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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AIDS

입스파- 룸토크, 입으로 풀어드립니다. 익선동 야간개장 후기

by 행성인 2022. 6. 28.

남웅, 다니주누, 빌리, 상훈, 포니 ('룸토크' 스탭)

 

남웅 엮음

 

 

지난 18일 토요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익선동 야간개장에 참여했습니다. 올해로 3회를 맞는 행사는 GLOW SEOUL 이 주최하지만, 개인사업장 너머 게이 커뮤니티의 성원들이 함께 기획하고 참여하는 연례 지역행사로 자리잡고 있죠. 익선동과 낙원동 일대 도시재생사업에서 오랜시간 터를 잡아온 게이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을 배제하고 호명조차 하지 않은데 대해 시작한 행사는, 코로나19로 3년만에 열려 더 각별했습니다. 

 

늦은 밤 진행하는 만큼 남다른 기획이 필요합니다. 네트워크에 마련된 공간은 '청수당 스파'였는데요. 오랜 골목어귀에 마련된 스파샵 입구에 들어서면 연못이 나오고 징검다리를 건너 좁은 복도를 지나면 다른 공간에 온 것처럼 조용한 대기에 휩싸이는 공간입니다. 대나무로 빼곡한 중정 주변으로 스파를 받을 수 있는 방들이 배치된 한옥의 풍경은 제법 아늑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다소 '난이도'가 있는 공간구성인지라 기획 자체만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행사가 익숙하지만, 홀보다 개별 룸으로 구성된만큼 대중 토크쇼보다는 면대면으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흥행보다는 퀄리티를 택했다고나 할까요? 

 

방문한 사람들은 네트워크의 야심작 '에이주(酒)'를 주문해 마시고 최장원 작가의 영상작업을 함께 감상했습니다. 홀을 돌아다니는 스탭이 찾아오면 간단히 퀴즈를 맞추고 문진표를 작성하고 스몰토크를 진행합니다. 원하면 방에 들어가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룸토크'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방에 들어가면 방마다 호스트가 반겨주지요. 스파 룸에 놓인 침대에 나란히 앉아 섹스와 만남에 대한 고민들을 나눕니다. 무엇이 우리의 섹스를 어렵게 만드는지 고민을 나누면서 HIV/AIDS에 대한 경험을 좀 더 내밀하게 나눌 수 있지요. 입으로라도 당신의 피로를 풀어드린다고 해서 행사 이름도 '입스파' 입니다.

 

에이주를 만들고, 손님들에게 퀴즈와 문진표를 작성하게 하고, 예약프로그램을 만들어 관리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들은 생각보다 운영이 까다롭고 많은 손을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껏 뽐내고 나온 게이들 뿐 아니라 복잡한 익선동을 배회하다가 들어온 퀴어들이 한 공간에 섞여 에이주를 마시고 땀을 식히면서 분위기를 즐기는 풍경은 내심 신기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우아하고 아늑한 청수당 스파의 공간마다 HIV/AIDS운동 구호가 담긴 피켓들을 붙여놓은 풍경은 어색하면서도 제법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답니다. 많은 PL(People Living with HIV/AIDS) 여러분들이 찾아와 자신도 PL이라 웃으며 말해줄 만큼 편안하게 어울리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우리가 원하던 공간이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 잠시 상념에 젖어들었습니다. 

 

 

하룻밤 많은 사연과 경험들이 남았는데, 유독 '룸토크'는 밀실 같은 방에서 진행하는데다 비밀보장이 우선이었던지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여 이번 웹진에서는 룸토크에 참여한 호스트들의 후기를 간단히 요청하여 독자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간단히 써달라고 했지만 간단히 써낼 후기가 아니었다는 게 함정. 금방 예약이 차버려서 참여하지 못한 이들, 어떤 행사였을지 궁금해했을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닿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익선동 한 스파의 좁은 방에서 이야기할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벼운 섹스 토크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좁은 방 놓인 하나의 베드 위에 마주앉은 우리는 U=U, 전파매개행위 금지조항 그리고 룸토크 게스트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 사전 문진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섹스를 하는데 현타가 온다는 내용부터 젠더퀴어의 연애 이야기, 사람을 만나는게 겁이 난다는 게스트, 인권활동가들이 이렇게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해서 더 이상 숨어 있지 못하게 만드는 거냐는 귀여운 투정과 케케묵은 고민들까지 이야기 하다가 부랴부랴 행사의 목적인 HIV/AIDS를 꺼낸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U=U에 대해 알고 있었고 궁금해 했다. 자연스레 감염인의 섹스는 불법인지 묻는 질문에서 감염인의 섹스를 범죄화 하는것에 대해 모두가 잘못이라고 입을 모아 말을 했다.

