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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우리는 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서울시 공무원을 반대해야 하나?

by 행성인 2019. 5. 8.

 

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어버이날 오전부터 기사 몇개가 소통방에 공유됐다. 어지간하면 이 시간은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고 점심 메뉴를 고민할 시간이다

 

서울시 공무원들 "서울광장 퀴어행사 반대"’ (국민일보, 백상현기자)

'서울시의 다수 공무원들은 서울광장 퀴어행사를 반대한다' (기독일보, 이나래기자)

 

아니,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이 또?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파기로 성소수자들이 서울시청 본관로비에 농성할 당시 직접 사과문까지 올린 분이 입장을 번복할 리 만무하다.

 

이들은 박원순 시장과 다른 노선을 천명한다(고 한다). 성명의 제목인 즉 서울시의 다수 공무원들은 서울광장 퀴어행사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공무원 17명이 7일 발표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짜증도 분노도 아닌 요즘 공무원들 당차다는 생각이었다. 어지간하면 중립을 지키는 척 다음으로 미루고 어떤 사안도 비켜낼 이들이 웬일로? 적어도 이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제스처는 비판할 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외려 이러한 입장표명은 공무원들의 정치적 표현에 대한 논의를 새로 열 수 있을지 모르니까.

 

누가 성명을 썼고 어디에 올린 것인지 좀 더 알아보고 싶어 품을 들여 찾아봤다. 찾고 찾아봤는데 내용 대다수가 보수기독교 계열 언론사에서 인용되고 옮겨진 문장들이고 성명주체는 서울광장 퀴어행사를 반대하는 서울시 공직자 대표’로 수렴한다. 하물며 서울시청 게시판에도 해당 주체가 직접 올린 성명서 전문은 보이지 않는다.

 

주체도 불명확하고 출처도 불분명한 원본 없이 퍼나른 글을 누구 보라고 썼을까. 공직자로서 전면에 서기 어려우니 기자메일링만 한 것인가. 그럼 기자들의 입을 빌린 서울시청 공무원들은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다. 기자의 입을 빌려서까지 정치적 표명을 실천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마침 기사에는 서울광장 퀴어행사를 반대하는 서울시 공직자대표로 안찬율 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직함은 장애인자립지원과장이고, 또 다른 명함은 서울시청 기독선교회 대표회장이다.

 

다른이들의 눈에도 정체가 불분명했던지 단체회원 중 누군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퀴어행사를 반대하는 공직자 모임대부분은 크리스천이라고 답한다. 기사에서 내부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20156월 달에 엠보팅에서 자체 설문 프로그램이 있어요. 거기서 이 문제에 대해서 92명이 참여해가지고 66.3%가 반대, 21.7%가 찬성, 12%가 관심없다라고 답했습니다. 공무원들이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ㄹㅋ의 통화 속기 인용)

 

시민심사로도 부르는 엠보팅(m Voting)은 서울시 모바일투표 시스템이다. 4년 전 조사라는 시대착오성은 말할 것도 없이 시민이 참여한 설문조사를 두고 서울시 내부직원 대상 조사라고 말하다니, 정확하게 틀렸다.

 

성명을 둘러싸고 입이 바빠진 건 기독교 언론이다. 이들은 성명의 내용을 인용하는 척 행사에 하고 싶은 비난을 다 쏟는 모양새다. 음란성, 혐오감을 주는 행위, 물품 판매, 과도한 소음 등 광장사용규칙 위반 및 검찰의 "경범죄처벌법" 위반 결정에도 불구하고 4년 간 계속 열렸다는 내용은 그 집약판이다.

 

한데 이런 식의 가치판단은 반대의 대상에 적용해도 무리가 아니다. 단적으로 혐오를 조장하는 이는 외려 누군가가 공공장소에 나오는 것 자체를 반대하겠다며 거리에 드러눕고 똥물을 끼얹는 이들 아닌가. 성명문은 퀴어문화축제의 소음도 문제 삼았다. 그런데 광장을 둘러싸고 온갖 음향장비를 동원해서 방언을 방출하고 북을 두드리고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발레까지 하는 이들 역시 행사를 반대하는 쪽이다. 게다가 이들 중 몇몇은 물리적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정체 없는 성명은 당위성은 물론 대상까지도 잘못 겨냥했다.

 

성명(인지 기사인지)이 지적하는 것처럼 퀴어문화축제에는 성기모양의 자위도구와 굿즈들이 나온다. 벗은 사람이 있고 입은 사람이 있으며 적당히 드러내거나 감추고 나오는 이들도 있다. 저들은 어린이들을 대놓고 걱정하지만, 어린이들은 그냥 보면 되고 어른들은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잘 설명하면 된다. 광장의 다양한 표현들은 설령 표현상의 갑론을박이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성에 작용해온 통제를 문제 삼고 드러내지 못한 몸들을 전시하며 좀 더 낮은 문턱에서 섹슈얼리티에 접근해보자는 시도를 공유한다. 이를 두고 벗은 몸과 성기모양만 찍어 짜깁기해서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거리 위에 내걸며 음란과 문란을 가져다 붙이는 건 광장에 나오는 이들이 아니라 외려 이들을 반대하는 쪽이다. (사족으로 붙이면, 우리는 아직 음란과 문란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인용된 성명문은 말미에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및 서울시를 향한 요구로 달려간다. 퀴어 행사에 우려하는 시민 다수의 여론을 반영해서 행사의 사용목적과 규칙위반을 조사하고 불수리해야 한다고. '동성애 행사가 필요하다면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실내체육관에서 여는 게 타당하다'고.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의 역할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다. 이들은 서울광장조례개정운동을 통해 서울광장을 관제광장이 아닌 열린 시민공간으로 바꿔낸 성과이다. 광장은 누구라도 나와서 목소리를 내고 불편한 타인을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한 첫발이다. 시민위원회는 특정 존재를 검열하고 불허하는 조직이 아니다. 저들의 요구처럼 조사와 불수리를 주장하는 것은 시민에게 규범화를 덧입히고 관제광장의 불명예로 돌아가자는 반동일 뿐이다.

 

(하지만 마지막 저들의 제안에 아주잠깐 망상을 그렸더랬다. 10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실내공간은 극히 드물다. 더구나 퀴어문화축제 20주년처럼 상징성이 있는 행사를 아무 장소에서나 열 수도 없다. 정히 보기 껄끄럽다면 행사의 의미를 살리고 실내에서 할 수 있도록 일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교회 10개 성전을 제공하는 건 어떤가.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표방하는 장소다. 소음이 나갈 일도 없으며 밖에서 볼 수도 없다. 누가 알겠는가, 교회가 환대하는 성소수자, 성소수자가 찾아가는 교회는 함께 비를 피하며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 에너지를 품고 있을지.) 

 

잠깐 동안 이들의 성명을 보면서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의견들이 오갔다. 보수기독교의 언론 뒤에 숨어 정체는 거의 드러내지 않은 이들의 샤이선동에 굳이 공식적 입장을 보여야 하는가. 하지만 공직자로서 특정 존재를 두고 혐오를 표현하는 책임은 따져 물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만 굳이 출처도 주체도 불분명한 텍스트에 무게를 둬야 하겠는가?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선언 대신 '서울광장 퀴어행사에 참여하는 일개 단체회원'의 헛헛한 글로 남은 배경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