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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건강

트랜스젠더의 성확정수술,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다 – 미국 캘리포니아 메디칼(Medi-Cal)의 사례 –

by 행성인 2019. 4. 28.

이혜민(행성인 HIV/AIDS인권팀)

 

 

 

행성인 HIV/AIDS 인권팀과 고려대학교 성소수자 건강 연구팀인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https://www.rainbowconnection.kr/)에서 활동하고 있는 혜민입니다. 저는 올해 1월부터 방문연구자로 미국 브라운대학교 공중보건대학에서 지내면서 성소수자 건강에 대한 수업(Public Health Issues in LGBT Populations)도 듣고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며 지내고 있어요. 올해 3월과 4월에는 성소수자 건강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 두 곳을 다녀오게 되었어요. 제가 참가했던 두 학술대회에서 인상 깊었던 세션 내용들을 행성인 회원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 4월 13-14일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에서 주최한 트랜스젠더 건강 컨퍼런스(2019 National Transgender Health Summit, https://www.eventscribe.com/2019/NTHS/agenda.asp?pfp=FullSchedule)에 다녀왔습니다. 이 컨퍼런스는 트랜스젠더 건강에 초점을 맞춰 총 4개의 트랙(연구, 임상, 정책, 커뮤니티)으로 구성되었고, 연구자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전문가, 보건부 공무원, 커뮤니티 활동가 등 9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 글을 통해 컨퍼런스에서 여러 세션을 들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한 발표를 공유하려고 해요. 바로, 캘리포니아에서 성확정수술(Gender affirmation surgery)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 그리고 정책적인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내용을 담은 발표였는데요. 발표자는 Trans Health Consulting, LLC(https://www.transhealthconsulting.com/)의 창립자이자 라이언-마틴 건강 서비스 클리닉(Lyon-Martin Health Services)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JM Jaffe(대명사: 그들)였습니다. Trans Health Consulting, LLC는 트랜스젠더 건강과 관련해서 보건의료기관과 의료제공자에게는 트레이닝과 상담을,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는 성별 정정과 건강보험 관련 상담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그들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라이언-마틴 건강 서비스 클리닉(http://lyon-martin.org/)은 페미니스트이자 LGBTQ 시민권 활동가인 필리스 라이언(Phyllis Lyon)과 델 마틴(Del Martin)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고 해요. 이 클리닉은 동성애자/양성애자/이성애자 여성과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라이언-마틴 건강 서비스 클리닉의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바에 따르면 전체 환자의 59%가 트랜스젠더 또는 젠더퀴어로, 76%가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퀴어로 정체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발표를 듣고 나서 라이언-마틴 건강 서비스 클리닉의 위치를 찾아보니 마침 샌프란시스코에서 제가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바로 찾아가서 내부도 구경하고 허락을 맡아 사진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출입문에서부터 성소수자를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어요. 

 

          

내부에서도 트랜스젠더 자긍심 깃발 스티커를 볼 수 있었고(위의 사진 왼쪽), 성중립 화장실 옆 벽면에는 무료법률상담, 유색인 트랜스젠더를 위한 지지그룹, 샌프란시스코 LGBT 센터 등의 홍보 문구를 담은 전단지가 붙여져 있었어요(위의 사진 오른쪽). 클리닉을 방문하는 성소수자들이 이곳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는 트랜스젠더의 성확정수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할게요. 현재 캘리포니아에서는 호르몬 요법, 유방절제술, 자궁·난소절제술, 고환·정소절제술, 성기성형수술, 유방확대술, 안면성형수술, 안면·가슴·복부제모, 목소리 요법, 신체윤곽성형술 등의 트랜지션 관련 보건의료서비스가 건강보험으로 보장된다고 합니다. 체모 복원 관련 서비스와 인공기관·컴프레션(compression) 관련 속옷은 아직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는 않지만 향후에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하네요. 이런 성과를 거두기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그 전에 샌프란시스코의 건강보험 체계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보험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미국이 보건의료 측면에서는 그리 뛰어난 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배웠는데, 캘리포니아,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시민들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의외였어요.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보건의료 관련해서 네 가지의 선택권이 있다고 해요. 메디칼(Medi-Cal), 메디케어(Medicare), 보장되는 캘리포니아(Covered California), 건강한 샌프란시스코(Healthy San Francisco)가 바로 그 네 가지 선택권입니다(위 사진 @라이언-마틴 건강 서비스 클리닉). 간단하게 알아보면, 메디칼은 캘리포니아에서 19세-64세이고 가구소득이 연방정부의 빈곤선(1인 가구의 경우 $16,248=1,850만원 정도 또는 그 이하)의 138% 또는 그 이하에 해당하면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공공 건강보험 프로그램입니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노인과 65세 이하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건강보험 프로그램이구요. 보장되는 캘리포니아는 미국 시민이면 구입할 수 있는 건강보험 프로그램이고, 건강한 샌프란시스코는 건강보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거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JM Jaffe의 발표 자료에 기반해서 캘리포니아에서 성확정수술의 건강보험 보장과 관련한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봤습니다.