 

에이즈 얘기에 대해 다들 거부감은 없었지만 감염인의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는것은 다들 낮설어 보였다. 또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함께 이야기 하는것도 낯설어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편해보였다. 한 타임 끝내고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얘기를 왜 그동안 자주 못했던 걸까 생각하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다니주누(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

청수당 스파를 배정받았다기에 북적거리는 현장과 거리를 둘 수 있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새로운 공간을 배정받았으니 공간에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컸다.

 

작은 방들이 모여있는 공간은 기획해본 일이 없어 처음엔 막막했다. 하지만 스파에서 뭘하겠나. 피로를 풀어야지. 대신 스킨십 대신 대화로. 뭉친 근육 대신 섹스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은 내밀한 공간에 제법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방마다 예약을 받고 때맞춰 손님이 들어오면 배정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30분이 지나면 기념품을 건네며 나가는 손님을 배웅한다. 이 공간은 여느 행사를 진행한 경험보다도 성적 뉘앙스가 강했다. 마침 스파룸에는 마사지 베드가 있고(누울 수 있고 내부에 열선이 깔려있어 엉덩이가 뜨끈해진다) 커튼도 있다(뭘하든 못알아보게 가릴 수도 있다).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룸토크 가이드를 만들면서 가장 아래 다음의 지침을 남겼다 '대화를 하다 눈이 맞아도 마감시간까지 자리는 지킬 것.' 공간 한켠에는 히노끼욕조가 있었고 우리는 좀 더 섹시한 상상들을 펼쳤지만 결국 당일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내가 담당한 룸에는 전부 1인 손님들이었다. 손님과 친밀한 거리를 두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베드에 나란히 앉아 나눈 고민들은 내가 요즘 생각하는 것들과 통하는 지점이 많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섹스를 하는데 대해 걱정이 커지고, 섹스를 못하는데 대해서도 걱정이 커지는 문제, 결국 섹스를 포기하고 산다는 이야기, 성향에 대해 갖는 스테레오타입과 달라 고민이 크다는 이야기, 끼스런 사람을 대놓고 거절한다는 문구를 모른척하려고 하지만 결국 자신도 긴 머리를 자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스스로를 위축하고 검열하게 만든다는 이야기, 남자와 섹스를 하고 게이커뮤니티에 나오지만 자신은 이성과 결혼을 하고싶고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한 건 아니었다. HIV/AIDS에는 호의적이지만 여전히 감염인과 스킨십을 갖고 관계를 맺는데 대해서는 멈칫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감염인들이 콘돔 없이 섹스하면 처벌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할 때는 이게 지금 운동이 마주한 문턱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공간이 공간인지라 당장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래도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야기 내용뿐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와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 공간을 찾는 많은 이들이 감염인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이자 감염인 친구가 없다는 이들의 표정은 조금 바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는 그렇구나 하고 얘기를 못했는데, 당신에게 감염인 친구가 없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는 이야기도 붙여볼 걸 그랬다. 

 

덧: 룸토크를 마치고 홀에 남은 손님들을 다시 마주치기도 했는데, 뻘줌하게 내외를 하게 된다. 비밀보장 약속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길가다가 썸남이나 전남친을 우연히 마주쳤을때랑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남웅(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3

룸 토크를 신청한 사람이 방에 들어오면 굉장히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도 그럴 것이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고요한 방에서 조금은 진지하기에,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과 낯선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룸 토크를 위해 방을 찾은 사람은 누구든 어색함을 갖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쭈뼛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첫 침묵은 룸 토크 담당자가 깨는 것이 국룰이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후 상대방의 이름을 묻고 반가움을 표현 한 후 문진표의 행방을 물으면 참여자는 잊고 있었다는 듯 자신이 작성한 문진표를 주섬주섬 꺼내 내밀었다.

