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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성소수자 인권포럼

[제 9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이스라엘은 왜 ‘게이 천국’을 욕망하는가 : 초국적 LGBT 인권 담론, 자유주의, 그리고 핑크워싱(Pinkwashing)

by 행성인 2017. 3. 16.

 탁수연 (Queer We Are)


 

퀴어들의 천국은 없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

사회 서울 인권영화제

발제 1 텔아비브는 어떻게 '게이 천국'이 되었는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발제 2 핑크빛 이미지 세탁소 - 이스라엘의 핑크워싱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 인권영화제

발제 3 퀴어 딜레마? Not in our name?,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지난 2월 25일, 제9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부문 세션 중 <퀴어들의 천국은 없다 :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이 진행되었다. 세 명의 발제자는 핑크워싱의 개념과 맥락, 이스라엘 핑크워싱에 대항하는 BDS (보이콧 boycott, 투자철회 divestment, 제재sanctions) 운동을 소개했다. 더불어 서울인권영화제 <제3의 성(Third Person)> 상영 취소를 [각주:1]비롯한 국내 BDS 운동 사례를 소개하고, 퀴어 당사자로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각주:2]에 어떻게 대응해나갈 것인지를 논의했다. (거칠게 요약했지만, 언급한 세 개의 발제문은 훨씬 더 풍부한 사례와 분석을 담고 있다. 해당 세션 발제문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홈페이지http://pal.or.kr/wp/?p=556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핑크워싱(Pinkwashing)은 “추악한 현실이나 논쟁 주제를 젠더평등의 상징인 분홍색으로 가리고 세탁하려는 전략”[각주:3]을 일컫는다. 예컨대 이스라엘을 ‘게이 천국’으로서 홍보하는 ‘브랜드 이스라엘’ 캠페인은, 핑크워싱의 일환으로 비판받는다. 이는 이스라엘을 (게이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롭고, 관용적이고,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국가로 포장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 및 식민지배 현실을 ‘가리고 세탁하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각주:4]자칭 시오니스트 조직인 스탠드위드어스(Stand With Us)는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에서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스라엘 내 게이커뮤니티를 통해 자국 이미지를 개선시키고자 한다.”[각주:5]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한국의 퀴어들은 곧잘 (반퀴어 운동 진영의 표현을 빌리면) “피땀 흘려 세운 나라를 망치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엘에서는 퀴어가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수단으로 동원될 수 있는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퀴어는 “국가는 이성애 규범적이고 퀴어는 본질적으로 국민국가의 범법자(outlaw)”[각주:6]라는 흔한 도식을 배반하고, 국가 통치에 봉사하는 신체로서 배치되는가? 왜 이스라엘은 ‘게이 천국’ 이미지를 욕망하는가? 어째서 오늘날 “게이 친화적인” 국가 이미지는 욕망할 만한 것이 되었는가?
 
 이어지는 글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실천으로서의 핑크워싱뿐만 아니라 그러한 실천을 가능케 한 글로벌한 조건들을 되짚어본다. 예컨대 초국적 LGBT 인권담론, 자유주의, 제국주의 등의 역사적, 정치적 접합 속에서, 어떻게 핑크워싱이 등장하고 독해되고 모종의 효과를 거두게 되었는지를 거칠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퀴어들의 천국은 없다> 세션 직후, (이스라엘 출신 무리와 동석했던) 한 청중이 ‘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만 비판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한 것에 대한 우회적이고 성긴 응답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와 LGBT 인권 담론

 

“우리는 이 전쟁을 통해 세계를 영원한 평화로 이끌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타협할 수 없는 요구를 공고히 하고자 할 뿐입니다. 법의 지배, 국가 권력의 제한, 여성에 대한 존중, 사적 소유, 언론의 자유, 평등한 정의 그리고 종교적 관용 같은 요구들 말입니다.” (조지 W. 부시, 2002)[각주:7]

 

