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원고는 12월 9일 국회에서 진행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 전파매개행위죄의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에서 남웅 활동가가 발표한 내용을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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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에이즈혐오선동의 정치로부터
매년 국정감사 시즌이면 동성애와 에이즈가 단골손님처럼 등장한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을 비롯해 인권관련 사안을 다루는 기관이면 으레없이 올라오는 이야기들이란 HIV감염률 증가 속에 문란한 동성애를 방치한다는 정치인들의 고성이다. 심지어 혐오 세력 인사들을 증인으로 배석시키기도 한다. 이들은 공중보건 담당기관과 인권정책을 반대하기 위해 동성애와 HIV/AIDS에 대해 자극적인 소재와 잘못된 정보를 동원한다. 성적으로 문란한 이들에게 과연 인권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를 심문하며 소위 반대를 위한 반대의 논리를 펼친다. ‘에이즈의 원인이 동성애인건 알고 있느냐’, ‘봐라. 이렇게 감염이 많이 되지 않느냐, 그런데 왜 관리하지 않느냐’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에게 에이즈와 동성애는 상대를 공격하는 레토릭으로 쓰인지 오래다. 2019년 11월 29일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항문성교로 에이즈에 감염되는데 그걸 조장하는 게 동성애’라고 최영애 당시 인권위원장을 힐난하는가 하면, 올해 11월 22일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이 주관한 ‘디셈버퍼스트’ 세미나에서 ‘에이즈 감염을 부르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원인 요법을 찾아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할 생각을 하지는 않고, 콘돔으로 에이즈 예방이 가능하다고 홍보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대증요법에 불과하다’고 언급한다.
HIV/AIDS를 여전히 공포의 질병으로 매도하고, 동성애를 ‘문제’로 싸잡는 행위는 이들이 강조해 마지않는 예방에 기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들의 선동은 타인에게 문란함을 투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도덕적 단죄를 질병의 공포로 연결 짓는 오랜 차별의 고리를 작동시키지 않는가. 끊임없는 비난과 공격은 공적 시민의 범주에 성소수자와 감염인을 재차 지우고, 계속해서 시민의 범주에 속하기를 미루고 거부하도록 만든다. 이는 사회적 소수자를 배제하는 의도 넘어 성원 스스로 성적 검열과 통제를 규율하는 효과까지 의도한다. HIV/AIDS는 계속해서 위험하고 두려운 질병으로 남고, 동성애자는 존재만으로 문란해지는 것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에서 ‘전파매개행위죄’로 부르기까지
혐오 논리는 단순하고 쉬운 만큼 잘못된 정보와 통념적 위계를 당연한듯 전제한다. 여기에는 한쪽을 정상으로 상정하고, 다른 쪽에는 하자 있는 몸으로, 상대를 오염시킬 수 있는 자로 취급하는 기준이 작동한다.
이러한 논리를 구현해온 대표적인 법이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상 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이다. 본 조항은 ‘감염인이 혈액이나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위험이 큰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19조의 존재는 대중사회에 질병에 대한 공포에 기인한 혐오와 처벌이 정당함을 공언한다. 단적으로 조항은 감염인이 전파매개행위를 할 경우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지만, 징벌의 강도에 비해 '전파매개행위'라는 구절은 추상적인 만큼 세속의 통념이 개입한다. 개별 판례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감염인이 고지와 합의여부에 상관없이 콘돔을 착용하지 않고 섹스한 경우 주변의 정황과 맥락을 막론하고 대부분 유죄를 선고한다. 법조항의 존재 자체가 차별의 잣대로 기능하는 것이다.