 

작성된 문진표를 통해 방문자가 가지고 있는 대략의 정보를 파악 할 수 있었다. U=U를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과 HIV감염인의 콘돔 없는 성관계가 불법이라고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통해 HIV/AIDS 이슈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룸토크에서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연이 어떤지에 따라 입스파를 무엇 때문에 어떤 취지로 하는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인을 따라와 얼떨결에 룸토크를 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입스파의 취지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들이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확실히 HIV/AIDS와 밀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HIV감염인들이 사람을 만날 때 어떻게 사람을 만나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등 HIV감염인들의 삶과 관련한 이야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HIV/AIDS예방에 대한 고민을 나눠주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HIV/AIDS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HIV/AIDS와 상관없이 이전의 연애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그와 연결된 앞으로 하게 될 연애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고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된 성생활에 대한 고민들을 나눴다.

 

룸토크의 내용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공유하기는 힘들지만 룸을 가득 채운 고민들은 다양한 성 정체성과 HIV감염여부를 넘나들면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벽이 세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들은 섹스‘HIV/AIDS’라는 키워드로 서로가 다른 주제의 고민을 통해 복잡하게 연결된 거대한 하나의 성소수자의 성문화로 보였다.

 

그 문화 안에는 익숙하거나 들어봤을 법한 고민들도 산재해 있었지만 굉장히 낯설고 처음 들어보는 고민이 있기도 했다. 섹스라는 주제를 통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과 관련된 고민, 사람을 만날 때의 고민, 성관계 안에서의 고민 등 육체적인 관계 외에도 섹스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방문자가 어떤 고민을 갖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어서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성과 관련하여 조금은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평소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성과 관련한 고민을 쉽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성과 관련한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이렇게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에게 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만큼 주변에 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기 힘든 상황인 것은 분명해보였고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꾸준하게 필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나아가서는 세상이 HIV/AIDS이슈와 정보에 아직 갈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관계상 30분이라는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서 긴밀한 이야기를 해야 했기에 더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한 이야기도 많았고 더 많은 시간 공을 들여 해야 할 이야기를 속성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했다.

 

여러 가지 느낀 것들이 있지만 가장 크고 핵심적인 생각은 성소수자가 성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더 긴밀한 공간과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행사였다.

 

상훈(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4

청수당 맑은물에

 

만수산 드렁칡 마냥 얽히고 설킨 익선동 구비구비 좁은 길따라, 따닥따닥 바투 붙은 건물 좁은 틈을 길인지, 틈인지 구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십년간 종로 바닥 구석구석 쓸고 다녔다 나름 자부하는 나 역시도 수련이 부족했던 탓인지, 장소가 어딘지 당최 가는길을 몰라 물과 술과 물건들을 들고서 그저 앞선 사람을 따라 요리조리 발걸음을 빨리 놀릴 뿐이었다. 사람들로 왁자한 거리를 왼쪽 오른쪽 구호를 맞추어 걷다, 꺾어들어선 골목은 불빛 한 점이 없었다. 이 길이 맞는가 의심하는 찰나, 맨 앞에서 걷던 사람이 벽 속으로 쑥하고 사라졌다. 94분의 3승강장으로 카트를 들이밀고 사라지듯 사람들이 내 앞으로 쏙쏙 사라졌다. 거기 틈이 하나 있었다.

 

낮에 그 거리를 거니노라면 분명 보지 못했을 틈, 우거진 수풀과 돌길 사이로 은근한 주황불빛이 안에서 새어나왔다. 마치 한발 한발 딛으라고 나있는 것 같은 돌길을 밟자 양 팔과 볼과 머리를 풀잎들이 스쳤다. 시끌벅적한 번화가의 소음이 멀어지고 물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불자 풀잎이 부딪히는 소리와 풍경소리가 영롱하게 들렸다. 기분좋은 향내와 함께 숨을 들이쉬자 아늑한 네모의 공간속, 어느새 중심에 있었다. 여기 청수당 스파에서, 오늘 사람들에게 스파라는 것을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라고 했다.