 

   1978년: 메디칼에서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의 트랜지션 관련 의료를 보장함

   1989년: 메디케어가 트랜지션 관련 수술을 배제함

   1994년: 샌프란시스코 시 법규(city code)의 반차별 부문에 성별 정체성이 추가됨

   2001년: 샌프란시스코 자가보험 실시(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추가 프리미엄 비용을 지불하면 트랜지션 관련 의료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기 시작함)

   2005년: 보험에서 젠더 반차별법(Insurance Gender Non-Discrimination Act, IGNA) 통과

   2006년: 트랜지션 관련 의료의 비용과 이용이 예상한 것만큼 높지 않아서 샌프란시스코 시에서는 추가 프리미엄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핵심 혜택으로 트랜지션 관련 의료를 보장하기 시작함

   2012년: 샌프란시스코 건강 계획(Health Plan)에서 트랜지션 관련 수술을 보장함

   2014년: 오바마케어(The Affordable Care Act)가 시행됨. 오바마케어의 반차별 규정인 Section 1557의 반차별 조항에 성별 정체성이 포함됨

   2014년: 메디케어는 트랜지션 관련 수술에 대한 배제를 폐지함

 

조금 맥락을 덧붙이고자, National Health Law Program에 게재 되어있는 글 (“California Pride: Medi-Cal Coverage of Gender-Affirming Care Had Come a Long Way”, June 22, 2018)의 일부분을 번역해보았습니다.

 

성확정 관련 보건의료(gender-affirming care)가 메디칼로 보장되기까지의 짧은 역사

 

     1974년, 캘리포니아의 메디칼 기관에서는 성별위화감(gender dysphoria)을 위한 수술적 치료와 관련된 개입(intervention)에 대한 메디칼의 지불을 금지한다는 공고를 널리 알렸다. 이 사건에 대해 1978년 캘리포니아 주 제2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두 트랜스젠더 개인, G.B.와 J.D.는 이의를 제기했다. 법원은 이 두 사람이 미용 목적이 아니라 개인의 성별위화감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메디칼에 의해서 성확정수술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판결 내렸다. 하지만 그 이후로 메디칼은 계속해서 성확정과 관련된 많은 의학적 조치들을 보장하는 것을 배제했다. 마침내, 2001년 캘리포니아의 한 판사가 메디칼 기관에 성확정수술 절차를 위한 보장을 자동적으로 거부하는 정책을 철회하고, 그 대신에 모든 요청들을 개별적으로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Doe v. Bonta, Sacramento Superior Court of the State of California (case no. 00CS00954, January 29, 2001).) 

   심지어 법원의 결정 이후에도, 많은 트랜스젠더 및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가진 메디칼 수혜자들이 본인에게 필요한 성확정 관련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은 어려웠다. 몇 년 동안 LGBTQ 당사자들과 건강형평성을 위한 옹호자(건강소비자연합을 포함)들에 의해 지지를 받은 이후, 2013년에 캘리포니아의 메디칼 기관은 성별위화감을 위한 치료에 대해서 메디칼의 보장 범위를 명확하게 알리는 가이드라인을 의료제공자와 건강보험의 한 종류인 Managed care plans에 배포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업데이트 되었고, 2016년에는 성확정 관련 의료적 조치의 단정적인 배제를 금지하는 규칙이 담겨 있는 오바마케어(The Affordable Care Act)의 반차별 규정인 Section 1557에 대한 논의를 포함할 것을 명확히 했다. 오늘날, 트랜스젠더 및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가진 메디칼 수혜자들은 자신의 성별위화감을 치료하기 위한 수많은 의료적 개입(행동 건강 관련 서비스, 호르몬 요법, 다양한 수술들을 포함)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원문:https://healthlaw.org/california-pride-medi-cal-coverage-of-gender-affirming-care-has-come-a-long-way/

 

이렇게 캘리포니아에서는 2010년대부터 트랜지션 관련 수술이 건강보험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라이언-마틴 건강 서비스 클리닉에서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총 648건의 수술이 진행되었고, 그 중 94.4%가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었다고 해요.

JM Jaffe는 이렇게 캘리포니아에서 정책이 변화되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소송(case appeal)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와 더불어 정책 옹호(advocacy)의 효과적인 전략으로 몇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오바마케어(The Affordable Care Act)와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률을 만들고 통과시킬 수 있는 정치인을 위해 투표하기

   차별금지법을 위해 로비하기

   관련 연구와 데이터 축적하기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자문위원회 구성하기

   수술을 하는 의사들과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고, 이들에게 저임금 트랜스젠더를 위한 수술 접근성을 높이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시키기

   차별금지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보험회사에 소송을 청구하는 것을 통해 압력을 가하기

   집단 법률 소송 청구하기

   보험회사에 잠입하기^^

 

캘리포니아의 뒤를 이어서 콜로라도, 네바다, 일리노이, 메사추세츠 주 등 미국의 22개 주에서 트랜스젠더의 성확정수술이 건강보험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캘리포니아의 사례를 통해 다양한 전략으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건강보험 체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전국민 건강보험을 갖추고 있는 한국에서 의학적인 조치를 원하는 트랜스젠더가 트랜지션 관련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이에 따른 구체적인 액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보건의료는 (우리 모두의) 권리다HEALTH CARE IS A RIGHT (FOR EVERYBO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