주지하다시피 9/11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이제 이슬람 국가나 테러 조직은 서구 사회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으로 부상하고, 서구사회에는 ‘근본주의적 이슬람’을 규탄하는 정치적 수사가 급증하게 된다. 예컨대, 앞서 인용한 부시의 연설에서 이슬람은 (“타협할 수 없는 요구”라 일컬어지는 법의 지배, 국가 권력의 제한, 종교적 관용 등을 결여한) 근본주의적‧불관용적 세계로 표상된다. 더불어 이슬람의 존재는 그 자체로 서구의 자유, 문명, 보편적 인권,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수사 안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 및 문화적‧ 정치적 제국주의는 손쉽게 정당화된다. 이제 미국은 근본주의적 ‘야만인’들로부터 문명사회를 지키는 수호자일 뿐만 아니라 비자유주의 체제에 자유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전파하는 전도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수사는 (호모)섹슈얼리티라는 축을 만나 더욱 정교해진다. “테러와의 전쟁” 시기 미국은 ‘그들’과 대비되는 ‘우리’의 범주를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때 푸아가 ‘호모내셔널리즘(homonationalism)’이라고 명명한 프로젝트 아래, “국민국가에 의해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몇몇 동성애적 신체”가 등장하게 된다. [각주:8]즉, 기존의 백인, 남성, 중산층, 이성애 섹슈얼리티의 규범적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에 있는 일부 동성애규범적 주체들이 새롭게 ‘우리’에 포함되기 시작한다.[각주:9] 동시에 이러한 국가적 인정과 포함은 백인 중심 동성애규범성에 부합하지 않는 인종적-성적 타자들을 분리해내고, 그들의 시민권 자격을 박탈한다. [각주:10]인종화된 타자들의 권리를 배제하고 국가, 자본주의적 이해에 부합하는 동성애적 주체에게만 문화적‧법적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동성애규범적 신체를 길들이는 생명정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게이 인권 담론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진보 및 근대성의 서사와 결합하게 된다. 앞서 부시의 연설에서 ‘여성에 대한 존중’, ‘언론의 자유’ 등이 그랬듯, 게이 인권은 인종화된 타자들과 자유주의 세계를 분절하는 또 다른 기준으로서 등장하게 된다. 동성애적 주체를 “수용”하고 “관용”하는 것이 국가 주권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게이 친화적인 국가, 문화, 종교에 문명화된 지위가 부여[각주:11]”되기에 이른다. 나아가 타자의 문화에 희생되는 소수자들을 구해내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구조 서사(rescue narrative)에 동성애자를 비롯한 퀴어들도 동원되기 시작한다.

 

이처럼 게이 인권이 진보 및 근대성으로 등치되는 (지나치게 단순한) 도식에서, 섹슈얼리티와 젠더는 여타 역사적, 지정학적 맥락과 분리되어 사유된다. 예컨대, 미국 퀴어의 억압과 한국 퀴어의 억압과 중동 국가 퀴어의 억압이 동일 선상에 놓이고, 이 모든 억압이 (곧잘 동성애혐오적 ‘문화’로 일축되는) 공통된 근원을 가진 것으로 상상된다. 각 지역의 퀴어 억압을 구성한 구체적인 계급, 민족, 역사, 권력관계에 대한 질문은 삭제된 채, 퀴어 혹은 게이 인권 담론은 보편적/초국적인 것으로서 탈정치화된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글로벌한 맥락이 핑크워싱이 등장하고, 독해되고, 모종의 효과를 낳을 수 있었던 장(field)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핑크워싱과 식민주의

 

많은 이스라엘 핑크워싱 비판가들은 이처럼 “게이 인권이 서구 자유주의자의 아젠다에 놓일 때, 이스라엘은 자국을 게이 친화적인 국가로 묘사하는 것의 유용함을 발견한 것[각주:12]”이라 말한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은 자유주의적 LGBT 인권 담론의 순환 속에서, (이스라엘에 투자할 정치적, 경제적 자본을 가진) 유럽과 북미 게이들을 겨냥하며 등장한 정치 전략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당국은 퀴어들이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이 경우 친팔레스타인 입장이 우려된다는 판단” 하에, 전략적으로 “게이 친화적”인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그로써 서구 자유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이 그들과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그들이 이스라엘에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각주:13]
 
 이스라엘의 ‘게이 천국’ 이미지 메이킹은 ‘문명화된 우리 대 야만적인 그들’이라는 서구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제스처를 반복한다. 이스라엘은 자국을 ‘중동에서 유일한 게이 천국’으로 위치시킴과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미개한 호모포비아’의 자리로 던져놓는다. 더불어 이스라엘은 자국을 '억압받는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피난처'로 위치지음으로써,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정치적 맥락을 소거한 채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 자신의 나라를 가지기엔 너무 뒤쳐졌고, 문명화되지 않았고, 근대적이지 않다. 하물며 동성애자들을 올바르게 대하지도 않는다[각주:14]”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그 '피난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억압적, 차별적 현실을 호도하는 수사일 뿐만 아니라, “식민지배 받는 자 스스로는 스스로에게 제공할 수 없는 뭔가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을 식민자가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친숙하며 유독한 식민주의 판타지의 또 다른 반복[각주:15]”에 불과하다. 이들은 식민주의, 제국주의, 서구 지배라는 특수한 역사가 어떻게 현대 중동에서 만들어낸 특정한 종류의 호모포비아를 이끌어냈는지에 주목하기 보다는[각주:16], 이를 이슬람, 아랍 문화의 본질적 특성인 양 자연화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퀴어들이 겪는 억압은 결코 식민지배, 인종주의, 제국주의 등의 정치 사회적 맥락과 분리될 수 없다. 그 복잡한 맥락에서 (동질화되고 평면화된 용어인) ‘호모포비아’만 추출하여 팔레스타인 퀴어 인권을 논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이 받는 복잡한 억압의 근원에 대한 자신의 가해성을 지워버리는 행위이자 (자신을 ‘그들의 구원자’로 위치시키는) 식민주의 프로젝트이다.