2008년 개정 당시에도 주장한 바 있지만, 성소수자·HIV/AIDS운동은 개정 전후로 좀 더 본격적인 감염인의 비범죄화 논리를 세공해왔다. 여기에는 19조 폐지에 대한 복잡한 논리를 정리하기 어려웠던 배경이 있다. 가령 ‘문란함’으로 점철된 성적 실천들을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공동체와 성소수자 운동의 여건이, 성적 권리를 박탈하는 낙인과 차별이 사회적 활동과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의 동기부여조차 강력하게 가로막았던 배경이 작동했다. 높은 문턱은 운동의 전선에 있는 이들에게도 ‘감염시키는 것은 그래도 잘못한 일이 아닐까’ 라는 최종의 의심을 끈덕지게 따라붙게 만든다. 이는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흉’이라는 공격에 맞설 수 있는 대항논리를 구축하는데 크고 작은 제동을 걸었다. 유독 다른 성병보다 HIV/AIDS에 과도한 책임의 무게와 낙인을 부여한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운동사회에도 작지 않은 부담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이는 전파매개행위죄의 문제를 정리하는 일이 단순히 법조항만을 분석하는 문제로 닫아두지 않음을, 성적 권리를 좀 더 급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문란함으로 낙인찍었던 게이커뮤니티의 섹스를 좀 더 이해해야 함을, 결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소수자와 감염인 자신을 이해해야 했음을 시사한다. 운동사회는 과거 ‘동성애와 HIV/AIDS는 관계없다’는 방어적 태도에서 HIV/AIDS가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적극적으로 품어야 할 문제임을 주장하게 되었다. ‘동성애자들이 모두 문란한 건 아니다’ 라는 소극적인 논리에서 ‘문란함 자체를 비난하고 범죄화하며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위험을 음지화 하는 것’이라는 인식전환을 할 수 있었다.(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따라붙는 공격이 있어서 한 번 더 강조하건대,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예방과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지 문란함을 전파하고 독려함이 아니다.) 우리는 질병이 겨냥하는 감염인 범죄화의 문제가 성적 낙인에 기반 한 내부 검열과 통제를 초래하고 있음을 체득할 수 있었다. 더불어 질병에 대한 과도한 낙인이 감염인의 성적 권리 뿐 아니라 사회적 활동 또한 저해하고 있음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이 있기까지는 사회에 감염인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이 경험해온 일상을 서사로 만들어 의제로 낸 시간이, 연대를 통해 운동을 조직해온 시간들이 있다. 그렇게 HIV/AIDS인권운동은 19조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으로 불러온 의제를 ‘전파매개행위죄’로 부르기에 이르렀다.
전파매개행위죄 폐지, 논리가 붙는 만큼 방향은 명확하다
현재 전파매개행위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공포가 압도했던 질병 초기의 논리를 답습한다는 점이다. 이는 전염병이 관리하기 어렵고 사람들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더 어려우니 차라리 소수의 취약군을 집중타격하는 이른바 퀵 솔루션(Quick solution)의 방향을 견지한다. (일테면 ‘어라 너 감염 됐었어? 근데 콘돔을 안 꼈어? 왜 얘기 안했어? 감염시키려고 했던 거네? 벌 받아야겠네.’ 식의 흐름.) 하지만 그것은 바이러스를 박멸하면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 속에 치료제가 개발되지 못해 질병의 전파를 범죄화하고 규율하기 급급했던, 하지만 예방효과는 커녕 낙인만 짙어졌던 구태의 악조항일 뿐이다. 문제는 과거의 '외국발 괴질환' 으로 인식되던 공포가 지금까지도 강력하게 제도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통제와 격리, 금지와 범죄화가 엄격하게 설계된 전파매개행위죄는 다소 간 개정을 거쳤지만 지금까지 존재하고 작동한다. 이미 사회에는 치료기술 발전과 보급으로 약을 잘 챙겨먹으면 감염인에게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다시피 하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섹스를 하게 되더라도 감염시키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국제적 캠페인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캠페인 언어로 U=U, Undetectable=Untransmittable라고 부르며, 한국에서는 미검출=감염불가라고 번역한다.) 소극적으로나마 사후·사전예방요법이 보급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법은 HIV/AIDS를 충분히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않는다.