 

오늘 익선동 야간개장, 청수당 스파에 방문한 사람들은 에이주()’라는 마셔서는 절대 좋을게 없어보이는 이름의 술과 함께 30분간의 입스파를 받을 수 있다. 타이도 아니고 스웨디시도 아니고 시아추(shiatsu)도 아닌 입이었다. ‘입으로 시원하게 풀어드립니다’(대체 뭘?) 라는 뜨악한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고 스파영업을 하는 곳은 아마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것이다. 게다가 여기 직원인 나는 HIV감염인이다. 나는 한국의 보통 교육을 수료한 사람으로서, ‘에이즈’, ‘입으로 풀어드린다’, ‘스파’, ‘HIV 감염인은 함께 붙어있으면 안되는 단어임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스파를 주최하는 주체의 이름에 인권이 붙어있기에 더욱 수상함을 지울 수 없었다. 오늘 이 스파룸에 단 한사람이라도 입스파를 받으러 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내 예약 리스트는 금세 가득 찼다. 사람들은 사전 문진표를 작성한 뒤 물이 흐르는 중정을 건너 내가 기다리는 룸으로 들어왔다. 나는 문진표에 써진 에이즈예방법이니, 노콘 섹스니 HIV감염인과의 섹스니 하는 것들을 보고선 사람들이 잔뜩 움츠려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스파룸에 깔린 안정감을 주는 낮은 불빛과 향기 때문인지, 한잔 걸치고 온 에이주의 술기운 때문인지, HIV에 걸리고도 10년이나 생존했다는 내 소개 덕분인지 곧 잘 자신의 뭉친 생각을 으로 풀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여기저기 뭉쳐있었다. 세상이 빚어낸 부채감을 짊어진 채 어깨와 목을 이어 척추까지 딱딱해져 있었다. 사랑하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입이 굳어버려 사랑하는 이의 앞에서 그가 원하는 어떤 발음도 내지 못했다. 오랜 연인과 안정을 누리면서도 자신앞의 미래를 몰라 가슴 죄여했다.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어떤 즐거운 감각도 느낄 수 없을 만치 손발에 굳은살이 두꺼워져 있었다. 어설픈 위로를 받는것도 주는것도 싫어하는 나는(HIV에 걸리면 많이 받아보게 된다) 그저 귀로 들을 수 밖에. 분명 입으로 풀어준다고 했는데…. 미안함에 나는 리액션을 최대한 과장 해야 했다. 그러던 중 딱 하나 확신있게 내 입으로 풀어 줄 수 있는 뭉침이 있었다. “HIV 감염인을 만나면 어떻게 무슨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라 말한 그에게, 나는 나의 현란한 입놀림을 펼쳐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 고민을 하는건 적어도 우리가 있다는걸 알고, 마주칠 대비를 하는 사람이니까. 같이 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나는. 적어도 나는. 사실 아픈 사람에게 할 수있는 보통의 말들조차 우리에겐 상처가 되긴 해요. 그러니 우리는 사람의 본심을 꿰뚫는 통찰이 있어야 하고,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죠. 그 사람과 오래 보아야 겨우 눈치정도 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만날 많은 감염인들이 당신의 좋은 마음씨를 오만이나, 적선 내지는 동정으로 치부하고선 마음을 굳게 닫을거에요. 얼마나 많은 감염인들이 당신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까요? 저는 그걸 묻고 어떤 대답 비스무리한걸 찾는데 10년이나 걸렸답니다. 그러니 우리 서로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앞으로 얼마나 서로 다치고 힘들게 할까요? 그러니 오늘같은날 여유롭게 스파를 하면서 굳은걸 풀고 다시 굳어질 마음을 대비해야 하는것이겠지요.

 

그의 마음이 조금은 풀렸을까? 그는 밝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하고는 룸을 떠났다. 대충 그냥 좋은말 같은걸 하지 못하는 나야 말로 오늘 입스파를 받으며 좀 풀어야 하는 사람이라 느껴졌다. 그래도 말을 하니 마음이 개운했다. 내가 오늘 이래도 되는건가, 잘 하는건가 마음이 심란했다. 습하지 않아 적당히 시원하고 좋은 날이었다. 기지개를 쭉 켜고 다음 예약이 잡혔는지 확인했다. 쉬는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태우며, 틈틈이 시간이 날때면 이런 틈 사이 스파에 들어와 조금은 풀면 좋겠다 생각했다. 타이든 스웨디시든, 시아추든 입이든.

