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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내가 홍콩 시민들에 연대하는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

by 행성인 2019. 12. 6.

소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최근 나는 매주 홍콩의 민주주의를 촉구하고 홍콩 시민들에 연대하는 한국에서의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원래 홍콩은 내게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 아니었다. 영화가 유명했다지만 영화를 잘 보는 편도 아니었고, 단지 우연히 보게 된 기사들에서 한국보다 성소수자의 상황이 좀 더 나은 지역으로 기억된 정도다. 그래서 솔직히 고백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미디어에서 홍콩 시위에 대한 기사의 비중이 점차 커지던 때에, 우연히 민간인권전선 의장인 지미샴 씨에 대해 알게 된 이후 관심이 생겼다는 걸. LGBT 단체 활동가라는 그의 이력이 특이해서 찾아보다가 홍콩의 여러 가지 상황을 알게 되었다. 몇달 째 지속되고 있는 시위 뿐 아니라 홍콩 성소수자들의 상황을 비롯한 사회의 여러 모습에 대해서도. 나는 성소수자 활동가이고, 확실히 가까운 대만의 동성 결혼 법제화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홍콩 성소수자들의 상황에도 관심이 있다. 하지만 내가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다.

 

시위 참가자들이 1987, 택시운전사, 변호인 같은 영화를 감명깊게 보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뉴스는 자주 보였으나, 그만큼 한국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정부나 소위 정치권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간혹 그 점을 지적하는 기사의 댓글들에서는 중국의 힘과 영향력 때문에 어쩔 수 없다거나 우리나라의 문제가 더 급하다는 얘기가 많이 보였다. 점차로 경찰 폭력의 심각성이 전해지던 때, 무언가 크게 부끄러움이 일었다.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걸까? 하지만 SNS에서는 홍콩 시민들이 작성한 세계 각국에 지지를 요청하는 메시지들이 다수 공유되고 있었다. 이미 한국의 인권활동가와 학생을 비롯한 여러 시민들이 지지행동을 하고 있었고 이에 많은 홍콩인들이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한 이미 한국에 와 있는 많은 홍콩인들도 있었다. 한국의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지지를 표현하는 건 결코 의미없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자국 민주화 운동들에 대해 생각만큼 많이 알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신 떠올랐던 것은 2008년과 2016년의 촛불을 비롯한 여러 집회의 기억이다. 과거 경찰이 방패를 사용해 시위대를 몰아넣을 때 느꼈던 공포를 기억한다. 또한 홍콩 정부가 영국 식민지 시절의 유산인 긴급정황규례조례로 이른바 '복면금지법'을 도입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 집권여당이 추진하던 집시법 개정안도 떠올랐다. 사회의 여러 요구를 담아 치뤄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때에 당시 대통령은 시위대를 IS에 빗대며 복면 시위를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집권여당은 복면을 쓰면 가중처벌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에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은 복면을 쓰고 소란을 일으키는 '소요문화제'를 진행하며 저항했다. 권력을 상대로 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크게 후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퇴진 촛불은 평화로운 집회로 알려져 있지만 만일 최근 알려진 대로 계엄령이 발동되었더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홍콩에서 현재 일어나는 일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생각만큼 아주 먼 일도 아니었다.

 

 

한편 현재 상황은 홍콩의 성소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커밍아웃하지 않은 사람의 성소수자 집회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복면금지법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경찰의 불허로 매년 잘 진행되었던 홍콩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특정 장소에서의 행사로 축소되기도 했다. 홍콩 사회의 알려진 심각한 불평등과 열악한 노동과 주거 조건에 더하여, 성소수자들에게는 차별로부터의 법적 보호와 동등한 혼인 권리를 비롯한 또다른 것들도 필요할 테다. 민주주의가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까? 분명한 건 더 많은 권리가 시민의 손에 있을 때 더 나은 미래도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몇년 전 매주 무지개 깃발과 함께 촛불을 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가 이뤄지지 않고서 이런 민주주의는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송환법 폐지는 물론이고 시위대에 대한 폭도 규정 철회와 무조건적 체포자 석방, 무기 사용과 성폭력을 비롯한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적 조사와 행정장관 직선제까지 5대 요구 중 어느 것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데 해외 각국의 수치가 인용되고, 미국과 대만의 혼인 평등 법제화가 한국 언론에 대서특필 되고 희망을 주었던 것처럼, 타 지역의 사례는 늘 거울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인식과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세계 여러 시민들의 인식은 침묵하는 자신들의 정부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원하는 중국 정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제연대란 말은 여전히 낯설지만, 촛불을 비롯한 여러 집회 때 보았던 해외 교민들의 지지와 국제적 시선을 떠올리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서 홍콩 시민들을 지지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요구를 알려나가는 것을 결코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이번 주말에 홍콩에서는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큰 집회가 예정되어 있고, 한국에서도 여러 지지 행동이 있을 예정이다. 많은 분들이 함께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보태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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