누군가 물을 수 있다. 1) 누구라도 악감정으로 감염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따져보면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과 같은 방식으로 특정 질병을 표적하여 범죄화하는 경우는 없다. 정말로 악의가 보인다면 상해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현행법을 찾을 수도 있다. 물론 단죄를 대체할 법을 찾는 것이 인권운동의 목적은 아니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단죄에 앞서 질병을 의도적으로 전염시키려는 이의 심정을 헤아리는 작업이어야 하지 않을까.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에 앞서 부정적 감정이 발생하기까지 질병의 의미를 낙인으로 점철시켜 혐오를 방치하고 확산함으로써 구성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국가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또 물어볼 수 있다. 2) 치료를 받으면 바이러스 수치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며 감염시킬 수 없다고 하는데, 개중에는 치료 받지 않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약을 꾸준히 먹는다고 할지라도 하루 이틀 복약을 빼먹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예방요법에 충실하게 접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면 치료를 꾸준히 받는 감염인에 한해서 죄를 면할 수 있게 해야 할까.
현실적으로는 치료를 거부하는 이들보다 자신의 감염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치료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들이 치료를 주저하거나 회피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감염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감염인과 콘돔 없는 섹스를 한 데 대해 우려와 악감정을 갖는 기저의 맥락은 무엇인가. 개중에는 감염에 대한 과도한 우려와 두려움으로 검사를 기피하고, 감염사실을 확인했을지라도 치료를 피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들에게 징벌의 재갈을 물리는 건 차라리 감염사실을 숨기는 것이 안전하지 않겠냐고 독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감염된 게 네 잘못이거나 네가 전부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예방과 치료의 접근이 용이해진다는 점이다.
전파매개행위죄의 폐해를 설명하는 논리와 여건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실 HIV/AIDS 완치법이 온전히 개발되고 보급되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우리는 충분히 치료와 예방으로 관리 가능하며 비감염인에 비등하는 예상수명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조항은 ‘관리 가능성’보다 ‘만에 하나 감염될 위험’에 방점을 찍는 모습이다. 완전한 억제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거의 공포와 두려움을 반복재생산하는 상황에서 폐지 논리는 이리저리 따져 묻고 고쳐야 한다.
난망한 과제는 HIV/AIDS 인식을 변화하고 범죄화를 종식하기 위한 논리에도 있다. 대표적인 사안이 치료기술과 의료접근권의 발전만을 주장하며 폐지를 확언하는데 대한 인권운동의 긴장이다. 최근 감염인들로 하여금 HIV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기술은 질병의 비범죄화를 주장하는데 있어 강력한 근거로 뒷받침된다. 전파매개행위죄 폐지운동의 과정에서도 의료기술의 발전과 국제적인 성과는 대중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큰 명분이다. 하지만 객관적 지표에만 의존하게 되면 개인의 복약여부와 치료 상황 자체가, 바이러스의 수치 자체가 범죄 여부를 결정하는 또 다른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개인의 책임론을 강화하기 쉽다. 전파매개행위죄 폐지운동은 의학적 성과를 근거 삼으면서도 폐지의 당위를 그 안에서만 만드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인지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의학적 성과를 폐지 논리로 삼는데 발생하는 한계와 구멍으로부터 인권운동은 개인의 책임으로 과도하게 전가하는 구조를 문제 삼으며 사회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논리가 복잡할지라도, 전파매개행위죄 폐지를 주장하는 인권운동의 방향은 분명하다. 1) 질병에 대한 현재적 정보를 업데이트 하여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을 없앨 것. 2) 질병을 범죄화하는 것은 당사자에게 낙인을 찍고 질병을 음지화함으로써 공적인 예방을 어렵게 한다는 것. 3) 모든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기에 앞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정황과 환경에 어떤 사회적 낙인과 불평등이 드리워져 있는지 살필 것. 이는 HIV/AIDS 비범죄화의 주장 너머 공중보건의 가치를 재고하는 것이자, 질병의 범죄화를 도구적으로 남용하는 성적 보수주의로부터 성적 권리를 다시 묻는 작업이기도 하다.
