 넘는 원단을 보여주며 결국에는 우리가 원하는 색깔을 찾아주었으며 두 분이 같이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멘트까지 날렸다. 대망의 식장을 대관할 때는, 대관 계약서에 신부와 신랑으로 구분되어 있는 글씨를 우리가 보는 앞에서 펜으로 쫙쫙 그으며 오롯이 우리의 이름만 적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동성끼리 결혼하는 게 소문이 나서 손해를 보게 될까 걱정된다는 우리의 오지랖을 통해서는, “사회가 많이 바뀌어서 괜찮다.”며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직원의 세계관도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고 상업적인 목적의 환대였을 수도 있지만, 거부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사회에 대한 불신과 막연한 두려움이 너무 깊게 생겨난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로비에 붙어 있던 안내판. 기존에 신랑 신부 그림이 들어간 이미지만 있어서 새로 만드는 수고까지 해주셨다.

 

고민은 잠시 고민으로 남겨두고, 덕분에 우리는 별 어려움 없이 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일반 식장에서 식을 진행하다 보니,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피로연 식대 견적이 만만치 않았다. 당일 받은 축의금으로 현장에서 정산하는 시스템이었는데, 견적보다 축의금이 적게 들어올 경우에는 '카드깡'이라는 최후의 수단까지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어리석게도, 생각지도 못했던 현실적인 문제였다. (결혼은 실전이다!) 결혼식을 하고 나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 뒤에 그 사람이 낸 축의금 액수가 떠다닌다고 하는 농담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족을 초대하긴 했지만, 일가친척까지 모두 초대하지는 못한 상황, 즉 이모, 삼촌, 고모 등의 화력 있는 축의금은 없다는 소리다. 3, 5만원 등의 소액으로 과연 우리는 카드깡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한국처럼 결혼식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사회에서 어느 커플이 결혼식을 앞두고 돈 걱정이 없겠느냐마는, 친척이 오지 않음으로 해서 생기는 걱정까지 겸하게 되니 괜히 서럽기까지 했다. 결혼식 자체에만 집중하고 싶었고, 우리의 사랑을 축하받는 자리에서 돈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지만, 변변치 않은 벌이에 큰 지출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엑셀을 돌려가며 손익분기점을 계산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결론은? 다행히도 우리 결혼식에는 300여명의 하객 분들이 와주셨고, 우리는 카드깡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면을 빌려 우리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귀한 발걸음 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결혼식은 정말 평범하게 진행됐다. 주례 없이 진행됐다는 점이 조금 특별할 수도 있지만, 요즘은 많이들 주례 없이 진행하기도 하니까. 입장과 퇴장 때 신랑들이 춤을 추며 걸어갔던 게 조금은 특별했달까? 사전 영상, 입장, 다짐문 낭독 (우리는 혼인서약서라는 말 대신 ‘다짐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축사, 축가, 퇴장, 단체사진, 부케던지기. 그 어느 하나 크게 특별할 것 없이 평범했던 결혼식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는 하객들의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다. 결혼식장 한편에서 들리던 아기 울음소리, 사실은 조금 지루했던 곱단이 은사님의 축사, 평소와는 다르게 한껏 차려입고 온 지인들 등 모든 요소들 하나하나가 그냥 정말 평범한 결혼식 같아서 좋았다고들 한다. 사실 우리는 더 특별한 요소들을 넣어서 재밌는 결혼식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1시간이라는 식 진행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일반 식장을 대관했으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만.

 

※ 생생한 결혼식 현장이 보고 싶으시다면? - 성소수자부모모임 브이로그 유튜브 '소소한 결혼식' 편 보러 가기

 

 

부부로서

 

결혼식을 마친 후 만나는 지인들마다 묻는 한 가지가 있다. “결혼하니까 뭐 달리진 거 있어?” 사실, 없다. 다른 사람에게 곱단이를 소개할 때 더 이상 “제 애인이에요.” 라는 말을 쓸 수 없다는 것 정도? (아직 “제 남편이에요.”라고 얘기해본적은 없지만 생각만 해도 어색하다. 뭐 다른 말은 없을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지만, 아마 이성 부부라면 법적 지위가 달라졌을 테다.

 

수백의 지인들 앞에서 우리의 사랑을 맹세하고 축하받으며 부부가 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법적으로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고 제도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결혼 전부터 같이 살고 있었지만, 결혼을 맞이하여 신혼집으로 이사 갈 계획은 비싼 전세금에 가로막혔다. 우리가 법적으로 인정받았다면,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이라는 요긴한 제도를 사용하여 신혼집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등본을 떼면 단순히 ‘동거인’ 관계이고, 가족관계증명서에서 서로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서로의 의료기록을 열람할 수 없으며 수술이 필요한 긴급한 순간에도 보호자로서 의료결정위임권을 행사할 수 없다. 나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지만, 곱단이는 지역가입자로 분류되어 보험료 상 불이익을 받는다. (원래는 부부 중 한 명만 직장가입자여도 다른 한 명도 직장가입으로 분류된다.) 만약 두 명 중 한 명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날 때에도 남은 한 명은 장례 절차에 관여할 수 없고, 같이 일궈온 재산은 본인 명의가 아니라면 원가족에게 돌아간다. 하다못해 통신사 가족결합요금할인이나 항공사 가족 마일리지 제도도 이용하지 못한다.

 

※ 오소리 소주 부부가 말하는 '가족'이란 무엇일지 궁금하시다면? - 닷페이스 인터뷰 영상 보러 가기

 

 

LOVE WINS

 

사랑이 이긴다!

 

전 세계적으로 동성결합 제도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점차 많은 국가들에서 동성혼이나 그에 버금가는 시민결합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다. 지난 2013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공개결혼식을 통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한국에서도 동성혼 담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김조광수-김승환 부부를 주체로 하여 동성혼 소송이 진행 중이며, 정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외국의 시민결합과 비슷한 생활동반자법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동성결합 제도는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아무리 성소수자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라 하더라도 전 세계적인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의 욕구이다. 대중의 욕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법과 제도 또한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 사회의 변화는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제도의 혜택을 누릴 수 없어.”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우리가 잃어버린 권리에 대해 인지해나갔던 시기라면, 이제는 그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의 권리를 요구해야 하는 시기이다. 우리가 가족으로서 누릴 수 없고 보호받지 못하는 것들을 이제는 보장하라고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소수자 가족’이 더 가시화되어야 한다. ‘성소수자 가족’도 존재하며,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도 결혼할 수 있고,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

 

성소수자 만세!

 

'성소수자 가족’으로서 법적 상담을 받거나 본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로 연락주세요.

홈페이지: www.gagoonet.org

이메일: gagoone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