먕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휴가철이 다가왔지만 누구나 산 넘고 물 건너 어느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stay와 vacation의 합성어)이라는 말이 생긴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굳이 없는 돈 들여서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장소까지 가 성수기 바가지 요금만 옴팡 물다 오느니 집에서 에어컨 켜 놓고 그동안 못 읽은 책, 못 본 영화나 보며 무념무상하게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여름, 침대와 혼연일체가 되고자 하는 그대에게, 안방을 떠나지 않고 마이 퀴어 스테이케이션을 즐길 수 있도록 휴가 때 보면 좋을 퀴어 영화/드라마 4편을 골라 봤다. 하기 작품들은 필자가 실제 봤던 영화와 드라마들 중 퀴어 캐릭터 또는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주제가 너무 무겁지 않은 것들 중에서 주관적 선호도를 다분히 반영하여 선정했다. 소개 순서는 추천 순위와는 무관하며, 약간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1. 프라이드 (Pride, 영국, 2014)
1984년 영국 광부 대파업 당시 런던 출신의 작은 LGBT 그룹인 LGSM이 웨일즈의 한 시골 마을 광부들과 연대하여 서로의 권익을 위해 싸웠던 실화에 근거한 영화. 이미 본 사람이 많겠지만, 두 번 세 번 네 번 다시 봐도 괜찮다. 축제와 비극이 교차했던 지난 6월 이후 지친 마음에 훈훈한 위로가 되는 것은 물론, 인권·노동권 활동에 대한 열망은 불타오르지만 무더운 날씨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내키지 않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의 뿌듯함도 안겨 준다. 해리포터 시리즈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얼굴이 익숙할 배우 빌 나이(Bill Nighy)나 이멜다 스턴톤(Imelda Staunton) 같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2. 글리 (Glee, 미국, 2009-2015)
미국 폭스 채널에서 6년간 여섯 시즌에 걸쳐 방영된 뮤지컬 코미디. 학교에서 아웃사이더 축에 드는 고등학생들이 모여 쇼 합창 (Show choir, 안무 등 퍼포먼스를 수반하는 합창 장르) 동아리를 결성해 우정을 쌓고 꿈을 찾아 가는 내용이다. 미국에서는 TV 역사상 가장 퀴어한 드라마 시리즈로 손꼽혔을 만큼 게이, 레즈비언, 바이,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성소수자 캐릭터들을 선보인다. 특히 시즌 2부터 시작되는 커트와 블레인의 로맨스가 볼 만한데, 어느 미드가 안 그렇겠냐만 시즌 4부터는 막장 대열로 들어서니까 ‘클레인(커트+블레인)’을 연기하는 크리스 콜퍼(Chris Colfer)와 대런 크리스(Darren Criss)가 얼마나 자신의 취향인지에 따라 시즌 3까지만 볼 것인지 나머지도 다 볼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아, 시즌 5에는 아담 램버트(Adam Lambert)와 데미 로바토(Demi Lovato)가 쿨한 게이 오빠와 가장 따뜻한 블루 헤어 레즈비언 언니로 출연하니까 두 가수를 좋아하는 분은 참고하시길. 복잡한 생각 없이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해 주는 가벼운 엔터테인먼트로 휴가를 채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3. 델마와 루이스 (Thelma & Louise, 미국, 1991)
여자 주인공들간의 키스신이 한 번 나오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델마와 루이스>는 퀴어 영화는 아니다.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버디 영화(주로 동성인 사람 두 명이 패를 이루어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 장르)면서 로드무비이자 여성주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목록에 포함을 시키는 이유는 바로 주류 기득권에 대한 ‘저항’과 피억압자들간 연대의 한 형태로서의 ‘자매애’ 코드 때문이다. 동네 이웃이며 친구 사이인 델마와 루이스는 무료한 일상을 탈출하고자 이틀간의 짧은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지만, 중간에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짧은 여행은 권위적인 남편으로부터, 두 여성을 이용하려는 낯선 남성들로부터, 경찰들로부터의 장기 도피극으로 탈바꿈한다. 붙들려 돌아가 감옥에 갇히느냐, 최후의 자유를 선택하느냐의 기로에서 ‘계속 가(Keep going)’라는 말과 함께 날아오르는 그녀들. 슬프지 않고 속이 시원한 건 퀴어로서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일 것이다. 지붕을 열어젖힌 낡은 포드 썬더버드 컨버터블을 타고 미국 서부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자유를 향해 내달리는 두 주인공을 보며 가슴 속 후텁지근함까지도 날려 보는 건 어떨까.
4. 센스8 (Sense8, 미국, 2015)
다양성 장르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어 현재 시즌 2 촬영에 들어간 <센스8>(‘센세이트’라고 읽음)는 우리나라에서는 배우 배두나가 나온 미드로 아마 더 잘 알려져 있으리라. 서로 교감을 할 수 있는 초능력을 어느날 갑자기 갖게 된 각기 다른 나라 출신의 이방인들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 이 교감능력을 활용하는 이야기를 담은 SF 드라마인데, 배우와 캐릭터들의 출신국뿐만 아니라 성∙젠더 정체성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극중 시카고 경찰 윌 고르스키 역의 배우 브라이언 스미스(Brian Smith)의 말에 따르면 모든 캐릭터를 팬섹슈얼로 설정하는 것이 제작자의 의도였다는데, 바이섹슈얼리티 이슈를 적극적으로 표면화하는 데에는 다분히 소극적이었던 <글리>와 비교해도 천양지차다.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만큼 극중 배경도 다양하니 안방에서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욱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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