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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

10년의 기다림,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

by 행성인 2019. 10. 12.

정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TF팀)

 

 

(처음 행성인 회원에게 웹진에 기고할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는 뭔가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쓰려니까 어떤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써야할지 약간 막막해지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과 트랜스인권TF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현이라고 합니다. 행성인에서 활동한지 햇수로 11년째인데 이렇게 웹진 기고를 하는 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네요^^;;; 오늘은 저에 대한 이야기를 쓸까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저는 트랜스젠더 남성이고 헤테로플렉시블 에이섹슈얼입니다. 남자로서 남자보다 여자를 좋아하고 상대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제 자신이 시스젠더 헤테로로맨틱 헤테로섹슈얼 여성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첫사랑이 바로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여자로서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비퀴어는 아니라는 소리겠죠. 그리고나서 30대인 지금까지 사람을 여러 명 좋아했지만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현재 제 자신을 헤테로플렉시블이라고 정체화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일단 성적 지향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만 하기로 하고, 성별정체성을 정체화하게 된 과정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먼저 알고나서 젠더퀴어라는 정체성을 알게 되는 반면에 저는 젠더퀴어라는 정체성을 먼저 알았습니다. 그 때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 정체성을 알고 나서 바로 젠더퀴어로 정체화했습니다. 옛날부터 제 몸에 대한 거부감, 여자로 대해지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 등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전부 시스젠더이겠거니 하고 살았으니까요. 그렇게 젠더퀴어로 고등학교 생활을 지내고 20살이 되어서야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는 바로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재정체화를 하였고 지금까지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20살 때 트랜스젠더로 정체화 하고 나서 중간에 몇 번 호르몬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지만 차마 할아버지께 당신이 매우 아끼는 손주가 손녀가 아닌 손자라는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워서 그냥 살다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랑 동생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한달 반 전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호르몬을 시작하고 나니 디스포리아도 적어지고 제일 큰 콤플렉스였던 목소리도 낮아지고... 물론 단점도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아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경제적인 여건이 되면 수술적인 부분도 할 예정입니다.

 

 

저는 현재 한 장애인인권단체에서 상근활동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난생 처음 직장 동료들에게 저의 성별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을 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한지는 곧 6년이 되는데 회사 동료들에게 커밍아웃을 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실 이번에도 하지말까 라는 고민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입사하고 커밍아웃을 하기 전까지 회사 분위기를 살피고나서 해도 되겠다 생각해서 커밍아웃을 했고, 반응은 나름 좋았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시행착오도 겪고 있지만 최소한 저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다니고 있다는 그 한 가지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직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사람이라 서류가 필요한 업무에서는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을 때도 있지만 회사 안에서는 제가 남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커밍아웃을 하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든 고민이랄까, 그런 것이 있다면 왜 비퀴어들은 커밍아웃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본인이 비퀴어라는 걸 아는데 퀴어들은 자신이 퀴어라는 것을 드러내야만 그렇게 대해지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저도 내가 남자로 생각하는데 왜 이걸 커밍아웃이라는 이름을 붙여서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정체성을 드러내고 살기에는 많은 걸림돌이 있기 때문에 저를 포함한 행성인 활동가들이 그 세상을 바꾸어나가면 좋겠습니다.

 

행성인 회원 여러분, 우리 모두 성소수자 노동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꽁꽁 숨기지 않고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함께 열심히 투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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