방향이 명확해도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면 불신의 공동체가 증식할 뿐
전파매개행위죄는 국가가 질병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고 당사자의 사회적 활동을 보장해야 함에도 이를 통제와 금지로 점철시키면서 부정적 무게를 개인에게 전가한다. 국가의 책임방기는 감염의 두려움과 낙인을 개인과 개인 사이 응보로, 특정 집단을 향한 사회적 낙인으로 점철시킨다. 이는 최근 19조를 이용한 직접적인 고소 사건이 늘고 상담사례로 접수되는 일들이 빈번해지는 상황으로 연결된다. 개인 간 성관계에서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섹스를 할 때, 한쪽의 감염사실이 알려지거나 심지어 사전에 감염사실을 고지했을지라도 감염인은 피고소인으로, 범죄자로 지목받고 법정에 선다. 국가는 예방의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점철하는 가운데 개인들의 사적 관계를 심판하는 주체로 선다. 커뮤니티와 개인의 관계는 감시와 통제 아래 위계와 응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의 법조항은 질병을 가진 이들이 섹스를 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우발적이고 모호한 상황들을 전부 범죄화 한다는 점에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섹스에는 우연적이고 온전한 판단이 어려운 상황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가령 누군가는 술기운에 콘돔 사용에 대한 판단을 놓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상대의 주도권에 압도되어 자신의 입장을 갖지도 못할 수 있다. 현장에서 합의를 거쳐 콘돔을 사용했더라도 다툼과 갈등이 생겨 법적으로 몰리는 위치에 놓일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관계 내 비합리적인 상황들이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만 주장하는 것처럼 무력한 태도도 없지 않을까. 섹스를 기계적으로 재고 따지면서 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무엇보다 '하자' 없는 섹스를 진공상태에서 이어가는 것이 가능한가? 언제든 내 몸은 오염에 노출될 수 있고, 오염을 추구하기도 한다. 쾌락과 오염은 크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러는 그 안에서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으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물론 섹스를 위한 예방과 준비는 단지 HIV/AIDS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며, 관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오염을 예방하고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을 협의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 관계는 다양한 위계가 부딪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는 섹스를 합의하고 참여하는 이들의 책임 분배에도 연결된다. 단적으로 둘 사이에 콘돔을 끼거나 그러지 않기로 합의를 봤다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데 대한 쌍방의 책임을 나눈 것이다. 하지만 19조는 그 책임을 전적으로 HIV감염인에게 부과한다. HIV감염사실 자체에만 집중하여 범죄가 될 수 있다고 못을 박는 건 섹스 과정에 일어나는 여타의 위력과 강제적인 상황들을 은폐한다. 전파매개행위죄는 섹스 안에서 교차하는 다양한 위계의 항목들을, 동의의 과정을 거슬러 읽고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근본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의 구성 가능성을 HIV 감염인의 책임으로 수렴시킴으로써 기각하고, 성적 불평등을 재생산할 뿐이다.
통제와 범죄화를 강조하는 방역 속에서 감염사실의 노출은 리스크가 된다. 동시에 '쟤가 병자래-' 식의 소문과 음모론을 무성하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감염 당사자는 위험과 가십 사이에서 관계의 줄타기를 위태롭게 이어가는 것이다. 질병에 대한 공포와 성적 불평등은,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섹스에 있어 성적 관계 전반에 있어 책임을 평등하게 분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 불평등한 위계로부터 상대를 응보와 삭제의 감정으로 바라보게 한다. ‘너는 병에 걸려서도 조심하지 못했으니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법과 사회, 공동체적으로 통용하는 셈이다. 그게 어떤 공익적 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재차 강조하지만, 감염인들에게 죽을 때까지 섹스를 하지 말라는 비난은 오히려 감염인에게 자신의 감염사실을 고지하는 여건을 더욱 어렵게할 뿐 아니라, 노출된 섹스를 한 이로 하여금 감염의 과도한 공포로 인해 검사를 기피하게 만들 뿐이다.
위의 배경 아래 인권운동은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그럼에도 지나치지 말아야하는 것은 안전을 인지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가진 이들의 파트너가 HIV감염인이라고 했을 때, 감염인뿐 아니라 비감염인 개인이 갖는 부정적인 심정까지도 헤아리는 노력이다. 내가 다른 누군가와 섹스를 했는데 감염이 됐다고 한다면, 그를 응징하고 싶고 벌하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히 19조를 폐지하는 것이 성적 낙인과 차별을 온전히 해결하는 유일한 답일 수 없음을 시사한다. 논리적인 정합성들이 예방논리를 채울지라도 일상의 부정적인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되고, 질병의 비범죄화가 이뤄지더라도 질병이 내 몸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공포가 온전히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는 전파매개행위죄 폐지운동에 있어 당사자들의 감정에 귀기울여야 하는 것이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에 노출된 이가 질병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때, 필요한 건 '너를 감염시킨/ 감염시킬 뻔한 그 친구를 응징하자'는 목소리보다도 빠른 검사와 예방을 독려하며 네가 아픈 상황이어도 곁에 있겠다는 응원과 지지가 아닐까. 질병의 비/범죄화는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의 대기를 좌우하는 문제이기도 한 셈이다.