‘연대’를 위한 정치학 - “우리는 지구촌의, 분홍빛, 행복한, 게이 가족 정서에 반대합니다[각주:17].”

 

“1세계 주류 LGBT 그룹들은 퀴어가 분리된 세계에 살며, 사회에는 호모포비아의 피해자로서만 연관된다고 믿게 만들려 합니다. 하지만 인종차별체제, 가부장제, 자본주의와 같은 다른 억압들이 존재하는 한 퀴어 해방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억압 세력들의 관계를 타깃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각주:18].” 

 

서두에서 나는 ‘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만 비판하느냐’는 질문에 응답하고자 함을 밝혔다. 이에 대해 싱가폴, 미국, 호주 등 다른 국가에서 이루어지는 핑크워싱의 예시를 제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이 어떠한 국제적 맥락 안에서 등장하는 실천인지를 간략하게나마 검토해보고자 했다. 상술하자면, 이스라엘은 핑크워싱은 “게이 친화적”인 국가나 문화에 문명화된 지위를 부여하는 글로벌한 맥락 없이는 등장할 수도, 독해될 수도 없는 실천임을 지적하고자 했다. 그로써 이스라엘의 국가적 실천으로서의 핑크워싱뿐만 아니라 그에 공모하는 글로벌한 조건들을 함께 비판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글이 짧고 많이 부족해서 조금이나마 그의 억울함이 풀렸을지 염려된다.

  

한편 또 한 가지 질문을 인용하고 싶다. <퀴어들의 천국은 없다> 세션 질의응답 시간 중, 한 이스라엘 출신 청중은 ‘왜 팔레스타인의 (열악한) 퀴어 인권에 대해 말하지 않느냐’, ‘이스라엘 퀴어 인권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 않느냐’는 요지의 질문을 했다. 그러나 해당 세션 발제들과 마찬가지로, 이 글도 팔레스타인 혹은 이스라엘의 퀴어 인권 실태 그 자체를 문제의식의 중심에 두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왜 특정 국가의 ‘퀴어 인권 실태’가 국제 정치에서 주요한 질문으로 등장하는지, 그러한 질문이 전제하고 재생산하는 담론은 무엇인지, 혹은 ‘호모포비아’라는 혐의가 국제 정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능하는지 따위에 더 관심을 두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글을 좀 아름답게 끝내기 위해) 내가 묻고 싶은 건, 그럼에도 퀴어가 '우리'로서 연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이다. 나는 국가적 실천으로서의 핑크워싱뿐만 아니라 그 실천을 가능케 한 조건들(예컨대 자유주의적 LGBT 인권 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도, 핑크워싱을 감시하는 핑크워칭(Pinkwatching)의 일환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한다. 나아가 이는 핑크워싱을 가능케 한 장(field)과 특정 위치의 퀴어(예컨대 한국의 퀴어)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작업이자, 전지국적 퀴어 공동체로서의 '우리'라는 범주를 재분해하고 복잡하게 다시 사유하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고민한다. 그로써 (우리의 젠더 및 섹슈얼리티 인식론을 동질화하고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유를 규정했던) 서구의 제도화된 자유주의적 퀴어 인권 담론과 진보 서사에 균열을 내고, 다른 정치학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한다.

 

한국의 퀴어도 '우리'로 묶일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진대, 미국의 퀴어, 한국의 퀴어, 팔레스타인의 퀴어 등을 어떻게 쉽게 '우리'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을까. 이러한 울퉁불퉁한 연대를 위해서 우리는 오히려 '우리'를 분절하는 요소들을 더 파헤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스라엘은 왜 ‘게이 천국’을 욕망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비판하며 팔레스타인 퀴어와 연대하는가. 이에 대한 응답은 전지구적 퀴어 공동체라는 상상적 범주를 가로지르는 복잡한 역학 관계에 천착할 때 비로소 선연하게 드러날 듯하다.