 

포니(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5

“여기선 아무런 기록도 없을 예정이니 맘 편하게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빌리라고 합니다. 청수당 입스파는 야간개장을 빌어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에서 마련한 공간입니다. 마침 야간개장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저희에게 청수당 스파를 내어주셔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을까 하던 차에, 1:1로 긴밀하게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섹스 이야기나 좀 맘 편하게 해보자 싶어서 이렇게 기획하게 되었어요. 여기선 아무런 기록도 없을 예정이니 맘 편하게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지난 18일 있었던 야간개장에서, 저는 청수당 입스파에서 ‘룸토크’를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그 어떤 시민사회운동보다 섹스와 밀접하게 닿아있는 HIV/AIDS인권운동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원들과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판을 제대로 깔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 제안이 왔을 때 흔쾌히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것 하나는 정말 자신있는 분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섹스’를 주제로 야간개장을 찾은 성소수자 커뮤니티원들이 들려줄 고민과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짜릿하잖아요? 맨정신에, 어쩌면 야릇할 수도 있는 분위기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 섹스에 대해서 솔직해지는 거.

 

대부분 호기심에 신청하신 분들이 많았고, ‘섹스’라는 주제로 선뜻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쉽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통 질문을 던졌습니다. “최악의 섹스, 혹은 지금 기억나는 나빴던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좀 더 구체적인 주제를 던지고서야 ‘썰’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할 만큼, 모두 하나같이 “어리고 뭘 잘 모를 때”의 이야기를 털어 놓더라고요. 섹스 전 준비(예: 관장, 콘돔/젤과 같은 준비물 등)가 덜 되어 당황스러웠던 경험, 서로 원하는 것에 대한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어긋나 섹스가 불만족스럽거나 불발된 경험과 같이 정보와 경험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 맞닥뜨린 상황.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관계 속에서 강압적이거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분위기에서 했던 섹스와 같이 권력관계가 뒤엉켜 만들어낸 불편한 경험.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남같지 않은 상황과 경험이라 공감도 되고, 이 모든 이야기의 근원에는 성소수자를 벽장 안에 밀어 넣고 혹여나 섹스 이야기라도 할까봐 재갈까지 물려 놓은 한국 사회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주변화된 존재들의 취약성’이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달까요.

 

그러면서 과연 지금 그 “어리고 뭘 잘 모를 때”를 살아가는, 이제 갓 성소수자로서 정체화를 시작하고 섹스를 하고 있을 이들은 과연 ‘좋은’ 섹스를 ‘잘’하고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섹스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불쾌했던 섹스는 필연적인 경험인가 싶으면서도, 그 빈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성 간 섹스 이야기도 틀어막는 판에, 한국 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성소수자의 섹스 라이프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 같고, 아무래도 성소수자의 섹스 라이프를 다채롭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방법을 고민하는 건 또 다시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몫이겠거니 싶었습니다. 성관계를 하고 나면 말부터 놓는 커뮤니티 분위기가 있다지만, 두 명 이상이 만났을 때 권력의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소통방식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의논하고, 다양한 섹스의 방식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장소, 공간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섹스를 둘러싼 ‘썰’에 가까운 정보는 술자리에서 안주로 씹히는 방식으로 융통되어 오다가 최근 들어 SNS를 통해 기록되고 있는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만, 이야기를 너무 가볍지만은 않게, 또 너무 심오하지도 않게 다루는 활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후기를 작성하면서 돌아보니 아쉬운 점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모두들 공통되게 ‘주변화된 존재들의 취약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HIV와 엮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의 아쉬움이었습니다. 30분이란 시간이 긴 시간은 아니고, 그 모두가 HIV와 직접적인 연관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 아니기에 입스파를 진행한 대다수의 시간은 HIV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섹스 이야기에 할애를 할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 5분을 남겨놓고 U=U와 19조 폐지 운동의 중요성에 대하여 랩하듯 전달하고 세션을 종료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사이인지라 좀 더 친밀해진 관계 속에서 U=U, 19조 폐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모두들 경청해주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다른 부스에서도 U=U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면서 들었는데 이렇게 한 번 더 들으니 꼭 기억하겠다고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친밀함을 토대로 (혹은 빌미로) ‘인권말’을 나누는 방식이야 말로 가장 깊숙하게 운동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청수당 입스파 활동에 참여하면서 2019년 인권포럼에서 진행된 “안에 싸도 돼요?” 세션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두 활동 모두 커뮤니티 내에서 섹스에 대해 내숭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확인한 것에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욕망을 건드렸을 때 커뮤니티가 반응을 하고, 그들과 공감대를 쌓을 수 있는 여러 대화들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도 이번에도 느꼈습니다. 섹스를 둘러싼 편견과 거부반응을 모두 꺼내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좀 더 끈끈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사회의 주변화에 당당히 맞서는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빌리(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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