누구라도 타인에게 감염된 상황, 또는 원치 않게 노출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을 상황은 부정적 정념에 휩싸이기 쉽다. 당장 나를 감염시킨 이를 찾고 싶고, 그를 응징하고 싶을 수 있다. 그렇게 감염인인 당신이 바깥에 나오지 않게 하고 누구도 만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자신을 지지할 수 있는 자원이 빈약하고, 질병에 배타적인 태도를 갖기도 쉬운 성소수자의 상황은 누구보다 성적 보수주의를 응보와 징벌로 이어가려는 마음이 클 수 있다. 그래서 19조 폐지를 이야기하는데 제일 우려와 부담을 갖는 타깃 그룹은 혐오세력도 아니고 대중사회도 아닌 게이 커뮤니티와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등 ‘취약그룹’으로 부르는 이들이다. 심지어 몇몇 감염 당사자들마저 비범죄화를 반대한다. 귀에 박히도록 성소수자 혐오에 동원되는 에이즈 공포에 오랜 시간 노출된 성원들은 질병이 자신에게 근접해 있다고 인지하면서도, 그만큼 질병의 위험을 손절하고 감염된 이들을 등지고 배척하는 편이 합리적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쉽다. 소수자 그룹 내에서 소수자들을 계속해서 갈라치기 하는 방식은, ‘문란함’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과하고 이를 당사자와 등치하여 그들을 배제하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논리가 어떤 허점이 있는지를 분석할 수 있지만, 자신의 몸과 실존이 개입하는 상황에서 논리만으로 감화되고 설득되기는 너무도 이상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인권운동이 19조 폐지 너머 성평등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성적 자기결정권을 확보하고 정립하는데 있어 정상성의 규준이 신체와 관계, 사회 전반을 강제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심문해야 함을 과제로 남긴다. 물론 그것은 HIV/AIDS운동과 감염인 당사자, 성소수자에게만 주어진 짐이 아니며, 누구보다 법조항 폐지 너머 성평등의 가치를 실현시킬 국가의 책무이다.
전파매개행위죄 폐지운동으로부터 성적권리를 말하기
감염인의 성적 권리를 제한하고 응보와 징벌로 대하는 방식은 통제와 관리에 기반 하는 인구정치의 모습을 갖춘다. 감염에 취약한 그룹 내의 안전을 도모하고 공중보건에 기여하기보다, 이들을 낙인의 존재로 점철시켜 범죄대상으로 몰고 사회에서 음지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감염인을 범죄화하는 예의 기조는 동성애자 군인의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군형법상 추행죄와 상당한 접점을 가진 뿐 아니라, 성노동을 범죄화하고 낙태죄를 범죄화하며 부랑자와 장애인, 비정상이라 손가락질 당해온 이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가둬온 시설사회의 맥락과 궤를 함께 한다. 이는 성적 보수주의를 강화해온 국가의 통치 아래 작동한다.
그렇게 질병으로 성원을 가르고, 시민권의 규준에 맞지 않다고 부정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삭제시키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결함 있는 요소들을 적대하고 잘라내면 이 사회는 청정해질까. 현재의 변화를 갱신하지 않으면서 멸균실을 지향하는 사회(는 불가능 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에서 나는 어떤 당사자가 되어 있을까. 취약 계층에 대한 법적 통제가 사회적으로 이들을 낙인찍는 동안 성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위계는 문제삼을 기회를 놓친 채 체화하기 쉽다. 무엇이 섹스의 위계를 구분하는지 비판적으로 묻기에 앞서 감염인의 섹스를 단죄하고 성소수자의 사회적 가시화를 가로막는 방식은, 관계에 놓인 사회적 요소들 간의 교차와 협상과정을 살피는 노력을 잠식할 뿐이다.