 

 

  1. “<제3의 성>은 BDS운동 중 문화 보이콧 대상에 해당하는 영화(브랜드 이스라엘‘의 선전을 위해 만들어지거나 그를 목적으로 하는 재단의 지원을 받은 영화)였다.” 이는 “서울인권영화제가 결정적으로 <제3의 성>을 상영 취소하게 된 이유이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 정부의 외교‧문화‧군사 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National Lottery, CoPro 재단, Gesher 재단의 지원금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인권영화제, 「핑크빛 이미지 세탁소-이스라엘의 핑크워싱 사례를 중심으로」, 『2017 제9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 때가 왔다!』,미간행, 2017, p.49.) [본문으로]
  2. 제목에는 ‘LGBT 인권 담론’이라고 적었으나, 본문에서는 LGBT, 퀴어, 동성애자, 게이가 엄격한 구분 없이 혼용됩니다. 특히 게이가 LGBT/퀴어를 대표하는 방식으로, 혹은 LGBT/퀴어 전체가 게이로 퉁쳐지는 방식으로 쓰인 부분이 많습니다. 이는 해당 담론에서 용어들이 쓰이는 방식을 거르지 않고 반영하여 생긴 혼란이며, 이러한 용어 사용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본문으로]
  3.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텔아비브는 어떻게 ‘게이 천국’이 되었는가」, 『2017 제9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 때가 왔다!』, 미간행, 2017, p.33. [본문으로]
  4. 브랜드 이스라엘’ 캠페인에 대한 더 많은 사례는, 앞서 언급한 <퀴어들의 천국은 없다 : 이스라엘의 핑크워싱> 발제문 중 「텔아비브는 어떻게 ‘게이 천국’이 되었는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17) 참고. [본문으로]
  5. Jasbir Puar(2010), Israel’s Gay Propagande War, 홈페이지 (http://www.pinkwatchingisrael.com/2011/10/21/israels-gay-propaganda-war/), 2017년 3월 6일 접속. [본문으로]
  6. Jasbir Puar(2013), Rethinking Homonationalism, Middle East Stud, 45, p.336. [본문으로]
  7. Wendy Brown(2006), 『관용 :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이승철 옮김, 서울: 갈무리, 2010, p.277-278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8. Jasbir Puar(2013), Rethinking Homonationalism, Middle East Stud, 45, p.337 [본문으로]
  9. 예를 들어, 대중 미디어에서는 9‧11 테러 당시 테러리스트와 싸우며 납치된 비행기를 워싱턴 DC가 아니라 펜실베니아로 향하도록 만든 게이 럭비선수 마크 빙햄이나, 뉴욕 쌍둥이 빌딩 잔해 속에서 미사를 집전하다가 사망한 게이 신부인 미샬 저지를 영웅적, 남성적인 애국자로 그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백인 퀴어들은 변태적 유색인종 테러리스트/무슬림/타자들과 구분된다.”(한우리, 「퀴어는 항상 급진적인가: 퀴어리버럴리즘과 한국 퀴어시민의 위치성」, 『말과활』 12호, 서울: 일곱 번째숲, 2017, p.76.) [본문으로]
  10. Jasbir Puar(2007), Terrorist assemblages : homonationalism in queer times, Duke University Press, p.2. [본문으로]
  11. Jasbir Puar(2012), Pinkwatching And Pinkwashin : Interpenetration and its Discontent. [본문으로]
  12. Sara Salem(2012), Pinkwashing Palestine and the Middle Eastern uprisings, MnM Commentary, 20, p.2. [본문으로]
  13. 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17:34. “실제로 이스라엘이 성소수자 문제에 주목하게 된 데는 2008-9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공공연히 연대를 표한 것이 한 계기가 되었다. ‘브랜드 이스라엘’이 표방한다고 주장되는 가치 목록에 성소수자 인권이 포함된 것도 바로 이 즈음이었다.” [본문으로]
  14. Jasbir Puar(2012), Pinkwatching And Pinkwashin : Interpenetration and its Discontent. [본문으로]
  15. Ghaith Hilal(2013), 「팔레스타인 퀴어들이 지겹게 들은 8가지 질문」,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홈페이지(http://pal.or.kr/wp/?p=454), 2017년 3월 7일 접속. [본문으로]
  16. Sara Salem(2012), Pinkwashing Palestine and the Middle Eastern uprisings, MnM Commentary, 20, p.5 [본문으로]
  17. Ghaith Hilal(2013), 앞의 글. [본문으로]
  18. Ghaith Hilal(2013), 앞의 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