단죄와 금지에 바탕 하는 조항은 국가와 국민, 국민 내부와 그 안팎의 위치 또한 위계적으로 구분하고 배치한다. 국가는 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책임을 성원을 단죄하고 징벌하는 방식으로 전가한다. 범죄 여부를 판결하고 응징하는 위치는 결국 모든 섹스를 개인의 문제로만 고착하는 효과를 낸다. 이는 성원들로 하여금 타인을 감시하고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정상성을 관리하고 끊임없이 검열할 것을 공연히 강조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홀로 남거나 손상과 빈곤에 노출될 수 있다. 고립되기 쉽고,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질병을 범죄화하고 사회활동을 저해하며 감염인의 섹스를 범죄화하는 조항은 커뮤니티를 망가뜨리고 성평등의 실천 대신 질병을 가십과 소문의 대상으로, 바이러스 종식의 단편적인 목적 아래 감염인을 절멸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정작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감염인이 어째서 관계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는지, 자신을 드러낼 경우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로 종식해야 하는 것은 질병의 두려움과 과도한 공포다.
그런 점에 최근 감염인들이 자신의 감염사실을 드러내며 사람을 만나고 자기 이야기를 사회에 나누는 시도들은 주목할만한 변화이다. 데이팅 어플에 자신의 감염사실을 올리고, 관계의 경험과 사례들을 만들어 간다. 자기방어와 외부에 개입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도들이 미약하게나마 커뮤니티 안팎으로 시도된다. 응보와 배신의 감정을 나에게서부터 읽으며 서로 간 비범죄화의 필요를 나누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미 내부에서 변화는 만들어지고 있다. 비범죄화의 노력은 서로의 삶을 지지하는 네트워크를 넓히고 공동체를 구축해나가는 시도이기도 한 것이다.
공론장 위에 게이와 감염인의 섹스를 이야기하는 노력은, 예의 실천들을 안전하게 지속하기 위해 어떤 자원과 관계들이 필요한지 살피는 작업을 포함한다. 이는 섹스를 하면서도 섹스의 취약함을 이야기하기 지극히 어려운 현재를 논하는데 나아가, 지극히 어려운 환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배경 또한 살피는 작업들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 질병의 비범죄화 너머 성평등의 가치 실현으로,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고 온전한 삶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사회적 위계가 어떻게 기회를 박탈하고 침묵시키는지를 묻고, 변화를 요구하는 작업들을 아우른다. 전파매개행위죄 폐지는 그 연장선에 있다.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법이 없어진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법이 폐지되지 않는 성평등의 실천은 공허할 뿐이다. 19조가 위헌판결을 받고 삭제된다 하더라도 곧장 감염인과 비감염인 사이 성적 위계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섹스가 저절로 평등해질 리 없을 것이다. 이는 전파매개행위죄 폐지를 주장함에 있어 법적 논리 외에도 질병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 어떻게 성적 낙인과 교차하면서 위계를 강화하고, 당사자들을 고립시키는지 살피는데 주안점을 두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19조 폐지운동은 감염인의 비범죄화는 물론이요, 비범죄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섹스와 사랑의 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것들을 문제 삼고 바꿔나가야 하는 큰 그림을, 연대의 확장을 요청한다. 여기에는 오랜 시간 콘돔 예방과 개인의 책임에만 초점이 맞춰진 형식적인 캠페인과 교육으로부터 질병의 인식을 개선하고 성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중캠페인과 성평등교육의 제도적 안착을 포함한다. 나아가 감염여부로 당사자와 비당사자를 가르고 한쪽의 존엄을 지우고 고립시켜 통제하려는 시설사회의 논리에 저항해온 운동들과의 연대 또한 수반해야 할 것이다. 이미 시민사회에서 오랜 시간 숙고하며 음지로 강제적으로 밀려나온 당사자들까지도 제 권리를 각성하며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HIV/AIDS 비범죄화와 성평등을 향한 노력은 그리 무겁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국가 기구들은 지금이라도 이러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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